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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좋은글

■ 구밀복검 口蜜腹劍 [입 구/ 꿀 밀/배 복/칼 검]

 

 

■ 구밀복검 口蜜腹劍 [입 구/ 꿀 밀/배 복/칼 검]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배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 속은 음흉한 것.

 

[유] 笑中有劍(소중유검)/ 笑裏藏刀(소리장도)/ 笑面虎(소면호)

/面從腹背(면종복배)/ 敬而遠之(경이원지) /羊頭狗肉(양두구육) /表裏不同(표리부동)

 

[속담] 등치고 간 내먹는다. /웃음 속에 칼이 있다.(웃고 사람 친다.)

 

 

[내용]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이임보(李林甫)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후궁(後宮)에게 환심을 사 재상에 올랐다.

 

그 후「권세와 지위가 장차 자기를 압박할 만한 사람은 반드시 여러 계책으로 제거하고 문학하는 선비들은 더욱 꺼려 혹은 함께 선한 체하다가 달콤한 말로 속이고

 몰래 그를 함정에 빠뜨리니

세상 사람들이 '이임보는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라고 하였다.

 

 

[원문]勢位가 將逼己者를 必百計去之하고 尤忌文學之士하여 或陽與之善이라가 ?

以甘言하고 而陰陷之하니 世謂 林甫는 口有蜜이요 腹有劍이라.

 

 ▷ 勢(세력 세) 逼(다그칠 핍) 忌(꺼릴 기) ?(먹일 담) 陷(빠질, 함정 함)

 

 

[참고]歷史(역사)를 龜鑑(귀감)으로 삼는 까닭은

治亂(치란)과 興亡(흥망)의 자취를 통해 그 속에서 敎訓(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明君賢相(명군현상)이 있었던 때는 治世가,

 昏主奸臣(혼주간신)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亂世가 따랐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唐 玄宗(당 현종·712∼755 在位)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사실 中國의 歷代(역대) 帝王(제왕) 중

그 만큼 人口에 많이 膾炙(회자)되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의 일생은 온통 劇的(극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할머니였던 則天武后(측천무후)가 망쳐놓은 大唐帝國(대당제국)을

英明(영명)한 통치로 다시 일으켜 장장 30년에 이르는 유명한 ‘開元之治’(개원지치)를

이루었다. 당나라 최대의 太平聖代(태평성대)였다.

 

 

여기에는 물론 玄宗 자신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탁월한 정치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賢相의 登用 또한 빠뜨릴 수가 없다.

 

즉 그는 즉위 초부터 강력한 개혁정책을 밀고 나갔는데

이 때 그를 도왔던 이로 名宰相 姚崇(요숭)과 宋璟(송경)이 있다.

 

 결국 천하는 未曾有(미증유)의 太平을 맞게 되어

기록에 의하면 도둑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위 후반기의 天寶(천보·742∼755)시대는 판이했다.

 

玄宗의 聰明(총명)도 날로 흐려져 갔으며

忠臣(충신)은 사라지고 주위가 온통 奸臣(간신)으로 채워지면서

급기야 대당제국은 亡國(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대표적 奸臣에 宰相 李林甫(이림보)가 있었다.

 

宦官(환관) 高力士(고력사)의 추천으로 宰相이 된 그는

간사하고 陰險(음험)했으며 猜忌心(시기심)이 많아

자신보다 훌륭한 자는 눈뜨고 보지를 못했다.

 

결국 그에 의해 제거된 충신만도 張九齡(장구령), 嚴挺之(엄정지), 李適之(이적지),

 李邕(이옹) 등 수십 명에 달했다.

 

 

그가 政敵(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절대로 나서지 않고 남을 시켜 처리했으며 자신은 도리어 칭찬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은밀히 온갖 죄상을 날조하고 뒤집어씌워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 제거했다.

그래서 史家(사가)들은 그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口有蜜, 腹有劍”(구유밀, 복유검)-

입술에는 달콤한 꿀을 발랐지만 뱃속에는 무서운 칼을 품고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口蜜腹劍’으로 겉은 웃는 낯이지만

속으로는 사람을 해칠 무서운 생각을 품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문화가 흐르는 한자]

 

 

[예문]

동업하자는 사람의 말이 너무 번드르르해 미덥지가 못한데,

혹시 구밀복검일지도 모르니 한 번 더 재고해 보시지요.

모든 정치인은 먼저 국리 민리를 걱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당리를 궁리하며,

당리를 도모한 연후에 개인의 영달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 정치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해방 이후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그 연륜에 맞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한

큰 원인의 하나는 정치인이 입으로는 염불처럼 외고 다니면서

실지로는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분방한 데 있다.

더 이상 호남 민심을 운운하며 호남인을 욕보이지 말 기를 엄숙히 호소한다"며

 "자신들의 정치 연명을 위해 평생의 소 임을 다한 DJ를 생각하는 척하면서

실제로 (DJ를) 파는 듯한 모습 은 볼썽사납다<2005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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