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희대의 코미디가 하나 있었다.
전직 장군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이라는 단체가
25일자 조선일보 31면에 광고를 낸 것이다.
광고 제목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보충, 국민성금으로!’이고,
그 옆에 성조기가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이들은 광고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대한민국 급속한 공산화다!”라고 주장하더니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북한 120만 정규군이 남한을 기습 점유”한다고 주장했다.
이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뒤이어 “공산화가 되면
강성노조, 종북언론, 좌편향 시민단체/법조인들도 결국은 모두 처형!”이라고 적었다.
응? 도대체 왜?

그래서 이들은 “붕괴로 가고 있는 한미동맹, 국민의 힘으로 지켜냅시다!”라며 성금 모금을 독려한다.
그래야 강성노조, 종북언론, 좌편향 시민단체도 처형을 면할 수 있단다.
그러면서 드는 사례가 행주치마 돌 나르기 운동이다.
이러라고 우리 선조들이 행주치마로 돌을 나른 게 아닐 텐데?
아무튼 이들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국민 성금으로 모으겠단다.
그들의 시각에 <민중의소리>도 분명 종북언론일 테니
이곳에 소속된 기자로서 이 운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우리도 처형을 당하고 싶지는 않거든!
그래서 응원의 마음을 담아, 광고에 공개된 이 단체의 전화번호도 홍보한다
. 02-541-3700, 010-3447-7183. 부디 행주산성 돌 나르기 투쟁의 정신을 살려(!)
많은 성금을 모아 국가에 기증하시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조선· 중앙의 황당한 선동
그런데 이 코미디를 단순히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보수 언론들이 이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예를 들어 중앙일보는 1월 7일자 지면에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YS정부 시절 외교부장관)의 인터뷰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는데 제목이 “한국 방위비 분담금 2배 못 낼 건 뭔가, 안보 구두쇠 안돼”였다.
위대한 미국과 친분 강화를 위해 분담금을 갑절로 올려도 된다는 이야기인데
분담금이 두 배로 뛰면 그 돈을 공로명 씨가 물어 줄 건가?
남의 돈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법이다.
아, 분담금이 두 배로 뛰면 그것도 국민성금으로 모금하려나?
조선일보의 주장은 더 구체적이다.
조선일보는 1월 26일자 ‘[팩트 체크] 우리가 낸 방위비 분담금,
최대 94% 국내경제에 흡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가 낸 방위비 분담금 중 90% 이상이
우리나라 경제로 돌아온다고 주장했다.
분담금의 대부분이 장비, 용역, 건설 수요와 한국 노동자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쓰이기 때문에
결국 국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통해 “주한미군 분담금을 마음껏 올려도 된다”고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경제학을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정부가 아예 예산을 5만 원짜리 지폐로 바꾼 뒤 광화문 광장에서 뿌리면 어떤가?
이 돈은 모조리 한국인들이 집어 간다.
이건 94%가 아니라 100% 국내 경제로 돌아오는 돈이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
경제학에는 깨진 유리창의 오류(Parable of the broken window)라는 이론이 있다.
프랑스 출신 주류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Frederic Bastiat)의 이론이다.
바스티아의 이야기는 이렇다.
빵집 자식이 자기 집 유리창을 깼다.
빵집 주인이 자식을 심하게 야단을 치니 이웃이 말리며 이렇게 말한다.
“자식이 유리창을 깼으니 손해인 것 같지만,
네가 새 유리창을 사면 유리창집 사장님이 돈을 번다.
유리창집 사장님도 번 돈을 쓸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소비를 유발한다.
네 아들이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우리 마을의 소득과 고용이 늘었으니 오히려 아들을 칭찬해라”라고 말이다.
이 말이 맞을까?
웃기는 소리다.
자녀가 유리창을 깨지 않았다면 빵집 주인은 그 돈으로 다른 것을 살 수 있다.
신상 운동화를 한 켤레 샀다면 운동화 가게 사장님이 돈을 벌고
, 그 돈이 마을에 돌아 아까와 마찬가지로 고용과 소비를 유발한다.
자녀가 유리창을 깨서 마을 경제가 활성화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차피 그 돈은 쓸 돈이었기에 신발을 사도 마을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빵집 사장이 사고 싶었던 신발을 못 사는 손해를 입었을 뿐이다.
이 말은 정부가 무작정 돈을 푼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돈을 쓰더라도 유리창 수리에 쓰는 게 아니라
신발 구입에 돈을 쓰도록 유도하는 게 정부의 임무다.
그래야 국민들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 이명박이 벌인 4대강 사업은 완전히 엉터리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돈을 써서 고용이 늘고 건설경기가 활성화됐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그 돈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다는 게 함정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는 인터넷 인프라를 까는 데 정부예산 47조원을 썼다.
그 덕에 지금 한국은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의 기반을 닦았다.
정부 예산은 이렇게 써야 한다.
4대강을 녹조라떼로 만들 돈으로 이런 곳에 투자했다면
한국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선진화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협상의 ABC도 모르는 한심한 자들
조선일보의 논리가 바로 이런 오류에 빠진 것이다.
훨씬 더 효율적인 곳에 쓸 수 있는 돈을 주한미군 막사 짓는데 쓰는 게 어떻게 효율적인가?
하지만 그들은 그럴싸한 언어로 혹세무민을 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그러다보니 아둔한 보수층은
“분담금 올려도 우리 경제로 돌아오는데 뭐가 문제냐?”는 헛소리를 하고 다닌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이 행주산성 정신(!)으로 국민 성금을 모금하는 것은 그냥 웃고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유력 일간지가 이런 헛소리를 해대면 지금 진행 중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심각하게 꼬인다.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개정국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미국대사관저 인근에서 주권, 국익, 평화정착에 역행하는 방위비분담금 인상 반대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분담금 협상은 지난해에 10차례에 걸쳐 진행됐지만 아직 타결되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이 부담한 액수가 9600억 원 수준이었는데,
우리 정부는 1조 원을 넘길 수 없다고 버티는 중이다.
반면 미국은 최초로 12억 5000만 달러(1조 4000억 원)를 요구했다가
요구액을 점차 낮추는 중(12억 5000만 달러 → 12억 달러 → 10억 달러)이다.
현재 양측의 견해 차이는 약 1000억 원 정도다.
조선일보는 이 1000억 원을 흔쾌히 내자고 부추기고,
중앙일보는 아예 작년의 갑절(1조 9000억 원)도 낼 수 있다는 헛소리를 시전한다.
그런데 협상 중에 미국도 아니고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미국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한국 국민들은 더 내자고 난린데 왜 한국 정부가 깎자고 버티느냐”라며
협상 테이블에서 더 고압적으로 나올 게 뻔하다.
우리야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를 허접하게 생각하지만
그쪽에서 보기에 이 신문들은 유력 일간지다
. 여기에 자유한국당까지 붙어서 “더 못 낼 게 뭐냐”라고 맞장구를 치면, 협상은 완전히 꼬인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 협상인데 주요 일간지들이 조국의 등 뒤에서 칼질을 해 대는 꼴이다.
조선일보건, 중앙일보건,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이건,
계속 떠들려면 한 가지 약속을 하라.
당신들 때문에 더 물어야 할 분담금이 생기면 진짜로 그 돈은 당신들이 물어야 한다.
그렇게 못하겠다고? 그러면 제발 좀 닥치고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