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남과 북이 판문점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 지 1주년이다. 남과 북 사이에 철조망도, 분계선도 없었던 1년 전 그 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고 따뜻해진다. 첫 시작부터 성공을 직감한 이유 판문점정상회담은 2007년 이후 무려 11년 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이었다. 온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던 판문점정상회담은 첫 시작부터 기분 좋은 충격과 전율, 환희를 불러 일으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숱한 북측 인사와 함께 판문각에서 나왔다. 영화처럼 북측 인사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김정은 위원장이 홀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걸어왔다. 판문점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와 인사를 나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남측 지역에 발을 디뎠다. 모든 사람들이 이 역사적인 장면을 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 시대를 여는 첫 충격은 끝나지 않았다.
훗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분계선을 넘어 남측에 온 김정은 위원장에게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을까요?”라고 묻고 김정은 위원장은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손을 잡고 분계선을 넘어 북측에 방문했다. “깜짝 방북”이었다.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 장면을 이토록 극찬하는 이유는 군사분계선이 유엔사령부, 즉 미군의 관할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과 북이 군사분계선을 통해서 오가기 위해서는 유엔사, 즉 미군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구조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2007년 육로로 평양을 방문할 때 유엔사가 미리 허가를 내지 않아 군사 분계선 앞에서 잠시간 ‘승인’을 기다려야 했다. 어찌 보면 작은 턱을 넘는 단순한 행위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던 우리였다. “깜짝 방북”은 남과 북이 ‘민족자주’와 ‘민족자결’로 나아간다는 선언이며 판문점정상회담의 대성공을 미리 알려주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었다. ‘자주’가 아니면 아무 것도 못 한다 그런데 판문점정상회담 후 1년, 과감하게 분계선을 넘으며 새로운 시대로 발돋움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그때의 결심과 감격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남과 북이 맺은 합의들은 아직 이행되지 못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재개가 안 되고 있다.
남북철도·도로 연결은 2018년 12월 26일 ‘착공식’을 했지만 그 후 4개월이 되도록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이유는 미국이 착공‘식’에 대해서는 대북 제재를 면제해주었지만, 철도·도로연결 ‘공사’는 대북 제재 면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렇든 남북관계 발전을 직접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에 물자반입 및 제공을 엄격히 가로 막고 있다. 또한,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하려는 어떠한 작은 일도 사전에 승인받도록 하고 문재인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지난 3월 북측에 있는 공장 설비들을 확인하기 위해 방북신청을 했다. 그런데 통일부 당국자가 “한미워킹그룹에서 협의할 것”이라고 하더니 결국 거부되었다.
미국이 하도 심하게 통제하자 개성공단기업협의회는 4월 8일 아예 문재인 정부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에게 “개성공단 제재 예외 결정을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교류는 하고 싶어 하면서도 미국의 방해에 철저히 ‘순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은 오로지 미국의 ‘승인’을 받는 데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 발전은 남과 북이 하는 것이다. 미국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이유도 없다.
판문점선언을 다시 살펴보자.
판문점선언에서 남과 북은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진출 ▲일체의 적대 행위 전면 중지 등을 합의했다. 만약, ‘아시안게임 단일팀 참가는 주최 측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지 않냐’, ‘주한미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협상했다면 남과 북은 판문점선언을 탄생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는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없다. 우리 국민은 KBS·MBC가 2018년 5월에 발표한 공동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94.1%가 판문점정상회담이 성과적이었다고 응답했다.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판문점선언이 잘됐다는 답변이 88.4%였다. 국회가 판문점선언을 비준해야 한다는 여론도 78.4%로 나타났다. 국민은 판문점선언을 적극 지지했다. 미국은 판문점선언을 가로막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던 해법 통일부가 3월 29일에 발표한 ‘2019년도 남북관계발전 시행계획’에는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이 담겨 있다. 시행계획에는 “개성공단 현지 자산점검 추진”도 들어있다. 현지 자산 점검을 위해 방북신청을 거부한 것과는 180도 다른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명히 남북교류를 추진하려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무엇 하나도 제 바람대로 하지 못하고 난관에 봉착해 있다. 남과 북은 판문점정상회담 당시 어려움에 부딪힐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만찬 답사에서 “이제 우리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고, 우리 앞에는 부단히 새로운 도전과 장애물들이 조성될 수도 있습니다.”라고도 말했다. 이 때 문재인 대통령은 만찬 환영사에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갈 역사적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에 공감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오늘처럼 남북이 마주앉아 해법을 찾을 것입니다.”라며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오늘날 문재인 대통령은 그때 그 마음을 잊고 있는 듯하다.
단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4월 15일 4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넘어서는 진전될 결실을 맺을 방안”을 논의하자는 뚱딴지같은 말을 한 데서 알 수 있다.
남과 북이 마주 않아 이야기할 것은 남북 관계이지 북미 정상회담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은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의 부속물로 종속시켜 버린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자신을 트럼프 대통령의 ‘메신저’로 전락시킨다.
북한은 트럼프의 특사 ‘문재인’이 아니라 남측의 대통령 ‘문재인’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다시 판문점선언을 보자.
판문점선언의 면면에는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정신이 살아 숨 쉰다. 통일부터 평화와 한반도 비핵화까지 이르는 판문점선언의 각 항은 모두 ‘남과 북은’ 이라고 시작하지 않는가.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것도, 한미합동군사훈련이나 대북전단 살포 같은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는 것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남·북·미·중 4자회담을 추진해나가는 것도 모두 ‘남과 북’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정상회담의 초심, 판문점선언의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민족의 평화번영의 길, 문재인 대통령이 나아가야 할 길은 ‘남과 북’의 길,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길이다.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협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
- 판문점선언 1조 1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