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린 북을 몰라도 너무 몰라” 좌충우돌 아줌마의 평양이야기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상임이사 “남북문제는 본질적으로 ‘민족’ 문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9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 배에서 난 형제·자매를 동포(同胞)라 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같은 핏줄, 같은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가진 남북을 부를 때도 이렇게 부른다.
지난해 9월 평양시민들 앞에서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며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제안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외침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 역시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한 민족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그것이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구성원에게도 같은 수준의 공감대를 불러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난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한반도 평화의 분위기가 극적으로 고조되며
다시 한 번 통일의 시대가 열리는 국면에서도,
아마 그들은 분주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각자의 손익계산서를 뽑아보기 바빴을 것이다.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반도 공동체를 구성하는 우리에게는 미완의 해방이라는 분단시대의 역사구조적 조건 하에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다시 한 번 꿈꿔볼 수 있는 전환적 국면으로 다가온다.
이는 어느새 잊고 살았던 '민족'의 실체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남과 북이 스스로 열어젖힌 새 시대의 문이다.
북을 '제집 드나들 듯' 살아온 시간들
"남쪽은 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여기에는 지난 시기 앞장서서 남북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고
평화와 통일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수많은 민간 단체들의 지속된 노력이 바닥에 깔려있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를 창립하고 사무총장을 맡아 10여 년간 북녘 땅을
'제집 드나들 듯' 살아온 사람이 있다.
지금은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에서 또다른 통일운동의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김이경 상임이사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그야말로 정신 없이 남북협력 사업에 매진한 경험이 있다.
한창 때는 평양과 개성, 금강산을 한 달에 서너 번씩 드나들기도 했다.
남북 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민간 차원의 새로운 협력사업을 주선하고,
자체적으로 대북 인도지원 사업을 주도하면서
북을 일상적으로 경험한 김 이사에게 지금의 국면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를 1월 30일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만났다.
"교류협력 초기만 해도 북녘 사람들의 머리에 뿔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북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편이죠.
하지만 남북간 체제의 차이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의 간극은 여전히 큽니다
. 이는 북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러오고,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데 큰 장애요소에요.
결국 단절된 세월에서 기인한 거죠."
"예컨대 '북쪽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 거지?',
'월급과 생활비는 어떻게 다르지?',
'북은 전체주의 사회 아냐?'
'개인의 자주성이 어떻게 구현되는 사회지?' 등
북을 중요하게 이해해야 하는 코드에서 여전히 많은 남쪽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남북 사이에서 오랜 기간 '전령사' 역할을 해오던 김 이사에게
'남쪽 사회가 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은 큰 고민거리였다.
여타 외국과의 교류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들이
유독 북에 대해 느끼는 이질감은 곧잘 비난의 화살로 되돌려준다.
많은 남쪽 사람들에게 북은 그저 '못사는 나라',
'억압적이고 폐쇄된 독재국가'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 것의 연장선이다.
"북을 안다는 건 통일시대를 여는 새로운 방법론을 터득하는 과정"
그래서 김 이사는 최근 '좌충우돌 아줌마의 북맹탈출 평양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북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에서다.
"북녘을 알아가는 것은 우리를 비우고 인간의 존재방식에 대해 새롭게 고찰하는 과정이며,
통일시대를 여는 새로운 방법론을 터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일례로, 탈북 청소년에 대한 한 언론의 접근 태도를 보면 충격적이에요.
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 '너는 인육을 먹어봤니',
'성추행은 당해봤니' 이런 질문을 기자들이 하고 있어요.
교회에서 간증을 시키기도 하고요.
남쪽 사회가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을 반영하는 거죠.
그 아이들은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남쪽 사회에 섞이고 싶어하는 갈망이 강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 사회는 아무 거리낌없이 2차 가해를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북에 대해 왜곡된 시선이 확대재생산되는 거죠."
김 이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차이에서부터
국가발전 경로의 상이성, 이를 통해 규정되는 역사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등의 차이를 알고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북을 보통의 동등한 잣대로 바라본다면 일견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분단체제에 의해 왜곡되고 뒤틀어진 앵글을 통해
북을 들여다보는 것에 익숙해져 '북맹'(북에 대한 무지)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그가 쓴 책의 한 구절을 보자.
북녘 경제가 미국의 최악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을 이해하려면 우리들의 사고 속에 깊숙이 뿌리 박혀있는 '자본의 힘'에 대한 맹신부터 검토해봐야 한다.
경제발전을 이룩하려면 반드시 자본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국내 자본이 부족한 후진국들은 선진국들로부터 자본을 들여와야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북녘이 중국과 베트남처럼 자본의 힘을 인정하고
개혁개방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다.
북녘에서는 자본의 힘에 대한 맹신에 빠지면 자주도 빵도 모두 잃어버리는 머저리가 된다고 본다.
경제발전의 동력은 '자본의 힘'이 아닌 '사람의 힘'에 있다고 본다.
세계 최강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패권질서에 머리를 조아리라고
전 세계가 달려들어 살인적인 대북제재에 매달린다.
그래도 보란 듯이 국가발전을 이루고 동북아 정세변화의 중심에 서게 된 북의 사회적 원동력을
남쪽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어한다고 김 이사는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계량화된 수치로만 평가하고
나아가 정세판단의 기초자료로 삼는 자본주의적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은 결코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지 않아요.
개혁개방은 결국 자본의 문제인데,
부분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외국 자본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우리식 사회주의'를 보완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선에서 고수해나가는 거죠.
그들은 '과학의 힘', '사람의 힘'으로 혁신해서 제재 속에서도 자기들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겁니다.
북에서는 '인민적 소유를 공유해야지,
특정 자본에 맡기는 건 인민의 단결과 창발성을 막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이 시대 우리에게 '민족'이란
김 이사가 북을 실제로 접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데서 기인한다.
하지만 그는 궁극적으로 이념의 경계선이 남북의 본질적 차이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대신 남북간 평화 및 경제협력 의제 못지 않게 남북을 관통하는 '민족'에 대한 정체성과 신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5천년을 함께 산 남북은 공통점이 훨씬 많으며,
체제가 다르다고 해서 불과 70년 만에 한겨레가 아닌 것으로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 정세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간다고 보세요?
남북이 힘을 합치니까 세계 초강대국 미국도 끌려오는 거에요.
6.15 시대가 민간교류협력을 통해 공존공영의 시대를 열어간 것이라면
, 지금은 곧바로 '통일합시다'라고 제기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겁니다.
오히려 더 열린 국면이죠.
그런 점에서 현재 개별적 단위들의 왕래 여부가 급한 문제는 아니에요."
김 이사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별로 공감하지는 않는다.
다만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평화애호 민중세력의 주도적인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는 "분단체제가 이완되는 이 시기,
그동안 위축된 활동을 살려서 대중들과 더 씩씩하게 호흡하기 위한 역량을 시급히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관을 막론하고 전면적인 민족의 대단결을 통해 분단구조의 약화를 지속적으로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오랫동안 짓눌리고 갈라져 고통과 불행을 겪어 온 우리 민족이 어떻게 자기 힘으로
자기 앞날을 당겨오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입니다." - 2018.9.19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김 이사는 "이 부분이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포인트"라고 지목했다.
그는 향후 한반도 정세와 관련, 북미 양자간 비핵화-체제보장의 협상 국면이 빠른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사업은 그와 별개로 전면적으로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이사는 남북의 지속적이고 자주적인 통일국면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민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김 이사는 지난 2014년 겨레하나 활동을 그만두고 지난해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를 꾸렸다.
남북이 한 민족이라는 뿌리를 제공하는 '역사'를 매개로 새로운 통일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다.
그는 "남북의 문제를 너무 평화 또는 경제적인 인식으로만 접근한 나머지
'민족문제'라는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북문제가 근본적으로 민족의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는 고리가 바로 역사입니다.
그러나 남북의 역사인식이 매우 달라요. 일제에 거족적으로 항거한 독립운동사도 다르고요
. 예컨대 북은 민족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등
민족중심적으로 역사를 전개하면서도 과학적 연구성과를 결합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뱃심은 역사에서 나오는 것이죠.
역사라는 것은 그 자체로 통일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통일운동에 항상성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임을 기념해 본격 첫 걸음을 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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