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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무령왕릉의 의문(엉터리 묘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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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의 의문(엉터리 묘지석)


강유


2002.07.14



무령왕의 지석이란 것을 보면(한문 원문 구하기 어려워서 해석만함)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 사마왕(斯麻王)은

62세로 죽어 (AD 523년 5월 7일),

 3년째 되는 해인 AD 525년 8월12일에 묘를 만들어 시신을 안착했다.]

라고 기록한다.

왕비의 지석 내용은

[병오(丙午:526년)년 11월 백제국의 대비가 죽어

장사지내기를 서쪽에 했으며 기유(己酉:529년)년 2월 12일에 대묘에 이장했다.]

라고 기록한다.

여기에 나오는 연대는 내가 AD로 바꾸어 표기 한것이다
무령왕의 묘지명은 52자, 왕비는 41자로 쓰여져 있다.


이렇게 간단하고 한심하게 쓰여진 것이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릉이라는 곳에서 발굴된 지석의 모습이다.


왕의 무덤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묘지석을 보면 왕의 이름과 죽은 날짜,
장례를 치룬 날짜만 쓰여져 있을 뿐,

공주(公州)라든가 아니면

어느 지방이라는 표시도 없고 ,

왕비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것을 무령왕의 왕비무덤이라고 추측할 뿐,


성왕이 왕 위에 있을 때의 '백제국왕의 왕비'가 죽었다고 할때
성왕의 부인을 말하는 건지, 무령왕의 부인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그저 같이 나왔으니까 무령왕의 부인이다라고 한다.

묘지석에는 무령왕이 살아있을 때 이름이 사마였고

죽고 나서(523년 5월) 정해진 정식시호 왕명이 무령이기 때문에

'영동대장군' 또는 '백제무령왕'이란 왕명표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무령왕은 영동대장군이자 사기의 기록에

백제 사마왕은 '5부,37군,200여성,76만호'의 강역과 백성들의 군주로 나온다.

그러한 군주가 죽어 이런 엉성한 묘지석을 가지고 있는 건 말도 안된다.

이런 묘지석은 동양에서 오직 한반도의 무령왕릉뿐이다.

또다른 문제는 묘지석은 대체로 평면이 고른 석판이나

 질그릇 만드는 도판(陶板)으로 만드는데

왕족의 경우 석판을 쓰는게 현재 발굴결과 정설로 되어있다.


그러나 무령왕릉의 지석은 도판으로 되어 있어 상당히 의문스러운 점이다.


송산리 고분으로 있던 무덤이 어느 날 왕릉이 될 수 있던 일등공신인 묘지석이
묘지석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 묘지석에 들어갈 내용을 보면

1.묘의 주인에 대한 설명인 'xxx묘지명'표시 발문이 있어야하고
2.묘지에 묻힌 사람의 이름,자(字),출생지가 기록되야 하고
3.관직의 명칭과 품위(品位)가 쓰여져야 하며
4.묘지에 묻힌 사람의 선조 이름과 관직명이 있어야 하며
5.일생동안의 행적 및 주요공적이 간단명료하게 적혀야 하며
6.어느 곳에서 무엇 때문에 몇 살에 죽었는지 쓰여져 있어야 하고
7.죽은 후에 받은 추증 된 시호와 벼슬이름이 적혀야 하며
8.어느 곳에다 장사 지내고 이장(移葬)시에 어디로 이장했는지 적혀야 한다.

현재 이러한 내용이 들어가 있지않은 묘지석은 묘의 주인을 밝히는 묘지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근데 우리 학계는 인정........어이가 없어서--;)


특히 무령왕은 백제왕이란 신분 소유자이기에 앞에 열거된 내용과 형식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리고 부인이자 왕비의 묘지석에는

1.왕비의 성(姓)과 이름 및 출생지
2.어느 신분 및 직위의 누구의 딸인지
3.왕비의 성품과 자질은 어떤지
4.몇 살에 왕에게 시집가 자식을 몇 두었는지
5.왕실과 종친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6.몇 살에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7.언제,어디에서 장사 지냈으며 이장시 어디에서 어디로 이장했는지

위와 같은 형식과 내용이 분명히 들어가야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묘지석에 이러한 형식과 내용이 들어가는 것은

현재 발굴,발견된 수많은 묘지석들이 이러한 형식과 내용을 갗추고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태수,군수,자사,현령마저 이러한 형식과 내용의 묘지석이

그들과 그들의 부인들 묘의 묘지석에서 확인되고 있다.

(삼국시대의 삼국이나 중국등)
묘에서 묘지석이 출토되었다고 왕릉으로 변했는데

지석이 엉터리이고 왕과 왕비의 묘지석으로 볼 수 있는 자격도 없고,

묘지석의 구성과 내용이 잘못됐거나 증거로 할 수 있는 핵심이 없다면

이것은 문제가 있는 정도 수준의 왕묘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누군가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형식과 내용은 커녕 적혀 있는 부분마저 틀린 기록이 있는데

그 부분은 사마왕이란 부분인데 죽은 지 3년재 되는 해에 묘를 만들어 장사를 지내는데

시호 왕명인 무령(武寧)을 쓰지 않고 살아있을 때의 이름인 사마(斯麻)를 왕명으로 쓴점이다.

왕들은 죽은 다음 시호를 받고 그것을 왕명으로 쓴다.

그런데 무령왕이 아닌 사마왕이라 표기된 것만 보아도 묘지석이 엉터리란걸 알 수 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이러면 속아넘어 가겠지 하는 애매한 묘지석이
왕의 묘지석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 왕과 왕비의 무덤이란 곳의 묘지석이지 정작 나타내는 건

'사마왕이 죽었고,

사후 4년째 되는 해에 왕비도 죽었고,

사마왕의 무덤을 만들어 매장한지 4년째 되는 해에 합장했다'

이게 뭐냐! 이게 왕과 왕비의 묘지석의 내용의 다인 것이다.


무령왕은 다들 알다시피 22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가림성의 반란 세력을 진압하고

고구려의 수곡성을 공격하며 가뭄이 들자 나라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했다.

외교관계에서 남경의 양(梁)나라와 교류하고,

 영동대장군의 칭호까지 받았고,

게다가 일본 서기에 보면 왜(倭)에 '오경(五經:유학)박사 은양이를 보내주고

한고안무를 보내주었다 '라고 나올 정도로

무령왕은 백제를 문화선진국으로 만든 사람이다.

그런 무령왕의 묘를 그의 아들 성왕이

부왕(父王)묘와 어머니이자 대비의 묘를 만들고 지석을 만드는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잘 적으면 몰라도 단 한 글자도 써넣지 않은 지석을 만들어 묘에 넣을리 없다.

가뜩이나 묘가 작고 초라한 것도 이상한데 묘지석이라고 있는게

급조한 무내용에 무형식,더구나 적혀있는 부분에서도

틀려서는 안되는 부분에서 틀려가며 부친의 묘를 만든다는건 말도 안된다.

게다가 발굴조사당시 보고서에 재밌는게 적혀있는데

송산리 고분은 발굴조사를 떠나기 이전에 백제왕릉이란 결정이 내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무령왕 부부의 합장릉이 아닌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명함을 개입시키면서

무령왕 부부의 합장릉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역사학자,고고학자,한학자들은 묘의 묘지석을 보고 내용을
보고 왕릉의 지석으로 자격미달이란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석을 보는 순간 왕릉이 가짜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발굴조사에 참여한 많은 전문가들은

송산리 고분 발견전에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 융'의 묘지석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석에 들어갈 내용과 형식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두 모르면 전문가나 학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1920년 금석학자 나진옥은 현 중국의 하남성 북쪽 망산지구 청선리에서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 융'의 묘지명을 발견했다.
이 일은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 묘지석의 구성을 보면

1.부여 융의 이름과 자(字)는 '융'이라고 쓰여있고
2.할아버지이자 무왕의 이름과 벼슬품계가 나오고
3.아버지이자 의자왕의 생존시 관직과 추증벼슬
4.부여 융의 웅진도독과 마한도안무대사

(馬韓道安撫大使) 및 대방군왕(帶方郡王)의 임무수행 및 관련된 이력(굉장히 길어 생략)
5.68세에 자기 집에서 죽었고,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이란 사후의 추증벼슬
6.영순(永淳) 원년(682) 12월 24일 낙양의 북쪽 망산 청선리에 장사지냈다고 기록 되어 있다.

이런 형식과 내용을 담은 부여 융의 지석과

무령왕릉에서 나온 지석을 비교해보면 무령왕릉의 지석이 가짜란걸 알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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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의 비밀과 최후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