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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Y캐슬 > 스틸 사진 | |
ⓒ JTBC |
시사
고교 졸업까지 8552만원... 없는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우전작설차
2019. 1. 23. 16:3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06022&PAGE_CD=N0002&CMPT_CD=M0117
고교 졸업까지 8552만원... 없는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주장] 부모도, 아이도 답답한 한국 교육 현실... 정말 달라질 수 없을까
나는 두 딸을 키우는 아빠다.
'아이들은 잘 놀면서 커야 한다'는 보통(?) 부모의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언제까지 나와 아내의 이런 생각이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들다.
곧 찾아올 경쟁의 무대에서 이런 부모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잘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곧 찾아올 경쟁의 무대에서 이런 부모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잘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좋은 대학' 입학을 교육의 지상과제로 삼은 지 오래된 우리 현실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숨 막히는 긴장감을 준다.
교육의 과정도, 결과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기 일쑤다.
한국의 교육 현실,
한국의 교육 현실,
그리고 여기에 참여하는 부모와 아이들,
주변인의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드라마, JTBC의 <SKY캐슬>이 인기다.
시청률 가뭄인 요즘 22%에 육박하는 시청률만큼 사람들의 일상적 대화의 단골 메뉴다.
대한민국 상위 0.1% 명문가 집안의 욕망을 풍자하는 코믹 드라마라고 하니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러나 시험성적 경쟁이 지배하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그들의 욕망에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그냥 웃고 지나치기엔 여운이 너무나 길다.
가벼운 지갑을 한탄하는 한숨도 삐져나온다.
'다 자식 잘돼라'고 교육시키는 부모들의 욕망이 질적으로 같더라도,
'다 자식 잘돼라'고 교육시키는 부모들의 욕망이 질적으로 같더라도,
세상에서 표현되는 그 욕망의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부모의 신념에 따라, 소유한 부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의도하지 않은 교육 격차는 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비 통계를 보자.
신한은행이 지난해 3월 만 20~64세 금융거래 소비자 2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신한은행이 지난해 3월 만 20~64세 금융거래 소비자 2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보면
자녀 1명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드는 교육비는 총 8552만 원이다.
사교육비가 6427만 원으로 75.1%를 차지했다.
대학 등록금까지 고려하면 다른 비용은 뺀 교육비로만 1억 원 이상 필요하다.
월평균 소득이 1000만 원 이상인 가구의 자녀 1인당 총교육비는 1억 4484만 원으로,
300만 원 미만인 가구의 교육비 4766만 원보다 3배나 많았다.
자식들 교육에 지출하는 사교육비도 많지만, 고소득층과 하위 그룹의 격차도 엄청나다.
자식들 교육에 지출하는 사교육비도 많지만, 고소득층과 하위 그룹의 격차도 엄청나다.
좋은 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어려우니 사교육 시장에 의지하고,
사교육의 선택 가능성은 철저히 투입할 수 있는 돈에 달렸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돈 없는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교육 시장의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지금 여기의 행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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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의 한 장면. | |
ⓒ 판씨네마(주) |
한국의 무거운 교육 현실에 답답함을 느낄 때쯤 우연히 영상 한 편을 접하게 됐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2015년 작품
<다음 침공은 어디?(Where to Invade Next)>에서 핀란드의 교육을 다룬 부분이었다.
핀란드 교육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교육의 이상향' 정도로 국내에 자주 소개되곤 한다.
영상에서는 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핀란드 교육과 교사, 학생의 인터뷰가 담겨 조금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어 감독은 1960~1970년대에는 핀란드의 교육수준이 세계 최하위권 수준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무어 감독은 1960~1970년대에는 핀란드의 교육수준이 세계 최하위권 수준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핀란드가 교육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을 찾는다.
교육부 장관, 교사, 학생을 만나면서 숙제가 없는 학교, 객관식 시험이 없는 교육에 놀란다.
이런 핀란드의 교육 비결은
미국이 시·음악·미술 등 예능수업을 대학입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줄여버린 것과 대비되어 비친다.
미국식 교육이 당연하다고 여긴 무어 감독에게 핀란드 교육 현장은 매우 흥미로운 신세계다.
영상을 보면서 아침 일찍부터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떠밀려 간 아이들이 생각났다.
영상을 보면서 아침 일찍부터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떠밀려 간 아이들이 생각났다.
행복을 찾는 학교,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
학교 간 서열이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핀란드를 우리가 닮기 어려운 것일까?
이미 정해진 하나의 길로 퇴로가 없는 경쟁이 아닌, 아이들이 가진 재능을 발견하고,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가 아닌,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은 불가능한 것일까?
부의 대물림이 교육을 통해서도 이뤄지는 비정상적인 현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드라마 'SKY캐슬'에 등장하는 부모든, 현실의 부모든,
드라마 'SKY캐슬'에 등장하는 부모든, 현실의 부모든,
자식을 어떻게 해서라도 잘 키워보겠다는 이들이 가진 욕망의 복합체가 오늘 한국 교육의 현주소다.
인간의 욕망이 먼저인지, 사회 시스템이 먼저인지,
선후관계는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한국 교육에서만큼은 시스템이 욕망을 표출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서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
입시제도, 교육정책만이 욕망의 공고한 틀을 해체할 수 있다.
'SKY캐슬'은 이번주에 종영한다고 한다.
'SKY캐슬'은 이번주에 종영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당분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서 헤맬 것 같다.
아이들에게 오늘과 다른 내일을 약속할 수 없음에 답답한 심정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06306&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SKY캐슬' 예서가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읽었더라면?
[칼럼] 사교육 강사가 본 드라마와 현실, 그리고 해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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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Y캐슬 > 포스터 | |
ⓒ JTBC |
요즘 화제의 JTBC 드라마 < SKY 캐슬 >에 따르면,
나는 '돈 주고 사서 쓰고 버리는 참고서'다.
나는 몇 년 전 수능 만점자 4명을 배출한 학교가 있는 동네,
그래서 전국의 아파트 값이 떨어질 때도 유일하게 올랐다는 그 동네에서 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내 학생 중에는 의대를 목표로 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래서 내게 < SKY 캐슬 >은 고마운 드라마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문의가 늘었으니까.
< SKY 캐슬 >은 사교육 암흑 판타지다.
< SKY 캐슬 >은 사교육 암흑 판타지다.
내가 김주영(김서형)만큼 잘나가는 1타 강사가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현실에서 한서진(염정아)과 차민혁(김병철)을 만난 적이 없다.
한서진과 차민혁은 자신의 대학 시절에 함께했을
한서진과 차민혁은 자신의 대학 시절에 함께했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교실 이데아'에 나오는 가사처럼,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에서 한 발짝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서진은 우주(찬희)를 짓밟아 예서(김혜윤)를 살리려고 했고,
한서진은 우주(찬희)를 짓밟아 예서(김혜윤)를 살리려고 했고,
차민혁은 혜나(김보라)의 죽음,
우주의 검거, 예서의 방황을 보면서도
자기 자식이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며 기뻐했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디멘터'(영화 <해리포터>의 악당)에게만 통하는 마법,
'익스펙토 페트로눔'이 필요할 것 같다.
사교육 암흑 판타지
사교육 암흑 판타지
< SKY 캐슬 > 속 학생들은 현실의 학생보다 미화되어 있다.
예서와 우주를 수직선 상에 놓고 비교해본다면, 내가 겪은 학생들은 예서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 있다.
기준(조병규), 서준(김동희)이 같기도 하고,
세리(박유나)처럼 무책임하기도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자기 등수 올리기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친구 사이에도 서로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 말하지 않는다.
예서보다 수위가 약하긴 하지만
부모에게 크고 작은 정서적 '갑질'을 일상적으로 행한다.
< SKY 캐슬 >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학생이 있다.
< SKY 캐슬 >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논술로 갈 수 있는 최고 대학에 합격했다.
대인관계도 좋고, 리더십도 있고, 성실해서 뭐가 되어도 될 것 같은 학생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공부 안 해 놓고 성적 안 나왔다고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건
쓰레기 같은 생각'이라는 그 학생의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학생은 '금수저', '흙수저' 간 경쟁의 불공평함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아무튼 자신은 피나게 노력했고,
모든 결과는 그 노력에 따라 달라진 것이라면서 부모의 재산이나 환경의 격차를 무시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오연호 작가의 책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가 떠올랐다.
드라마를 보면서 오연호 작가의 책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가 떠올랐다.
이 책은 < SKY 캐슬 >의 안티테제다.
< SKY 캐슬 >에서 사람은 도구화되어 있다.
한서진에게 입시 코디 김주영은 참고서 같은 도구였고,
김주영에게 혜나는 예서를 자극하기 위한 도구였고,
차민혁에게 자식들은 자기 과시의 도구였다.
다수의 관계가 오직 대입을 위해 온갖 감정을 숨긴 채 작위적으로 맺어졌다.
대입의 이해관계가 틀어졌을 때는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학교생활은 점수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반면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행복한 인생을 찾고,
반면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행복한 인생을 찾고,
행복한 교육을 실천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행복을 고민하고, 옆을 볼 자유를 선택했다.
이 책에 소개된 '꿈틀리인생학교'는 사람이 사람을 학습하는 곳이다.
이 책에 소개된 '꿈틀리인생학교'는 사람이 사람을 학습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점수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학교생활이란 '나를 찾고 인생을 설계하는' 목적 그 자체다.
'꿈틀리인생학교' 같은 곳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물론 동의하지만,
'꿈틀리인생학교' 같은 곳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물론 동의하지만,
솔직히 이런 학교가 우리 교육 현실에서 가장 보편적인 정답일까 하는 점에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현실과 < SKY 캐슬 >의 거리가 워낙 가깝다 보니
'꿈틀리인생학교'의 실험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해독제
해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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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
ⓒ 오마이북 |
< SKY 캐슬 >의 학부모들이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영재(송건희)는 죽지 않고, 세리는 하버드생이라고 사칭하지 않아도 됐을까?
내 생각에 현실의 인간들은 그렇게 물렁물렁하지 않다.
내 생각에 현실의 인간들은 그렇게 물렁물렁하지 않다.
여전히 부모들은 자신의 '성공한' 삶을 강력한 근거로 삼아 아이들을 몰아칠 것이다.
예서가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었더라도
서울의대를 향한 집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캐슬 사람들이 영재 엄마가 자살한 속사정을 알면서도 태도를 바꾸지 않은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진보적이거나 공허한 이상이기만 할까?
그렇다면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진보적이거나 공허한 이상이기만 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아니다.
내가 겪은 학부모와 학생들은 100% 한서진이나 100% 강예서가 아니었다.
노승혜(윤세아), 진진희(오나라), 차기준, 차서준이 바뀌었듯,
현실의 학부모와 학생들도 성적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사교육 판타지는 현실을 '거의' 반영했지만, 이 '거의'에도 틈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이 책은 해독제, 이수임(이태란)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해독제, 이수임(이태란)이다.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한서진과 강예서에게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것은
교육 주류의 바깥에서 끊임없이 '사람'을 보려는 이수임,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와 같은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광기 속에 있을 때는 광기를 모른다.
광기 속에 있을 때는 광기를 모른다.
진진희가 한서진이 될 뻔했다는 점,
피라미드가 부서진 차민혁의 파국을 기억하자.
속도에는 점수가 있을 뿐 인생이 없다.
이 책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자신의 삶마저 수단화하는 점수 쟁탈전의 광기를 식혀줄 것이다.
우리는 저 정도는 아니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그래도 상위 대학을 포기할 수 없는 게 서글픈 현실이라면?
우리는 저 정도는 아니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그래도 상위 대학을 포기할 수 없는 게 서글픈 현실이라면?
사교육 강사 입장에서도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어보라고 권하겠다.
현재 대학 입시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학종이다.
학종은 자신의 꿈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꿈을 키우기 위해 활동하는 학생이 대학을 가기에 유리한 전형이다.
내신은 적당히 잘해야 하지만 핵심이 아니다.
애초에 학종은 예서 같은 학생을 원하지 않는다.
학교생활은 학종의 핵심이다.
학교생활은 학종의 핵심이다.
학교에서 '숫자' 생활을 한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교' 생활이 낯설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가 필요하다.
'꿈틀리인생학교'로 전학 가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 따라해보자.
'꿈틀리인생학교'에서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들처럼
자신의 꿈에 맞게 교과목을 '실천'해야 학종이 원하는 인재가 될 수 있다.
아마 < SKY 캐슬 >을 본 학부모와 학생들은
아마 < SKY 캐슬 >을 본 학부모와 학생들은
대부분 '우리는 저 정도는 아니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맞는 말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점수로의 가속은 행복을 향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점수로의 가속은 행복을 향하지 못한다.
초중고 시절의 12년은 대학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한 순간이다.
행복은 피라미드 꼭대기가 아니라 중간에 있다.
중간은 위와 아래를 모두 아우른다.
조금 천천히 가면 친구와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다.
모든 걸 다 잃어본 영재 아버지 말대로, 인생 길다.
모든 걸 다 잃어본 영재 아버지 말대로, 인생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