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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대체 언제까지 속아야 정신차릴 텐가..? - 빈부격차.양극화

 

대체 언제까지 속아야 정신차릴 텐가..? - 펌글

 

14.01.22

 

 

부자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진다.

빈자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중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외유를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터진다.

성장과 개발, 경쟁이 만들어낸 작금의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류의 종말을 고민해야 할 정도에 이르렀거늘,

 

그 모든 책임의 당사자들의 모임인 다보스 포럼에 가서 대규모 투자를 요청했다.

해외기업들이 사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면서.

 

 

                      지금의 불평등을 만든 것들을 계속한단다ㅡMBC뉴스 화면 캡처

 

 

 

정말 이제는 신물이 날 지경이다.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된 것은

이제 너무나 많은 통계자료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우면, “사회의 상층에 축적된 부는 다른 사람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과 자기 아이들의 미래가 더 안전하고 낙관적이라고 느끼게 하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낙수효과는 작동하지 않았다.

 

 자유 시장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이 도와줘도 제대로 작동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자본주의 전성시대에서조차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불평등이 축적됐다.

 

 경제성장률이 얼마를 기록하던 부자들, 그중에서도 상위 0.1%의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최하위층은 기본적 생계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빈곤해졌다.

 

 

 데이비드 로스코프의 《슈퍼클래스》를 보면

“세계 최고의 부자 천여 명이 가진 순자산을 합하면,

 가장 가난한 25억 명이 지닌 순자산의 두 배에 달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스티글리츠와 율리히 벡, 베텔스 등의 정치·사회·경제학자들이 각국의 자료와

유엔 및 OECD의 통계자료를 통해 확인한 사항이다.

  

이 때문에 “아이의 장래는 아이의 두뇌, 재능, 노력, 헌신이 아니라

태어난 곳과 태어난 사회(와 국가) 내에서의

부모(와 조부모)의 지위(와 부)에 의해 결정”되는 세상이 됐다.

 

 같은 사회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적대적 감정과 배제에 익숙해지고 있다.

 

 

 

                               개발과 성장지상주의의 결과ㅡ다믐 이미지 캡처

 

 

결국 “경제성장은 공생에서 생기게 마련인 과제들을 처리하고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성장지상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의 냉혹한 현실을 사회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혹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나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경제성장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는 환경오염과 생태계파괴를 동반한 지구온난화까지 초래해

인류의 공멸을 걱정할 처지까지 이르렀다. 연일 계속되는 초미세먼지의 공습을 보라!

 

경제성장과 경쟁만능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즉 민생과 경제에 정부가 올인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든 국가가 상위층에 적용하는 것은 그들의 부가 늘어나도록 보호하며, 중산층과 하층민에게는

냉혹한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적용해 끝없는 경쟁을 강요한다.

 

 

 이를 스티글리츠의 표현을 빌리면

‘중하위 90%의 지갑을 털어 상위 1%의 금고를 채워주는 것’이며,

 율리히 벡의 표현을 빌리면 ‘아랫것을 빼다가 위에 나누어주는 분배’인데,

 이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정치의 배신이다.

 

 

성장과 경쟁을 울부짖었던 이명박의 ‘747공약’과 ‘비즈니스 프렌들리’,

박근혜의 ‘줄푸세’와 ‘474’가 전형적인 예이다.

  

미국에는 ‘vote with your pocketbook’,

영국에는 ‘vote your wallet'처럼 ‘주머니 사정에 따라 투표하라’는 유명한 표현이 있다.

  

이는 자신에게 가장 많은 돈을 벌게 해줄 후보나 정당에 투표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관용구인데,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의 수없이 많은 유권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불평등의 대가ㅡ다음 이미지 캡처

 

 

 

대체 얼마를 더 속아야 정신을 차릴 텐가..?

 

 OECD와 유엔은 물론 IMF와 IBRD 같은 기구들조차도

지난 30년의 교훈이 경제성장과 경쟁만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공멸을 막기 위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부의 재분배와 복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라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각종 불평등의 심화, 부동산시장의 끝 모를 침체,

가계부채의 가파른 상승, 공기업 부채의 폭발적 증가,

 사상 최악의 정보유출, 삼성전자의 어닝쇼크,

현대기아차의 영업이익 감소, 미래의 먹거리 부재,

 원전 비리 등은 대한민국의 침몰을 알리는 강력한 경고음이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의 복원이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은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민생과 경제에 올인하면 모든 것이 풀릴 것이라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은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증명하는 온갖 통계와 자료에 의해 밝혀진지 오래다.

 

이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좌우의 문제도,

진보와 보수의 문제도 아닌 민주주의의 붕괴와 미래세대의 삶과 국가의 침몰에 관한 얘기다.

나와 너, 우리와 미래세대 및 인류의 공생을 위한 삶의 지속에 관한 얘기다.

 

북한의 도발과 일본과의 환율전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극도의 불평등과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압축성장의 폐해와

IMF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경험이 말해주는 것을 외면하는 것이 더욱 무서운 것이다.

 

 

공생의 대안은 언제나 존재했고, 지금도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경제위기를 극복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평화를 유지하는 나라들이 있다.

 

  대체 언제까지 속아야 정신 차릴 텐가?

 

 

마지막으로 《기후전쟁》을 쓴 하랄드 벨처의 말을 전한다.

 

행동과 실천은 나와 당신들의 몫이기에.

“문제들은 애초에 그 문제들을 만들어낸 사고 패턴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진로를 바꿀 필요가 있으며, 그러자면 먼저 기차부터 정지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