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시정연설 “현 단계에서의 사회주의 건설과 공화국 정부의 대내외정책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습니다.”라며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 다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양이다. 마치 8개월의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트럼프는 15일 “나는 빨리 가고 싶지 않다. 빨리 갈 필요가 없다”라며 “지금 완벽하게 움직이고 있고 우리는 좋은 관계다. (대북)제재는 그대로이고 억류자들은 돌아왔고 (미군) 유해는 돌아오고 있다”며 느긋한 소리를 했다. 그러나 트럼프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연일 터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18일 보도에 따르면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미국과의 대화가 재개되는 경우에도 나는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우리의 대화상대로 나서기 바랄뿐”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대화 상대 교체를 요구한 것이다. 또한, 조선중앙통신 20일 보도에 따르면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멍청해 보인다”며 “경고하는데 앞으로 계속 그런 식으로 사리분별 없이 말하면 당신네한테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한 경고를 보냈다. 태평한 소리를 하던 트럼프의 바람은 오판이었다. 북한은 연말까지 가만히 기다릴 생각은 없는 듯하다. 북미대화가 이뤄질 수 있던 요인, 북한의 선의 북미 대화의 첫 시작을 돌이켜보자. 미국이 북미정상회담장으로 이끌려 나와야만 했던 결정적인 배경은 북한의 국가핵무력 완성이다. 북한은 자신의 안전을 담보할 수단으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북한은 골치 아프게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벌이느니 이대로 핵보유국으로 계속 남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일 것이다. 반면, 북한의 비핵화가 절실한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북한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자 본토를 핵공격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지게 되었다. 2018년 1월 12일 하와이에서는 직원의 실수로 미사일 발사 긴급 경보가 주민들에게 발송된 사고가 있었다.
정정 메시지를 보내는데 38분이 걸렸는데, 이 38분 동안 하와이 주민들은 지하주차장 등으로 대피했으며 심지어 급히 하수구 맨홀로 들어가기도 했다. 핵위협 공포에 빠진 미국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국은 시급히 안보 위기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때 북한은 미국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이 뜻밖에도 ‘비핵화’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북한은 말뿐 아닌 적극적인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북한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핵 및 미사일 시험을 유예한다고 약속했다. 이어 풍계리 핵시험장을 아예 폭파하고 동창리 엔진시험장을 해체했다. 이 모든 조치가 반년 남짓한 시간에 이루어졌다. 북한은 자신의 안전만 생각한다면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북한은 공포의 균형이 아니라 서로 핵위협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북한은 자신의 ‘선의’에 핵위협에 직면하게 된 미국도 ‘선의’로 화답하길 기대했을 것이다. 대화를 파탄 내는 요인, 미국의 악의 그런데 북미대화는 왜 우여곡절을 겪고 있을까? 미국은 북한의 ‘선의’를 배반하고 ‘악의’적 행동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북한과 사전에 수차례의 실무협상을 통해 합의문까지 만들어 놓았었다. 그런데 미국은 합의문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고 회담을 결렬시켰다. 북한이 비핵화를 완료해야 제재 해제 및 경제 지원을 할 수 있다며 서로 조율된 합의문을 뒤엎은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에 관계 개선을 할 의지가 있다는 “진정성을 판별하는 시금석”이라며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의도를 무시 혹은 왜곡하여 북한이 대북 제재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는 반증으로 여긴 듯하다. 4월 15일에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제재를 해제한다는 건 북한이 더 이상 핵무기 프로그램이나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제재를 유지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굴복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다.
이를 보면 미국은 북한과 진지하게 대화하여 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태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북한이 관계를 개선하자면서 보인 ‘선의’를 미국은 대결을 하겠다는 ‘악의’로 대응하니 대화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은 4월 12일 시정연설에서 “우리를 최대로 압박하면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하고 있다며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기 마련이듯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노골화될수록 그에 화답하는 우리의 행동도 따라서게 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유지하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미국의 적대정책까지 수용하고 인내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북한은 수차례의 선제조치를 해왔지만 미국은 적대 정책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미국에 최후통첩과도 같은 경고를 보냈다. 8개월의 데드라인, 오판하면 미국의 미래는 없다 많은 언론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 대해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할 용의를 표명했다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올해 말까지 미국이 적대 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 후 “3차 회담이 좋을 것”이라며 추진할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자신이 정말로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 신중히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볼턴은 4월 17일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추가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의 주요 대북정책 담당자들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고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차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다음 정상회담은 없다. 정상회담이 없다는 것은 북한은 미국과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대화’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겠다는 뜻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말한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권정근 국장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지 않으면) 조선반도 정세가 어떻게 번져 지겠는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3월 2일 “북한이 만약 합의를 이룬다면 놀랍고 빛나는 경제적 미래를 가질 것이지만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어떤 경제적 미래도 없다”고 말했는데 정작 ‘미래’를 걱정해야 할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전면대결을 선택할지 아니면 새로운 관계 수립에 나설지 하나를 택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미국은 올해 내린 오판이 미국의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