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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외교

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부터 미국은 졌다



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부터 미국은 졌다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2/09 [13:0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통해 ‘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는 하노이라고 밝히며

 나는 평화의 진전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길 고대한다고 밝혔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베트남에서 열릴 것이라고 미국이 발표한 뒤에

, 언론들은 구체적으로 회담 장소에 대해 북은 하노이를 미국은 다낭은 선호한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베트남이라는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자본주의식 경제발전을 이룬 개혁, 개방의 상징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회담장소가 북이 원하는 하노이로 결정되었기에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회담에서는

 '북으로부터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옳지 않다고 본다.


 북이 70년간 이룩해 온 우리 식 사회주의노선으로 세계 전략국가 지위에 올랐는데

 어떤 나라 방식을 북이 그대로 적용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베트남을 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정한 것에는 북의 더 큰 구상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먼저 미국이 선호했다는 다낭과 북이 주장했다는 하노이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자.

 

미국이 선호했다는 다낭은 베트남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며, 개혁 개방의 상징도시로 알려져 있다.

또한 다낭은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베트남 협력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에 베트남 식 경제 모델을 암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북이 주장했다는 하노이는 어떠할까?


하노이를 베트남을 대표하는 도시이며, 베트남 사회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북베트남의 수도였고, 통일된 후에도 사회주의 베트남의 수도이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북 공군의 묘지가 하노이에서 가까운 곳인 박장성에 있다.

 

다낭과 하노이는 결국 베트남에서 자본주의식 개혁개방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도시로,

 회담 장소가 하노이로 결정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암시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김일성 주석과 호찌민 주석  1957년 평양    © 자주시보

 

북과 베트남, 사회주의 형제국가

 

베트남도 분단국가였다. 결국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사회주의 베트남으로 통일되었다.

 

그렇다면 북과 베트남은 역사는 언제부터인가.

 

북과 베트민(북베트남)은 19501월, 수교를 맺었다. 

북베트남 호찌민 주석은 1950114일 북과 외교관계 수립을 원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131일 북은 외교 관계 수립 내각 결정을 북베트남에 통보, 수교를 맺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18월 말

호앙 꾸옥 비엣 북베트남 민족통일전선 전국위원회 부주석이 방북, 전투를 독려했고,

항프랑스 전쟁 시기 영웅인 딘 눕은 한국전쟁 당시 북의 승전소식에 고무됐다고 할 정도로

북과 북베트남은 국가 관계를 넘어 형제적 관계였다.

 

특히 19577월 호찌민 주석의 방북과 195811월 김일성 주석의 베트남 방문 등을 두고

북은 친선협조 관계를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킨 역사적인 계기라고 평가한다.

 

김일성 주석의 북베트남 방문 당시 호찌민 주석은

 나는 우리가 사회주의 건설에서 조선 형제들과 경쟁을 하자는 것을 제의한다.

경쟁은 베트남 인민과 조선인민의 단결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 호찌민 주석 이후 처음으로 농 득 마잉 총비서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등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베트남은 북의 핵, 미사일 발사 문제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고 있다.

 

-베트남 수교 65주년(2015년)을 맞아 양국은 다양하게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당시 웬 푸 쫑 베트남 당 총비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보낸 축전에서

 “65년간 이룩된 빛나는 성과들을 계승하여,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 협조와 발전을 위하여 힘 있고 효과 있게

 그리고 심도 있게 발전하리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으며

 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도 답전을 보냈다.

 

또한 당시 외무차관 회의, 양국에서 수교 65주년을 맞아 기념집회와 연회가 열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도 베트남 공산당 창건 85돌 축전에서

 우리 두 당, 두 나라 인민들 사이의 전통적인 친선협조 관계가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를 위한 한길에서 더욱 강화, 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했다.

 

북과 베트남이 1950년대부터 시작된 사회주의 형제국가는 김일성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돌 열병식에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공군 부대의 모습이 등장했다.     © 자주시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북, 혈맹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패배하고, 남북 베트남은 통일이 되었다.

미국이 패한 베트남전쟁에 북은 반제공동투쟁을 위해 공군을 중심으로 한 전투병을 파견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베트남전쟁에 대해서

단순히 (베트남) 자신의 독립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만이 아니라

전체 사회주의 진영의 안정과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그들의 투쟁을 적극 지원하는 것을 숭고한 국제주의적 의리, 의무라고 강조하며 반제공동 투쟁을 진행했다.

 

북의 자료에 의하면 1964년부터 1969년까지 무기 10만 정, 군복 1백만 벌 등 물자지원에 이어

 공병부대와 공군부대를 파병했다.

 북이 베트남전쟁에 지원한 무기, 탄약, 군수물자 등을 합산하면

당시 북측 돈 175백만 원에 달한다.

 

북은 지난해 공화국창건 70돌 경축 열병식에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공군 부대도 등장시켜

 공식적으로 베트남전쟁에 북이 참전했음을 밝혔다.


 당시 북의 열병식 해설자는 비엣남(베트남) 전쟁에 참가하여

수적·기술적 우세를 자랑하던 적의 공중 비적들을 무자비하게 박살내어

조선인민군의 본때를 남김없이 보여준 공군 종대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전쟁 이후 통일을 이룩한 베트남의 입장에서 북은 혈맹이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북의 공군들의 묘가 하노이에서 60km 떨어진 박장성이라는 곳에 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지난 2001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참배하기도 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1월 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자주시보

 

김정은 위원장의 세계자주역량 구축 구상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난해 우리나라와 세계 여러 나라들 사이에

, 국가, 정부급의 래왕과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여 호상리해가 깊어지고

국제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추동하려는 립장과 의지가 확인되었으며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는 자주, 평화, 친선의 리념에 따라 사회주의나라들과의 단결과 협조를 계속 강화하며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북은 중국, 쿠바와 전략적 이해를 같이하는 국가의 관계로 발전시켰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초 가장 먼저 중국을 방문했으며,

친선예술단까지 중국에 파견해 불패의 친선관계임을 보여주었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밝혔듯이

올해도 사회주의 국가들과 단결과 협조를 강화할 것임을 강조했다.

  

지난해 리용호 외무상 201811월 베트남 공식 방문했다.

 

이에 대해 북의 노동신문은 123일 보도를 통해서 ‘1129일부터 122일까지 베트남을 방문,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를 예방하고

 팜 빈 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과 회담했으며

 쌍방은 김일성 동지께서 경애하는 호지명 주석과 함께 마련해주시고

 가꾸어 오신 두 나라 사이의 친선협조 관계를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여러 분야에 걸쳐 더욱 확대 발전시킬 데 대해서와 호상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하고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 밝혔다.

 

또한 방문 기간 대표단은 호지명 주석의 묘에 화환을 진정하고

농업과학원과 하롱만을 비롯한 여러 곳을 참관했다고 덧붙였다.

 

이 보도에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북과 베트남이 선대 수령들부터 시작된 친선협조관계를 더 발전시킬 것에 관해

 이미 지난해 합의를 이루었을 것이다.

 

▲ 지난해 베트남을 방문한 리용호 외무상     © 자주시보

 

그리고 올해 초 로이터 통신은 117(현지 시간) ‘2월에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을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를 베트남이라고 밝힌 것은

2019 연두교서를 발표한 25(현지 시간)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에 사회주의 국가의 친선과 단결, 협조를 강화하는데 있어서

김일성 주석부터 시작된 사회주의 형제국가인 베트남과 친선관계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강화할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리용호 외무상이 먼저 방문해 전반적인 구상에 대해서

베트남과 합의하고 올해 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으로 이를 공고히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 베트남은 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와 상관없이

김정은 위원장의 구상에 있었던 나라였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외정책에 대한 평가 부분을 살펴보면

 중국, 쿠바와 사회주의 나라들 사이의 전략적 의사소통과 전통적인 친선협조 관계를 강화하는데 특이한 사변,

 지난해 북과 세계 여러 나라들 사이에

 당, 국가, 정부급과 상호이해가 깊어지고 국제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추동하려는 입장과 의지의 확인,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라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사회주의권의 단결과 협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세계자주역량 구축에 방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장소가 하노이로 결정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구상한 전략적 구상에 맞춰 미국은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북미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 말한 날짜보다 더 늦춰질 수밖에 없으니까.

 (미국은 베트남에서 2월 말에 시진핑 주석을 만나려던 계획을 부랴부랴 수정한 것도 이 맥락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회담 장소도 북의 의도대로 갈 수밖에 없는 미국.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