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행복한 진로학교 ①강도현-화려한 스펙을 버리고
골목을 누비다 ②고원형-스카우트 거절 후 찾아온
‘아름다운 배움’ ③윤태호-가지 않은 길에서 만난
만화 ‘미생’ ④권장희-교사를 그만두고
게임중독 치유 전문가로! ⑤최혁진-그때부터 내 꿈은
협동조합이었다 ⑥하종강-내게 ‘노동’은 노래였다
⑦김현수-정신과 의사에서,
대안학교 교장되다 ⑧송인수-강은 곡선으로 흘러
아름답다 |
바야흐로 ‘진로 교육’ 열풍이다.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진로 컨설팅을 하는 업체가 성업 중인가 하면 공교육 현장도 진로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1 아들을 둔 김 아무개씨(46· 서울 양천구)는 학교에서 주기적으로 보내오는 진로 교육 안내서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지난주는 화학 관련 직업·학과를 소개하더니, 이번 주에는 식품 관련 직업·학과를 소개하는 식이어서다. 과연 ‘진로=직업’일까? 직업 세계를 열심히 탐구하다 보면 진로도 보이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은 이들을 위한 강좌가 시작됐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진행하는 ‘2013 행복한 진로학교’가 그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최고의 일자리 말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 행복한 삶의 기준이 궁금한 이들을 위해 4월18일~6월4일 8회에 걸쳐 진행되는 강좌를 <시사IN>이 지상 중계한다. 강좌 전문(全文)이 궁금하다면 이 단체 홈페이지(www.noworry.kr)에서 수강 신청을 하면 된다. 실시간 또는 녹화방송으로 동영상 강좌도 수강할 수 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섰을까? 어쩌면 지금이 평범함을 찾는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평범한 내가 어떻게 남들이 말하는 특별한 삶을 살아가게 됐는지를 말씀드리려 한다.
내가 고등학생들을 자주 만나는 편인데, 이 아이들이 재미있는 노래를 부른다. 서울을 포함해 지방대까지 30위권에 드는 대학 순위를 죽 외우는 노래다. 나도 10위권까지는 외운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왜 순서가 그 모양이냐고 따지지는 말아달라(웃음). 이런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마음을 장악한 메커니즘은 뭘까. 어쩌면 예측 아닐까. 이 대학, 이 전공을 선택하면 몇 년 뒤에는 이렇게 살 거라는 예측. 이런 예측에 기반해 뭔가를 선택하는 게 아닐까.
| | | ⓒ시사IN 조남진 강도현(36):미국 리버티 대학 졸업. 삼일회계법인 경영 컨설턴트, 외국계 헤지펀드 회사 파생상품 트레이더를 거쳐 사회적 기업 ‘카페바인’의 운영자로 변신. <골목사장 분투기> <착해도 망하지 않아> 저자. |
문제는 이런 예측이 들어맞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거다.
학부모들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예측한다. ‘우리 애가 SKY 가면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에 오르고 직장 생활도 어려움 없이 잘할 거야.’ 과연 그럴까?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예측을 통해 제거될 수 있는 걸까? 이제 30대 중반밖에 안 됐지만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예측은 단지 위로를 줄 뿐, 예측을 기반으로 미래를 선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선택의 기준이 예측이어서는 계속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겠다. 어릴 적 우리 집이 많이 가난했다.
아버지가 교회 전도사셨는데 우리 형제를 키우기 어려우셨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외가가 있던 전남 보성으로 나를 내려보내셨다. 설상가상 행정 처리가 잘못돼 시골에서 1학년을 한 해 더 다녀야 했다. 어떻게 보면 비참한 얘기다.
그런데 시골에서 보낸 그 2년이 내 삶에는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
내 나이에 쥐불놀이 하고 냇가에서 놀던 추억을 가진 친구는 많지 않다. 덕분에 밤하늘에 얼마나 많은 별이 있는지도 알게 됐다. 초등 1학년을 다시 다녔으니 공부는 또 얼마나 쉬웠겠나. 천재 소리 들으며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얻은 자신감이 평생을 간 듯하다. 다시 서울에 올라와 이른바 8학군 한복판이라는 강남구 반포의 11평짜리 주공아파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를 잘 못하면서도 마음속엔 항상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난 본래 잘하는 사람이야’ 뭐 그런.
헤지펀드 회사 첫 업무는 생수 채우기
중3 되던 해, 아버지가 교회 도움으로 미국 유학 기회를 얻으셨다.
덕분에 그곳에서 대학까지 갔다. 장학금 때문에 이름 없는 대학(리버티 대학)을 선택했다. 전공은 수학이었다. 미국에 가보니 수학이 너무 쉽게 느껴졌다. 그래서 수학과를 간 건데, 실수였다. 미적분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3학년 들어 해석학과 대수학을 하면서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나는 교수님이 가르쳐준 방법 외에 다른 증명법을 찾을 수가 없는데, 미국 애들은 새로운 증명법을 척척 찾아내더라. 한국 학생들이 보통 그렇듯 창의적인 요소가 필요해지면서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던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막막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뿌렸지만 연락 오는 데가 없었다.
아스팔트 깔고 우편물 분류하는 막노동을 하던 어느 날,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전화가 왔다. 면접을 한번 보러 오겠느냐고. 무식해서 GE가 어떤 회사인지도 잘 모른 채 가봤다. 알고 보니 그때 GE는 한창 식스시그마(경영혁신 기법의 일종)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식스시그마 총괄 책임자가 아프리카 출신이어서 소수인종에 관심을 가진 데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운 좋게 GE에 뽑혀 3개월간 인턴을 할 수 있었다.
흥미롭지 않나.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시골에 보내진 것도,
이름 없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것도 어찌 보면 삶에서 맞닥뜨린 우연이었다. 때로 그 우연은 내가 저지르지 않은 외생적 변수로 인해 생겨난다. 그것이 때로는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 우연이 미래에 어떻게 해석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우연은 한국에 돌어와서도 이어졌다. 진해에서 해군 복무를 마치고 삼일회계법인에 이력서를 냈는데, 인터뷰를 진행한 회사 중역 두 분 중 한 분이 유독 내게 호의를 보였다. 알고 보니 그분이 그 무렵 식스시그마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듣보잡 대학’을 나온 내가 국내 굴지의 컨설팅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 | | ⓒ카페바인 블로그 카페바인은 시민사회나 젊은 예술가를 후원하는 이벤트에 자리를 제공한다. |
거기서 2년6개월쯤 근무하다 이직을 생각하게 됐다.
일반 회사들이 컨설팅을 받는 이유가 뭘까.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다. 대부분은 사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 문제 때문에 외부에 컨설팅을 맡기는 것이다. 그런 만큼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컨설팅으로는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때 마침 헤지펀드 회사에서 주니어 트레이더를 뽑는다는 공고를 접했다 이거다 싶었다. 트레이더라면 금융의 꽃 아닌가. 그런데 주니어 트레이더는 3개월짜리 계약직이었다. 해보고 아니면 나가라는 식이었다. 업무도 처음에는 냉장고에 생수 채우는 일이 맡겨졌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나는 뭐든 태도로 승부하는 경향이 있다(웃음).
그러던 어느 날 엑셀로 단순 작업을 하는데, 데이터 처리 방식에서 개선할 점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건 발견했다기보다 발견되었다는 표현이 맞다). 이걸 보고해 업무를 개선한 공로로 계약이 연장됐다. 덕분에 정식 트레이더가 되면서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우연의 연속인가.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내가 얻게 된 교훈은 이것이다. 어떤 사건이 내게 발생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라는 것 . 곧 우연으로 발생한 사건에 좌지우지될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삶에서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사건을 해석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 때문에 회계법인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도 냉장고에 물 채워넣는 일을 즐길 수 있었다. 금융의 본질로 직행하는 길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3년여 만에 트레이더 일을 그만두었다. 일하는 동안 돈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풀타임 학생이다.
대학원에서 재무학을 공부한다. 어떻게 보면 점점 더 별 볼일이 없어진 셈이다. 그러면서 투자자로 참여했던 카페(카페바인)까지 망하기 직전에 떠맡게 됐다. 덕분에 <골목사장 분투기>라는 책을 내고 난데없는 베스트셀러 작가 대접을 받게 되기는 했지만(웃음).
내가 회사를 그만둔 뒤 돈 없이 수도사처럼 산다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묻는다.
정말 행복하냐고. 나는 돈이 행복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트레이더 하는 동안 아우디, BMW 타는 동료들을 숱하게 봤지만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아본 일이 별로 없다. 행복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요즘 인문학 열풍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삼성전자가 인문학 인재를 채용해 키우겠다는 발표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식의 인문학 열풍은 곧 죽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헉, 내가 왜 이런 엄청난 얘기를 하고 있지?(웃음) 삼성의 시도 또한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인문학 인재가 뭘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인문학 전공자를 채용해 소프트웨어를 교육시킨다? 그런 발상 자체가 난센스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생산하면서 살 것인가
왜냐. 인문학은 절대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인문학 열기는 책 읽기 리스트를 늘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내가 읽은 책의 리스트가 내 스펙인 양 여겨진다. 내 인생에도 영향을 준 책이 많다. 파스칼, 데카르트에서 마틴 루서 킹, 슈바이처, 존 그리셤, 김구, 함석헌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의 책을 읽는 그 자체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는 인간에 대한 저자의 이해가 담겨 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 같은 관점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내 삶에도 적용해보려 노력하는 것, 이것이 훨씬 중요하고 값진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선택하기 위해서는 내가 역사적 인간이라는 명제를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는 당대에는 정말 마이너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100년 뒤 사람인 내가 그의 사상을 침 튀겨 예찬하고 있지 않나. 마찬가지로 나의 보잘것없는 생각이 100년 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내가 금융의 본질을 파고들려는 궁극적 이유는 금융이 야기한 오늘날의 불공정·불합리한 체제를 바꿔보고 싶어서다. 지금 체제로는 변두리 뒷골목의 가난한 쌀집 아저씨가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 자녀에게 빈곤이 대물림될 것 또한 자명하다. 내 당대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지언정 그 단초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나처럼 공부라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공무원이 되거나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은 진로를 모색하는 지금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진로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직업은 진로가 될 수 없다. 대학을 고민하는 것도 시간 낭비다. 대학 가면 진로가 열릴 거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 졸업 후에도 방황한다.
오히려 진로를 정하는 핵심적인 질문은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역사는 어디로 흐르고 나는 어디에 있는가’여야 한다. 돈보다, 직업보다,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생산하면 후대에 더 나은 걸 물려주어 역사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를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정리·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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