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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히틀러는 유대인 이었으며 유대인을 보호했다. 세계유대인협회 자료첨부



히틀러는 유대인 이었으며 유대인을 보호했다. 세계유대인협회 자료첨부          


영원이 정직하게

2019.02.18. 15:46 
      

F. 2차대전 前後 세계 유태인 인구  (출처:세계유태인협회)


World Almanac, 1929- 15,630,000 (p.727)
World Almanac, 1933- 15,316,359 (p.419)
World Almanac, 1936- 15,753,633 (p.748)
미국유태인위원회(AJC, Bureau of the Synagogue Council), 1939- 15,600,000
World Almanac, 1940- 15,319,359 (p.129)
World Almanac, 1941- 15,748,091 (p.510)
World Almanac, 1947- 15,690,000 (p.748)
  이민귀화국 (INS), 1950 -15,713,638 (Appendix VII, 'Statistics onReligious Affiliation'; Report to U.S.Senate Judiciary


안네의 일가기 가짜라고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는 기사.

http://northerntruthseeker.blogspot.kr/2011/11/more-Viewerexposure-of-real-history-ann-fran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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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적십자사는 안네 프랑크 1945년에 Bergen-Belsen에서 사망 했다고 확인했다.)


(안네는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고

 형무소에서도 그 곳에서 죽었다고 광고를 했었다. 

그러나  공개된 문서에 의해서 안네는 아우슈비츠가 아닌 독일 하노베의 

베르겐 벨센 Bergen-Belsen 에서 당시 전염병 티프스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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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필체:아래와 유령작가의 필체:위 비교)

히틀러 살아있다 공식문서


 


1945년 8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OSS 사무실로 익명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 편지의 저자는

정치적 망명과 자신이 지닌 정보를 교환할 것을 제안한다.

이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히틀러가 아르헨티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당시 독일 잠수함과 직접 접촉한

 네 명의 인물 중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두 대의 독일 잠수함이 아르헨티나의 해변에 도착했고,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은 두 번째 잠수함에 승선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독일의 전 독재자를 환영했을 뿐 아니라, 은신처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이 편지는 히틀러와 동행인들이 지나간 마을들에 대한 상세한 경로와

 히틀러에 대해 믿을만한 자세한 신체적 특징까지 서술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제보에도 불구하고,

 독일 U보트 530이 아르헨티나 해변에 독일인을 내려준 사실에 대해

미국은 아무런 조사도 실시하지 않았다.

 

또 다른 FBI 자료는 1945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해군 담당관이  

미국 정부에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이

아르헨티나에 막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을 알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기는 독일 U-530 잠수함의 목격 시기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현지 신문은 안데스 산 기슭에 독일 바바리안 스타일의 저택

 

종전 후 소련이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유골로 알려진 뼈들을 가져간 후

아무도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09년 코테티컷 주립대학의 니콜라스 벨라토니가 당시

발견된 해골의 일부에 DNA 테스트를 하도록 허가가 내려졌다.

조사 결과는 유골의 DNA가

히틀러와 에바 브론의 것으로 알려진 샘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종전 직후 당시 상황을 회상해 보면,

 전직 사령관 출신이자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히틀러의 실종 가능성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으며,

스탈린 또한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1945년 The Stars and Stripes 신문은 아이젠하워 장군의 말을 인용하면서

히틀러가 아르헨티나에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이번 사건은 2차 세계 대전 후 당시 제기되었던 히틀러의 생존 가능성 뿐만 아니라,

히틀러의 아르헨티나 망명에 대해

미국 정보부 OSS가 이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게다가 도움까지 주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고위 나치였던 아돌프 아이히먼이 1960년에 체포될 때까지

아르헨티나에서 15년 간 살았던 사례는

 이들의 아르헨티나 탈출 가능성에 무게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