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논점] 2019-05호 _ <문재인 정부의 수소차 육성 정책이 잘못된 이유>
= 2040년 수소차 620만대 =
문재인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는 수소차(수소연료전지차)와 연료전지를 양대 축으로
수소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수소경제의 핵심은 수소차다.
수소차를 올해 2천대에서 2040년 620만대(내수 290만대, 수출 330만대)로 확대하고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한다는 것이 골자다.
과연 발표대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까?
정부의 야심찬 포부와 달리 전망은 밝지 않다.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기 때문이다.
= ‘석유를 태워야 하는 역설’ =
수소차가 과연 친환경적인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석유를 태워야 하는 역설’이란 지적도 나온다.
수소가 대기에 있다고 해서 이를 그대로 연료로 쓸 수는 없다.
물을 분해해 전기를 얻는 ‘수전해'는
환경에 부정적 영향이 없는 ‘그린(Green) 수소’지만 아직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상당 기간 동안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 때 나오는 ‘부생수소'를 이용해야 한다.
정부도 지금은 ‘그레이(Grey)수소’인 부생수소를 ‘초기 수소경제 이행의 핵심 공급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힐 정도다.
부생수소 공급도 충분치 않아 수소경제를 위해서는 더 많은 석유를 사용해야 하는 모순에 부딪힌다.
물론 이와 같은 맹점은 기술 진보로 극복 가능하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기술결정론에 빠지면 안 되겠지만 기술 진보의 역동성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으니 일리 있는 주장이기는 하다.
수전해 기술 개발을 위한 예산도 편성했다.
그럼에도 해당 기술이 개발되기까지의 공백은 여전히 남는다.
의지가 언제나 현실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 산업정책은 필요하지만… =
문제는 수소차 지원이 산업정책으로서 적실성이 있는지 여부다.
정부가 특정 분야에 자원을 집중시켜 육성하는 산업정책은 경제정책의 중요한 분야다.
산업정책을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는 인식이 많지만, 시장주의가 심은 고정관념에 가깝다.
시장근본주의가 지배한다는 미국조차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직접 신기술과 신산업을 개발한다.
아이폰의 터치스크린이나 마이크로칩과 같은 기술은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이 나서 개발했다.
최근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관여가 ‘혁신성장’의 핵심이라는 주장도 확산되고 있다.
수소차 육성에 뛰어 들겠다는 정부 정책도 이런 차원에서 보면 수긍할 대목은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이번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은 문제가 많다.
자동차 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일면적 정책이기 때문이다.
= 패러다임이 바뀌는 자동차 산업 =
정부 정책으로 수소차가 크게 주목받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의 일부일 뿐이다.
자동차 산업이 앞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으리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자동차 공급은 이미 포화상태라 기존 방식으론 안 된다.
아직은 전통적인 내연기관차가 주류지만 앞으로 친환경 자동차, 자율주행 자동차,
차량 공유와 같은 세 가지 영역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될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다.
완성차 중심의 한국 자동차 산업에는 커다란 위협을 뜻하기도 한다.
수소차는 이 중 친환경 자동차를 위한 대안의 하나일 뿐이다.
만일 수소차 육성에 성공한다 해도 헤쳐 나가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 한국은 자동차 산업의 갈라파고스? =
친환경 자동차의 가장 큰 쟁점은 전기차와 수소차 간의 패권 경쟁이다.
둘 간의 경합은 갈수록 치열해지겠지만 현재까지는 전기차의 압승이다.
전기차는 2017년 전 세계에서 130만대가, 수소차는 3,382대가 판매됐다.
정부의 판단과 달리 전기차가 우위를 점하리란 분석이 훨씬 많다.
2030년 세계 자동차 시장 1억2천만대 중 수소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만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충전시간이나 주행거리 등에서는 수소차가 앞선다.
하지만 충전 인프라는 압도적으로 열세다.
전기차는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수준이면 충전소를 만들 수 있지만
수소차는 30억원 가량 된다.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설치와 운영이 불가능하다.
2040년 목표가 충전소 1200개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주유소가 현재 1만개가 조금 넘는다.
목표치를 달성해도 거리에서 충전소 찾기는 여전히 어렵다.
수소차가 시장 진입에 성공해도 승용차 대체는 어렵고
대형운송트럭이나 대중교통 등에 한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전 세계가 전기차 위주로 재편되고 수소차가 그 중 일부만 차지하는 정도로 그친다면
정부의 포부가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수소 생산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해야 하고,
다른 나라도 수소차 수요가 크게 늘어나야 하고 충전 인프라도 대폭 확충돼야 한다.
수소차 620만대는 결코 쉽지 않은 이런 가정이 모두 충족돼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그렇지 않으면 막대한 매몰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자칫하면 자동차 산업의 갈라파고스 섬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소차에 승부를 건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무모하고 불안한 선택이다.
= 자율주행차 시대,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
수소차와 전기차 중 어느 쪽이 시장을 주도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도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이 정보통신 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자율주행차에서 보듯 미래의 자동차 환경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현재의 자율주행차는 자동차가 조향과 속도조절 등의 판단 기능을 갖고 있지만
운전자가 여전히 제어권을 갖고 있는 ‘레벨 2’ 수준이다.
주요 완성차 기업이나 정보통신 기업들은 2020년대 중반에는 운전자 개입 없이
자율주행시스템이 모든 안전 기능을 제어하고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레벨 4’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2020년 경에 출시 가능한 정도의 기술은 축적돼 있지만
사회적 수용성 때문에 본격 대중화는 2030년 경에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면 자동차를 사서 주차장에 방치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자동차를 불러 타게 된다.
이런 단계에 이르면 개인의 자동차 구매 수요는 현저히 줄어든다.
자동차의 최대 구매자는 개인이 아니라 자율주행차 서비스를 하는 우버나 그랩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된다.
자동차 성능도 동력기관이 아니라 자율주행을 위한 ‘두뇌’의 역할에 따라 좌우된다.
완성차 시장이 전면 재편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비하지 못한 완성차 업체는 플랫폼 기업의 납품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
테슬라와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포드, 볼보 등은
그래픽처리장치 1인자인 엔비디아와, BMW와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중앙처리장치를 만드는 인텔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이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할 경우,
여기에 속하지 않는 자동차 업체는 막대한 로열티를 내야 한다.
현대차는 아직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우버나 디디추싱 등 플랫폼 기업의 최대 주주는 소프트뱅크다.
이 회사는 또 도요타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자동차 관련 사업을 위한 합작회사의 지분 과반을 보유했다.
자동차 시장의 ‘큰손’이 될 우버가 앞으로 어느 회사의 차량을 구매하게 될까?
현대차에서 만든 수소차가 선택지에나 들어갈 수 있을까?
정부도,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알려진 게 없다.
자율주행차 시험 운전을 위한 규제가 많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의 밑그림을 다시 그린다는 접근은 찾기 어렵다.
수소차는 어쩌면 이런 그림의 작은 일부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 낡은 방식에 머무르고 만 문재인 정부 =
완성차 시장 포화, 내연기관차 퇴출과 같은 자동차 시장의 변화에
수소차를 앞세워 대응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일 터다.
하지만 예산을 집중 투입하고 규제를 법령 몇 개 바꾸면 된다는 발상으로는
근본적 차원에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현대차에 대한 특혜 논란까지 불사하며 내린 결론이라기엔 지나치게 허술하다.
당장은 현대차가 수소차에서 경쟁우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자동차 시장 환경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재검토해야 한다.
단지 많이 생산해 판매한다는 단선적 모델 대신
개념부터 바뀌는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아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두될 노동 관계나 원하청 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쟁점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정부의 수소경제활성화 로드맵이 산업정책의 외양은 갖췄지만, 이런 문제의식은 엿보이지 않는다.
변화의 폭이 클수록 핵심을 놓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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