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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5.16과 12.12 그리고 5.18

5.16과 12.12 그리고 5.18

(WWW.SURPRISE.OR.KR / 김갑수 / 2017-05-18)

 

-박정희는 5.18의 원격교사범

 

“목에 힘을 주고 패거리의 우두머리 같은 기질을 보이며 행세하는 전두환 소장은

정신 자세부터 정치적이었고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주지하듯이 5·18은 12·12 군사반란에 저항한 항거였다.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은 1979년 10월 26일,

놀랍게도 전두환은 기다렸다는 듯이 군권 장악 공작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가 평소에도 정권 욕망을 가진 정치군인이었음을 알려주는 일이다.

 위에 적은 전두환에 대한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의 평가도 이런 점을 뒷받침한다.

 

10·26 직후 전두환은 보안사령관 자격으로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박정희 피격사망사건의 수사 책임을 맡았다. 그때 나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전두환 소장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전두환은 매우 신념에 찬 어조로 말했고, 발표 도중 단 한 번의 말실수도 내지 않았다.

 

 

 

나는 그가 시종일관 박정희를 ‘각하, 각하께서’라고 호칭하는 것을 보며 왠지 모르게 전율하는

 나를 발견했다. 전두환이 발표문을 넘기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 때는

순간적으로 차가운 광기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바로 저 자에 의해 이 나라가 10·26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하고

 직감할 수 있었던 직관의 정치인은 극소수였다.

 

전두환은 어떤 인간인가?

 

 당시 주한미국 대사 글라이스틴은 처음에는 전두환을

 “지략과 추진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했다가

나중에 가서는 “신뢰할 수 없고 나쁜 짓을 예사롭게 하며

냉혹한 거짓말쟁이의 화신 같은 인물”로 간주하게 된다.

 

글라이스틴의 후임자 리처드 워커 대사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약삭빠르고 타산적이며 정략적인 사람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돈 오버도퍼, 『두 개의 코리아』)

 

또한 강준만은 “전두환의 타고난 유들유들함과 비위는 경이에 가까운 것이며

 특히 사교성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한국현대사산책』)

 

전두환은 경남 합천 출생이지만 대구공고를 졸업하고 육사에 진학했다.

 때문에 그의 기질과 캐릭터는 성장지 대구와 관련시켜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만약 전두환이 다른 지역 출신, 이를테면 좀 극적인 가정으로 그가 만약 광주 출신이었다면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군부파쇼집단의 왕초가 되어 대량 양민 학살을 자행하는 인물로 성장했을까?

 

1968년 이북의 유격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 당시 대대장이었던 전두환은

 베트남전에 연대장으로 참전했다.

 

얼마 후 그는 대통령경호실 차장보로 발탁되면서

 박정희와 자주 접촉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박정희는 자기가 죽기 8개월 전인 1979년 2월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에 임명하고

당시 국내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던 청와대 경호실, 중앙정보부 등을 견제하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박정희와 전두환의 인연은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전두환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에서 1년 간

민원비서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박정희는 위관장교에 불과한 전두환에게 정치 입문을 권했지만

 그는 사양하고 군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전두환의 군 생활은 시종일관 정치적이었다.

 1964년 전두환은 노태우를 비롯한 소수의 육사 출신 장교들을 규합하여

 사교 모임을 표방한 하나회를 결성했다.

 

하나회의 결성 명분은 단결과 애국심 고양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자신들의 출세에 있었다.

 

박정희는 하나회 멤버들을 총애하면서 고속 진급과 금일봉 하달 등 각종 특전을 베풀어 주었다.

 

물론 박정희가 피격 사망 후 반란으로 국권을 찬탈한 무리의 핵심세력은

 바로 이 하나회 멤버들이었다.

 

‘정권 투쟁은 시체를 보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이 말대로 전두환은 박정희의 죽음을 알자마자 정권 투쟁을 시작했다.

끝내 그는 권력 찬탈에 성공하고 박정희가 남긴 유신의 쓰레기를 연장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내심 전두환은, ‘박정희의 후계자는 바로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만약 박정희가 전두환에게 정치바람을 불어 넣지 않았더라면

5·18 같은 불행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