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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사 대동보는 한반도이주 조선양반 인명록.

조선신사 대동보는 한반도이주 조선양반 인명록.

 

박보생 김천시장 송설역사관에 조선신사대동보 기증

 


3월 1일 삼일절기념식과 자율형사립고 2기 입학식이 있기 전 박보생 김천시장이
송설역사관에 들러 송석환 총동창회장에게 최송설당 여사의 1913년대 사진이 담긴
'조선신사대동보' 원본을 기증했다.


원래 이 원본은 농소에 있는 한 분이 소장하고 계시던 것인데
 박보생 시장이 이 귀중한 책을 김천시에 기증하든지
학교법인송설당교육재단의 송설역사관에 기증을 해야한다고 설득한 결과
송설역사관에 시장님이 직접 가지고 오시어 기증하게 된 것입니다. 
 




 


복사본을 지난 1월 입수하여 홈피에 올렸던 내용을 다시 되내어 봅니다.

 
조선신사대동보(1913년 발행)에 게시된
최송설당 여사의 1913년대 사진입니다.


이 시기는 무교동에 집을 마련하고
집의 이름을 송설당으로 만드신 다음 해입니다.



연세로 보면 60세이실 때인데
사진은 더 젊으실 때의 것으로 추측됩니다.
젊으신 최송설당 여사는
동상이나 후년의 모습보다 더 강직해 보이십니다.


본교 출신이 아닙니다만 지역의 인물로 최송설당 여사와
송설에 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계신 농소에 계신 분이
자료의 원본을 가지고 계십니다.


복사본이나마 자료를 제공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한글화 해 주신 분은
김천고 국어교사이자 시인이신 이병철선생님입니다.


김현철화백님이 사진의 원판이 뒤집혀
인쇄가 되어 옷고름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하여 사진을 좌우 돌렸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조선신사대동보(1913년 발행) - 열녀, 부인부
부인부(夫人部)
최부인 송설당


사는 곳은 경성부 서부 여경방 뒤 국동 45통 2호.
을묘(乙卯 1855년) 8월 29일 생. 본관은 화순



평장사 오산군세기후 지제고
시호는 충절공 영유(永濡)의 이십세손이며,
대사성 사로(士老)의 십육세손이며,
이조참판 한정(漢禎)의 십오세손이며,
이조참판 중홍(重洪)의 십사세손이며,
일지평(벼슬명)으로 대사헌에 추증되었고


號는 수우당인 영경(덕천서원에 배향됨)의 십일세손이며,
부호군 천성(天成)의 현손이며,
부호군 봉관(鳳寬)의 증손이며,
부사과 상문(翔文)의 손으로
號는 지남인 창환(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남)의 따님이시다.



성품과 행실이 현숙(어질고 정숙함)하고 학식을 겸비하여
그 시(詩)는 예스럽고 우아하며
그 사(詞)가 농염(濃豓 : 아름다움)하고
종친에 도타우며 화목하여
궁핍함을 도와 구제(賙恤 주휼 : 도와주고 구휼함)하였으니
엄연히 장부(丈夫)의 국량이 있었다.



찬(賛)하여 이르기를 푸른 소나무의 절개와 흰 눈의 지조로다.
소나무도 때가 있어 시들고 눈도 때가 있어 녹아 없어지나니
오직 이러한 여사의 의범(아름다운 본)은
백세가 지나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주(註)
여경방(餘慶坊) : 오늘날 신문로 일대.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가 태어난 동네.
평장사(平章事) : 고려시대의 정2품 관직.
오산군(烏山君) : 화순 최씨의 시조. 오산(烏山)은 현재의 화순(和順). 묘소는 화순읍 일심리에 있다.
지제고(知制誥) : 고려 시대 예문관(藝文館)에 소속하여 조서 · 교서 등의 글을 지어 올렸던 관직.

뒤에 지제교(知製敎)로 고침.
부사과(副司果) : 조선시대 5위(五衛)에 두었던 종6품 무관직.







  
http://blog.daum.net/borisu_gim/15964142 
 
 
 
조선신사대동보는 한반도이주 조선양반 인명록
 
 


대동신사대동보에 나오는 이주양반들 명단


 
역사에반역, 박인수저, 거근당. 263~267쪽에서 보면,


" 초창기 양반들이 이주를 시작할때 고종황제의 한반도 천도설을 들먹였었다.


고종이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강제퇴위를 당하자,
순종의 한반도 천도설을 유포하여 양반의 이주사업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고종도 순종도 한반도에 머무른 적이 없었으며,
조선 왕조 자체가 한반도와 아무 관련이 없는 대륙에 존재했던 왕조였다. 


그러나 조선왕조를 세우고 이끌어왔던 양반층이
대거 한반도로 밀려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조선신사대동보는 흔히 친일파의 인명록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측면에서 살펴보면
조선사의 비밀을 푸는데 상당히 중요한 자료일 수 있다.


필자는 조선신사대동보를 
초창기 단체 이민의 인명록으로 가정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만일 한반도 성씨족보에 대한 통계와 내력을 철저히 고증을 할 수 있다면
조선말 한반도 이민사를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철종이후부터 한반도에 정식으로
행정상의 한자 지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본은 이미 조선황제를 (제후)왕으로 한단계  낮추고 있다.


주지는 주소를 말하며
관은 본관을 의미하고
생은 생년월일,
한한 또는 유학은 수학을 한 학문의 종류 또는 종교를 의미하고 있다.


약 1만명을 수록하고 있는 인명록을 보면
대부분 유학자이며,
약간의 야소교(기독교)신자
그리고 열녀가 소개되어 있다.


조선시사대동보를 좀 더 검증을 해보면,
 예를 들어 주소만 보더라도
 군이하 면,  리는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 많으며,
 각도별로 지명이 비슷한 곳이 있는 경우에 는
행정상 지명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임의로 지명을 고친 흔적이 여러 곳에 있었다.
(빛고을-광주, 한밭-대전.. 등으로..) 


조선신사대동보와 족보 책 몇 권만 비교해도,
한반도 지명이 모두 대룩에 존재했던 지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신사대동보 인명록에 수록되어있는 양반들은

초창기에 한반도로 이주해 온 단체 이주자들이다.


대부분 대규모 문벌단위로 이주해온 이들은
일제(열강음모 세력)로 부터 상당량의 정착금을 받은 것으로 사료된다.


인명록에 있는 초창기 이주자들은 대부분 유학자 양반들이었다.


인명록에 수록된 사람들이 모두 친일파는 아니었다.
대부분 정착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중 최근 상당수는 한반도에 정착한 후,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이샵 13.11.23. 20:52

전라도 고흥이 고향인데
약 35년전 혹 그훨씬 이전부터 2년간격으로
도시의 골동품 업자?(족보등의 수거자들)이
마을회관에 마을민들을 모아두고
고서, 족보등을 적당가를 지불하고 수거한 사례가 빈번하였고,
당시만 하여도 200호 되는 마을민들중
여자와 소인들을 제외하곤 한문을 아주 익숙하게 다루고 서당이 있었으며,
우리글을 버리면 안된다는(한자)일종의 신념들이 있었던 때였다,
 
즉 당시는 동네 어르신들의
한글과 한문의 문맹율이 거의 동비율에 가까울 정도 였으니
지금와 생각컨데
역사왜곡집단의 나머지 고서 족보 폐기 마무리 단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샵 13.11.23. 21:01         
 
그리고 각 마을마다 집성촌이 존재 했는데
대체적으로 그마을 인접지역의 토지는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차지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이들이 대륙의 양반세력중 일부가 지방토호로 변신하으나,
그곳의 사정에 밝지 않았던 터 토지사기등을 많이 당했다는 애기를 많이 들음,
 
우리 집안도 전주이씨로
약 30가구가 나머지 170여가구 아랫마을에 자리 잡았으며
어르신들 말로는 어디를 가던 내가 서있는 땅이
우리 집안 땅이었다는 애기를 많이 하셧으나!! ㅋㅋ
결국 사기당해 다날려먹고 약 20권에 달하는 집안 족보도 잃어버림
(외지사람의 도둑질로 알고있음)
참고로 우리집안의 성종대왕님의 일곱째 아드님 자손임
 
  러브 선(鮮) 13.11.23. 21:51
 
조선황족이시네요..
조선황조는 틀림없이 중국에 위치해 있을 것이 맞을 것입니다.
 
 위자안지 13.11.24. 08:31
 
본격적( 일제용어)인 일제 조선사 대말살기간인 1920년대 중반
완전히 멸망했다는 고려 개국공신의 후손입니다. 
고려는 대륙이 아닐수 없읍니다.
 
 태양해 14.03.18. 18:52
 
대원군의 큰 아들과 손자가 반도에서 가짜왕 고종과 순종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이 이주 하였으니 다들 따라서 이주하였고 왕이 있으니 반발도 적어겠조 ,,,,,, 
 
 민재 15.07.16. 01:10
 
예전에 현재의 논산(충남) 지명이 '놀뫼'였는데
일제때 한문자로 수정했다고 하더군요.
 
저희 아버지(34년생)말씀으론 어렸을 당시에도
'놀뫼'라는 명칭을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어느순간에 지명이 논산(놀뫼 > 논뫼 > 논산(뫼산자))으로 수정된거죠. 
아직 논산에 가면 놀뫼라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여러 음식점이나 지명등이 남아있습니다.
 
충청도 사투리로 '고개'를 '날맹이' 라고 하는데
'추풍령고개'같은 한자식명칭이 아니라
'똥개말랭이
(실제 있음. 택시기사에게 얘기하면 두말않고 데려다줌-현 광석면 광석중학교 부근)라는
순 우리식 명칭이었어요...

한반도의 명칭이
대도시 위주로 조선 명칭으로 카피될때 군소도시들은
이런식으로 마구잡이(?)식 개명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대한민국이 함락되어 제주도로 정부가 이전되고
제주도 각 지역을
한반도에서 이주한 주민들을 분리해서 행정구역을 다시 만든 꼴이네요...
 
 
서구열강이 대륙조선을 분할했다면
현재의 중공
(조선의 중국과 구별하기위해
현중화인민공화국을 저는 중공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어떻게 대륙을 차지했을까요?
 
장개석이 원래 동이족이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장개석과 미국,영국이 손을잡고 조선을 넘긴듯 합니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이 창설되고
인민을 위한 군대로 인식받게되어 민심을 얻고
그에 힘을 받아 장개석을 패퇴시켰다고 봅니다.
 
그 이후 일이 틀어져서 미,영이 대륙으로 진입을 못한거죠.
(하지만 아무증거가 없으니 제가 바보인듯한 느낌이 드네요...)
도무지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역사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재 15.07.16. 01:29
 
한국전쟁때도 중공이 참전할것을 몰랐을리 없습니다.
진주만 기습을 모의한것도 미국정부인데
중공을 자극해서 만주로 진입을 시도했을겁니다.
 
인천에서 중공 천진으로 상륙해버리면 북경이 코앞인데...
아무래도 미국이 맥아더의 핵공격론을 잠재우고
한반도를 분할하는 정전협정을 맺은것도
조선중국의 한반도 천도를 조작한 사실을 숨기기위해
중공과 빅딜을 시도한것으로 봅니다.
 
중공은 '문화대혁명'으로 남아있던 조선의 사서들을 포함해
숨어있던 지식인들을 모두 도륙해버렸고
현재까지 정권을 유지할수 있도록 미국의 정치적 도움(?)을 받았을겁니다.
 
 민재 15.07.16. 01:35
 
중공은 미국을 대신해서 대륙의 조선역사를 지워버렸고
미국은 군정을 통해서 역사를 뒤틀어버렸고
북한도 김일성 꼭두각시를 내세워 반만년을 바보로 살게 만든거죠.
 
 
 
 


저자 박인수 지음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일본의 역사조작

 

책소개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장소이다.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또한 역사의 본질이란 어떤 역사를 실현한 주체세력이

누구였느냐를 가늠하는 것이다.

조선은 유교이념을 실현하는 철저한 관료제사회였고,

이러한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양반계층이었으며

양반은 조선사회의 특권층이었다.


저자 박인수는 서울교육대학 졸업. 미술교육학석사,

저서는 예수님과 빌라도, 아 탈라스, 가림토,만화로 여는 천재길라잡이,

고인돌의 비밀 외 다수. 현 초등학교 1급 정교사, 현 상고사학회 상임이사.


평생 상고 역사를 공부하다가 최근의 조선사가 서구열강에 의해

조선의 강역과 조선 주체 세력(양반)의 왜곡 및

양반의 한반도 이주라는 엄청난 역사의 음모를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디 독자 여러분께서 저의 책을 잘 숙독하셔서

조선 민족의 바른 역사와

한반도 양반 후예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1장 지도의 비밀


1. 혼일강리역대국도 지도
2. 곤여만국전도
3. 조선의 전기와 후기
4. 18세기 서구열강들이 그린 지도

 

2장 중국의 실체


1. 중국이란 무엇인가?

2. 조선의 신분제도
3. 훈민정음과 동국정운
4. 범어는 고대 천축국의 왕손 전통 언어였다
5. 세계 역사와 언어의 뿌리는 같다 - 유튜브 강상원 박사 검색
6. 임진왜란과 양대 호란을 겪은 조선은 급변하였다
7. 조선 양반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3장 열강의 음모


1. 조선의 황금이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2. 열강의 음모
3. 조선의 금을 노리는 다국적 기업(재벌들)의 음모
4. 갑오전쟁 - 일명: 청일전쟁
5. 조선의 마지막 황후 - 명성황후
6. 대한제국의 태동


4장 아시아 대전


1. 조선의 금광
2. 러일전쟁과 조선의 멸망
3. 러일전쟁의 발발
4.'엠퍼러 쿠르즈 Empero Cruise'(황제유람선)
5. 을사보호조약과 조선(대한제국)의 멸망

 

5장 대륙 대탈출


1. 을사조약 후 한반도로 밀려가는 양반 세력들
2. 국제정세의 변화
3. 을사보호조약과 조선의 멸망
4. 조선 양반계층 중심의 한반도 이주
5. 조선 왕조의 양반
6. 조선사를 버린 중국&조선사를 지닌 한반도 중국인(양반)

 

 

출판사의 평론

 

역사에 반역/歷史於反逆 -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카(1892-1982)에 의하면

역사는 확인된 사실을 모아 놓은 것이며

역사가는 그러한 정보들을

자신의 역사관에 따라 정돈하는 것이라고 피력하였다.


또한 역사적 사실이란 정확성이 매우 중요하여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장소를 분명히 밝히는 것은 역사가의 의무이며,

19세기 이후는 사실들을 숭배한 위대한 시기라고 단언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문명의 우월주의적 산물인

영국의 ‘브래타니카’ 사전의 기록을

전혀 여과 없이 받아들이며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필자가

디지털 시대의 풍부한 역사적 정보를 종합한 결과

아시아에 조선이라는 나라(1392-1910)는

중국대륙에서 500년 이상 존재했던 유라시아의 대제국이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이

중국대륙을 분할하여 지배하였던 19세기 무렵부터

약 100년간의 역사는 조선에 관한한 결코 E. H.카의 말처럼

‘사실을 숭배한’ 진실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 당시 서구열강들은 아프리카, 인도, 인도차이나처럼

중국 대륙을 영구히 지배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위정척사파인 대륙조선의 양반들을 한반도로 축출하고

조선의 역사를 한반도의 역사로 축소, 왜곡하였으며,

이러한 서구 열강의 엄청난 음모는

일본에 의해 실행에 옮겨지게 된 것이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장소이다.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또한 역사의 본질이란

어떤 역사를 실현한 주체세력이 누구였느냐를 가늠하는 것이다

조선은 유교이념을 실현하는 철저한 관료제사회였고,

이러한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양반계층이었으며

양반은 조선사회의 특권층이었다.

 

- 조선 역사를 조작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필연적으로 세계 1,2차 대전을 초래하였으며,

전 세계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대륙에 존재했던 조선의 역사는

열강의 음모대로 대륙에서 사라져버린 채

아직까지 진실을 찾지 못하고 미궁을 헤매고 있는 중이다.


불과 100년 전까지 만해도 대륙에서

대한제국으로 당당하게 존립했던 조선이

하루아침에 한반도에 있었던 조그만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숭배한다는 현대사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왜 지금까지 조선의 진실이 밝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조선의 실체를 아는 무리들은 왜 침묵을 하는 것일까?

 


필자는 본인의 저서를 통해

조선 역사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고,

한반도 조선인의 역사적 정통성을 찾는 모든 가능성을

독자들에게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필자는 아직도 과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조선역사날조세력’을 경계하면서

반드시 위대한 조선사를 되찾을 것을 스스로 다짐하였다.


한편 20세기 세계경제를 지배했던 다국적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독점하여 재벌이 되었으며

이러한 독점 자본주의의 폐해는 칼 막스의 이론처럼

새로운 신분계층의 출현으로 인한 무산자 사회계급혁명을 달성하였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일어난 수차례의 충격적인 사회혁명은

러시아 제국과 조선왕조(대한제국)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였다.

 

특히 러시아에서 일어난 소비에트 공산주의 혁명을 신봉했던 모택동은

1948년 장개석 국민당을 대륙에서 몰아낸 후,

지주계급을 본격적으로 탄압하였고,

1950년 6.25 전쟁 때에는 조선인을 전선으로 보내 그들을 홀대하였다.

 

모택동은 대약진 운동이 실패하자 문화혁명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국민들의 의식구조를 완전히 바꾸려고 광분하였다.

 

즉 어린 홍위병을 앞세워 지식인들을 탄압하였으며,

조선왕조의 흔적을 대륙에서 말끔히 씻어내려고 하였다.

 

홍위병들은 대륙 곳곳에서 왕릉을 파헤치고 비석을 부수었다.

그들은 유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숙청했으며 수많은 사서와 족보를 불태웠다.

대륙에 남은 조선 양반들은 무참히 처형당했으며

지식인들은 돼지농장으로 보내졌다.

 
오늘날 동북공정을 지향하는 중국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조선 왕조의 유물을 사들이고 있지만,

중국 공산당이 조선의 역사를 다시 부활하는 것은

곧 그들의 자멸을 뜻하므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때 다국적 기업의 재벌들은

조선에 세계경제의 기반을 움직일 정도의 막대한 금이

 매장되었다는 것을 알고

대한제국의 이권을 독점했었다.


필자는 대한제국의 등장을

조선의 금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 증거로 1902년 6월 14일자

 뉴욕타임즈 사설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제시하였다.


- 고종황제는 뉴욕 월가의 대주주였으며 큰 손이었다.


필자는 1장 지도의 비밀에서

조선 태종 때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숙종 때 곤여만국전도를 크게 실어

조선의 강역이 유라시아대륙이었음을 소개하였으며,

 

대한제국을 증명하기 위해 서구열강들이 제작한

그 당시 지도들을 분석하여

지도 속에 등장하는 CHINESE EMPIRE(차이니즈 엠파이어)가

대한제국이라는 사실을 찾아내었다.

 

 

2장에서는 독자들에게 중국의 개념

 

즉 중국이 곧 조선임을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

훈민정음 제작의 필요성과 동국정운 편찬의 당위성을 자세히 설명하였고,

싼스크리트어는 범어와 다름이 아니므로

영국인들이 만든 싼스크리트어 사전은 조선말 사전임을 밝혔다.

 

다시 말해 조선말 팔도 사투리가 범어이며,

영국인이 옛 조선의 각 지방 방언을 모아 편찬한

‘싼스크리트어 사전’이 바로 범어 사전임을 언급하였다.- 유튜브 강상원 박사 검색

 

즉 영국인은 조선 정복을 위해 조선말 사전인

 ‘싼스크리트어 영어사전’을 만든 것이고

강희제(숙종)는 북방 유목민을 복속시키기 위해

강희자전(조선말 사전)을 만들었으며

일제는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조선사와 조선말 사전을 만든 것이다.

 

 

3장과 4장에서는

중국과 사이四夷의 역사적 관계를 누차 강조하여,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여

황제국(중국)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 이유를 해부하였고,


갑오전쟁(청일전쟁)은

중국(조선)의 제후국인 북이北夷 청나라가

중국의 제후국인 남만南蠻 일본과 전쟁을 벌인 것으로 해석하였고

명성황후의 죽음을 일본의 독자적인 행위가 아니라

서구 열강의 음모세력이 배후에 존재했음을 암시하였다.

 

또한 러일전쟁도

러시아가 아시아의 유일한 황제국인 대한제국을

대신하여 싸운 것이며

(대의명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조선)의 자원을 노리는 영국과 미국을 대신하여

러시아와 한판 승부를 벌여 서로 대리전쟁을 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일본의 승리로 인해 대한제국은 멸망한 것이며,

곧이어 미국 태프트장관과

상,하원의원 일행 및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대한제국방문을 방문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한 자료를 다양하게 제시하여

그들이 간 곳이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의 한양임을 증명하였다.

 


5장은 조선의 양반들이 한반도로 대탈출하는 장면을 묘사하였으며

동양척식회사에서 발행한

‘조선이주수인초’라는 책자를 증거로 제시하였다.

 

또한 우리가 친일파 인명록으로 알고 있었던

‘조선신사대동보’와 족보 책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여

대륙의 양반들이 한반도로 이주해오는 결정적인 증거자료로 제시하였다.

 

결국 조선사가 밝혀지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서구열강들이 지난 100년간의 과오를 제대로 반성할 수 있는

철학적 사상적 배경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고,

일본의 지식인들은 진정한 조선사와 일본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자신들의 대륙 역사를 감추려는데 급급하고

대륙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양반들이

조선말 일시에 대거 한반도로 이주해온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으므로

대륙의 조선사가 우리의 진정한 역사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일본이 만든 조선사와 조선말 사전을 그대로 배우고 있고,

일제 강점기 때 편찬한 교육과정을 미군정이 그대로 답습하여

지금도 우리에게 가르쳐지고 있으므로 민족의 정기가 날로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교육과정을 과감히 개편하여

진정한 조선사와 조선말을 다시 정립한다면

양반 후예의 민족적 자긍심과 자신감은 쉽게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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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후 한반도 인구는 1500만명이 더 늘어난다.

1800년대만 해도 한반도 인구는 500만명 이내였었다.

 

혈의 누를 쓴 이인직은

일본 도 신문 회사에 근무할 때 한 말이 있다.

 

" 1901.11.26일자 신문에서 ..

2000만 동포로 하여금 앞으로 잠자지 못하게 하겠노라...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발간한 조선이주수인초에 보면,

1910년  한반도 인구통계를 보면,

조선인수는 약 1200만명 정도이다.

 

10년사이에

한반도 인구는 2000만에서 1200만명으로 800만 정도 줄어든다.

 

그러나, 1926년 이후 한반도 인구는 2000만명을 다시 넘는다.

백여년사이 2000만-500만=1500만명이상이 늘어나는 것이다.

 

- 257쪽 역사에 반역(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박인수저,  도서출판 거근당 에서 발췌..

 

 

 

분명 우리와 똑같은 지명의 전주(全州)로

중국의 광서장족자치구 계림시의 동북 지역에 위치한 도시다.

온전할 전(全), 고을 주(州) 지명의 한자까지도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의 이름은 아예 호남(湖南) 전주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우연으로 돌리기엔 뭔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같다.

 

동북부는 호남(湖南)의 경계이고

남부와 동남부는 흥안현(興安縣),

서부는 자원현(資源縣)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은 영남(嶺南)으로 들어가는 요충지로,

역대 전술가들이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끊음없이 다툼을 벌이던 곳이기도 하다.

 

교통이 발달하고 편리하며

총면적이 4021.19평방킬로미터에 인구는 78만이다.

 

기온은 따뜻하고, 토지는 비옥하며

강우량이 풍부해 각종 농작물이 성장하는데 적합한 지형이다.

 

경제작물인 생강, 마늘, 고추는 3대 보물로 손꼽히는데

향기로운 고추는 입맛을 돋구고, 맛있을 뿐만 아니라

병을 치료하는 효험이 있어 수출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논벼는 생산량이 높으며 쌀의 질 또한 깨끗하고 우수해

중국 남방의 '식량창고'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다.

이러한 풍부한 토지와 자원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중국 전주는

강을 끼고 있는 해상교통의 요지다.

 

강을 끼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는데,

이곳이 결코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전주(全州)라는 지명과

 939년부터 시작된 천년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라는 사실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북쪽으로 10여분을 걸어가면 이 곳에도 전주고등학교가 있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028

프라 마우로 지도의 위대한 비밀 ①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121

프라 마우로 지도의 위대한 비밀 ②

<연재> 세계사를 뒤흔든 한 장의 사진 (6)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138

서현우 “천하전여총도는 고려인이 그린 진품”


http://v.media.daum.net/v/20101022211309160?f=o

아프리카 정확히 그린 조선지도, 조선 태종때 어떻게 가능했을까

 


태종 2년(1402년)에 완성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 반도의 모양이 거의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이 지도는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프리카-유라시아 지도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도착한 때(1488년)보다 80년이나 앞서 제작됐다.

유럽의 대항해시대보다 앞선 시기에

조선에서 어떻게 이런 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이성계때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세계를 12개로 나눔.

한단고기에 나오는 12한국과 동일?

 

우리는 천손민족이라 12명이 세계를 다스린것?

 

조선건국후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나눠 세계를 다스림?

 

chosen people = 하느님의 선민= 조선사람.

 

god =갓

우리는 천손민족이라 갓=god를 쓰고 다닌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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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15.000년 이전부터

벼농사를 짓고 살고있었음 - 소로리 볍씨 - 검색

 

물론 그 이전에도 한반도에 살고 있었겠지요.

북한에서 88만년전 구석기 유적 발굴 보도..

 

이후 14.000년경 한반도에서 산동성까지 물에잠기자,

내몽고 화덕현으로 옮겨(마고시대) 살다가,

 

12.000전후 물이 빠지자 한반도로 이주하기도 하고,

일부는 중동.유럽.미국.남미로 아프리카로 진출... 흑피옥 글 참조

이때 처음 미국 도착한 사람이 인디언이됨.

 

이후 8.000년경 2차로 도착

4.000년경 3차로 도착 - 내글 인디언 참조

 

콜롬부스가 1492년 미국발견당시 인디언이 6.000만명 정도 되었는 모양.

 

이후 유럽 백인들 기독교인들을 끌고와서

전도를 해도 기독교를 안믿는다고 학살 시작..

 

1776년 7월 4일 미국이 영국을 물리치며 독립선언.

이후 인디언 95% 정도 학살..

그런데 1776년 5월 1일 일루미나티를 설립?..독립이 아닌 미국 일부 장악??

 

결론은 마고시대 14.000년전까지는 한반도가 주무대,

이후 내몽고,천산,곤륜산 근처에 마고성이 수도였고,

이후 바이칼호 근처.

삼국시대.고려.조선시대까지 낙양.장안이 속한 간도지역에 수도가 위치..

 

고구려.발해인 징기스칸 글 참조.

 

동시대 왕인 고구려인지.신라 후손인지 훈족은

100년간 유럽 역사를 재편시킴..

그중에서 아틸라왕은 로마를 굴복시키고 조공을 받음..

 

이탈리아의 유래가 아틸라라고 추정.

헝가리의 유래도 훈가리라고 추정.

헝가리.루미니아,불가리아는 아틸라 후손이 많다고 함.

프랑스에도 잇고..유럽전역에 퍼져 있겠지요.

 

1905년 을사늑약 체결후

간도(동간도,서간도.북간도.연해주)에 잇던 동포들이

한반도로 강제나 자발적으로 이주해서 인구가 급증했겠지요.

 

1906년도에 570만명 에서

2년후인 1908년 1350만여명 불어난것을 알수있다

 

1.890년경 고종때부터 국력이 약해지자,

미.영,프,네가 합작으로 조선을 멸망시키고,

중국에 있던 대륙의 조선역사를 지우면서 조작..

 

한반도에서는 일본과 이병도가 1920년대 초부터

반도 조선사 연구회와 조선사 편수회를 설립하여

조선의 대룩역사를 없애고 한반도로 축소시켜 집어넣음..

 

중국에서는 모택동이(모친이 유대인)

미국.영국, 유대인 도움으로

장개석과 치열하게 싸워 이겨서,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

 

한족의 역사는 5%밖에 안된다고 중국학자가 양심고백 -

현재 감옥살이중- 이을형 전 교수

 

관동대지진,난징대학살때 조선인을 엄청나게 학살..

모택동이 6.25때는 꽹가리를 치며 조선인을 앞장시킨건 조선인 말살정책..

이것은 대륙의 조선역사를 아는 조선인을 없애기 위해...

 

해방후 북한의 일본인은 압박으로 일본으로 돌아가거나,

남한으로 이주..

 

남한에 살던 일본인은 절반은 돌아가고,

절반은 36년간 쓸어모은 재산이 아까워 가지못하고,

학살 당할까 싶어 산골로 피신..

 

한국 100대기업 창업주 중에 30명이

진주시 지수면 지수초등학교 동문..이게 가능?

이병철 구인회가 여기 동문

 

이후 이승만이 반민특위 해체하고

친일파를 등용해서 (김창용 특무대장) 조선인 학대 학살 시작..

 

도시로 몰려들어 요직을 차지하며 호적세탁을 했다고 봄..

 

대법원장 부터 정부요직은 호적세틱한 일본인 추정...

호적세탁,족보 끼워넣기는 식은 죽먹기?

경감까지 100%가 친일파 (개명한 일본인 다수 추정)

파출소장인 경위는 85%가 친일파.

 

잔존 일본인 -- 검색

당시 한국에 남은 일본인 80~ 130만명 추정..

현재 증손자 까지 하면 800만명 이상..

 

지배층 1%중에 80%는

호적세탁.족보 끼워넣기한 일본인 후손이라고 봅니다.

 

명박의 제적등본을 보면 모친이 일본인 추정..

지금 친일파 후손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해방후 한국인으로 개명한 일본인 후손이라고 짐작합니다.

 

멍박 조부가 오사카 시마다니 농장 주인?

일제시대 전라도에 사마다니 농장이 400만평?

이걸 지키기 위해 1940년대 조부가 부친을 한국으로 보냈는 모양?

 

6.25도 루즈벨트와 스탈린이(둘다 유대인)

한민족을 말살시키기 위해 일으킨 전쟁..

 

1945년 2월 얄타회담때

둘이 비밀리에 남북분단 시키고,

이후 전쟁을 하기로 했다는 미국문서 발견..

 

히틀러도 자살한게 아니고

아르헨티나로 망명하여 80년대까지 살았다는 미국 문서보도..

 

2차대전도 교황청이 히틀러에게 자금을 대주어 일으킨 전쟁..

 

유대인은 양쪽에 무기팔아 챙김..

(오리지날 유대인은 로마시대 마사다 전투에서 전멸)

 

선택받은 민족=선민...영어사전에 chosen people(조선 사람들) 

 

1차대전도 배후는 교황청..

나플레옹 배후도 교황청.

임진왜란도 배후는 교황청.

6.25를 끝으로 조선의 대륙역사는 지우고 없애고 세계역사 조작 완성?

 

18세기 까지인가

미국.영국.프랑스,스페인.일본..

기타 강대국들은 해적질로 먹고 살았다고 함.

 

루이 14세인가 실록이 정조인가 영조인가 실록과 비슷하다고 함.

 

이건 규장각 도서를 훔쳐가서 조선왕의 역사를 복사해서,

프랑스 왕의 역사로 조작해서 편찬한걸로 추정..

 

문재인이 러시아 방문때 푸틴이 조선시대 검을 선물했지요..

이것은 찬란한 조선의 역사를 찾아 바로 세워라...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통일후 간도를(한반도 1.5배) 찾고

단군.삼국시대.고려.조선의 역사를 찾아야겠지요 

 

 

 

https://youtu.be/bMH5N1vfXls

1900년초 이광수의 고향은..
1920년대 삼천리 창간호에 실린
이광수의 시 <새나라로> 중국땅에서 한반도로 이주하는것.
 



https://youtu.be/ypIgaqcfabE

 

1900년초 김동환,김억의 고향은
김억은 김소월 스승.




https://youtu.be/yxtg_V4oKeY

1900년초 문인들의 고향 정주는 영화성




https://youtu.be/4RxVIcFMaR4

이성계의 위화도와 압록강은 대륙 영화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