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골품제
우리사회는 「돈이나 빽 없이 되는 일이 열에 하나」 밖에 안되지만, 정작 청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 고 한다. 누구나 다 그러기 때문에, 안 하면 나만 손해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하기싫은 일」을 「누구나 다 하고 있는」 기묘한 나라에 살고 있다.
조직 하나만 살펴보자. 기업이건 공무원이건 대학이건, 윗사람은 학교 후배와 동향 사람을 챙겨 급할 때 「총대를 메어줄」 친위부대를 양성한다. 이를 소홀히 했다가는 자기 혼자만 직속부하가 없어 마치 필마단기의 장수처럼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무리를 해서 자기사람을 심거나 뽑으려한다.
아랫사람도 마찬가지다. 실력만 믿고 줄서기를 안하거나 자칫 「썩은 동아줄」을 잡았다가는 영락없이「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한다. 「누구를 모실까」 심사숙고한 뒤에 자존심 상하고 피곤하지만 열심히 「대가성 없어 보이는 충성」을 거듭하여 「인간성 좋은 놈」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고픈 말을 꾹꾹 참으며 소신이나 포부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펼치기로 하고 일단은 모두 가슴속에 묻어두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는 겉보기에는 무척 강해 보인다. 상하가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며 사고방식이나 정서도 「단일민족」답게 동질적이다. 그러나 사실은 창조적인 일에 필요한 자유로운 발상과 다양성은 억압되어 있다. 능력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붕어빵」 처럼 서로의 복제품에 불과하기 때문에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줄 수도 없고 또한 남에게 의존할 여지도 없다.
장인정신이나 프로의식에 충실하다가는 「모난 돌」 이 될 터이니 전문가들조차 일은 남만큼만 하면서 「인간성이 좋다」는 평판을 얻으려 한다. 이렇게 동질성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는 정작 사회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문성이나 문화적 다양성이 발전하기 어렵다.
동질적인 집단일수록 구성원들은 오히려 끊임없는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출신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과분한 기회가 주어지거나 소외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 신라시대도 아닌데 아무게는 성골이고 나는 육두품이라는 자조가 자주 들린다. 흔히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계층 엘리트 공무원, 대기업의 사원,심지어 가장 전문적(professional)이어야 할 대학교수(professor)들 마저 그러하니 여성, 장애자, 해외동포, 외국인 노동자들이야 오죽하랴! 이는 개인적 불행일 뿐 아니라 결국 사회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의 이치는 오묘한 것이어서 상당수 하등생물조차 양성생식을 통해 유전정보의 다양성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생물 종은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해야 하지만 과도적응, 즉 특정 환경에서 필요한 능력만 추구하고 그외의 다양한 능력들을 상실했다가는 새로운 환경변화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데 「동질성」을 추구하는 우리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예 링에 올라가 보지도 못한 채 실력발휘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차별과 수모를 받고 있다.
그나마 기회가 주어진 사람들도 실력경쟁보다는 「인간성(?)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니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신종 골품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