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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겨울폭포

2010.07.24. 23:30

 
*** 이 책을 함께 번역하고 출간까지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주선했던 선생님(출판사)가 저작권을 안 사두고 있었던 거에요...
 
나중에 이 책을 번역하신 이 분이 먼저 책을 출간해 버리셨죠...
 1년 밤새워 공부했던 흔적이... 아쉬웠던 순간... ㅎㅎ
 
뭐 열심히 공부하고 일본어를 처음 접했던 때고,
민족주의-순혈주의 이런 것으로부터 탈피했던 때이니 전화위복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봅니다.
 
이 책에서 재밌었던 부분은
 
우리의 기억(교육에 의해 강제된)과 달리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인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것인데요...
 
한 일본군인은 기독교 사상과 인류애에 기반하여 '병역 거부-집총 및 조선인 학대, 학살'을 거부합니다.
그리하여 옥살이를 하는데, 옥살이 중에 조선인을 위한 춤을 만들어
 
대유행?을 시키기도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동학 농민 운동'과 관련하여,
그것을 단순히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으로 해석하는 것이 현재의 역사학계라면
 
이 책에서는 '동학 농민 운동'도 하나의 '정치 경제적 체제 운동'이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청에 대항하여 일과 협상을 하려고 했던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거든요.
 
이런 식의 역사 왜곡(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왜곡)과 관련해서
'서강대' 논술 문제로 출제된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 문제에서는 '반공-친일적인 입장'에서 만들어진 문제이긴 했지만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책을 인용하여 만들었는데... 꼴이 우습긴 합니다)
 
재밌는 이야기 거리들이 참 많은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의 역사와 전체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역사서.

 1876년부터 1945년까지 70년 동안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다양한 군상을 통해

일본 식민 지배의 특징을 실증적으로 파헤친 책이다.


일본의 조선정책과 조선관에 조선 내 일본인이 미친 영향,

그리고 그들의 언행과 행동이 조선인에게는 어떻게 비추어 졌는지 살펴본다.

이 책은 조선의 식민 지배를 가능하게 했던 '풀뿌리 식민자'들의 다양한 군상을 통해

그들의 역사와 전체상을 밝히고 있다. 다양한 사료를 활용하여

조선 내 일본인의 성, 직업, 지역별 통계, 각 시기별 인구통계와 그 변화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또한 다수의 전기와 회고록을 바탕으로 식민시기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는지,

 조선과 조선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역사 인식을 지니고 있었는지 전해준다.

저자소개

■ 지은이_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


1944년 일본 이바라기 현에서 태어났다.

도쿄교육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사와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쓰다주쿠대학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편저서로 ࡔ아사카와 다쿠미 평전ࡕ, ࡔ일본 망언의 계보ࡕ, ࡔ'반일감정'―한국, 한국인, 일본인ࡕ

, ࡔ중국 조선족―역사・생활・문화・민족교육ࡕ, ࡔ검증 한일회담ࡕ 등이 있다.


학창 시절부터 일본 내 조선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일본인의 왜곡된 한국 인식의 실태와 식민지 거주 일본인의 의식 구조를 지속적으로 규명해왔다

. 지금은 1945년 이후 한반도 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 옮긴이_이규수李圭洙


1962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히도쓰바시대학 사회학연구과에서

 지역사회연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ࡔ근대 조선의 식민지 지주제와 농민운동ࡕ(일본어판),

 ࡔ근대전환기 동아시아 속의 한국ࡕ(공저), ࡔ근대전환기 동아시아 삼국과 한국―근대인식과 정책ࡕ(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ࡔ서양과 조선ࡕ, ࡔ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ࡕ

, ࡔ기억과 망각―독일과 일본, 그 두 개의 전후ࡕ, ࡔ동아시아 근현대사ࡕ, ࡔ일본의 전후 책임을 묻는다ࡕ

, ࡔ일본인이 본 역사 속의 한국ࡕ, ࡔ해협―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ࡕ

, ࡔ국민주의의 포이에시스ࡕ, ࡔ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ࡕ 등이 있다.


근대 일본 및 일본인의 한국 인식과 상호 인식을 규명하기 위한 글쓰기에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한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목차

시작하며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한다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사를 다룬 책들
세 가지 사료군

제1장 부산에 상륙한 일본인
개항에서 갑신정변까지(1876~1884)

부산의 개항 / 초기 거류민의 직업 분포 / 일본인 무역상과 제일은행 /
초기 이주민의 다양한 군상 / 원산의 개항 / 임오군란과 한성의 개방 /
세 번째 개항지, 인천 / 불법 도항자의 천국, 울릉도

제2장 높아지는 일본의 식민열
갑신정변에서 청일전쟁까지(1884~1894)

갑신정변과 그 이후 / 한성의 일본인―무역상, 전당포, 교사 /
부산의 일본인―무역상과 부동산업자 / 원산과 인천의 일본인 동향 /
방곡령사건 / 늘어나는 청국 상인 / 식민열의 고양 /
대구와 평양의 일본인 / 대륙낭인의 결집 / 갑오농민전쟁 /
일본인의 대원군 추대

제3장 전쟁 협력과 이민의 유입
청일전쟁에서 을사조약까지(1894~1905)

청일전쟁에 협력한 일본 상인들 / 종군기자와 신문 발행 /
전선을 따라 북상한 일본인들 / 일본의 이민 장려정책 /
청일전쟁 이후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들 / 이오코의 광주실업학교 /
민비 암살사건의 주모자들 / 의병투쟁과 아관파천 /
늘어가는 유곽과 일본인 작부, 예기, 창기 / 거칠고 폭력적인 일본 상인 /
목포와 진남포의 개항 / 마산과 성진, 군산의 개항 / 일본인의 울릉도 점령 /
평양의 일본인 / 개성과 의주의 일본인 / '미개지' 조선으로 /
초기의 이주 어촌 / 위조화폐의 주조 / 경부선과 경의선 /
러일전쟁의 준비와 거류민의 전쟁 협력 / 러일전쟁 전후 일본 상인의 진출 /
통신기관의 강제 접수

제4장 격증하는 한국의 일본인
을사조약에서 한국강점까지(1905~1910)

일본인 관리와 경찰관 / 일본인 교사 / 여학교와 중학교의 설립 /
일본인의 횡포 / 을사의병 / 간도와 회령․청진․나남․용산의 일본인 /
현이 주도한 조선 진출 / 동양척식주식회사 / 이주 어촌의 확대 /
광산 개발을 통한 부의 축적 / '신천지 조선'에 운을 건 일본의 하층민

제5장 식민지 지배의 선두에 선 일본인
한국강점에서 3·1운동까지(1910~1919)

한국강점 초기 일본인의 직업 분포 / 진해와 대전 / 오쿠라의 전기회사 /
와타세의 조선 전도 / 민족 차별과 계급 차별 /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편견 /
천한 일본인의 모습 / '경성백화파' / 경원선과 호남선 / 쌀의 군산

제6장 '문화정치' 속에서
3·1운동에서 만주사변까지(1919~1931)

3·1운동 / '문화정치'와 조선어 / 사범학교의 설립 / 다이쇼 데모크라시 /
관동대지진 / 융화운동의 전개 / 야나기의 조선민족미술관 / 재일 조선인 /
경성제국대학의 아베 교수 /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의 설립 / 불이흥업주식회사 /
경찰의 고문

제7장 '내선일체'의 현실
만주사변에서 일본의 패전까지(1931~1945)

북부 지역의 공업화 / 강요된 '내선융화' / 일본인 2세의 폐창운동 /
국경의 경찰관 / 황민화 교육에 앞장선 녹기연맹 / 1930년대의 사범학교 풍경 /
'내선공학' 중학교와 여학교 / 국민학생의 전쟁 동원 / 루거우차오사건과 장구펑사건 /
내선결혼의 장려 / 강제 연행과 근로보국대, 그리고 창씨개명 / 조선인 위안부 모집 /
학자의 전쟁 협력 / 문학자의 시국 영합 / 초년병 오자키 /
도시의 일본인과 농촌의 조선인 / 소련의 참전

제8장 패전과 귀환
조선에서 다시 일본으로(1945~1948)

함흥의 일본인 세화회 / 흥남으로 몰려든 피난민 / 평양과 진남포의 난민들 /
경성 거주 일본인의 귀환 / 대구와 부산에서의 귀환

맺으며
제1유형
제2유형
제3유형

역자 후기

[부록]
조선 내 일본인 관련 연표
출전을 밝혀주는 원주 목록
참고문헌
찾아보기(인명ㆍ일반)

출판사 서평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의 역사와 전체상

일본에게 식민지란 일본 자본주의 모순의 분출구이자 생명선이었다.

이 결과 식민지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은 군인과 경찰, 관료뿐 아니라

지주와 자본가, 말단의 서민층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의 지배구조는 지배계층의 비호 아래 이름 모를 수많은 민간인,

 즉 조선에 이식된 '풀뿌리 식민자'들을 통해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 수는 식민 지배 말기 75만 명을 넘어섰다.


이 책은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의 역사와 전체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역사서이다.

 1876년부터 1945년까지 70년 동안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다양한 군상을 통해

 일본 식민 지배의 특색을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일본의 조선정책과 조선관에 조선 내 일본인이 미친 영향,

그리고 그들의 언행과 행동이 조선인에게는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살폈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와 일본 외무성 등의 관변단체 사료, 일제시대 지방사 자료,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의 전기와 회고록 등 다양한 사료를 적절히 활용해

조선 내 일본인의 성・직업・지역별 통계, 각 시기별 인구 통계와 그 변화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독자로 하여금 일본 식민정책의 특징,

 그리고 시기별 역사적 사건과 인구 변화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다수의 전기와 회고록을 인용함으로써

 식민시기 수많은 일본인이 이 땅 한반도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으며,

조선과 조선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역사 인식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세밀하게 전달한다.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한다

이 책의 최종적인 목적은 우리가 조부모와 부모의 체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잘못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담보를 획득하는 것에 있다.


물론 지금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그 옛날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할 위험이 크다.(4쪽)

이와 같은 저자 다카사키의 문제의식은

"왜 우리가 그들―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과도 연결된다.


'가학'과 '피학'의 서로 다른 위치에 있지만,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인 역시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할 위험이 큰' 것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에 대한

국내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최근 일제강점기의 일상생활과 근대, 근대의식에 대한 다양한 연구 성과물이 책으로 엮어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동일한 시공간 안에 살았던 일본인에 대한 연구는 도외시되어온 것이 현실이다.


이는 지금까지 식민정책사 연구의 경우 한국사 영역으로 간주되어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조선 내 일본인의 사회와 사회조직,

 역사 인식에 대한 연구는 마치 일본사의 일부로 여겨지고 있는 국내의 연구 풍토와도 연관돼 있다.


그러나 식민정책을 연구하면서 식민지 지배자와 지배집단의 내부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된다면

 그 연구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 내 일본인에 관한 국내 연구를 촉발시키는 데 작지만 소중한 불씨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 그들은 누구인가?
―75만 일본인의 다양한 군상을 통해 본 풀뿌리 식민 지배의 실상

■ 조선 내 일본인의 성별, 직업별, 지역별 특성


개항 초기 조선 내 일본인의 인구 구성은 현저한 남녀차를 확인할 수 있다.

 가족을 동반한 도항이 조약 위반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천지 조선'으로의 도항이 그들에겐 '모험'이었기 때문에

조선에서의 영주를 고려하지 않은 것도 한 이유였다.


이후 여자와 아이들이 늘어났는데,

 여성 중에는 유곽에서 일하는 예창기와 작부(이를 통틀어 게이샤라고도 한다)의 비율도 함께 증가했다.


개항 직후 조선으로 가장 많은 거류민을 보낸 지역은 전통적으로 조선과 관계가 밀접했던 나가사키(長崎)였다.


 한국강점 이후는 지역적으로 조선과 가까운 야마구치(山口)나

후쿠오카(福岡)를 비롯한 규슈(九州)와 주고쿠(中國) 지방이 주를 이루었으며,

 식민 후기로 갈수록 관리와 경찰이 늘어나면서

도쿄와 기타 대도시 출신자들, 홋카이도(北海島)를 비롯한 거의 모든 지방의 일본인이 조선으로 건너왔다.


개항 초기 조선 내 일본인의 지역별 분포는 대단히 불균등해서 경기도와 경상남도가 거의 절반을 차지했는데,

 이는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에 일본인이 집중했음을 나타낸다.

일제 말기에는 만주침략정책과 군수공업화정책과 연관되어 한반도 북부 지역에도 일본인이 급증하였다.

반대로 농촌 지역에서 일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별로 높지 않았다.


개항 이후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은 군인과 경찰, 관료, 상인과 기업경영인,

 그리고 교사와 교수, 문학자와 같은 지식인층, 회사원과 지주, 농민, 대륙낭인,

 주부와 학생, 유곽에서 일하는 예창기, 작부 등 각양각색의 직업 구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주 초기에는 상인과 조선에서 한몫 잡아보려는 대륙낭인이 다수를 차지했으며,

거주자 수가 늘어날수록 그들의 가옥을 짓기 위한 목수와 페인트칠공의 숫자도 함께 증가했다.

 고리대와 전당포의 경우 통계수치보다 많은 수의 일본인이 이를 운영했는데,

이는 식민시기를 통틀어 계속 유지되었다.


공무와 자유업은 모든 시기를 통해 20~40%를 차지했다.

농림과 목축업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일본의 만주 침략 이후는 어업・제염업과 더불어 절대적인 감소 경향을 보였다.


 광공업은 침략전쟁의 확대로 인해 조선의 '대륙병참기지'화를 추진하던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늘어났으며,

 오히려 상업과 교통업이 이상할 정도로 비대한 구조를 나타냈다.

통계 자료를 보면 기타・무직・무신고 등 정체불명의 일본인이 많았다.

이는 조선 내 일본인 사회가 조선총독부를 정점으로 조선인 위에 군림하는 사회구조였음을 잘 말해준다.

책속으로

불이흥업주식회사 사장 후지이 간타로의 딸 이노하라 도시코는 "불이흥업의 뛰어난 업적은

일본의 조선 통치사에서 일개 민간회사가 반도의 국리민복(國利民福)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영원히 그 이름을 남길 것이다"라 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조선 실정에 정통하다고 자부한다.

 그녀는 "조선에서는 잡곡의 주식화가 보통이다.

조선인은 오히려 쌀보다 잡곡을 좋아한다"라고 말한 다음,

 그런데도 "일본이 조선에서 착취 정치를 시행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실정을 조금도 모르는 탁상공론의 무서움"을 개탄했다.(190쪽)

구보타 유타카는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1984년 인터뷰 차 방문한 조갑제에게

"적어도 한국에서는 나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의 유산은 조선에 엄연히 남아 있다.

그 유산은 조선 민족에게 크게 기여할 것이다"라고 자랑했다.(191쪽)

스즈키 다케오는...."비참한 상태에 있던 조선 경제가 병합 이후 불과 30여 년 사이

 오늘과 같은 일대 발전을 이룩한 것은 분명 일본이 지도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한국과 타이완에 대해 "따라서 배상할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