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두환, 북한 핑계 대며 병력 투입…청와대 입성 포석일 뿐”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입력 : 2019.05.17 06:00 수정 : 2019.05.17 06:01
1980년 5월8일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의 한국 정보보고서.
“노태우 수경사령관이 병력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무부 ‘2급 비밀문서’ 보니
신군부의 병력 투입 계획 등
권력 장악 동태 실시간 파악
“전, 자신을 일하는 사람 묘사”
“국내 상황에 대한 전두환의 부정적인 분석과 북한 위협을 강조하는 것은 청와대 입성을 위한 포석일 뿐이다.”
5·18 직전이었던 1980년 5월13일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전두환을 만난 후 미 국무부에 이렇게 보고했다.
그러나 이런 냉소적인 평가는 그해 6월21일 “전두환 장군과 그 동료들이
한국 정부에 대한 군부 통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로 달라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88)이 5·18을 무력으로 진압한 지 채 한 달도 안돼
미국으로부터 ‘한국 최고지도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경향신문이 1980년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비밀문건 수십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미국은 그해 5월 전 전 대통령과 신군부의 권력 장악 움직임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5월8일자 미 국방부 정보보고서에는
“수도경비사령관 노태우 소장에 의하면 정부는 학원성향과 관련하여 병력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며
“그(노태우)는 병력 투입이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 적혀 있다.
또 “미국 정부가 병력 투입이 정치개혁과 자유화를 반대하는 조치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요구했다”고 보고돼 있다.
그러나 신군부는 병력 배치 계획을 미리 세워두고
5월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기 수시간 전 이미 전국 대학에 군대를 보냈다.
미 국무부가 1980년 6월21일 작성한 2급비밀 문건.
“전두환 장군과 그의 동료들이 한국 정부에 대한 군부 통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측은 5·18 직전 2차례 전 전 대통령을 면담하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였던 글라이스틴은 5월9일 면담에 대해
“전두환 장군과의 만남은 상당히 잘 진행되었다”면서
“한국 당국이 학생 문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신중한 접근법을 채택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5·18에 가까워질수록 우려 섞인 시선이 짙어졌다.
5월13일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전두환을 만나 보고한 내용은 달라졌다.
미 문건에는 “전두환이 학생시위의 뒤에 북한이 숨어 있으며
남한 공격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이 곧 올 것이라고 얘기했다.
위컴 장군은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없었다고 했다”고 적혀 있다.
이어 전두환의 속내가 청와대 입성에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더했다.
전두환이 5월 중순부터 이미 ‘학생시위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동원,
정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실제로 신군부는 5월16일 한미연합사 작전 통제하에 있던 20사단을 통제에서 빼내겠다고 통보했다.
20사단은 3개 공수부대에 이어 5월21일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됐다.
계엄령이 확대된 5월18일 한국에서 미 국방정보국에 보고된 문건에는
“계엄령의 전국 확대가 전두환과 그 일당들이
완전한 권력 장악을 위해 한 걸음 다가선 조치라고 결론 내렸다”고 적혀 있다.
5·18이 진압된 5월27일 한국 정부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의결하자
주한 미국대사관은 이날 “우리가 예측한 것보다 더 영리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번 조치는 군부가 실권을 장악했다는 사실에 대한 조악한 위장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
미국은 5·18 종료 1주일 뒤인 6월4일 전 전 대통령을 따로 만나 미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날 밤 전 전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한 미국 상공회의소 대표단과 만찬을 하며 ‘국보위’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 기록에 따르면 당일 참석자들은 “전두환이 광주사태 배후에 김대중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를 아주 가족 중심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묘사했다”고 전했다.
1980년 5월17일 심야 긴급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중앙청. 경향신문 자료사진
급기야 6월21일 미 국무부는 군부 통제의 성공적인 정착이라고 평가하기에 이른다.
이 날짜 ‘한국 지도자들에게 미국의 정책 고려사항 전달 지침’이라는 미 국무부 2급 비밀문서는
“군이 단합하여 현 조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림에 따라
우리는 전두환 세력이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순화시키는 등
영향을 미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 “전두환 장군 면담의 구체 목표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그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의갑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5·18 전후 한국 상황을 보고한 미국 문건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5·18 관련 진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 측에 모든 문건의 공개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170600025&code=940100
5.18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전두환 北위협 강조, 靑 입성 위한 포석에 불과”
국민의당 “5.18 당시 공군 ‘공대지 폭격’ 준비명령, 軍 최고위층 지시 없이 불가능”
2017년 08월 22일 (화) 11:03:02 김미란 기자 balnews21@gmail.com
▲ <사진제공=뉴시스>
전두환 신군부가 5.18 당시 ‘한국이 베트남처럼 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국으로 비상계엄령을 확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CBS<노컷뉴스>는 미 국방정보국(DIA)의 비밀문서를 분석,
“1980년 5월17일 주요 군 지휘관 회의에서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 결정이 내려졌는데,
계엄 확대 결정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가가 베트남과 같은 운명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1989년 6월19일 미국 부시 행정부가 발간한 ‘광주백서’에 따르면, 미국은 전두환 군부와 생각이 달랐다.
1980년 5월13일 계엄령 확대 전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위컴 주한미군 사령관을 만난 자리에서 “학생 시위의 뒤에 북한이 숨어 있으며,
남한 공격을 위한 결정적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위컴 사령관은 ‘미국은 언제든 한국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고,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후 위컴 사령관은 본국에 ‘전두환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것은
청와대 입성을 위한 포석에 불과할 뿐’이라고 보고했다.
<노컷>은 5.18 당시 광주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사격에도 주목했다.
1980년 당시 M60 기관총이 장착 가능한 헬기는 UH-1H 수송 헬리콥터 뿐이었다는
5.18진실규명지원단의 발표를 상기시키며,
“이는 바로 미군이 베트남 전 당시 대거 투입해 사용한,
베트남 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바로 그 기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두환 등 군 수뇌부가 베트남에서 실전경험을 쌓았고,
베트남을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점,
그리고 베트남 전의 상징과도 같은 헬기가
광주에서도 실전 투입돼 사격을 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5.18 직후 공군 비행단 전체에 공대지 폭탄(지상으로 떨어뜨리는 폭탄)을 장착한 채
출격 대기 명령이 내려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5.18 당시 전투 조종사로 복무한 김모씨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10년 넘게 전투 조종사로 근무하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공대지 실무장을 최대한 장착하고 대기했기 때문에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며 이같이 증언했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니까 모든 일반 훈련이 스탠바이 중지가 되고
상부에서 이러이러한 무장을 하고,
조종사들은 심적 각오를 다지고 비상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되짚었다.
그러면서 “저희는 정말로 거기에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공작부대 요원들이 와서
선량한 광주시민을 죽이고 폭동을 일으키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 <이미지출처=JTBC '뉴스룸' 보도 영상 캡처>
공대지 폭탄으로 무장한 전투기의 목적지는 광주로, 출격 시점은 헬기 기총 사격이 목격된 시점과 일치한다.
전남대 5.18 연구소 김희송 교수는 “21~22일 경에 폭격설이 있었다고
(목격자)수기로 남기셨는데 많은 분들이 주목하지 않았다”며
“이번에 조종사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공군 작전에 대한 부분도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필요성이 새롭게 제기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5.18 당시 발포명령자와 관련해 “(군인이)어느 지역에 작전 투입이 되면
투입과 동시에 모든 권한이 현장 지휘관한테 부여된다”며,
공군 조종사들의 경우를 예로 들며 “이미 작전 오더가 떨어져서 출격하면 가서 때리라는 것이다.
그럼 그와 동시에 이미 공격 명령이 주어진 거다.
출동명령 이코르, 이미 공격명령”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같은 증언이 보도되자 국민의당은 논평을 내고
“어떻게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헬기조준 사격, 공대지 폭탄을 장착한 전투기 출격대기 명령을 내릴 수 있느냐”며
5.18 발포명령자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성토했다.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직접 출동해 발포한 육군은 물론 공군에게까지
공대지 폭격 준비명령이 내려진 것은 군 지휘체계상 최고위층의 지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군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던 전두환씨 등이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당시 군 지휘체계에 대한 기록과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포함해 전방위적인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함께 나서줄 것을 촉구하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이번에는 정부와 국회가 국민의 ‘택시운전사’가 되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886
오월 광주여
박금란
기나긴 독재의 얼음땅을
민주화의 열망으로 녹이고
들녁에는 민들레 애기똥풀이
노오란 평화의 바램으로 피어
민중세상의 요구를 담아 물결쳤다
광주는 그렇게 맨 처음
민주화의 봄의 횃불로 타올랐다
미국과 전두환이 속닥속닥
미국의 허락 없이 군용트럭 한 대 옮길 수 없는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전두환을 추켜세워
전방에 있던 공수부대를
받들어총을 한 채로 트럭행렬을 싣고
민중의 길을 짓밟으려
끊임없이 광주로 갔다
광주에 도착해 트럭에서 내린 공수부대원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박카스병에 담긴 흥분제를 강제로 먹이고
팍팍 흥분제 주사를 꽂아놓고
광주 애국시민을 폭도들이라고 세뇌시키며
죽이라고 내몰았다
환각에 빠진 공수부대원들은
폭도들을 죽이라는 전두환의 지시에
인간이길 포기하고
대검과 총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대검으로 찔러 죽이고
총을 갈겨 죽이고
시체는 수천 명이었다
트럭에 싣고 몰래 묻은 시체더미 얼마더냐
붉은 피로 땅 속 깊이 적셔진 광주여
민주의 일념으로 구국의 일념으로
목숨 바쳐 싸운 위대한 광주여
민족의 영웅이여
주먹밥을 바쁘게 손 놀리며 싸준 투쟁의 어머니여
노동자 농민 시민들이 똘똘 뭉친 투쟁은
장막에 가려졌던
미국의 실체를 발가버기였다
전두환을 사주한 건 미국 놈이었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억압을 뚫고
술집에서 공장에서 학교에서 은밀한 장소에서 두런두런
영웅 광주를 애기하며
전두환 원수를 민족의 원수 미국에 분노하며
민주와 민족해방과 통일을 향해
암울한 역사를 헤쳐 나가자고 다짐하며
광주애국시민을 뜨겁게 뜨겁게 흠모했다
살아남은 자 기어이 힘을 길러
광주를 총칼로 짓밟은 원수들을 심판하리라
두 주먹 불끈 쥐고 맹세하며
살아 온 애족의 행렬 이었다
6.10항쟁 그리고 촛불항쟁은
오월 광주로 지펴진 불씨의 타오름이다
광주여 호남이여 민족의 성지여
그대들은 역사로 살아
호남에서 압도적 지지로
정권교체를 이룬 원동력이 되었다
광주만 같아라 호남만 같아라
우리는 오늘도 광주에서 시작하고 배우며
마음을 갈고 갈아
아직도 이 땅의 목을 조르고 있는
미국 놈의 손목을 잘라내어
해방하리라
우리들 마음 속 깊이 뜨거운 사랑으로 품은
민주 자주 통일의 어머니 광주여
오월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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