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
고대 왜(倭;日本)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없었다
우전작설차
2019. 4. 1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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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103
고대 왜(倭;日本)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일본의 허구역사, 새로 써야 한다
![]() 오늘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명성황후를 시해를 시작으로 고종황제마저 독살시해한 일본의 만행에 대해 온 국민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선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날이다. 이 뜻 깊은 날 그들 역사의 허구성을 추구하려고 붓을 들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탈하며 일본국가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위해 일본의 어용사학자들은 역사 이전에 살았던 몇 사람을 합성하여 당시 있지도 않은 허구의 왕 진무(神武)를 일본의 초대 왕이라 하며 위대한 신화적(神話的)존재를 탄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존인물도 아닌 가공의 인물을 일본의 첫 왕이라 하는 일본이기에 이를 고찰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반도식민사관자도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기를 바라는 것이다. 역사를 조작, 변조, 왜곡한 허구역사는 역사로 인정할 수없는 것이 상식이다. 한 예를 든다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와 있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이 재위(在位 서기 346~375년)시 왜(倭)에 하사(下賜)한 것도 그들은 백제가 왜(倭)에 헌상(獻上)했다고 역(逆)으로 말하는 자들이다. 당시 근초고왕은 대륙 안평현(安平縣) 내 평양(돈황성)으로 쳐들어가 고구려 고국원왕(故國原王)을 전사시킨 때였다. (이 평양도 북경 주변에 6개 중 하나로 반도가 아니다.) 당시 왜(倭)는 아주 미약한 사회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왜(倭)가 대백제왕에게 하사 운운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일본이 철면피(鐵面皮)로 백제가 헌납하였다고 왜곡하고 있는 칠지도(七支刀)는 369년 백제 단철예술(單鐵藝術)의 수준을 보여준 길이 74.5cm로 근초고왕이 출전중 왕을 대신하여 왕세자가 하사한 것은 지금 일본 이소노카미신사(石上神社)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은 백제가 하사한 이 칠지도(七支刀)를 공개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서기 369년은 왜(倭)는 우리의 식민지 속국(屬國)이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당시는 일본열도도 아니고 양자강 이남 시대였고 왜(倭)는 우리 제후국(諸侯國)의 하나에 불과 했다. 일본은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사실을 숨기고 어디까지나 일본열도에서 고대부터 있었던 같이 역사서를 조작하고 있으나 왜(倭)는 고대부터 우리의 속국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는 시대가 바뀌어도 그 진실은 변할 수도 바꿀 수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역사다. 오늘은 고대 우리 기마민족(騎馬民族)이 유라시아의 제 민족(諸民族)을 지배하며 동서 연결한 교통로인 ‘비단길’을 연 상황과 일본이 대륙시절 역사를 숨기고 있는 것을 살펴보겠다. 고대 일본사(日本史) 기록은 모두 허구(虛構)이다 왜(倭)는 삼국지(三國志) 왜인전(倭人傳)을 비롯한 사서(史書)들이 있는 한, 제 아무리 일본 역사서(歷史書)를 잘 꾸미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늘어놓아도 왜(倭=倭國)는 이 대륙과 타이완(臺灣)에 있었던 일본(日本)을 일본열도(日本列島)로 가져올 수 없는 것이다. 필자 역시 일본사를 믿으려 며칠간 다시 중국사서(中國史書)인 삼국지를 비롯한 위에 전술한 사서의 내용을 살펴봐도 고대일본(古代日本)은 대륙의 양자강 이남과 타이완;臺灣)의 범위를 벗어 날 수 없었다. 일본은 자기들의 역사를 제대로 바로 써야 한다. 한국사가 삼국사 권46과 중국 남제서(南齊書) 권58은 물론 중국(中國) 25사(史)에 기록된 금성(金城)이 있는 한 한반도로 가져올 수 없는 것과 같이 삼국지를 비롯한 후한서에 왜(倭)가 대륙에 있었음을 정확히 기록된 것을 일본열도로 가져 갈 수가 없다. 일본은 진무기원(神武紀元)을 창작(創作) 임에도 마치 진무천황((神武天皇)의 즉위년을 결정한 것은 쇼도쿠 다이시(聖德太子)의 수사사업(修史事業)과 관련해서 조작된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참위설(讖緯說)의 신유혁명설(辛酉革命說)을 표본으로 하고 있다. 즉, 신유년(辛酉年)에는 혁명(革命)이 일어나는데, 신유년(辛酉年)의 해가 21번 되풀이 되면, 더욱 큰 혁명이 일어난다는 사상이다. 601년 신유년(辛酉年)을 기점(起點)으로 하여 이보다 1260년 전의 신유년(辛酉年;서기전660년을 진무천황((神武天皇)의 즉위(卽位)의 해로 정한 것이다. 일본역사는 시작부터가 거짓의 허구(虛構)역사인 것이다. 서기전 660년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망한 해이다. 이 해를 기점으로 일본이 일본열도에서 아스카(明日香=飛鳥)문화를 일으키고 쇼도쿠 다이시(聖德太子)가 호류지(法隆寺)도 세우고 마치 일본이 일본열도에 있었던 것같이 조작 하나 모두 허구역사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이 말하는 “아스카(明日香=飛鳥)문화를 일으켰다”. “야마토(大和)정부를 세웠다”고 하는 이 시대에는 왜(倭);일본(日本)은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있지도 않았다. 이 시대에는 일본열도가 아닌 대륙과 타이완;臺灣)에 있었던 시대이다. 이 시대 일본은 우리와 같이 대륙과 타이완(臺灣)에 있었음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당시 세계는 우리기마민족(騎馬民族)이 세계를 정벌(征伐)고 정복(征服)하며 대륙을 지배한 시대이다. 세계5대문명이 말해주듯이 당시 기마민족(騎馬民族)인 우리는 유라시아를 지배하며 세계제국시대(世界帝國時代)로 유라시아의 나라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당시 서기전 6세기에 우리 선조는 인류의 시원문명이라 할 수 있는 요하문명;배달문명을 비롯해서 메소포타미야문명(수메르문명), 이집트문명, 그리스문명, 인도문명(인디스강, 간디스강문명)과 황하문명까지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는 기동력을 앞세운 기마민족이었고 왕들이 기마민족이었기에 가능하였으며 당시일본은 우리 지배하에 있었다. 당시 지구의 땅의 40%가 유라시아이고 그 유라시아 80%가 우리 영역인 것을 중국의 사학자 임혜상(林惠祥)도 인정하며 중국의 영토가 가장 좁았다고 말하고 있을 때였다. 일본역사가 일본열도 출현은 그 이후이다 역사의 이해를 위해 당시세계의 상황을 보면, 서기전 6세기 이란고원(高原)에 일어난 페르시아인은 서아시아와 이집트를 정복하여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했다.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의 침입을 막은 그리스인은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그리스문명을 만들었다. 또한 서기전 5~4세기에 와서는 세계교통의 중심에 있었던 페르시아제국은 세계문화를 흡수해서 번영했다. 그 서방에 있었던 그리스 도시국가(Polis)는 서기전 8세기경 철기를 만들어 독자(獨自)의 높은 문화를 열고, 더 나아가 페르시아문화를 융합하여 갔다. 기원전 3세기이태리반도를 점령한 로마인은 지증해세계(地中海世界)에 대제국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기마민족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기원전 6세기경 이란고원을 통일한 기마민족페르시아인도 다름 아닌 우리선조들이다. 기원전 3세기 중원대륙에는 기마민족인 예맥조선이 중국의 여러 나라들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1000년간 지배하고, 서기전221년에 중국은 전국시대의 강국이 하나인 진(秦)에 의해서 통일되었다. 그러나 진시황의 폭정에 농민반란으로 15년 만에 망한다. 이어서 한(漢), 수(隨), 당(唐)나라가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중원(中原)의 주인이었다. 중국과 일본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해도 삼국사(三國史) 권46과 남제서(南齊書) 권58등 중국사서(史書)가 있는 한 우리역사를 반도로 가져올 수 없다. 또한 왜(倭)도 삼국시대 중국양자강 이남에 있었고 660년 백제가망한 후 백제유민이 가서 타이완(臺灣)에 나라를 세우고 670년 당(唐)나라로부터 일본국호(國號)를 쓰도록 되었고, 1403년 명(明)나라 때는 왜(倭)가 일본열도에서 일본국호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일본열도에서 처음부터 나라가 건국되어 발전한 것같이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를 일본역사라 하나 일본열도에는 왜나 일본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마민족과 실크로드(Silk-road), 그리고 왜(倭) 세계역사에 가장 영향을 끼친 민족은 우리의 선조들이다. 그것은 세계시원(世界始源)역사를 만든 북방으로부터 중앙아시아에 걸쳐서 초원이 펼쳐져 있는 초원에는 유목민족이 국가를 만들고 간 그들에게는 훌륭한 말(馬)이 있었다. 또 목축과 수렵에 의해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기마민족들이 힘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 의해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1~2세기경에는 중국인들이 흉노(匈奴)라 하는 기마민족(騎馬民族)이 있었다. 그들은 기마민족답게 기동력은 서부(西部) 제국(諸國)에 힘으로 영향을 미치게 했다. 이 때부터 동서를 연결하는데 길은 오아시스의 길로 번영(繁榮)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중앙아시아의 길을 연결시키는 통로(通路)는 후에 학자에 의해서 비단길(Silk-road)라고 불리었다. 이 비단길을 개척한 민족이 바로 동이(東夷族)인 기마민족(騎馬民族)으로 이들은 몽골고원에서 활약한 유목민으로 기마전술을 구사(驅使)하는 중국인들이 흉노(匈奴)라고 하는 우리의 선조(先祖)들이다. 이 동이족은 중원(中原)에서 상고시대와 고대부터 살아왔는데 지금 우리나라반도사관 자들은 반도만이 우리역사라는 무지한인간들에 의해서 뒤엎어져 있다. 참으로 참담한 상황이다. 이들이 어느 족속인지 기가 찬다. 우리는 반도의 사람이 아닌 대륙인이다. 지금 우리나라 역사인물들을 삼국시대의 연개소문(淵蓋蘇文), 최치원(崔致遠), 김유신(金庾信), 계백(階伯)장군, 장보고(張保皐), 의자왕이 대륙의 사람이지 반도인 아니다. 세계학자와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는 우리가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유라시아의 예맥(銳麥=濊貊=匈奴), 선비(鮮卑)등 기마민족이 왕성하게 대륙에서 활동한 것을 말했다. 이 기마민족은 4~5세기경 동아시아에는 이 기마민족이 대륙 북부;화북(華北)에 많은 나라를 세웠다. 일명(一名) 오호16국(五胡十六國)이라고 불리었는데 이들도 동이이다. 5~6세기에는 북위(北魏)에 통일되었으나 이 북위(北魏) 역시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나라이다. 특히 서방에서는 훈족(HUN)족이 활동해서 게르만민족의 이동을 하게 된다. 여기서 훈족(HUN)족이라 함은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흉노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우리가 왜(倭)는 야마토국가(大和國家)라 하나 이들은 일본열도에 있지도 않았다 . 당시의 왜(倭)는 양자강 이남에 있는 시대로 그 역사를 숨길 수 없다. 서기4~6세기에 걸쳐서 유라시아대륙은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 중앙아시아 제민족(諸民族)이 대륙의 동서(東西)로 활약한 시대로 기마민족이 뛰어난 기마전술(騎馬戰術)로 중원(中原)을 지배하고 , 서(西)로는 로마제국을 멸망하게 한 민족이동(民族移動)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왜(倭)는 대륙에 있었지 이시기에 일본열도에는 없었다. 글을 맺으며 중국과 일본이 우리역사를 폄하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반도사관자(半島史觀者)들의 잘못에서 기인하고 있음에서 크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역사는 대륙사이지 반도가 아니다. 단세포적인 역사연구는 연구가 아니다. 우리역사는 삼국사(三國史) 권(卷)46과 남제서(南齊書)권(卷)58의 범위는 물론 지나18사(支那十八史), 동이(東夷傳)의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 역사연구를 제대로 한 사람은 우리역사가 반도역사라 하는 자는 정신이상자가 아닌 이상 그리 말 하지 못한다. 고구려의 수도를 평양이라 하는데 평양도 북경과 요동지방에도 6개 이상 있고 발음이 같은 평양도 중원에도 몇이 있다. 고구려의 평양, 동황성, 백제의 한성, 웅진, 사비, 신라의 금성은 지나18사(支那十八史)위치를 벗어날 수 없음을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이 위치는 반도가아니라 대륙임을 제대로 알고 말들을 했으면 한다. 이에 관해서 다음에 분명히 밝히겠으나, 오늘은 지면상 세계사와 관련하여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상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단군을 찾아서’.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倭-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槐一男, 永原慶二 監修, ‘絶對 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