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신문에 연재되는 국선도무예협회 최종 기사입력: 2014/05/31 [10:27] 최종편집: ⓒ 무예신문 | ||||
청산선사가 처음 국선도를 보급할 때는 도법, 선법이라 했다. 수련장을 만들게 되면서 정각도로 부르다가, 지난 1971년 2월 문교부에 정신도법 연구회로 등록했다. 후에 정각도 수련단계를 넘어서는 회원들이 생겨났다. 정각도와 그 다음 수련 단계인 통기법을 아우르는 명칭이 필요해 ‘국선도’라 부르게 되었다. 문화평론가 박정진의 말을 빌리면 국선도는 현재 6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이다. 무현도인 → 무상도인 → 무운도인 박봉암 → 청운도인 이송운 → 청산선사 고한영 → 청원 박진후, 청화 김종무, 청해 김단화 3인까지 6대이다. 청원 박진후가 제자를 기르고 있으니 7대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정통 선맥을 이은 청산선사는 1965년에 청원 박진후를 최초의 산중제자로 받는다. 청원이 청산선사를 만난 것은 65년 말이다. 16살 청원은 어느 날 동두천 근처에 지인을 찾아온 청산선사와 인연이 이어졌다. 한참 도와 무술에 관심이 많던 차에 주위 사람들이 청산선사를 보며 도인 오셨다고 하니 어린 청원은 호기심이 생겼다. 집에 청산선사가 찾아와서 ‘가자’하니 청원은 훌쩍 짐을 싸서 따라 나섰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청원은 아버지의 정이 그리웠던지 아버지처럼 청산선사를 따랐다. 청산선사는 어린 청원을 강원도 깊은 산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암자에서 지내기도 하고 화전민촌에서 지내기도 하였다. 도인의 가르침을 받아 어린 청원의 호기심을 채우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이렇게 해봐’하며 동작을 보여주면 따라해야 했다. 처음에 가르쳐 줄 때 잘 보고 배워야지 다시 보여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청산선사는 청원의 마음과 몸의 상태를 두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하여, 게으름을 피우면 불호령이 떨어졌기에 수련에 있어서는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다. 1967년 충청남도 천안 태학산 해선암에서 1차로 산중에서의 수련을 마무리하고 서울 인왕산 삼왕사로 자리를 옮긴다. 청원과 더불어 하산한 청산선사는 67년에 삼왕사의 주지로 있던 최거사의 도움으로 1967년 문공부 개인등록 3호로 등록하며 국선도 보급을 구상한다. 68년 1월 청원은 태력산으로 알려진 청화 김종무를 만나면서 2차 수련 산중수련 시기를 갖는다. 곧 이어 철선녀로 이름을 떨친 청해 김단화를 데려와서 현대국선도 최초의 산중제자 3인이 다 모이게 되었다. 청원은 삼왕사에서 수련에 매진하고 막내 사제인 청해 김단화를 지도하며 한편으로는 이들과 국선도 대중화를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 3.1운동 33인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이갑성 옹으로부터 3.1절을 기념하여 국선도 시범을 ‘민족정기 선양대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를 제의 받았다. 뜻 깊은 행사라 생각되어 청산선사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본 행사를 앞두고 69년 2월초 광화문사거리 교육회관 6층 대강당에서 무예인 경연대회에 참가하였다. 민족정기 선양대회를 계기로 청산선사, 청원, 청화, 청해는 크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유명세는 탔지만 국선도 보급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국선도는 그 뒤로 일 년 넘어서 70년 4월 20일에야 최초의 수련원을 열게 되었다. 종로 3가 피카디리 극장 옆 팔진옥이 위치해 있는 건물 4층이었다. 3.1운동 50주년 ‘민족정기 선양대회’의 시범이 계기가 되어 일본 후지 TV는 국선도를 일본으로 초청하기 위해 애썼다. 청산선사는 계속 거절을 하다가 최초의 수련원을 열고 난 후에야 초청을 받아들였다. 병역을 마치지 못한 청원은 수련장을 지켜야 했다. 일본 시범에 성공하고 나자 국내TV 및 신문, 주간지, 잡지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었다. 국선도는 각종 언론에 기사화되면서 유명해졌고 수련원에는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수련장에서 숙식을 하던 청원은 새벽에는 수련을 위하여 삼왕사까지 뛰어가고 회원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다시 뛰어오는 고단한 날들이 반복되었다. 또 국선도 시범과 강의를 요청하는 곳이 많아졌고 강의와 시범을 병행 할 때는 청산선사가 강의를 하고 청원을 중심으로 시범이 이루어 졌다. 71년, 최근까지 국선도의 본원으로 사용되었던 종로3가 백궁빌딩에 수련원이 자리잡았다. 병역을 다하지 못해 일본 시범공연을 놓치게 된 청원은 군대를 빨리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해군에 입대한다. 언론에 많이 알려 지기도 했고 또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수련 회원이어서 청원에게 군대에서도 수련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74년 3월 전역한 청원은 바로 백궁빌딩의 국선도 본원에서 수석 법사로 임명되어 회원지도를 총괄하게 된다. 그 후 76년 미국 국선도 시범단에 합류한다. 75년 후버댐 18분 잠수 시범으로 청산선사가 화제를 몰고 다니고 미국에서 국선도 지도자 파견요청이 들어오던 시기였다. 미국 시범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청산선사와 청원은 귀국하고 청화 김종무는 미국에 남아 국선도 보급을 맡았다. 국선도를 대중화 하면서 청산선사는 차츰 국선도에서 무예부분인 외공을 줄이고 호흡을 통한 심신 수련에 중점을 두어 보급했다. 애초에 무예시범을 한 목적이 단전호흡을 통한 심신 수련법의 효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청산선사는 강의에서 국선도는 우리 고유의 선사상과 심신수련법임을 강조하며 단전호흡과 기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다. 청산선사의 강의는 민족주의 지식인들에게 큰 관심을 이끌어냈다. 국선도가 반석위에 앉아가던 1978년 영등포 수련원 지도하던 청원은 국선도를 잠시 떠나게 되었다. 몇 년 후인 1984년 청산선사는 재입산 하게 되고 국선도무예는 대한민국 무예계에 전설처럼 남게 되고 차츰 대중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잊혀져가던 전설인 국선도무예는 2008년 청산선사의 첫 번째 산중제자 청원 박진후가 | ||||
천안 국선도법 연구회 김종숙 원장
천안 시민이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몸과 마음을 닦아 대자연의 생명력을 얻는다. 천안 국선도법 연구회 김종숙 원장
천안 시민이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몸과 마음을 닦아 대자연의 생명력을 얻는다. ![]() 지나친 경쟁과 바쁜 일상으로 지친 현대인들은 심신의 안정을 주고 집중력을 높이며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는 운동이나 심신 수련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체육시설이나 수련원을 찾는다. 많은 수련법 중에서 국선도는 민족 고유의 심신 수련법으로 몸과 마음을 맑고 밝게 닦아 대자연의 생명력을 얻고자 하는 수련법이다. ![]() 이 수련법은 선도,밝도,현묘지도,풍류도, 화랑도 등으로 불리며 고조선, 삼국시대에는 국가적 인재 양성법으로 행해 왔고, 이후 산중에서 비전되다가 1967년 청산선사에 의하여 현대사회에 최초로 공개된 후 전통 수련법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국선도는 한 개인의 체험이나 사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선인들에 의하여 오랜 기간 동안 전해 내려온 체계화된 수련법이다. 현재까지 60여만 명에 이르는 수련인이 체험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선도는 특유의 500여 가지 행공동작을 통하여 몸의 모든 근육과 내장기관을 자극해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력을 활성화시키므로 건강이 증진되어 질병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심신 건강 수련법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자신의, 몸의 조건에 맞춰 단계적으로 수련하면 수련한 만큼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실리적인 수련법이다. ![]() ![]() (여러 대학에서 정신교육 과목으로 개설) 국선도는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독소를 배출해 건강하고 균형잡힌 체형을 갖는데 도움을 준다. 산중에서 청운도인으로부터 수련법을 전수받은 청산선사가 1970년도에 서울에 본원을 개원했고 첫 제자인 청원 박진후로 시작해 청화,청해,도운으로 이어지며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국선도에서는 수련법을 현대인들에게 맞게 고안했으며 국회, 헌법재판소, 대법원, 정부종합청사, 관세청 등의 국가기관에 연수장이 있고 경희대, 동덕여대, 한중대 등 여러 대학에서 정신교육과목으로 개설되어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300여 개의 국내외 수련장과 미국, 캐나다, 스페인,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지도자들이 국선도 보급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국선도를 수련해, 제자를 양성하고 있는 지도자는 현재 3000여 명에 이른다. ![]() ![]() (국가 정신의 뿌리,민족정신의 근원) 우리 민족의 태동과 함께 하늘의 밝음을 공경하는 경천사상 정신으로부터 시작되어 9700여 년 전 백두산에서 천기도인으로부터 발원한 국선도는 환인,환웅, 단군 시대를 거쳐 국가 정신의 뿌리였으며 민족정신의 근원을 이루었다. 천안국선도법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는 김종숙 원장은 "우리는 모두 죽을 때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지만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수련을 하면 죽을 때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 아프지 않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고 국선 도의 장점에 대해 말했다 .현 김종숙 원장은, 21년 전 이곳 천안시에 첫 국선도 수련원의 문을 연 초대 이정은 원장님의 뜻대로 모든 이가 이수련법을 만나, ![]() ![]()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린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현재까지 원장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 ![]() ( 새로운 인생과 운명관이 바뀌기를 바란다.) 그가 국선도와 함께한 세월은 19년이다. 그는 "제 몸이 많이 아팠었다. 온몸이 붓고 힘이 없고 순환이 잘 되지 않았다. 국선도를 알게 된 후로는 몸이 너무 편안했다. 객지에서 고생하며 살다가 고향 집에 돌아가서 엄마 방에 누웠을 때의 그 편안함을 느끼고 눈물이 났다. ![]() ![]() 몸이 너무 굳어 있었고 참고 살다 보니 스트레스로 많이 경직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기혈 순환 유통법, 준비운동 ,스트레칭, 단전호흡을 하면서 굳은 몸이 이완되고 편안해졌다. 머리가 자주 아프고 뒷목과 어깨가 경직되어 손발에 피가 잘 돌지 않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좋아졌다. 온몸이 너무 아프고 늘어지고 힘들어 저녁 밥을 하려면 한숨 자고 나야 밥을 할 수가 있었다. 국선도를 배우기 시작한 후로는 새벽 5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활동 함에도 피곤함이 없고 건강도 좋아졌다. 연구회원장을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게 됐다. 내가 좋아졌으니 다른모든 사람들이 이런 변화된 나를 통해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는 이유가 그렇다. 내 힘 닿는 데까지 나와 인연이 되는 모든 사람들이 수련장을 찾아와 함께 수련을 하며 새로운 인생과, 운명관이 바뀌기를 바란다. 심리 공부도 하고 다른 공부도 여러 가지 했다. 몸과 마음이 같이 가서 일깨워져야 빠르고 쉽게 간다. 행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는 수련 법인 이 국선도를 천안 시민 모두가 접하여 보았으면 한다"는 바램을 전했다. ![]() ![]() (단전호흡은 복식호흡에서 조금 더 발전된 호흡법) 국선도법 연구회는 종교와 전혀 상관이 없이 자연 그대로 심신을 단련하고 몸을 수련하는 곳이다. 우리 고유의 심신 수련 법인 국선도가 청산도인으로부터 체계화되고 보급된 곳과 첫 제자를 키운곳이 ,이 천안시에 위치해있는 태학산이다. 오래전부터 전래되어 오던 수련법을 청산 선사가 태학산에서 수련하고 전수해 현재에 이르렀다. 국선도라는 이름도 이때 붙여졌다. 청산 선사가 수련했던 태학사 뒤편 해선암은 지금 남아있지 않다. ![]() ![]() 이 일대가 자연휴양림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오는 2020년까지 천안시가 치유의 숲을 추가 조성할 계획이다 .국선도 관게자들은 국선도 발원지로 지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편 단전호흡을 바탕으로 하는 국선도는 단순히 단전호흡으로, 기존의 호흡과는 달리 하는 수련법이지만 몸과 마음에는 큰 변화가 온다. 허리도 펴지고 걸음도 똑바로 걷게 되며 자세가 바로 잡아져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뇌기능을 높여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 이때 생성되어지는 아세틸콜린이라는 물질이 치매 예방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의학계에서도 밝혀냈다. 단전호흡은 복식호흡에서 좀 더 깊은 발전된 호흡법이다. 서양은 주로 물질적인 몸, 심폐기능을 중심으로 하여 운동이라 하고 ,동양은 비물질적인 정신 수양을 중심으로 하여 수련이라 하는데 국선도는 이 둘을 다 아우르는 수련법이다. 국선도가 국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몸을 다스림과 동시에 정신세계를 관장할 수 있는 수련법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이은구 기자 hoeunku@hanmail.net 저작권자 © NDN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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