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신년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통일을 준비하는데 있어 중요합니다. 자주시보, 주권연구소 ,nk투데이가 공동으로 신년사 중, 북한 전망과 평가에서 등장한 주요 건설대상과 용어, 개념 등에 대해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2주간 진행될 예정이니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 인민자립경제의 ‘뿌리’ 2.8비날론연합기업소 김정은 위원장이 2019 신년사에서 “2.8비날론련합기업소의 생산을 추켜세우는데 국가적인 힘을 넣어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1960년대 이래 북한에서 2.8비날론연합기업소는 인민자립경제의 ‘뿌리’이자 ‘산 역사’로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인민경제 활성화’와 ‘자립경제’를 눈에 띄게 강조했다 . (본문 등장횟수 인민경제 7번, 자립 9번)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식 사회주의’에 따라 흔들림 없이 사상을 견지하고 경제발전을 이어겠다는 기조를 분명히 제시한 것이다. 비날론이란 나일론에 이은 세계 두 번째 합성섬유로 면의 질감과 가장 가까워 착용감이 좋다. 리승기 박사가 일제강점기 당시인 1939년 유학지인 교토의 한 연구소에서 개발했다. 석탄(무연탄)과 석회석이 비날론의 주된 원료다. 오늘날에는 나일론을 필두로 폴리아미드섬유·폴리에스테르섬유·아크릴섬유와 같은 석유를 바탕으로 한 합성섬유가 세계적으로 널리 생산돼 퍼져있다. 그러나 석유를 바탕으로 각종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대다수 국가들과 달리, 북한은 비날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까지 1961년 5월 함흥에 설립된 2.8비날론연합기업소를 바탕으로 ‘대세’인 석유화학 체계가 아닌 독특한 석탄화학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배경으로는 수입에 의존해야하는 석유를 대체할 자체 동력 확보, 1990년대 사회주의 동구권 국가들의 붕괴-자연재해로 어려워진 경제사정,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제재가 꼽힌다. 북한 화학공업의 중핵인 2.8비날론연합기업소는 ‘인민생활향상’과 직결되어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탄화학공장지대다. 비날론(합성섬유) 제조과정에서는 비료, 농약, 페인트 등의 각종 중간생성물(화학제품)을 얻을 수 있다. 직물 공업, 경공업 분야, 농업 분야, 건설 분야 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 없이 북한의 경제를 논할 수 없다. 지난해 6.12북미정상회담 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등 선제적 조치를 펼친 북한과 달리 미국은 상응조치는커녕 제재의 시위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2.8비날론연합기업소를 언급한 데에는 북한의 ‘초심(자립경제)’을 강조했다는 의의가 있다. 아울러 1950년대부터 1990대까지 이러한 초심을 바탕으로 북한의 화학공업을 이끈 리승기 박사의 삶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본래 리승기 박사는 해방 후 서울과 고향땅인 전라남도 담양을 오가며 조선 민족을 위한 비날론의 공업화를 모색했다. 그러나 미군정이 38선 이남 조선을 지배하면서 각종 연구 설비는 내팽개쳐지고 친일파가 득세했다. 리승기 박사가 소망하던 ‘민족을 위한 연구’를 위한 공간과 조력은 남녘에 없었다. 1950년 7월. 리승기 박사는 제안을 받아들여 온 가족, 제자들과 함께 북녘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일제가 여러 공업설비를 남기고 철수한 북한은 김일성 당시 수상을 중심으로 공업화에 박차를 가했지만 결정적으로 설비 작동을 위한 고급인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해외에서 공업기술을 익힌 지식인·기술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남녘에 인사를 파견해 ‘월북’을 권유했다. 당시 리승기 박사를 비롯한 민족을 위한 공업에 열망을 품고 있던 인사들 상당수가 남녘을 떠난 이유다. 이후 리승기 박사는 비날론의 대량생산, 즉 북한사회에서 비날론의 공업화를 선도한다. 물론 리승기 박사 사후 본격화된 1990년 후반의 고난의 행군으로 기업소의 가동이 중단되는 등 부침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가 점차 안정돼가고 결정적으로 2010년 2월, 비날론의 핵심원료인 카바이드 생산을 정상화하면서 비날론 생산공정은 완전히 복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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