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admin.antichrist.or.kr/bbs/board.php?bo_table=free_board4&wr_id=3032 예수는 젊은 시절 인도에서 승려 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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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늑대 (61.♡.196.187) 날짜 : 2013-09-22 (일) |
예수는 젊은 시절 인도에서 승려 생활을 하였다. 17년 간 인도, 네팔, 티벳 등지에서 승려로서 생활을 하고 29세 때 이스라엘로 돌아와 인도에서 배운 불교의 교리와 석가모니의 행적을 자신의 사상과 행적으로 꾸며서 설교에 이용하였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예수의 행적과 설교는 불경상의 석가모니의 행적, 설법과 너무나 똑같이 모방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의 12세 이후의 청년기의 밝혀지지 않은 행적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많은 학자와 탐험가들이 연구와 탐사를 거듭해 왔었다. 그러던 중 1887년 러시아의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니콜라스 노토비치는 인도와 티벳지방을 여행하면서 인도불교의 한 종파인 라마교 스님으로부터 인도 라닥크 주의 수도인 레(Leh)시의 하이미츠(Himis) 7대 사원에 흩어져 있던 예수의 생애에 관한 티벳어로 기록해 놓은 수천장의 고대 양피지 두루말이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놀랍게도 13세 때 상인을 따라 인도로 건너간 예수가 29세 때까지 인도, 네팔, 티벳 등지에서 불교승려로서 수행한 행적과 예수의 생애를 기록해 놓은 고문서들이었다. 예수의 인도에서의 승려로서의 이름은 이사(Issa)이며 예수의 생애를 기록해 놓은 고문서들은 <이사전(傳)>이었다. 노토비치는 고문서의 고사본(古寫本)들을 입수하여 불어판으로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생애-성(聖)이사의 일대기>를 출판함으로써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노토비치의 <이사전(傳)>이 발간된 이후 철학자 스와미 아베다 난다, 러시아의 과학자 니콜라스 로에리치 교수, 스위스 음대의 카스파리 교수등 수십명의 사람들이 인도와 티베트를방문하고 확인하여 노토비치의 주장을 뒤받침해 주었다 . (사진4:불교신문, 사진5 주간중앙 참조) 이러한 목격자들의 보고서를 묶어 미국의 엘리자베스. C. 프로펠 교수가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The Lost Years Of Jesus)>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여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국내에서도 1987년 동국출판사에서 번역, 동명으로 발간한 바 있다.
러시아의 니콜라스 노토비치의 불어판 <이사전>은 14장 244절에 걸쳐 번역되어 있는데 4장 10절부터 8장에 이르기까지 예수가 동방에 와서 불교를 공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4장 10절) 이사(예수)가 열세살이 되어 이스라엘 관습에 따라 아내를 맞이해야 될 즈음…(4장 11절) 단순한 손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던 부모의 집에 부자와 귀족들이 드나들어 이사를 사위로 맞고자 하였으니… 그의 교훈적인 설교가 유명해졌기 때문이다(4장 12절) 이사가 아버지의 집을 은밀히 빠져 나와 예루살렘을 떠나 상인들과 함께 신드 (Sind)로 향했던 것이 바로 그 때였으니…(4장 13절) 이는 대 붓다의 법을 연구하기 위함이라(5장 3절) … 이사께서 오릿사 나라에 있는 주거나우에 가시니 그곳은 비앗사크리슈나의 시 신이 안치된 곳이다. 이사께서 그곳 백인 브라만 사제들에게 극진한 환대를 받으셨더라(5장 4절) 그들이 이사께 베다를 읽고 이해하는 방법과 기도의 힘으로 병을 치유하는 방법, 경전을 사람에게 가르치고 설교하는 방법을 가르치니라(5장 5절) 이사께서 주거나우, 라자그리하, 베나레스 그리고 다른 성지에서 6년간 지내셨더라. 그가 바이샤와 수드라에게 경전을 가르치고… 13세 때 인도로 건너온 예수는 14세 때 인도 아리아인들 속에 정착, 힌두 거장들에게 베다, 우파니사드 등을 공부하다 브라만교를 떠나 불교도들 틈에 들어가 부다가야, 녹야원, 베나레스 등지에서 6년 간 불교의 교리를 배우며 승려생활을 한다.
팔리어(語),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며 계속되며 이어서 티벳에서는 그곳 밀교계 고승 멩그스테에게서 심령치료와 초능력 비방 등을 집중적으로 익혔다. 그렇게 하여 불교의 고승이 된 이사대사(大師) 즉 예수는 29세 되는 해에 페르시아를 거쳐 이스라엘로 귀국하여 불경과 석가모니의 행적을 모방한 교리를 펴나가며 자신을 구약성경 이사야서에 예언된 구세주로 미화해 나갔다. 노토비치의 <이사전(傳)>에서 주목이 되는 것은 노토비치가 책을 발행하기 전에 키에프市의 유명한 대주교 플라톤 신부에게 원고를 보였고 파리의 로텔리 주교에게도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그중 한 신부는 예수의 잃어버린 생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고 인정하고 출판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충고까지 하였다고 한다. 1328년 경에 포르데논의 오도릭 신부가 최초로 티벳을 다녀왔고 3세기 후에는 예수회 앙토니오 안드라다가, 1661년에는 그루에베와 도르빌의 신부들이 다녀왔다. 그리고 그들이 복사해 왔는지는 모르나 바티칸 도서관 내에 이런 사실과 관련하여 여러 동양언어로 기록된 <이사전>의 63개의 사본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예수의 잃어버린 생애를 처음 밝힌 노토비치는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로부터 항의와 박해을 받았다. <뉴욕타임지>를 비롯한 <19세기저널>지는 옥스퍼드 대학의 막스뮬러 교수와 아치발트 더글러스 교수가 노토비치의 <이사전> 발견에 대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몰아 부치는 글을 게재 하였다. 기독교 단체 측의 박해가 잇따르자 노토비치는 고사본 자료들을 프랑스 정부에 넘기고 숨어버렸다.
인도 여러 곳을 답사하고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비장된 채 공개되지 않고 있던 노토비치의 자료들을 1986년 프랑스에서 발굴 입수하여 그 자료와 연구결과를 토대로 예수는 불교승려였다고 공식 발표하고 특별강의를 계속함으로써 이 충격적 사실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신학 대학에까지 초청되어 강의를 하였다. 민교수는 그의 저서 <법화경과 신약성서>를 통해 기독교의 신약성서 중 많은 부분이 법화경 등 불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진 5: 1986.10.26 주간 중앙 보도) 민희식교수는 예수의 일대기에 관해 성경보다 인도의 불교 문헌이 더 정확한 이유는 예수에 대한 기독교 측 문헌은 오랜 세월이 경과된 뒤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씌어졌으나 불교 측 문헌은 그 당시의 견문 기록이기 때문 이라고 밝혔다. 가. 신약성경은 대부분 불경을 모방한 것이다 러시아의 언론인 니콜라스 노토비치가 예수는 13세 때 인도로 건너가 17년 간 인도, 네팔, 티벳 등지에서 승려로서 생활을 하고 29세 때 이스라엘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 수십명의 사람들이 인도와 티베트를 방문하여 이를 확인하여 왔던 바 이를 종합하여 1984년 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가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을 발간하여 다시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이후 국내외의 많은 학자와 저술가들이 예수의 인도에서의 승려생활과 더불어 불경과 신약성경의 내용이 대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함께 밝히는 저술을 활발하게 발간하였다. 이는 예수가 인도에서 배운 불교의 교리와 석가모니의 행적을 자신의 사상과 행적으로 꾸며서 설교하는데 이용하였던 것이며 그래서 신약성경의 예수의 행적과 설교는 불경상의 석가모니의 행적, 설법과 너무나 똑같이 모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가 불경을 도용하여 자신의 설교로 사용하고 석가모니의 행적을 자신의 행적으로 꾸며서 포교를 한 근본 이유가 가짜 구세주 행세를 행하여 하나님의 진짜 구세주의 역사를 가로 막고자한 마귀 신의 역사였음을 밝히지는 못하였다. 신약성경에 예수가 불경을 모방하여 설교한 부분의 기록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만큼 광범위하다. 일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석가는 40일 단식 때 마라라는 악령의 시험을 받았다 (불경 상응부경전)
♤석가의 열성적인 제자가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던 중 석가의 확신을 받고 다시 끝까지 걸어갔다 (본생경 무쌍품) ♤석가는 발위에 있는 한 개의 떡으로 500명을 먹이고도 남아서 버렸다 (본생경 주석78) ♤석가는 과부의 두냥 헌금이 정말 값지다고 했다 (잡보장경) ♤사기꾼이 인도하면 개천에 빠진다 (무문자설경)-소경의 인도로 구덩이에 빠진다 (누가복음 6장) ♤아시타가 천사들을 목격 (본생경) ─ 목자들이 천사를 보다 (누가복음2장) ♤니르바나(열반)와 재물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무문자설경)-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누가복음16장)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 받아 타향에서 허랑 방탕하다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오히려 환대하며 돌보는 아버지의 이야기인 장자궁자(법화경 신해품)와 신약성경의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 (누가복음15:11)는 똑같은 줄거리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불교적 말씀들이 가장 집약되어 있는 부분으로 법구경에서 석가모니가 설파한 사랑과 자비의 설법과 똑같다.
소년시절의 성인이 될 징조, 카이샤파와 요한, 마아탕가와 사마리아여인, 신앙의 힘으로 잠재운 폭풍, 살인마와 길잃은 양, 경전비방과 성령모독, 신앙과 씨뿌림의 비유, 말법시대와 말세 등 신약성경상의 예수의 설교와 행적들의 대부분이 위와 같이 불경을 그대로 모방하였다 .(참고 도서: 불경과 성경 왜 이렇게 같을까 ─ 서울 출판 미디어간행, 윤청광지음)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책을 썼기 때문에 예수가 일방적으로 불경을 도용한 상황임에도 단지 신약성경과 불경이 일치한다거나 불경과 성경의 가르침이 똑같다는 정도로 관점을 잡아 불경을 도용한 사실에 대해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예수의 이스라엘에서의 행적은 대부분 석가모니의 행적을 흉내내어 행하지도 않은 것을 실제로 행한 것같이 거짓말을 한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러한 내용을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언급한 학자 한사람은 독일의 신학자 홀거 카르스텐으로서 그의 저서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에서 예수는 열세 살 무렵에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로 갔으며 그곳에서 불교를 연구하였다고 단정하고 신약성서에 기술된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 중 사실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질리고 만다.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는 바리새인들과의 갈등, 몇가지 우화들, 그리고 단편적인 이야기들 속에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라고 잘라 말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구세주로서의 예수는 구세주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의 열망에 편승하여 불교적인 깨달음과 불경을 이용하여 계획적으로 가짜 구세주 행세를 한 것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혹자는 하이미츠 사원의 승려의 생각처럼 예수가 불교를 통해 진리를 깨달은 승려로서 불교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순수한 의도로 구세주 행세를 하였다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예수가 이사(Issa)라는 법명을 사용한 사실 자체에서 그와 다른 계획적인 의도를 가졌음을 깨달을 수가 있다. 이사(lssa)란 구약성경 이사야서 (Isa)에서 따온 이름으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동방 땅 끝 땅 모퉁이에서 구세주를 불러 일으킨다는 예언을 하였다. (이사야:41장1∼16절) 그 이사야서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구세주를 자신과 연결 짓기 위해 이사라는 불교명을 붙이고 승려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의 계획된 구세주 행태의 근본동기는 전혀 다른데 있다. 실제 예언된 주인공인 이긴자 구세주 조희성님이 밝히는 예수론을 통해 밝혀보면 이러한 예수의 계획은 예수를 공중권세 잡은 마귀신(에베소서2:2, 6:12)이 공중 하늘에서 소리있어 가라사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마태복음3:16, 사도행전9:4)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예수를 움직여 구세주를 통한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역사를 무산시키려고 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는 적그리스도 바로 그 장본인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마귀의 역사 와중에도 그들의 계획에 맞서 오히려 그들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놓았으며 그래서 신약성경에는 허구에 찬 예수의 기록 속에서도 적으나마 진짜 구세주를 밝히는 말씀들이 기록되어 남아있는 것이다.
29세 때 이스라엘로 돌아와 인도에서 배운 불교의 교리와 석가모니의 행적을 자신의 사상과 행적으로 꾸며서 설교에 이용하였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예수의 행적과 설교는 불경상의 석가모니의 행적, 설법과 너무나 똑같이 모방되어 있다 |175.198.***.*** 2012.03.13 03:18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생애-성(聖)이사의 일대기>를 출판함으로써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노토비치의 <이사전(傳)>이 발간된 이후 철학자 스와미 아베다 난다, 러시아의 과학자 니콜라스 로에리치 교수, 스위스 음대의 카스파리 교수등 수십명의 사람들이 인도와 티베트를방문하고 확인하여 노토비치의 주장을 뒤받침해 주었다 . (사진4:불교신문, 사진5 주간중앙 참조)|175.198.***.*** 2012.03.13 03:18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로부터 항의와 박해을 받았다. <뉴욕타임지>를 비롯한 <19세기저널>지는 옥스퍼드 대학의 막스뮬러 교수와 아치발트 더글러스 교수가 노토비치의 <이사전> 발견에 대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몰아 부치는 글을 게재 하였다. 기독교 단체 측의 박해가 잇따르자 노토비치는 고사본 자료들을 프랑스 정부에 넘기고 숨어버렸다. 라. 감춰진 노토비치의 <이사傳> 고사본의 내용이 한국에서 공개되다.|175.198.***.*** 2012.03.13 03:19 불교적인 깨달음과 불경을 이용하여 계획적으로 가짜 구세주 행세를 한 것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혹자는 하이미츠 사원의 승려의 생각처럼 예수가 불교를 통해 진리를 깨달은 승려로서 불교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순수한 의도로 구세주 행세를 하였다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예수가 이사(Issa)라는 법명을 사용한 사실 자체에서 그와 다른 계획적인 의도를 가졌음을 깨달을 수가 있다. |175.198.***.*** 2012.03.13 03:20 사이비종교에서 퍼뜨리는 내용 같구만 2012.03.13 07:20 아무튼 이런저런 부연설명 쓴놈이 조희성 똘마니인건 확실한데 저 자료나 사실여부는 한번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2012.03.13 07:20 자신이 구원자이며 예수라고 주장하면서 '돈이란 돈'은 다 갈취하다가 교도소에 '수감'되서 '심장 마비'로 '40줄'에 '급사'한 그 '양반'이네 진짜 멍청하다 조희성도 나름 유명인이라면 유명인인 데 그 광신도가 자기 교주님 추앙한다고 써놓은 게 영생교가 개입돼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네|211.203.***.*** |
▒ 한겨레 기획특집 4회
글쓴이 : 빌리 그레함 ( 목사. 미국 ),
마르틴 슈나이더( 베를린 퀠른 캠퍼스 신학대 교수, 독일)
옮긴이 : 김 요셉 ( 한총.신.대 교수, 밥존슨 신학대 교수역임)
예수는 인도 에서 승려생활 을 하였다. ( 4 편 )
이번 주에는 보병궁 전도서 에서 전하는 바에 따른 "인도에서 승려 생활한 예수님"의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님의 청년기인 13∼29세까지의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 부분들이 중세기 때 로만 캐톨릭( 콘스탄틴) 에 의해 삭제 되 미국 등,
그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만 은 성경이 마치 66권으로만 된 줄로만 알고있습니다.
허나 나머지는 이스라엘, 또 이라크 내 하미르크 국립박물관에 보존 되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예수의 잊어버린 세월」,
「법화경과 신약성서」등이 세상 에 공개되면서 점차 알려지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교계에서도 인정하는 " 보병궁 복음서 " 가 전해지면서
예수님의 인도생활이 자세히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또는 해외에서도 한인 목사들 에 의해 철저하게 이 사실들은 비밀 리 해왔기에
외국사람 에 의한 외국 신학대학을 공부하신 목회자 님들만 아십니다.
허나 이 사실을 밝혀 봐야 이단으로 몰리기에 그냥 말없이 계실 뿐입니다.
그럼 여기에 보병궁 복음서의 일부를 실습니다.
<보병궁복음서 11장 12절, 16장 1∼2절>
인도의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배우도록 하시요
이것은 성기(聖氣) 교육의 일부이니까요.
요셉의 가정은 나사렛의 마미온 거리에 있었다.
이곳에서 마리아는 그 아들 예수에게
엘리후와 살로메로 부터 얻은 교훈 불경(佛經)과 힌두교 경전인 베다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예수는 베다의 찬가와 아베스다 경전을 읽기를 즐겨 했으나
무엇보다도 좋아한 것은 다윗의 시편과 솔로몬의 실랄한 말을 읽었다.
<보병궁복음서 21장 19절, 23장 3∼10절>
예수는 그리시나 신(神)을 모신 자간나스의 절에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어
이곳에서 베다성전 마니법전을 배웠다.
예수는 인도의 의술을 연구하려고 뜻을 세워
인도의 의사들 가운데 으뜸가는 "우도라카"의 제자가 되었다.
"우도라카"는 물, 흙, 식물, 더위와 추위, 햇빛과 그늘, 빛과 어둠의 용법을 가르쳤다
. "우도라카"는 말한다. 자연의 법칙은 건강의 법칙이다.
이 법칙대로 살면 결코 병에 걸리는 일이 없다....
한편 자연계의 물상(物像)은
모름지기 인간의 요구에 응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모두가 의료의 비약이 된다.
<보병궁복음서 36장 1∼4절>
티벳트 랏사에 한 교사를 위한 사원이 있었다.
수많은 고전(古典)의 필사본 이 소장되어 있었다.
인도의 성자인 "피자빠지"는 이미 이들 사본을 읽었으 므로
그 내용 가운데 많은 비밀의 교훈을 예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기 자신이 직접 읽기를 원했다.
한편 요동(遼東) 전부의 성현 가운데 으뜸가는 사람인 "멩그스테"가 이 티벳트의 사원에 있었다.
에모다스 고원을 횡단하는 길은 험난했지만 예수는 여행길에 올랐고,
"피자 빠지"는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의 길잡이를 붙여 주었다.
☞ 예수가 인도에 가서 힌두교와 불교 등을 배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신약성서에 예수의 13∼29세까지의 기록이 없다고 이 사실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겠습니다.
신약성서의 거의 전부가 조작 됐고 엉터리가 많다는 증거는
예수가 죽은 후 70∼80년 후에 ( 50∼ 60년 이후 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음)
계시를 받았다며 사도 바울에 의하여 고린도서가 제일 먼저 쓰여졌고,
그후 4대 복음서는 예수가 죽은 뒤 근 80∼90년 후에 신약이 만들어지기 시작 됐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예수 본인도 또 그 제자들도 유대교를 신봉했었고
그가 죽은 후 몇십 년 후에 일부 극소수의 부족들이 부활을 얘기했고
무조건 믿으라는 논리 하에 예수를 신격화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었느니 하고 주장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13∼33세까지의 기록은
현재도 분명히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 공개 및 보관 전시되어 있고
또 그 당시 곧 바로 쓰여진 단지 기행문이라는데 진실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도의 명의(名醫) " 우도라카 "의 제자가 되어 자연의 법칙과 치료법을 배우고
"베다" 및 불경(佛經)을 읽으며,
성인 피자빠지 의 소개로 신비의 불교인 밀교(密敎)의 대성자인
멩그 스테 에게 찾아가서 제자가 됩니다.
Jeff Buckley ( 미 ,Yale 대 종교학 교수 )원작, 민 경식 교수 번역판 의
「법화경과 신약 성서」에 보면.......
독실한 불교도이던 예수의 불교 식 이름은 " 이사(ISSA) " 입니다.
이사(ISSA)는 14세 때 아리아인들 속에 정착, 힌두교 거장들에게 베다, 우파니샤드 등을 공부하나,
4성 계급을 주장하는 브라만교(힌두교)에 실망을 느끼고,
이사(ISSA)는 만인의 해탈 가능성과 평등사상을 주장하는 불교에 매료돼
불교도들 틈에 들어가 부다가야, 녹야원, 베나레스 등지에서 6년간 불교의 교리를 배우며 수도 생활을 합니다.
이샤의 불교 공부는 캐시미르를 거쳐 라닥크의 "레"에서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를 배우며
티벳트에서는 그곳의 밀교계 고승 멩크스테에게 심령치료 비방 등을 집중적으로 익혔습니다.
불교의 승려인 이사(예수)의 이스라엘 귀국은
페르시아 를 거쳐 불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29세 때 이루어집니다.
스승인 "멩그스테 "는 예수에게 기적의 비법을 남용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그후 .........( 거두절미, 한국 자칭 기독교인들이 잘 아는 내용들... )
예수는 유대교도들에게 모함되어 십자가에 묶였고, 유대교들은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렸습니다.
예수교 초기의 복음서인 토마스 복음서에 밝혔듯이
억지 부활주장도 결국은 윤회(輪廻) 사상이 깃든 것도 바로 힌두교 영향인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www.tombofjesus.com"에 보면 상세한 부분 이 있으니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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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인도 유학에 오르다(12세)
○ 어린 시절 목수가 된 예수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남부 인도의 오릿사주(州) 왕족인 「라 반나」가
유대나라의 제례(祭禮)에 참석하러 왔던 차에 성전에서 말하고 있 는 예수의 총명함에 반하여,
예수의 부모님을 만나 인도 유학을 주선하였습 니다. (성약성서 21:1~20)
'해뜨는 방향' 을 향해 떠난 예수는
오릿사 지방의 쟈간나스의 절에 제자 로 들어가 4년 동안 수행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때 예수는 베다성전 등을 배우며, 승려 「라마스」와 깊은 우정을 나눕니다.
예수님은 친구 라마스와 함께 갠지스 강 주변 마을의 노예와 농부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그들에게 인류는 한동포이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갠지스 강변의 마을 베나레스는 브라만교의 성지로서 문화와 학술이 고도로 발달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도의 의술(醫術)을 배우기 위해서 당시 인도 최고의 의원이었던 「우도라카」의 제자로 입문합니다.
우도라카의 한 줄기 시같은 가르침의 요지는 이러합니다.
○ 자연의 법칙은 건강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대로 살면 결코 병에 걸리는 일 이 없습니다.
이 법칙을 어기는 것은 죄이며, 죄를 범하면 병에 걸립니다.
(성약성서 23:5~6)
○ 한편 자연계의 물상(物象)은 모름지기 인간의 요구에 응할 수 있게 되어 있 으므로,
모두 의료의 비약(秘藥)이 됩니다. (성약성서 23:10)
○ 인간의 의지는 최고의 의약이니까 …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병을 고칠 수 가 있습니다. (성약성서 23:12)
예수는 우도라카, 승려, 학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우주신(본체신)은 한 분이고,
신(인격신)은 ‘한 분 이상’이어서 모든 것 은 신(개체화된 인격신), 모든 것은 하나이다. (성약성서 28:4)
갠지스 강가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듣다
○ 어느날 예수께서 갠지스 강가에서 한 떼의 대상(隊商)들로부터 부친이 세상 을 떠났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때 예수는 슬픔을 진정하며, ‘한 탄이 마음에 떼를 지어 올 때는 모든 것을 잊고 사랑의 일에 깊이 투신하면
슬픔은 사라지고 맙니다.’라는 위안의 서신을 어머니에게 띄웠습니다. (성 약성서 30장)
티벳 유학과 예수의 불교식 이름 「이사(ISSA)」
예수의 높고 오묘한 지혜를 인정한 불교도 「바라타 아라보」는
예수님과 함께 유대의 시편과 예언시를 읽고,
베다경전, 페르시아의 아베스타 경전,
석가 부처님의 지혜를 함께 읽었습니다.
인간의 절대 평등을 주장하던 예수 께서는
인도의 사회 신분(카스트)제도를 파괴한다고 그를 정죄하려 한 승려 들을 피해
라마스의 도움으로 네팔로 피신하였습니다.
당시 인도에서 예수의 불교식 이름은 「이사(ISSA)」였고,
오늘날에도 인도 에서는 예수를 이사라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티벳의 ‘랏사’에 있는 사원을 찾아가
마침 요동(遼東)의 최고 성현으로 이름이 나 있던 「멘구스테」를 만나서
이 절에 소장되어 있었던 수많은 고전(古典)의 필사본을 멘구스테의 도움을 받아 직접 읽었습니다.
이 곳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는 도중에 페르시아에 들려서 24년 전에 자신을 찾아준
마기교 승려인 동방박사 3인을 만났습니다.
이 때 예수의 나이는 24 세였습니다.
25세에 다시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해의 도시라는 뜻)’로 가서
성자들 의 모임인 형제단에 입회하기를 원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법명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최후의 외침
예수는 이 비밀형제단의 서약을 받아,
『성실,공정,신앙,박애,의열,성애(聖 愛)』의 6단계 시험을 진실과 용기로 극복하고,
거룩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애굽 밀교의 비밀,
생사의 문제, 또한 태양계 바깥 세계의 비밀을 배웠습니 다.
그리고 사자의 방에서 일을 마친 뒤에 ‘보라빛 방’에서 일곱 번째의 시험을 이겨내어
『그리스도(하느님의 사랑)』라는 최고의 법명(法名)을 받 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뜻은 ‘인간을 영원히 구원하려고 하는 하느님의 사랑’ 을 말하며,
그러한 ‘사랑을 구현시킬 수 있는 인격자’를 말하는 것입니 다.
인도 유학 시절 예수는 모든 인간의 해탈 가능성을 철저히 가르치는 불교에 매혹되어 승려가 된 후,
‘베나레스(문화와 학술이 고도로 발달된 브라만교 의 성지)’, ‘녹야원’, ‘부다가야’ 등지에서
오랜 수도생활을 하고 티 벳을 거쳐 29세 때 귀국을 하였는데,
예수는 인도 , 티벳【 밀교계 고승 「우 도라카」, 「멘구스테」로부터 심령 치료의 비법을 전수받았습니다.
이들 스승은 예수에게 도술을 이기적으로 남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 다.
그러나 귀국 후 예수는 유일신교인 유대교파들에게 모든 인간의 절대 신성을 부르짖으며 이적을 행하고,
군중을 모아 신의 사랑과 평등 사상을 전파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는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는 데,
이 때 예수가 제자 요한에게 모친을 부탁한 뒤,
“엘리엘리 라마 사박 다니” (Eli Eli Lama Sabachthani : ‘하나님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로 번역되어 왔음)라는
말 한 마디를 크게 소리친 뒤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 다.
그런데 이 예수의 최후의 말씀은 티벳트 라마불교의 진언(眞言)인
“엘 리엘리 라마 삼약 삼보리” (Eli Eli Lama Sammach Sam Bori)라는
다라니 (Dha -rani=總持=呪文)로 밝혀졌습니다.
즉 예수님은 극도로 탈진해 생 사를 가늠하는 마지막 순간에,
모든 장애를 벗어나 한량없는 복덕(福德)을 얻게되는 권능이 있다고 전해지는
라마불교의 주문(다라니)을 암송한 것입 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의 제자들은 이 주문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죽은 뒤 40~50년 후 예수의 말씀을 정리하기 시작할 때,
마지막 말씀의 의미가 잘못 기록되고 또 잘못 번역되어 후세에 전해진 것입니다.
예수가 죽음을 바로 앞두고 라마불교의 진언을 암송했다는 이 충격적인 사 실은
『예수님의 인도 성だ텝구도생활』을 밝혀 주는 결정적 증거의 하나입 니다.
[인도,티벳,이집트 등에서의 예수의 구도생활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참고서적은
『성서의 뿌리(민희식 지음)』,
『법화경과 신약성서(민희식 지 음)』,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 지음)』,
『인도에 서의 예수의 생애(홀거 케르세텐 지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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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성자들과 지낸 예수님의 17년 세월> :: 김 현 철(주간 한겨레저널 회장)
필자가 4년 전 인터넷을 통해 서울 교보문고의 서적을 주문하다가
"성약 성서"라는 이상한 책이름을 발견,
추적 끝에 이 책이 예수님이 3년간의 공생활 직전(12세-30세) 1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히말라야 성자들과 지냈다는 내용을, 각종 증거를 제시하며 서술한 영문판 서적의 번역본임을 알게 됐다.
그제 서야 "어쩐지 신약성서 어느 곳에도 예수님의 소년시절의 기록이 없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필자는 몇해 동안 서울에 드나들면서 "성약성서"를 구하려고 애썼으나 실패 끝에
작년에야 "바안스 앤드 노블" 미국 서점에서 영문 판 원본
"예수님의 잃어버린 세월"(The Lost Years of Jesus(by Elizabeth Prophet, ISBN 0-916766-87-X)"을 입수했다.
이 책에는 1887년 러시아 출신 언론인 니콜라스 노토비치(Notovitch)가
북부 인도의 히말라야에 있는 라다크 주의 수도 레(Leh)에서 25마일 떨어진 히미스(Himis) 수도원
(해발 3천4백미터, 5천여년의 역사를 지닌 수도원)의 원장을 통해
예수님이 현지에 다녀 간 발자취가 기록돼 있는 3권의 책 중
중요 부분을 번역해 가져와서 발간한 책"예수님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Unknown Life of Jesus)" 전문
(그 후 이 책은 전 유럽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번역돼 베스트 쎌러가 되었고 당시 불란서에서는 8판을 거듭했다 함),
그 후 인도 캘카타 출신 교수이며 성자 라마크리슈나의 수제자로 유명한 쓰와미 아베다난다(Abhedananda) 및
러시아 출신 교수 니콜라스 로릭(Roerich)박사가
노보비치의 책을 확인하는 작업 끝에 전부 사실임을 인정한 보고서 전문,
1939년 스위스 음악대 교수출신인 엘리자베스 카스파리(Caspari) 박사와
가스크(Gasque) 부인이 이끄는 9명의 히말라야 탐험대가 히미스 수도원을 방문해 똑 같은 사실을 확인한 사건 전모 등을 수록하고 있으며 그 밖에 예수님이 히말라야와 인도에 다녀 간 발자취와 많은 사진등이 실려 있다.
티벳 망명정부(달라이 라마 왕)가 있는 서 북부 인도의 "다람살라"의 한 티벳 스님은
예수님이 인도와 티벳 등 많은 도시와 히말라야에 다녀갔다는 게 사실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다른 나라는 몰라도 적어도 인도, 파키스탄, 티벳, 네팔, 부탄 등
히말라야를 인접하고 있는 지역의 힌두교, 불교 신자들은 옛부터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외국인들이 이 사실을 믿건 안 믿건 상관없다. 이는 역사적인 사실이니까."하며 미소를 지었다.
10년 전 천주교회의 신부님 한 분이 "불교와 천주교의 예배하는 전례는 너무 닮았습니다,
부처님 자리에 성모님 상을 올려놓으면 거의 같습니다"하던 말이
이제야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히말라야와 인도지방에서 18년간이나 머물렀음을 이 신부님은 알고 한 말이었을까 ?
또 성서 상에 일언반구 이에 대한 말씀이 없음은 예수님이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
아니면 후대 성서학자들이 그 내용을 의식적으로 삭제했기 때문일까 ?
이 밖에 서점에 가면 "동양 성자들의 생애와 가르침
( Life and Teaching of the Masters of Far East, by Baird T. Spalding, 한국어 번역본은 '초인생활')" 등
성서 상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수많은 예수님의 행적들을 각종 증거를 들어 기록한 책들이 얼마든지 있음을 발견,
그동안 필자가 너무도 무지했음을 깨우쳐 주고 있다.
인간의 모친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성자들은
바로 현재도 서로가 한결같이 형제애를 지니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종 종교 신도들이 알게 되는 순간,
종교 때문에 전쟁과 불화로 얼룩지고 있는 이 세상은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뀌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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