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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행복한 고통과 불행한 고통

 


행복한 고통과 불행한 고통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다 보면 대다수는 수많은 난관이나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혹자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일생동안 행복하거나 기쁜 일만 있을 수는 없다.

그건 대재벌집안에 태어난 사람이나,

명문가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고통에는 상반되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행복한 고통과 불행한 고통이 그것이다.

 

불행한 고통은 내가 원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외부의 힘에 의하여 비자발적으로 생긴다.

반면에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한 고통이 있을 수도 있는데,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생기는 고통이 여기에 해당된다.

물론 자신의 몸을 학대함으로써 생기는 고통에서 쾌감을 느끼는 병적인 경우는 예외로 한다.

 

영화설교가로 유명한 하목사님은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곧잘 하시는데,

모친께서는 남편 없이 혼자 벌어서 자식을 공부시키는데도

늘 용돈은 자신이 원하는 액수를 훨씬 넘는 금액을 주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방학 때 제주도에 있는 집에 가보면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없고,

옷은 수년째 같은 옷만 입었다고 한다.

남들처럼 옷이라도 제대로 사 입으라고 하면

 늘 남편도 없는 내가 무슨 옷이 필요 있냐?”는 식의 대답이셨다고 한다.

 

 

1980년대 이전 우리네 부모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그러했을 것이다.

자신은 주린 배를 움켜쥐더라도 자식은 배불리 먹이려고 하시던 눈물겨운 모정의 한 단면이다.

배고팠던 시절에 자식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

말하던 어머니들의 고통은 진정 행복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들이 있었기에 1960년대 초 세계 10대 빈국에서 탈피하여 GDP 2만달러의

세계 12번째 경제대국인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예민하고,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한다.

그러다가 보니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치는 조그마한 고통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이 경우의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타인이 겪는 100의 고통보다 자신이 겪는 1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기에

너만 힘드니? 나도 힘들어.”라고 하면서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이래로 우리에게 성인이라고 불려온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에는 다소 둔감한 반면에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크고 작은 고통이 있었겠지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 고통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인도의 빈민촌에서 평생봉사로 살았던 테레사 수녀나

 전쟁의 포화 속에서 다친 병사들을 간호하기 위해서 전장으로 달려갔던 나이팅게일의 경우는

 성인이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다.


남들은 그들의 삶이 불행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 자신만큼은 고통 속에서도 진정 행복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197일에 개봉한 영화 <통증>은 친구의 곽경택이 감독을 하고,

남순역의 권상우와 동년역의 정려원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이 영화에서 자신의 몸에 대해서

통증을 못 느끼던 남순이 동년이 겪는 고통을 보면서 자신이 더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남순은 동년의 고통을 지켜보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고

대신 동년을 고통에서 해방시켜달라고 기도한다.

 동년은 동년대로 자신의 고통(혈우병)괴로워하는 남순을 지켜보는 게 고통스러워서

사랑하는 남순에게 헤어지자고 말하고 남순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듯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다가 올 때,

 우리는 자기희생의 봉사와 자선을 시작하게 되고,

그 일을 하면서 받는 고통에서 행복을 느낀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가수 김장훈씨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40대의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신은 전세에 살면서도 수십억 원을 기부하는 그의 행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는 타인을 위해서 그런 힘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지나치게 보이는 기부행위를 그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한다고 말한다.

 

기부할 것을 미리 정해놓고 기부를 약속하는 선()기부까지 하는 그는 위대한 바보다.

나는 이런 바보 김장훈이 정말 좋다.

동생뻘이지만 김장훈이 존경스럽다.

 

타인의 고통에서 아픔을 느끼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우리 사회에 행복한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나라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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