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표류기의 재해석
7. 하멜표류기의 이해
(가) 하멜표류기의 재해석
1653년 8월 16일 켈파르트섬에서 표류되어 1666년 9월 14일 일행 8명이
왜의 낭가사께長崎로 탈출하기까지 조선에서 체험했던 일과 풍습에 관하여
스뻬르베 호의 생존한 사관과 선원들이 본국 네덜란드에 돌아가
자신이 속한 동인도 해운회사에 밀린 봉급을 받기 위해 만든
업무 보고를 기록한 일지가 하멜표류기의 원 제목이다
당시 조선은 해상을 왜세력들에게 맡겨서 그들 관할지역내 왜구들의 침공을 막고자 했다.
조선장군들을 임명하여 해상에 성곽을 쌓고 해금령을 내려
바다로 나가는 것을 막았고 심지어 섬에 조선인이 살지 못하게 아예 공동화 시켜버렸다.
왜구들의 침략이 그만큼 심했다는 말이다.
이 왜 장군들이 해안지대를 지배하면서 점점 서세동점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란학(네덜란드-화란을 통해 들여 온 서구학문)을 수입하였으며
영국, 네덜란드 해상강국이 조선해안선을 침탈하면서
이 왜 군벌들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아시아에서 탈출하여 서구열강에 기댄다.
조선의 폐쇄성은 대륙 동남부의 왜로 탈출하여 하멜이 쓴 보고서는
단 며칠 만에 작성되어 회사에 전달되었는데
조선은 그 13년 28일 동안 하멜의 네덜란드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들을 감시하는 데만 주력했다고 적었다.
네덜란드(화란)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이들을 취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으며
조선당국자들은 이들을 감시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한반도의 인천항, 군산항이 건설된 것은
대륙조선이 이 새로운 땅과 자원이 필요했기에
19세기 말에 몰려와서 개항되었고 춘천 옥 광산을 개발했다.
한반도는 이때 19세기 세계시장개방화 시대에 차츰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영국의 해군기지가 한반도 거문도에 건설되었고 미군도 진출하였다.
이 대륙조선인들이 대거 한반도로 이주한 것이
바로 지금의 남북한이 된 것이고
대한민국도 원래는 대륙에 있었던 정부였다.
그러다가 서구열강의 이해관계에 의해
포츠담 회담 등의 결과에 의해 코리아가 한반도에 들어서게 되고
이 후 미‧소양국의 삼팔선 분할 점령이 일어난 것은 이곳을 관할하던 왜 제국과
영국, 미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져 있는 왜 제국점령지였기에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켜
영구분단이 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다.
조선은 대륙에 있었기에
하멜이 이 은둔의 땅을 탐사한 책이 서구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조선은 대외활동을 철저히 차단한다.
1666년은 17세기 서세동점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시대로
조선 대륙이 분할되는 첫 시점이 이 시기였음이 하멜표류기에서 감지된다.
조선은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거대한 8개의 왕국으로 구성된 나라라고 하멜은 증언하고 있다
(나) 하멜은 한반도에 온 적이 없다
360년 전 한반도에 왔다는 하멜의 표류기는 잘못 번역된 것이다.
후딘크본 하멜표류기에는 그가 한반도의 제주도에 표착한 것이 아니라
산동반도 남쪽에 있는 제주濟州라는 대륙내륙에 풍랑에 휩쓸려 표류하다가
조선관군에게 압송되어 서울에 도착하여 효종을 만난 과정,
대륙일대를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내용과 후에 탈출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책이다.
조선의 자연과 동식물은 열대와 아열대에 사는 동식물이 등장한다.
자연산 야자수가 있고 강에는 악어가 있다고 하멜은 적었다.
이러한 증거는 하멜이 13년 28일간
조선에서 겪은 배경이 결코 한반도가 아닌 대륙임을 말한다.
나카사키 총독이 있다는 것은
당시 대륙은 이미 서구세력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일본은 대륙남부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산동성 일대에 왜관을 두고 대륙조선과 접촉을 하고 있었다.
당시 북쪽은 청나라 달단 타타르인이 있었고,
남쪽 왜인들은 왕이 없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 쇼군 장군들이 다스리는 왜가 있었던 곳이다.
옛 대륙조선어는 3성이다.
한반도로 건너온 조선어에 성조를 제거하여
대륙조선어와의 관계를 단절시킨 것이 현 한국어이다.
옛날 대륙 왜어에도 성조가 있었다.
왜 현재는 없어졌느냐 하면
바로 일제의 조선사편수회가 동원되어 변조시킨 한반도 조선어인 것이다.
이들은 두음법칙이라는 것을 만들어 철저히 대륙조선어와 차별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한반도조선을 창출하기 위해 두음법칙이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음운법칙을 만들어 조선을 한반도에 고착, 세뇌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멜이 탈출하여 왜의 나가사키에 도착했다고 하는 나가사키는
바로 양자강하류 지역이다.
이곳은 왜라는 지역이지 결코 왜라는 나라가 존재 했다는 말이 아니다.
왜 장군들이 관할하는 왜인들 지역이 바로 양자강 하류였으며
당시에는 왜인, 조선인이 구별 없이 이런 대륙남부에 같이 살고 있었던 것인데
조선인들은 풍토병 때문에 가급적 이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꺼렸다.
지금의 국경 개념으로 당시 역사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국가체계와 국경선은 2차 대전 이후에 정착된 개념이다.
(다) 하멜표류기에는 왜가 대륙에 있었다고 적었는데
거기서 하멜은 강 하나를 건너서 왜로 탈출했다고 썼다.
그하멜이 탈출한 낭가사께는 흔히 왜어로 나가사키라 불리는 이 지역은
양자강 하류의 진강현 동쪽의 랑산진狼山鎭이다.
이 나가사키라는 말에서처럼 이 왜어 지명은
그 발음 그대로 지금 현재 왜어의 발음이 된다.
주목할 점은 이 랑상진을 왜인들은 낭가사께
즉 일본 왜구들의 발음에서 ㄹ을 ㄴ으로 발음하는 두음법칙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으려 했던 조선에 이렇게 두음법칙이란 것을 만들어서
대륙조선어를 쓰는 한국인들을
왜어식 어법으로 강요한 흔적이며 언어 강탈 사건이다.
과연 제주도에서 지금의 일본열도로
그 넓은 해역을 겨우 뗏목 같은 작은 배로 횡단이 가능한가?
하멜이 아무리 향수병이 심했어도 자기 목숨을 걸 정도로 무모한 사람이 아닌 이등항해사였다.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그 누구도보다 잘 아는 선장이다.
그가 탈출한 왜는 양자강을 건너서 왜 무역항이 있는 곳으로 탈출한 것이다.
1925년 한참 대륙을 석권하던 시절 왜는 동시에 일본열도에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이때 대규모로 대륙 동부지역 사람들이 유구제국을 그 훨씬 이전 시대에 제압한 것은
일본열도로 들어가기 위함이었고
일본열도 자체가 유구국의 영역에 속하는 땅이었기에 왜제국은 유구국을 합병한 것이다.
이때 당시 유구왕국은 환태평양문화권과 조선의 유교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였다.
페리제독이 왜에 개항을 요구할 때 먼저 유구국을 거쳤다고 나온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구국은 독립 국가였다고 페리제독은 증언하고 있다.
왜가 지금의 남경에서 가장먼저 한일이 유구국 침공이었다.
그 점령은 곧 일본열도로의 진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구제도를 이용해 일본열도로 들어가게 되는 통로가 열리고
이때 일본열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토착민들을 포섭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본열도의 사무라이 집단과의 전쟁을 묘사한 사건이 ‘라스트 사무라이’의 영화 내용이다.
대륙의 근대화된 왜 제국군과 아직 활 쏘고 칼 휘두르는 전쟁문화를 가진
일본열도 토착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서
결코 근대화된 왜 제국군은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군대가 아니다.
이 왜 제국군들은 복건성 일대에서 발흥하여 대만에서도 호응을 하여 이것이
왜 제국의 근간이 되었고, 이때 산동성의 왜 세력은 없어지게 되었다.
산동성의 왜는 임진왜란 이후 토요토미 가문이 덕천가문에 의해 붕괴되어
왜의 중심지는 남경 덕천가문의 중심지로 옮겨지고
산동성의 왜 세력은 거의 없어지고 조선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덕천가강이 왜 이렇게 했을까?
덕천가강은 조선의 충실한 신하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도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중심지였던 남경을 에도라고 발음하는 것도 현대 일본어이고
당시 강도 江都라 불린 지역이 이 남경이었다.
1912년 지금의 북경에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중화민국의 남쪽수도를 남경이라고 지칭할 때 일본열도로 아주 일본이 옮겨졌다.
에도막부의 에도는 오도吳都에서 나왔으며 고또江都와 에도吳都를 같이 썼다.
오나라수도가 에도이며 왜는 오나라를 기반으로 한 나라였고
이들이 역사상의 왜이며 왜였고
왜 지역을 침공한 동아시아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해적들이 왜구들이었으며
이들을 제압하고 다스리라는 뜻으로
막부에게 평남대장군이라는 직함을 조선에서는 보냈던 것이며,
이 직함 하나로 강호 지역을 평정하게 되니
우리가 중국 무협지에서 강호를 평정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본장군이 그 지역 무사들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조선조정에 충성한 것을
후에 무협지 작가들이 중국의 옷을 입혀서 써낸 소설이다.
강호를 떠돌았다고 하는 무협지의 이야기는 미야모토 무사시 등의
일본무사들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강호의 무사들은 왜 무사들이었고
이것을 일본열도로 옮긴 왜 세력들은
일본열도를 배경으로 새롭게 각색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들이 남색을 즐겼다는 기록이
결국 대륙에서 있었던 남색열풍에 편승한 성 풍조였고
이 왜의 성 풍조는 후에 일본열도로 옮겨져 역사가 된 것이다.
당시 대륙 동남부 사람들은 혼도시를 하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왜 사무라이 머리는 대륙남부 사람들의 풍속이었다.
원래 왜구들은 머리를 산발한 해적들이었다.
그러나 대륙 왜 사람들은 조선의 풍속을 따라서 상투를 틀었고
그것을 투구를 쓰는데 편리하게 변발 비슷한 앞머리를 깎아 낸 것이다.
왜가 대륙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머리를 했던 것이다.
왜 무사의 그 상투 머리는 대륙의 풍속이었고 상투는 조선의 풍속,
그리고 앞머리를 깎아 버리는 것은 대륙조선 북쪽 올랑해의 풍속이었다.
이들이 이런 상투를 잘라버린 것은
조선을 버리고 서구열강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선언이었으며
메이지 유신 때 상투를 제거하였다.
중국에 새로운 혁명정부가 들어서자
메이지정권은 대륙의 일부지역과 대만을 남겨둔 채
일본열도에서 본격적으로 일본시대를 열게 된다.
이 영향으로 대만은 친일국가가 된다.
대만의 1.21사태는 이런 친일토착민들이 대륙의 중국정권에 대해 반기를 든 사건이며
이때 대륙국민당군대는 학살을 하여 전에 왜인이었던 사람을 제압한다.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대만사람들이 비록 대륙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전에는 왜식 이름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대만은 친일국가이다.
대만은 유구왕국의 일부였으며 장개석이 대륙에서 쫓겨 오기 전까지는 왜 땅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국 주도 하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이등휘 총통이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했던 것이다.
출처 :아시아=조선 원문보기▶ 글쓴이 : 정무광
7. 하멜표류기의 이해
(가) 하멜표류기의 재해석
은하철도99콘 17.11.22. 16:30
위키백과는 만들어가는 백과이지 누구나 반론으로
그 백과의 내용에 잘못된부분을 수정편집할수있다고 알구있습니다.
위키백과가 확정된 진실이 아닌것입니다.,
은하철도99콘 17.11.22. 16:34
최두환 저 분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오시고
해군에복무 하면서 난중일기에 대해 대가 이며
누구보다도 하멜표류 시 좌표와방위
그리고 바다의 조수간만의 차를 분석한결과
한반도에 그런 좌표가 나오지 않으며
조수간만의 차도 한반도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멜의책 네덜란드어 원본을 가지고 해석했다고 하는군요 .
여기에 반박 하고싶으신분은 그 원본을 알아서 구했서 해석하시고
무엇이 어느부분이 최두환 글이 잘못되었는지 지적하시면 될것입니다.
┗ 은하철도99콘 17.11.22. 16:37
반박하고싶으시면 공부하고
그기에 맞게 대응하시면 진정한 토론의반박으로 받아드리겠습니다.
자기가아는지식으로 비논리적인 사고로 우기지 말았스면 합니다.
기존에 도서점에 나와있는 하멜의 책은
일제시대때 일본인이 영어로 번역한것을 그당시 한글로 번역한것입니다.
그런번역본을 읽지 마시고 진짜 네덜란드어로 된것을 가지고 연구하시어
정당한 논리적 반박에 타당하여 반박한자에 대한 논거가 맞다면
저 이카페에 역사에 관련된 모든 글을 올리지 않을것입니다.
┗ economet 17.11.23. 06:16
하멜의 원본 (네덜란드어본 최소 3가지
그리고 최초의 영문 번역본 등)을 발굴하여
처음부터 다시 번역하신 최두환 교수님의 수고를 이 분들은 알까요?
최소한 원본 확인이라는 걸 영국의회도서관의 당시 Times
또는 유럽 각지의 현지 대학도서관에 남아있는 초판본들을
확인해보는 수고를 한번이라도 해보았을까요?
적어도 수차례 정말 이상한 소위 원본이라고 불리는 예전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도서의 이상한 조작을 그들은 직접 대한 적이 있을까요?
결단코 없다고 생각합니다.
┗ economet 17.11.23. 06:18
개인 부동산의 등기부 등본 이나 인감증명서
그리고 토지매매계약서만해도 눈에 불을 키고 진본인지 확인하는데
역사서 영인본의 이상한점이 저같은 아마츄어에게도 대번에 눈에 띄이는데
그걸 그냥 입닥치고 무뇌아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건
부동산관련 진본 확인노력의 십분의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사기꾼 기회부동산업자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 economet 17.11.23. 06:39
예전에 coo2.net그리고 최두환교수님의 다음카페에서 영인본 위변조
그리고 서양의 기록물 위변조 관련 사진보고
영국의회도서관 그리고 독일의 한 대학 도서관에 가서
소위 진본 초판이라는 신문과 도서 가서 찾아보고 직접 확인해봤습니다.
진짜로 1800년대에 Corea를 언급했던 The Times의 기사는
지도가 달려있을 경우 어김없이 지도와 거기에 딸린 글씨체가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체로 바뀌더군요.
예: Garamond체가 Times체로 바뀌거나
(진짜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언급 안하겠습니다! 또 다시 조작하고 대응논리 개발할테니!)
┗ economet 17.11.23. 06:45
그리고 최두환교수님이 번역하신 다른 18세기경 기행문의 원본은
제가 책의 한귀퉁이를 조그맣게 잘라 제지업자에게 문의하니
20세기에 나온 종이라고 하더군요!
직접 위변조 그리고 바꿔치기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진실을 알아내느냐?
이건 19세기에 처음 발명된 것들의 전파경로에 있습니다!
한양에 동경보다 10년 앞서 보급된 전차.
당시 자기부상열차같았던 증기기관차. 의전용 승용차 등
개인기업의 거래 계약서가 손타지 않고 남아있는 기록들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특히 2차세계대전 패전국들의 기업들에게는
이런 사문서까지 조작은 못한걸로 확인하였습니다.
┗ economet 17.11.23. 06:44
예를 들어 자기부상열차가 또는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면
스텔스전투기가 판매된다면 이런 첨단제품을 생산하는 곳은
보통 독점이거나 한정되어 있고
이것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운송되었는지 계약서에 다 나와있죠.
돈이 걸렸기에 진본이 반드시 존재하고 사문서이기에
공권력이 하나하나 다 찾아내어 위변조하지 못하고
한 두세대가 지나 잊혀지게 되면 원본 그대로 남아있게 되죠.
특히 패전국들의 기록에 적용이 되더군요.
여긴 승자들의 암묵적인 conspiracy가 미치지 못하고
70여년이 지난 지금 조작의 마수가 뻗치지 못하여
아직 손타지 않은 기록들이 존재하더군요!
┗ 우전 17.11.23. 11:47
economet 직접 현장을 다니며 확인한 행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통일이 되면 간도는 유엔에 제소를 했어니까 반드시 찾아야겠지요.
┗ 노란돼지 17.11.23. 15:44
economet 와아~~선생님, 그랬었군요.
여기에도 자주 오시어 첩자라고 보이는 자들에게도 한수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아주 질이 나쁜 첩자로 보입니다.
저의 정체는 이미 알만한 분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되려 첩자랍니다. ㅎㅎ
┗ pchamp 17.11.25. 10:12
economet 존경합니다 행동하는 지식인 이십니다
짝짝짝 대단하신분이시네요 ^^ 글 많이 써주세요
심한말 하면서 마녀사냥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습니다 ㅠㅠ
┗ pchamp 17.11.25. 10:14
은하님 존경합니다
천만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자기들이 보이는것만큼만 알고 막말하는사람들은
은하님 같은분들이 깨우쳐 줘야 될듯합니다
감사합니다 ^^
┗ economet 17.11.26. 20:29
그저 호기심이 유달리 강해서 파헤치게 되었을 뿐입니다. 우전님
┗ economet 17.11.26. 20:33
노란돼지 다 개인의 확신과 믿음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올린 기반과 지식이 있습니다.
그걸 틀리다고 하고 싸우는게 지난하기도 하지만
이 매트릭스에 영원히 갇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도해 이끄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건 어떤 계기가 있을때 이루어 질것 같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질문을 새기고 또 새기다 옳은 답이 구해질 때가 왔을때
우리가 절대 잊지 않고 그 질문을 해주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economet 17.11.26. 20:34
pchamp 아닙니다. pchamp님!
그저 세월에 이것저것 의문이 들었던 사항
귀찮더라도 하나씩 본업과 함께 확인해보다 하나 둘 보이는게 있는 정도입니다.
┗ 우전 17.11.26. 20:36
economet 이렇게 하멜 표류기 원문을 직접 확인 한 사실을 말씀 해주니까 아주 좋네요.
혹시 다른 역사적 사실도 알고잇는것이 계시면,
말씀해 주시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겠지요..
┗ economet 17.11.26. 21:08
우전님! 저는 약간 orthodox하지 않게 접근을 했었습니다.
전제: 이미 다 뒤틀려 있고 왜곡되어 있다.
본질적 질문: 그러면 어디 손타지 않은 것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손탔다는 사실을 증명할까?
그래서 내린 결론과 실증적으로 확인해보니
사기업의 거래문서(특히 계약서)들은
특히 제2차 세계대전때 패전국에서는 70년이 지난 오늘날
그대로 손타지 않은 기록이 있더군요.
그리고 실생활에서 오래 전래된 바뀌지 않는 풍습
특히 식습관이나 자장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흔적을 쫓는 전공자들이 여럿 계시더군요.
예: 솟대, 곰 토템, 치우 숭배, 온돌 등 거주 형태, 배 형태,
건축 설계, 예술, 도자기, 실크 등등.
┗ economet 17.11.26. 21:13
여기에 아울러 구 소련의 언어학
그리고 인류학 학자들이 어마어마하게 연구해 놓았더군요.
솔본님의 글을 읽어보면!
그리고 여기에 오늘날 유전학
그리고 생물학적 분석이 합류하는데
이게 진정한 의미의 실증사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전학 지도 등 아직 세계지배세력의 영향력이 지대하게 미치는 건 여전합니다.
역사서는 진본을 들여다 봐야 하는데 (그래서 언어는 꽤 많이 배웠었습니다)
이 원본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더군요.
기껏해야 이, 삼백년 된 기행기따위이고
Tacitus의 역사서 아니면 사마천의 25사 등은 원본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헌데 유독 동양역사에 있어서는 근래의 역사서도 원본이 없습니다.
죄다 영인본이죠!
┗ 우전 17.11.26. 21:33
economet 조선왕조실록도 4부 편찬해서 4곳에 보관했는 모양이네요.
현재 태백산본 밖에 없는 모양이네요.
그런데 이것도 원본인지 일제시대 필사본 보관한것을 복사해서 가르치는지 모르겠네요.
사기업 계약서가 원본이 많군요..
우리도 일제시대 친일기업들 계약서가 있을것 같은데..
전통풍습은 안바뀌겠지요..인디언처럼
그리고 생활용품도 그렇겠네요.
우린 특히 시나.시조.문학작품.그림의 설명글씨..
이런걸 찿으면 원본 그대로겠지요..
그럼 박창범 박사와 강상원 박사 유전학 박사가 함께 분석을 하면 되겠네요..
세계역사 전체를 조작했군요..나쁜놈들이네요
자국 역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겠지요..
좋은설명 감사합니다.
┗ economet 17.11.26. 22:07
지금까지 제가 주변분들과 확인한건 우리가 조선왕조실록이라고 알고 있고
접할 수 있는 건 (성균관 소속이라도!) 영인본 밖에 없습니다.
죄다 손탄 기록이죠.
어떤 본이건 다요!
┗ 우전 17.11.26. 22:15
economet 아..그렇군요.
그럼 전부 왜곡했다고 바야겠네요.
어디서 한권이라도 원본을 찾으면 좋을건데..
영인본이라도 1910년 이전것은 괜찮겠지요..
혹시 북한에는 영인본이라도 1910년 이전것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병도가 죽기전에 단군은 우리 국조다...라고
최태영 박사 설득으로 고백할때 원본 물어보고 보관했어면 참 좋았을걸..
┗ economet 17.11.26. 22:28
우전님! 참 성균관이 아니라 규장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현존 최다 원본을 소장했다는 규장각.
여기서 근무하는 분도 영인본이 아닌 원본을 결국 못 접해보셨더군요.
한 예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격을 1조원이라고 불렀던 소장자 기억나시죠?
고서가 값어치가 있었더라면 더 많은 원본 사서가 어디서 한 두권씩 나올텐데
우리는 6.25와 도시화 및 이주 그리고 개발
그리고 중국은 문화혁명등으로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사서들은
정말 이잡듯 없앤걸로 결론내렸습니다.
물론, 원본이 소장되어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정말 얼토당토 안한곳에서 나온 금강산전도 등이죠.
┗ economet 17.11.26. 22:31
역사서는 직지심경이나 이런 비역사서와는 달리 진본이 있을것으로 추정되나
식민제국주의의 중심이었던 영국 불란서
그리고 근대에 와서 미국 일본 등은 절대 내비치지도 않고 있습니다.
간혹, 패전국인 독일 등지에서
이런 문화재급의 금강산전도 등이 발견되는데 역사서는 요원합니다.
참고로 독일에 중국 원본책들이 제일 많이 소장된 한 수도원의 도서관을
잠시 들어간 적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사마천의 사기는 영인본이었습니다!
┗ 우전 17.11.26. 23:33
훈민정음 해례본 1조원 뉴스가 있었지요
아..서양에 원본이 많군요
우리 역사서 원본도 구한말 강제로 개항할때 많이 가져갔을거라고 봅니다.
전에 프랑스에서 정조때 규장각 도서인가 행차인지 무엇을 임대형식으로 가져왔지요.
당시.현재 러시아 및 7대 선진국들은 우리 역사책을 많이 훔쳐갔을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실록이나 중요역사 원본은 대부분 왜놈들이 보관하고 잇을거라고 봅니다.
당시 왜놈들이 약 22만권을 불태웟다고 하더군요
북한에라도 좀 잇어면 다행인데..
그런데 규장각에 잇는 역사자료도 연구를 안한다는 말이 있더만요
무엇이 있는지 목록이 다 정리가 되 잇는지 모르겠네요
중국놈들도 역사가 비천하니 불태움
┗ economet 17.11.27. 00:07
진본이 있죠. 꽁꽁 숨겨져 있어서 그렇죠.
여기에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병도급이 되어야만 원본을 볼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원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나오겠죠. 조미대결이 마무리되는 날!
┗ 우전 17.11.27. 00:13
아..일본이 아니고 미국에 잇군요.
아님 미국이 말해야 일본이 돌려주는가 ㅎ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볼수가 있을련가,
아님 통일이 되야 가능한가 ㅎ
지금이라도 원본을 복사 할수 잇어면 좋을건데 나라의 힘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군요.
┗ economet 17.11.27. 00:19
아! 원본 역사서는 온 세계에 흩어져 있습니다.
일본 왕실, 영국 (의회도서관 등), 바티칸 등 카톨릭의 오래된 수도원들,
유서 깊은 대학들의 기록보관서들, 불란서 루브르등등.
그리고 개인소장가들은
서양의 오래된 원본 고서를 컬렉션으로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또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말 깊숙한 곳의 문서보관소는 Dan Brown (Da Vinci Code 다빈치 코드)같은 사람들도
아직 못 들어가봤죠!
왜냐고요?
집문서 함부로 남한테 보여주나요?
절대 어디있는지도 안 알려주죠!
┗ 우전 17.11.27. 00:27
정말 깊숙한 곳의 문서보관소는
Dan Brown (Da Vinci Code 다빈치 코드)
교황청이나,
미국.영국.프랑스.독일 기타 국가의 문서 보관소는 대장의 허락을 받아야 들어가겠군요..
로스차일드나 록펄러 같은 놈들이 대장이겠지요..
┗ economet 17.11.27. 01:13
그게 다 독립된 세력이라고 파악했습니다.
일종의 연합인데 일방적으로 누가 지배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도 실제로 바티칸 문서보관소에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갈릴레이의 재판 판결문이나 비밀문서가 보관되어 있는 곳은요.
일본 왕실의 도서보관소에는
출입한 분이 화랑세기같은 사서를 통째로 외워 남겨놓아
그 내용을 정리해 놓은 건 coo2.net에서 보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런 원본에 제일 근접한 곳은 카톨릭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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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sisa-1/f8lD/776
한반도 '백제' 성씨가 없다! -대륙백제..
economet 17.12.15. 05:59
잘 읽었습니다!
흑치상지 등 복성은 현 반도에 전무하다 시피 합니다.
고구려의 왕 고주몽의 후예들인 고씨도 거의 다 대륙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때 처음 작성된 토지 대본과 등기부등본 보면
이씨왕조의 소유는 서울과 경기에 전무하며
안동 김씨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2위 성씨도 안동권씨입니다.
왕족인 이씨 소유의 토지가 경성과 수도권에 전무하다는 사실 처음 접했을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사실입니다!
┗ 우전 17.12.15. 10:35
아...일제시대 토지대장 등기부 등본을 확인했군요.
서울 경기에 전주이씨 소유 땅이 없었군요.
그럼 확실히 조선황궁이 중국땅에 있었다는 증명이 되네요..
┗ 우전 17.12.15. 10:35
http://cafe.daum.net/sisa-1/f8lD/761
대륙에 있었던 우리 조선의 황궁
┗ economet 17.12.15. 21:54
예, 저희 선산 문제로 여기 다음의 "조상땅찾기"카페에서 알려주시는대로
원본 그리고 제일 오래된 토지대장 서초 국립도서관에서
마이크로 피쉬로 보관되어 있는거 직접 확인했었습니다.
왕족이 왕궁 근처에 땅이 거의 없다시피하는 현상 너무 이해가 안가지요!
┗ economet 17.12.15. 21:55
우전님의 글 고맙게 잘읽고 있습니다!
┗ 우전 17.12.15. 23:10
노무현때 부터인가 조상땅 찾기 운동을 정부에서 주도했지요
지금도 계속되겠지요
중국에 있던 한양 지명을 서울로
가져와서 경성이라 이름짓고
이후 서울로 바뀌겠지요
고로 왕족들은 중국 한성 (섬서성 서안)에 땅을소유하고
한반도에는 자신의 땅이 없었겠지요
그래서 토지대장이나 등기에 없겠지요
1910년 이후 현재 섬서성 서안에서 후퇴하여 서울로 와서 살았는데
일본이 토지를 몰수하여
공직자나 친일파들에게만 나눠준것 같네요.
┗ 우전 17.12.15. 23:04
뉴라이트 소속 사학자와
국사 편찬 위원회. 고대 사학회.
강단에서 가르치는 선생들중에
이병도 제자와
김원룡 제자들을 퇴출 시켜야
역사를 복원할수 있겠지요
제생각에 현정부에서는 안할거라고 봅니다 .
┗ economet 17.12.16. 06:49 new
예, 맞습니다! 한성!
아직도 현 반도의 수도 서울을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한천"이라고 발음합니다!
사천성의 성도를 Chengdu쳉두라고 발음하듯이
한성을 보통어(만다린: 중국 표준어)에서는 한천이라고 발음을 하죠.
이게 굳어져 대륙에 마지막 위치했던 조선의 한양 즉 한성을 가리키는 잔재로 남아있죠!
우리 한국 관련 지칭들 캐나다 등 새로 19세기에 태동하여
처음 한자로 표기되기 시작한 나라들의 발음및 한자 표시가
아직 대륙조선의 잔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우전 17.12.16. 09:30
economet님 보충설명 들어니 조선수도가
대륙에 있었다는거 확실하네요
┗ economet 17.12.16. 20:46 new
예, 저는 사서는 여태껏 진본을 대한적 없지만 (영인본외에는)
회사의 일이백년 된 계약서는 원본을 그 회사에 가서 몇가지 직접 보고 입수했습니다.
오늘날의 자기부상열차, 원자력 발전소, 테슬라 전기차 같은 첨단제품을
대한제국왕실에서 주문해 배송한 것인데
거기에 대륙의 정확한 배송주소가 나옵니다!
손타지 않은 기록이죠.
특히 2차 세계대전 패전국들의 회사들이 패전의 와중에 조작이 안되고
70년의 세월을 견디고 남아있더군요!
┗ economet 17.12.16. 20:52 new
2006년인가 2007년인가 매경 (아니면 한경?)기자를 데리고
독일의 150년도 더된 회사의 문서기록보관소에서 1800년대 말
그리고 1900년대 초의 계약서 진본을 함께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이 기자분이 못 믿어하더라고요!
┗ 우전 17.12.16. 21:06
정말 훌륭한 일을 했네요
원본 자료를 복사해서 비밀유지 약속하고
29개어에 능통한 전원철 박사에게 보내면
연구를 할것 같은데요
제글 1956년에 발간한
라마승글에 보면
라마가 지구에서 유일하게 ufo 원리를 알고있는 사람은 테슬라뿐이라는 말을 했지요.
┗ economet 17.12.16. 21:08 new
참고로 이 회사가 박정희때 박태준이 뻔질나게 드나들던데인데
이 기자는 정작 박태준하고 함께오던 린다 김같은 미모의 여인에만 관심이 있더군요!
박태준 사진도 수백장이 있었는데 항상 이 여인이 같이하더군요!
┗ 우전 17.12.16. 21:20 new
지멘스인 모양이죠
데마그사도 포철건설때 연관이
많았던거 같네요
박태준이 여인하고 다녔다
여인은 로비스트인가 ㅎ
┗ economet 17.12.16. 21:50 new
아니요! Siemens도 오늘날 자기부상열차에 해당하는 전차를 세계최초 만든 회사인데
박태준은 Infrastructure쪽 회사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로비스트의 시초인셈인데
언어 즉 통역과 잠자리를 책임졌던 것 같습니다.
마치 MB의 에리카 김같은 역할을 했던 걸로 추정합니다.
오프라인 모임하게되면 어떤 회사들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 economet 17.12.16. 21:54 new
역사서가 아닌 기록물들이라 그때 저희는 촬영 허락만 받았습니다.
진본은 달라고 안했습니다!
어차피 거기 있어야 손을 안탈테니까요.
참고로 저는 8개국 내지 9개국어 배웠습니다.
┗ 우전 17.12.16. 23:09 new
네 그렇군요
회사 계약서 기록물이면
주소와 나라이름이 나오니까 역사책보다 더 정확하겠지요
진본을 촬영했어면 확실하네요
아 ..9개어를 하면 대단하시네요
다음 모임때 참석하면 알수있는 기회가 되겠네요
자세한 정보 감사합니다
┗ economet 00:37 new
예, 저야말로 눈팅만 하고 우전님의 글을.정말 고마와 같이 읽고 있습니다.
교육을 외국에서 받다보니 우연찮게 여러나라말을 섭렵하게 되었습니나.
모국어같이 하는건 3개밖에 안됩니다.
라틴어는 책읽을 정도는 되고요.
아쉽게도 유럽에 있어서 들어가게 되면 뵙겠습니다.
┗ 우전 00:42 new
아 ..유럽에 계시는군요
이민간게 아니면 한번씩
한국에 오시겠지요
기회가 되면 뵙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올린글에
알고있는 진실을 댓글로 보충해주시면
다른분들도 도움이 많이 되겠지요
┗ economet 04:06 new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평온한 주말 되시고요..
투르크 술탄의 복장과 유사한 조선 효종의 복장
한양으로 이송된 하멜 일행이 국왕(효종)을 알현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하멜 일행을 불러서 만나 본 효종은 노래, 춤 등의 네덜란드 풍속 놀이를 해보라고 지시하는 등 서양인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하였다. 하멜은 조선의 국왕을 절대적 권위를 가진 군주로 묘사하였다. 하멜표류기에 나오는 조선 국왕 효종의 형상과 복장이 한국의 사극에서 보았던 조선 황제의 복장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머리를 보면 투르크 이슬람의 술탄이 쓰는 터번과 비슷해 보인다. 동아시아가 중조라고 믿고있는 중원론자들은 이에 대해서 함구하고있다. 그들은 하멜 같은 외국인들의 조선에 관한 기록은 모두 날조라고 믿기 때문이다. 투르크 이슬람의 술탄의 복장과 하멜표류기의 조선 효종의 복장을 비교해 보면 흡사해보인다. 하멜이 표류한후 탈출하기 전까지 살았던 조선의 전남 강진에 왠 아프리카 토인이 나올까? 중앙아시아 사관에서 아프리카를 전라도(틸라도) 지역으로 보는 시각이 맞는것이 아닐까?
. 하멜표류기 프랑스어 초판본은 1670년 만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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