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사회는 삼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까?
지난 10일 한국거래소는 기업심사위원회를 열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유가증권시장 상장 유지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보수 언론과 경제지 등은 환영 일색의 기사를 내보냈다.
<'삼바'의 화려한 복귀, 거래 재개 첫날 주가 18% 급등>, 조선일보
<증권가 "삼성바이오 불확실성 해소" 안도>, 매일경제
![]() | |
▲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심의 결과가 발표된 14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 |
ⓒ 연합뉴스 |
반면 시민사회는 한국거래소의 이번 결정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수돌 교수는 이와 현상을 저서 <중독의 시대>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한다.
중독에 빠졌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통제 만능에 빠져 상황을 조작하려 하고,
최근에는 많은 이들이 '워라벨'을 운운하며 삶의 가치와 여유를 더 추구하는 듯하지만
사회 전체가 일종의 중독자처럼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면서도
마치 이것이 정상인 양 개인들이 수용하고 있는 맥락 위에서 각종 중독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온 사회가 경제성장에 중독된 채, 노동(고용)을 개인의 정체성 확인이나 생계수단 확보의 유일한 길이라
내면화해버린 상태(노동사회)가 가장 심각하다 – 9p
중독의 원인
그럼 그와 같은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컨대 우리가 알고 있는 알코올 중독이나 게임 중독 등을 보자.
![]() | |
▲ 중독의 시대 | |
ⓒ 개마고원 |
이와 같은 중독의 프로세스는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계속되는 분단체제는 우리로부터 그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응시할 기회를 빼앗아 갔고,
한국전쟁의 대규모 폭력과 비참함이 불러온 트라우마 과정은 그대 한국 사회를 지속적으로 규정짓는다
. 여기서 핵심은 그로 인한 두려움(나약함, 열등감 등)인데,
이것이 전사회의 심층에 단단히 자리 잡아 사람들의 느낌, 생각, 행위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 283p
깊이 억압해버린 두려움을 우리가 그 뒤로도 제대로 해소,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그로 인해 1세대가 경험한 트라우마가 대를 이어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
유전적 전승이 아니라 사회적 전승이다 – 285p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생존자들은 대체로 공격자(가해자)이던 폭력적 지배세력의 선전 논리를 내면화한 결과, 반공주의 히스테리(레드 콤플렉스)라는 형태로 자아를 억압해왔다.
그 결과 불의에 대한 저항이나 진실을 위한 투쟁은 늘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또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로 사회적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 82p
일중독의 대한민국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와 같은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결과, 다른 무언가에 중독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자신의 자원을 넘어 살았다.
여기서 '자신의 자원을 넘어'라는 말은
한마디로 한국 경제가 민중과 국토를 '초과 착취'했다는 말이다.
사실 자본주의 축적이란 결코 자급자족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부단히 바깥에서 유입되는 살아 있는 에너지에 의존한다.
따라서 그것은 본질상 파괴적이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민중에 대한 수탈은 물론이고,
각 자본주의 사회 내 노동대중에 대한 착취 역시 생명력에 대한 파괴다.
이것을 흔히 '경제성장'이라 부른다 – 83p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일중독에 빠진 사회.
한국은 1990년대 초만 해도 자살의 무풍지대였다.
자살 사망률이 10만 명당 7.3명에 불과해 자살은 개인적인 불행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자살이 급증해 2003년부터 교통사고 사망자를 앞지르기 시작,
지금(2010년 기준 10만 명당 약 30명, 하루 평균 43명)은 교통사고 사망자의 2.3배나 된다 – 104p
우리는 '명함 사회'에 산다.명함 속에 표시된 나의 일이나 나의 소속, 나의 지위가 곧 나 자신의 정체성이다.
'나'라는 사람은 곧 내가 하는 일이다.
만일 일자리가 없거나 일을 잃어 실업자가 되면 마치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
. 직장인들이 해고의 두려움 속에 갇혀 사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노동과 동일시한 결과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나고 일은 일일 뿐이다 – 188p
덧붙여 저자는 노동자의 복지를 주장하는 시민사회의 요구나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나가고 주도해나가는 중독사회에 대하여 균열과 해체와 지양의 방향이 아니라
결국은 보완과 지지, 존속의 방향으로 기여하기 쉽다....
.현재 우리의 삶이 뒤틀리게 된 원인을 (성장중독으로 나타나는) 자본의 가치생산 그 자체에서 찾지 않고,
대체로 그 (파괴적으로) 생산된 가치의 분배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213p
당시 가장 중요한 요구 중 하나가 '노동의 권리'였다.노동과의 동일시가 이미 나타난 것이다.
이는 이미 공고히 뿌리내린 자본의 토대 '위'에서 모든 투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즉 원래 외부에서 온, 적대적 원리로 인식되던 것들이 수백 년 간에 걸친 폭력적 과정의 결과로
마침내 사람들에게 '내면화'한 것이다.
그 원리가 곧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의 경쟁이다.
사람들이 경쟁을 내면화할수록 속물적으로 변해갔으며,
바로 이 때문에 현실의 근본 모순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는 눈을 잃어버렸다 – 225p
![]() | |
▲ 지난 8월 31일 당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폐기 촉구를 위한 긴급 간담회를 열고 함진규 정책위의장, 안상수 정책자문단장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 |
ⓒ 남소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주목한 '중독사회' 개념은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들이 너무 '이상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가 현 사회에서 '현실적'이라 부르는 것들은
모두 기존 시스템의 지속화 내지 영속화에 불화하다는 점이다.
만일 우리가 중독 시스템이 '치명적'이란 점,
그리고 중독행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점을 정직하게 또 진지하게 인정한다면,
더 이상 그것을 수선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되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는 '점진적' 변화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두는 중독 시스템의 선진화 내지 합리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288p
'사회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소수자 부모밑에 자란 미국 여성의 참혹한 성장기 (0) | 2018.12.31 |
---|---|
청소년 범죄 근본원인과 해결책 (0) | 2018.12.25 |
시민전쟁 : 스웨덴 시민들 반세계화 봉기 (0) | 2018.12.12 |
먼길 돌아온 인생의 노을 (0) | 2018.12.03 |
“진짜 사람들을 거기서 본 거다” (0) | 2018.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