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때 장애인도 무차별 폭행 및 폭력진압
[2001년 4월, 대우자동차 시위]
2001년 대우자동차 시위때 경찰 폭력
2016.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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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부평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돌아본다
기자
2005-05-31 14:56:55

ⓒⓒ(사진제공=오마이뉴스 이종호)
△2001년 부평 대우사원아파트에 걸린
정리해고 반대 플랑카드.
저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사진제공=오마이뉴스 이종호)
2001년 2월 17일, 인천시 가정동 대우직원아파트엔 104통의 등기물이 도착했다.
아파트 입구의 우편함 두 집건너 한 집꼴로 빼곡히 꽂혀있는 똑같은 봉투.
정리해고 통지서.
대우자동차는 그 날 총 1750명이라는 건국이래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대우자동차는 그 날 총 1750명이라는 건국이래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GM사로 대우자동차를 매각하고 부평공장은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결정.
해고당한 노동자도 아내도 심지어 아이들마저 갈곳을 잃어버린 2월 17일.
해고당한 노동자도 아내도 심지어 아이들마저 갈곳을 잃어버린 2월 17일.
일순간 놀이터는 텅 비어 버렸고 아파트 일대에는 대화가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이라곤 해고된 노동자의 집 앞에 수북히 쌓여가는 ‘요금고지서’ 밖에 없었다.
1750명 중 일부는 거리로 나섰고 일부는 직장을 찾아 나섰지만
1750명 중 일부는 거리로 나섰고 일부는 직장을 찾아 나섰지만
그 누구에게도 ‘살아갈 길’은 막막하기만 했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산곡성당에 둥지를 틀고 1년간의 싸움에 들어갔고
조합원들은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매일같이 집회를 열었다.
한 인터넷 언론에 실린 네 살박이 아이에 관한 기사는 당시 상황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재룡이는 요즘 머리에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주먹을 들고
「재룡이는 요즘 머리에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주먹을 들고
"아빠 살려줘, 아빠 살려줘"하고 외친다.」
2001년 인천에 ‘계엄령’ 이라도 내렸나?

ⓒⓒ(사진제공=오마이뉴스 이종호)
△2001년 경찰은 아이들까지 연행하는 말 그대로 \'폭거\'를 자행했다.
부평일대는 계엄상태라 불릴 정도였다
. ⓒ(사진제공=오마이뉴스 이종호)
2001년 2월 인천 부평 일대는 말그대로 전쟁터였다.
정리해고에 맞서 대우자동차는 2월 16일 총파업을 벌였고,
경찰과 대우자동차 사측은 곧바로 공권력과 구사대를 투입해 강제진압했다.
경찰은 공장 구석까지 샅샅이 뒤져 숨어있는 노동자들을 찾아내 연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음 날부터 인천 거리는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하기 시작했다.
인천 시민들도 거리에 나와 노동자와 학생들의 시위에 박수를 보냈다.
인천 시민들도 거리에 나와 노동자와 학생들의 시위에 박수를 보냈다.
사상최대의 정리해고는 인천 경제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인천시민대책위까지 구성되고 시의원들까지 정견을 막론하고
정리해고를 ‘일단’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와 사측은 강경했다.
하지만 정부와 사측은 강경했다.
조업을 중단시키고 노동조합 사무실을 폐쇄했다.
조합원들의 공장접근도 불허했다.
조업을 재개시키고 나서도 해고자들은 공장 근처도 갈 수 없었다.
부평지역엔 골목마다 전투경찰이 진을 치고 검문검색을 벌였으며
공장주변은 말 그대로 ‘계엄령’이 내려진 것과 다름 없었다.
조업이 재개된 3월 7일 나온 민주노총의 성명서는
조업이 재개된 3월 7일 나온 민주노총의 성명서는
2001년의 한국사회에서 발표된 것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 자리에 취재 나오신 내 외신 기자 여러분께서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듯이
「이 자리에 취재 나오신 내 외신 기자 여러분께서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듯이
지금 부평과 대우자동차는 말 그대로 계엄령 없는 계엄상태입니다.
민주노총은 먼저 기자 여러분께서 직접 목격하신 사실상의 계엄상태를
국민들과 세계에 사실대로 알려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건널목과 골목마다, 톨게이트와 전철역마다
죽봉과 곤봉, 방패로 무장한 경찰병력이 삼엄한 경계를 펴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연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만여명의 전투경찰이 대우자동차 공장에 진주한 가운데
마치 군사작전을 펴듯이 출근과 조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김우중을 구속하라” “정리해고 철회하라”
“김우중을 구속하라” “정리해고 철회하라”
노동자들의 구호는 선명했다.
대우차 부도사태의 책임자 김우중을 구속하라는 것.
노동조합이 ‘경영혁신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부도의 책임은 결국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졌다.
김우중은 유유히 해외로 빠져나갔고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4월 10일 사태, ‘이건 광주학살이다’
대우자동차 투쟁은 민중운동 전체로 번져갔다.
4월 10일 사태, ‘이건 광주학살이다’
대우자동차 투쟁은 민중운동 전체로 번져갔다.
금속연맹 총파업 . 민주노총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 본격화. 민중대회 개최.
사상 유래 없는 정리해고와 해외매각,
지독한 탄압에 맞선 투쟁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민주노총
△\"공장으로 돌아가자\" 무저항으로 상의를 벗은 노동자들을 짓밟고 있는 경찰. 이 사건은 전국민에게 충격을 줬고
이후 김대중 정부 규탄 시위가 줄을 이었다.
ⓒ민주노총
4월 10일.
대우차 투쟁의 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날은 노동조합 사무실 접근이 허용된 날이었다.
조합원들은 인도를 따라 공장으로 갔지만 공장 100여미터 앞에서 노동자들은
검은 방패를 들고선 전투경찰을 만나게 된다.
노동자들과 금속연맹 박훈 변호사는 ‘업무방해’ 라며 상의를 벗고 길에 드러누었다.
‘이건 학살이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정도 였다.
‘이건 학살이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정도 였다.
경찰은 노동자들이 상의를 벗고 눕자마자 달겨들어 곤봉과 방패로 짓이기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아무런 저항없이 계속 구타당했다.
몸을 파르르 떨며 절규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수십명이 뼈가 부러지고 실신했다.
한 해고자의 비디오에 찍힌 이 장면은 그대로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퍼졌고
한 해고자의 비디오에 찍힌 이 장면은 그대로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퍼졌고
급기야 정부와 국회에서 비디오를 시청하며 책임자를 문책하기에 이르렀다.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등판의 구호가 경찰의 군화발에 짓밟혔던 이 사건은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등판의 구호가 경찰의 군화발에 짓밟혔던 이 사건은
지금도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한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남아있다.
이 사건으로 소위 '1001' 기동대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노동조합은 직무대행 체계를 세웠고 공장은 남겨진 노동자들에 의해 다시 움직였다.
노동조합은 직무대행 체계를 세웠고 공장은 남겨진 노동자들에 의해 다시 움직였다.
공장은 다시 돌아갔지만 황폐해져버린 부평 공장에 남은 노동자들의 마음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산곡성당엔 정리해고철폐특별위원회와 전직 노동조합 간부들이 남아 농성투쟁을 벌였다.

ⓒⓒ(사진제공=2001 노순택)
△\"공장으로 돌아가자\" 2002년 4월 대우차 노사는 300명 복직을 약속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1750명의 해고자중 취업하지 않고 남은 노동자는
350여명 이었다 ⓒ(사진제공=2001 노순택)
그 후 1년.
수배자들은 산곡성당에서 긴 싸움을 마치고 자진출두를 결정했다.
그리고 두 달.GM 매각을 앞두고 2002년 4월 대우차 노사는
「신설법인은 개정된 단체협약을 승계하고 정리해고자 300명을 올해말까지 복직시키며
나머지도 2004년말까지 인력충원이 필요할 경우
복귀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인력도 전원 승계한다」고 합의했다.
1,750명의 정리해고자 중 전직.취직하지 않고 남아있던 노동자는 350여명이었다.
김우중 귀국설이 솔솔 들려온다.
시간은 흘렀고 이제 와서 어쩌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김우중 귀국설이 솔솔 들려온다.
시간은 흘렀고 이제 와서 어쩌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군화발에 짓밟히던 2001년 인천 노동자들의 고통과 상처는 이제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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