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장소이다.조선은 대륙에 있었다.또한 역사의 본질이란 어떤 역사를 실현한 주체세력이 누구였느냐를 가늠하는 것이다.
조선은 유교이념을 실현하는 철저한 관료제사회였고, 이러한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양반계층이었으며 양반은 조선사회의 특권층이었다.
저자 박인수는 서울교육대학 졸업. 미술교육학석사,
저서는 예수님과 빌라도, 아 탈라스, 가림토,만화로 여는 천재길라잡이, 고인돌의 비밀 외 다수. 현 초등학교 1급 정교사, 현 상고사학회 상임이사.
평생 상고 역사를 공부하다가 최근의 조선사가 서구열강에 의해
조선의 강역과 조선 주체 세력(양반)의 왜곡 및 양반의 한반도 이주라는 엄청난 역사의 음모를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디 독자 여러분께서 저의 책을 잘 숙독하셔서
조선 민족의 바른 역사와 한반도 양반 후예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1장 지도의 비밀
1. 혼일강리역대국도 지도 2. 곤여만국전도 3. 조선의 전기와 후기 4. 18세기 서구열강들이 그린 지도
2장 중국의 실체 1. 중국이란 무엇인가?
2. 조선의 신분제도 3. 훈민정음과 동국정운 4. 범어는 고대 천축국의 왕손 전통 언어였다 5. 세계 역사와 언어의 뿌리는 같다 - 유튜브 강상원 박사 검색 6. 임진왜란과 양대 호란을 겪은 조선은 급변하였다 7. 조선 양반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3장 열강의 음모
1. 조선의 황금이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2. 열강의 음모 3. 조선의 금을 노리는 다국적 기업(재벌들)의 음모 4. 갑오전쟁 - 일명: 청일전쟁 5. 조선의 마지막 황후 - 명성황후 6. 대한제국의 태동
4장 아시아 대전
1. 조선의 금광 2. 러일전쟁과 조선의 멸망 3. 러일전쟁의 발발 4.'엠퍼러 쿠르즈 Empero Cruise'(황제유람선) 5. 을사보호조약과 조선(대한제국)의 멸망
5장 대륙 대탈출
1. 을사조약 후 한반도로 밀려가는 양반 세력들 2. 국제정세의 변화 3. 을사보호조약과 조선의 멸망 4. 조선 양반계층 중심의 한반도 이주 5. 조선 왕조의 양반 6. 조선사를 버린 중국&조선사를 지닌 한반도 중국인(양반)
출판사의 평론 역사에 반역/歷史於反逆 -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카(1892-1982)에 의하면 역사는 확인된 사실을 모아 놓은 것이며 역사가는 그러한 정보들을 자신의 역사관에 따라 정돈하는 것이라고 피력하였다.
또한 역사적 사실이란 정확성이 매우 중요하여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장소를 분명히 밝히는 것은 역사가의 의무이며, 19세기 이후는 사실들을 숭배한 위대한 시기라고 단언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문명의 우월주의적 산물인 영국의 ‘브래타니카’ 사전의 기록을
전혀 여과 없이 받아들이며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필자가 디지털 시대의 풍부한 역사적 정보를 종합한 결과
아시아에 조선이라는 나라(1392-1910)는 중국대륙에서 500년 이상 존재했던 유라시아의 대제국이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이 중국대륙을 분할하여 지배하였던 19세기 무렵부터 약 100년간의 역사는 조선에 관한한 결코 E. H.카의 말처럼 ‘사실을 숭배한’ 진실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 당시 서구열강들은 아프리카, 인도, 인도차이나처럼 중국 대륙을 영구히 지배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위정척사파인 대륙조선의 양반들을 한반도로 축출하고 조선의 역사를 한반도의 역사로 축소, 왜곡하였으며, 이러한 서구 열강의 엄청난 음모는 일본에 의해 실행에 옮겨지게 된 것이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장소이다.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또한 역사의 본질이란 어떤 역사를 실현한 주체세력이 누구였느냐를 가늠하는 것이다 조선은 유교이념을 실현하는 철저한 관료제사회였고, 이러한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양반계층이었으며 양반은 조선사회의 특권층이었다.
- 조선 역사를 조작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필연적으로 세계 1,2차 대전을 초래하였으며,
전 세계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대륙에 존재했던 조선의 역사는 열강의 음모대로 대륙에서 사라져버린 채 아직까지 진실을 찾지 못하고 미궁을 헤매고 있는 중이다. 불과 100년 전까지 만해도 대륙에서
대한제국으로 당당하게 존립했던 조선이 하루아침에 한반도에 있었던 조그만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숭배한다는 현대사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왜 지금까지 조선의 진실이 밝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조선의 실체를 아는 무리들은 왜 침묵을 하는 것일까?
필자는 본인의 저서를 통해 조선 역사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고,
한반도 조선인의 역사적 정통성을 찾는 모든 가능성을 독자들에게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필자는 아직도 과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조선역사날조세력’을 경계하면서 반드시 위대한 조선사를 되찾을 것을 스스로 다짐하였다. 한편 20세기 세계경제를 지배했던 다국적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독점하여 재벌이 되었으며 이러한 독점 자본주의의 폐해는 칼 막스의 이론처럼 새로운 신분계층의 출현으로 인한 무산자 사회계급혁명을 달성하였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일어난 수차례의 충격적인 사회혁명은 러시아 제국과 조선왕조(대한제국)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였다. 특히 러시아에서 일어난 소비에트 공산주의 혁명을 신봉했던 모택동은 1948년 장개석 국민당을 대륙에서 몰아낸 후, 지주계급을 본격적으로 탄압하였고, 1950년 6.25 전쟁 때에는 조선인을 전선으로 보내 그들을 홀대하였다.
모택동은 대약진 운동이 실패하자 문화혁명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국민들의 의식구조를 완전히 바꾸려고 광분하였다.
즉 어린 홍위병을 앞세워 지식인들을 탄압하였으며, 조선왕조의 흔적을 대륙에서 말끔히 씻어내려고 하였다.
홍위병들은 대륙 곳곳에서 왕릉을 파헤치고 비석을 부수었다. 그들은 유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숙청했으며 수많은 사서와 족보를 불태웠다. 대륙에 남은 조선 양반들은 무참히 처형당했으며 지식인들은 돼지농장으로 보내졌다. 오늘날 동북공정을 지향하는 중국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조선 왕조의 유물을 사들이고 있지만, 중국 공산당이 조선의 역사를 다시 부활하는 것은 곧 그들의 자멸을 뜻하므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때 다국적 기업의 재벌들은 조선에 세계경제의 기반을 움직일 정도의 막대한 금이 매장되었다는 것을 알고 대한제국의 이권을 독점했었다. 필자는 대한제국의 등장을 조선의 금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 증거로 1902년 6월 14일자 뉴욕타임즈 사설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제시하였다.
- 고종황제는 뉴욕 월가의 대주주였으며 큰 손이었다.
필자는 1장 지도의 비밀에서
조선 태종 때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숙종 때 곤여만국전도를 크게 실어 조선의 강역이 유라시아대륙이었음을 소개하였으며,
대한제국을 증명하기 위해 서구열강들이 제작한 그 당시 지도들을 분석하여 지도 속에 등장하는 CHINESE EMPIRE(차이니즈 엠파이어)가 대한제국이라는 사실을 찾아내었다.
2장에서는 독자들에게 중국의 개념
즉 중국이 곧 조선임을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 훈민정음 제작의 필요성과 동국정운 편찬의 당위성을 자세히 설명하였고, 싼스크리트어는 범어와 다름이 아니므로 영국인들이 만든 싼스크리트어 사전은 조선말 사전임을 밝혔다.
다시 말해 조선말 팔도 사투리가 범어이며, 영국인이 옛 조선의 각 지방 방언을 모아 편찬한 ‘싼스크리트어 사전’이 바로 범어 사전임을 언급하였다.- 유튜브 강상원 박사 검색
즉 영국인은 조선 정복을 위해 조선말 사전인 ‘싼스크리트어 영어사전’을 만든 것이고 강희제(숙종)는 북방 유목민을 복속시키기 위해 강희자전(조선말 사전)을 만들었으며 일제는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조선사와 조선말 사전을 만든 것이다.
3장과 4장에서는 중국과 사이四夷의 역사적 관계를 누차 강조하여,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여 황제국(중국)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 이유를 해부하였고,
갑오전쟁(청일전쟁)은 중국(조선)의 제후국인 북이北夷 청나라가
중국의 제후국인 남만南蠻 일본과 전쟁을 벌인 것으로 해석하였고 명성황후의 죽음을 일본의 독자적인 행위가 아니라 서구 열강의 음모세력이 배후에 존재했음을 암시하였다.
또한 러일전쟁도 러시아가 아시아의 유일한 황제국인 대한제국을 대신하여 싸운 것이며 (대의명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조선)의 자원을 노리는 영국과 미국을 대신하여
러시아와 한판 승부를 벌여 서로 대리전쟁을 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일본의 승리로 인해 대한제국은 멸망한 것이며, 곧이어 미국 태프트장관과 상,하원의원 일행 및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대한제국방문을 방문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한 자료를 다양하게 제시하여 그들이 간 곳이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의 한양임을 증명하였다.
5장은 조선의 양반들이 한반도로 대탈출하는 장면을 묘사하였으며
동양척식회사에서 발행한 ‘조선이주수인초’라는 책자를 증거로 제시하였다.
또한 우리가 친일파 인명록으로 알고 있었던 ‘조선신사대동보’와 족보 책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여 대륙의 양반들이 한반도로 이주해오는 결정적인 증거자료로 제시하였다.
결국 조선사가 밝혀지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서구열강들이 지난 100년간의 과오를 제대로 반성할 수 있는 철학적 사상적 배경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고, 일본의 지식인들은 진정한 조선사와 일본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자신들의 대륙 역사를 감추려는데 급급하고 대륙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양반들이 조선말 일시에 대거 한반도로 이주해온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으므로 대륙의 조선사가 우리의 진정한 역사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일본이 만든 조선사와 조선말 사전을 그대로 배우고 있고, 일제 강점기 때 편찬한 교육과정을 미군정이 그대로 답습하여 지금도 우리에게 가르쳐지고 있으므로 민족의 정기가 날로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교육과정을 과감히 개편하여 진정한 조선사와 조선말을 다시 정립한다면 양반 후예의 민족적 자긍심과 자신감은 쉽게 되살아날 것이다. ------------------------------------------------------------
조선시대 전후 한반도 인구는 1500만명이 더 늘어난다.
1800년대만 해도 한반도 인구는 500만명 이내였었다. 혈의 누를 쓴 이인직은 일본 도 신문 회사에 근무할 때 한 말이 있다. " 1901.11.26일자 신문에서 ..2000만 동포로 하여금 앞으로 잠자지 못하게 하겠노라...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발간한 조선이주수인초에 보면, 1910년 한반도 인구통계를 보면, 조선인수는 약 1200만명 정도이다.
10년사이에 한반도 인구는 2000만에서 1200만명으로 800만 정도 줄어든다. 그러나, 1926년 이후 한반도 인구는 2000만명을 다시 넘는다. 백여년사이 2000만-500만=1500만명이상이 늘어나는 것이다. - 257쪽 역사에 반역(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박인수저, 도서출판 거근당 에서 발췌..
분명 우리와 똑같은 지명의 전주(全州)로 중국의 광서장족자치구 계림시의 동북 지역에 위치한 도시다. 온전할 전(全), 고을 주(州) 지명의 한자까지도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의 이름은 아예 호남(湖南) 전주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우연으로 돌리기엔 뭔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같다.
동북부는 호남(湖南)의 경계이고 남부와 동남부는 흥안현(興安縣), 서부는 자원현(資源縣)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은 영남(嶺南)으로 들어가는 요충지로, 역대 전술가들이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끊음없이 다툼을 벌이던 곳이기도 하다. 교통이 발달하고 편리하며 총면적이 4021.19평방킬로미터에 인구는 78만이다. 기온은 따뜻하고, 토지는 비옥하며 강우량이 풍부해 각종 농작물이 성장하는데 적합한 지형이다. 경제작물인 생강, 마늘, 고추는 3대 보물로 손꼽히는데 향기로운 고추는 입맛을 돋구고, 맛있을 뿐만 아니라 병을 치료하는 효험이 있어 수출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논벼는 생산량이 높으며 쌀의 질 또한 깨끗하고 우수해 중국 남방의 '식량창고'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다.
이러한 풍부한 토지와 자원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중국 전주는 강을 끼고 있는 해상교통의 요지다. 강을 끼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는데, 이곳이 결코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전주(全州)라는 지명과 939년부터 시작된 천년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라는 사실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북쪽으로 10여분을 걸어가면 이 곳에도 전주고등학교가 있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028
프라 마우로 지도의 위대한 비밀 ①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121 프라 마우로 지도의 위대한 비밀 ② <연재> 세계사를 뒤흔든 한 장의 사진 (6)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138 서현우 “천하전여총도는 고려인이 그린 진품” http://v.media.daum.net/v/20101022211309160?f=o
아프리카 정확히 그린 조선지도, 조선 태종때 어떻게 가능했을까
태종 2년(1402년)에 완성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 반도의 모양이 거의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이 지도는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프리카-유라시아 지도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도착한 때(1488년)보다 80년이나 앞서 제작됐다. 유럽의 대항해시대보다 앞선 시기에 조선에서 어떻게 이런 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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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15.000년 이전부터 벼농사를 짓고 살고있었음 - 소로리 볍씨 - 검색 물론 그 이전에도 한반도에 살고 있었겠지요. 북한에서 88만년전 구석기 유적 발굴 보도..
이후 14.000년경 한반도에서 산동성까지 물에잠기자, 내몽고 화덕현으로 옮겨(마고시대) 살다가, 이후 물이 빠지자 한반도로 이주하기도 하고, 일부는 중동.유럽.미국.남미로 아프리카로 진출... 흑피옥 글 참조
이때 처음 미국 도착한 사람이 인디언이됨. 이후 8.000년경 2차로 도착 4.000년경 3차로 도착 - 내글 인디언 참조
콜롬부스가 1492년 미국발견당시 인디언이 6.000만명 정도 되었는 모양. 이후 유럽 백인들 기독교인들을 끌고와서 전도를 해도 기독교를 안믿는다고 학살 시작.. 1776년 7월 4일 미국이 영국을 물리치며 독립선언..이후 인디언 95% 정도 학살.. 그런데 1776년에 일루미나티를 설립?
결론은 마고시대 14.000년전까지는 한반도가 주무대, 이후 내몽고,천산,곤륜산 근처에 마고성이 수도였고,이후 바이칼호 근처. 삼국시대.고려.조선시대까지 낙양.장안이 속한 간도지역에 수도가 위치..
고구려.발해 후손인 징기스칸 글 참조.
동시대 왕인 고구려인지.신라 후손인지 훈족은 100년간 유럽 역사를 재편시킴.. 그중에서 아틸라왕은 로마를 굴복시키고 조공을 받음..
이탈리아의 유래가 아틸라라고 추정. 헝가리의 유래도 훈가리라고 추정. 헝가리.루미니아,불가리아는 아틸라 후손이 많다고 함. 프랑스에도 잇고..유럽전역에 퍼져 있겠지요.
1905년 을사늑약 체결후 간도(동간도,서간도.북간도.연해주)에 잇던 동포들이한반도로 강제나 자발적으로 이주해서 인구가 급증했겠지요.
1906년도에 570만명 에서 2년후인 1908년 1350만여명 불어난것을 알수있다
1.890년경 고종때부터 국력이 약해지자, 미.영,프,소.중.가짜 일본이 합작으로 조선을 멸망시키고, 중국에 있던 대륙의 조선역사를 지우면서 조작..
한반도에서는 일본과 이병도가 1920년대 초부터 반도 조선사 연구회와 조선사 편수회를 설립하여 조선의 대룩역사를 없애고 한반도로 축소시켜 집어넣음..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영국, 유대인 도움으로 장개석과 치열하게 싸워 이겨서,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 한족의 역사는 5%밖에 안된다고 중국학자가 양심고백 - 현재 감옥살이중- 이을형 전 교수
관동대지진,난징대학살때 조선인을 엄청나게 학살.. 모택동이 6.25때는 꽹가리를 치며 조선인을 앞장시킨건 조선인 말살정책.. 이것은 대륙의 조선역사를 아는 조선인을 없애기 위해...
해방후 북한의 일본인은 압박으로 일본으로 돌아가거나, 남한으로 이주..
남한에 살던 일본인은 절반은 돌아가고, 절반은 36년간 쓸어모은 재산이 아까워 가지못하고, 학살 당할까 싶어 산골로 피신.. 한국 100대기업 창업주 중에 30명이 진주시 지수면 지수초등학교 동문..이게 가능? 이병철 구인회가 여기 동문
이후 이승만이 반민특위 해체하고 친일파를 등용해서 (김창용 특무대장) 조선인 학대 학살 시작.. 도시로 몰려들어 요직을 차지하며 호적세탁을 했다고 봄.. 대법원장 부터 정부요직은 호적세틱한 일본인 추정... 호적세탁,족보 끼워넣기는 식은 죽먹기? 서울 경찰서장 99%가 친일파 (개명한 일본인 추정)
당시 한국에 남은 일본인 130만명 추정.. 현재 증손자 까지 하면 800만명 이상.. 지배층 1%중에 80%는 호적세탁.족보 끼워넣기한 일본인 후손이라고 봅니다. 명박의 제적등본을 보면 모친이 일본인 추정.. 지금 친일파 후손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해방후 한국인으로 개명한 일본인 후손이라고 짐작합니다.
6.25도 루즈벨트와 스탈린이(둘다 유대인) 한민족을 말살시키기 위해 일으킨 전쟁.. 1945년 얄타회담때 둘이 비밀리에 남북분단 시키고, 이후 전쟁을 하기로 했다는 미국문서 발견..
히틀러도 자살한게 아니고 아르헨티나로 망명하여 80년대까지 살았다는 미국 문서보도.. 2차대전도 교황청이 히틀러에게 자금을 대주어 일으킨 전쟁.. 유대인은 양쪽에 무기팔아 챙김..(오리지날 유대인은 로마시대 마사다 전투에서 전멸) 선택받은 민족=선민...영어사전에 chosen people(조선 사람들)
1차대전도 배후는 교황청.. 나플레옹 배후도 교황청. 임진왜란도 배후는 교황청. 6.25를 끝으로 조선의 대륙역사는 지우고 없애고 세계역사 조작 완성?
18세기 까지인가 미국.영국.프랑스,스페인.일본..기타 강대국들은 해적질로 먹고 살았다고 함.
루이 14세인가 실록이 정조인가 영조인가 실록과 비슷하다고 함. 이건 규장각 도서를 훔쳐가서 조선왕의 역사를 복사해서, 프랑스 왕의 역사로 조작해서 편찬한걸로 추정..
문재인이 러시아 방문때 푸틴이 조선시대 검을 선물했지요.. 이것은 찬란한 조선의 역사를 찾아 바로 세워라...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통일후 간도를(한반도 1.5배) 찾고 단군.삼국시대.고려.조선의 역사를 찾아야겠지요 |
한반도의 명칭이 대도시 위주로 조선 명칭으로 카피될때 군소도시들은
이런식으로 마구잡이(?)식 개명이 있었습니다.
제주도 각 지역을 한반도에서 이주한 주민들을 분리해서 행정구역을 다시 만든 꼴이네요...
일제시대 유명인사들을 3개 부류(왕족,귀족,사족)로 나누어 사진(일부)과 함께
수록한 1312쪽에 걸친 방대한 신상자료이며,
친일파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稀姓(희성)과 여성인사들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포섭대상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이 책에는 친일 고관대작들을 조선의 '신사'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 기록된 조선의 멋쟁이 신사는
먼저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이근태,박재순 등 늑약의 첨병을 비롯
친일고관대작 60여 명이다.
유림과 석학 심지어 효자 효부,열녀까지 전국의 영향력 있는 인물을 총망라해
주소와 나이,조상,벼슬,일화 등 자세한 신상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어떤 사람은 그의 성격까지 적어놓고 있다.
예를 들면 ,
울유성적蔚有成績(훌륭한 치적을 이루었다),
수신근행持身恭儉(지신공검: 몸가짐이 공손하고 검소하다) 등이다.
'서민은 지도급 인사를 따라 오게 마련이다' 이라는 서문의 한 대목으로 미루어
일본이 영향력 있는 전국의 유지들을 회유하는 방법을 동원해 식민작업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협박과 회유를 했을 것이다(돈을 갹출케 했을 수도 있다).
오가끼는 일본에서 신문사 사장을 지낸 일본의 전형적인 국수주의자이다.
이 자가 1906년 한국으로 건너왔는데 한국인들의 식민지화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이 인명사전은 오가키가 6년간에 걸쳐 치밀한 정보수집 끝에 편찬한 것이다.
실제 친일운동에 앞장선 인물들의 상당수가 실려 있는 이 조선신사대동보에는
그러나 항일운동에 앞장선 인물들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친일진상규명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물론 이 책에 있다고 해서 모두 다 친일파다, 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여하튼 영향력이 있던 사람은 틀림없다.
오가끼(大垣丈夫)와 김윤식(金允植)의 서문이 함께 실려 있는데,
"신사(紳士)"라는 말이 있다.
이 책에서의 신사는 강점되기 이전 조선의 지배계층임을 알 수 있다.
또 특정 성씨의 계보만을 정리하지 않았음에도 ‘대동보’의 형식을 취한 것은,
조선의 유력한 계층을 전국적으로 망라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전 조선의 지배계층임을 알 수 있다.
이 "신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지적 수준이 적어도
"漢文修學"(한문수학)이라 했으니 지식층이다.
《조선신사대동보》를 만들기 위하여 방침을 세운 것이 1912년(大正元年) 12월이다.
도대체 인원은 얼마나 될까?
왕족(王族): 5명; 리태왕[李太王: 熙(희), 載晃(재황)]·리왕[李王:(척)]·
왕세자[王世子: 垠(은)]·리강공[李綱公: 리재황(李載晃)의 2男]·
리준공[李埈公: 흥선대원군(興善大院君)의 왕손(王孫)]
귀족(貴族): 57명; 리재완(李載完)·박영효(朴泳孝)·윤택영(尹澤榮)·김윤식(金允植)
·민영휘(閔泳徽)·유길준(兪吉濬)·박제순(朴濟純) 등
사족(士族): 11393명;
156姓
[李: 2193, 金: 1895, 朴: 765, 鄭: 535, 趙: 284, 崔: 458,
韓: 191, 沈: 108, 徐: 144, 宋: 133, 尹: 220, 權: 315, 洪: 192, 申: 193, 柳: 199,
南: 109, 閔: 65, 吳: 129, 姜: 137, 安: 161, 任: 69, 兪: 54, 曺: 85, 黃: 138, 成: 69,
張: 203, 具: 44, 林: 138, 丁: 40, 嚴: 28, 元: 54, 許: 62, 白: 154, 梁: 46, 睦: 9,
呂: 19, 蔡: 48, 慶: 4, 盧: 47, 羅: 35, 魚: 15, 郭: 32, 辛: 57, 邊: 31, 愼: 10, 高: 58,
裵: 103, 河: 37, 禹: 53, 孫: 92, 尙: 3, 卞: 17, 琴: 24, 孔: 17, 孟: 8, 程: 2, 田: 31,
朱: 130, 石: 8, 周: 10, 康: 50, 奇: 4, 都: 36, 吉: 10, 南宮: 7, 皇甫: 8, 文: 43, 楊: 34,
魯: 9, 玄: 28, 池: 24, 咸: 29, 車: 30, 宣: 9, 全: 103, 陳: 22, 王: 9, 劉: 37, 玉: 6,
方: 16, 廉: 12, 千: 19, 魏: 12, 蔣: 28, 馬: 10, 印: 14, 秋: 21, 明: 10, 卓: 4, 秦: 4,
龍: 7, 芮: 5, 蘇: 4, 延: 4, 奉: 7, 賈: 1, 太: 7, 薛: 6, 智: 5, 昔: 3, 表: 7, 史: 3, 諸: 3,
諸葛: 5, 司空: 4, 余: 8, 鞠: 3, 殷: 3, 潘: 3, 夏: 3, 黃: 3, 牟: 8, 庾: 1, 陸: 3, 皮: 1,
卜: 2, 杜: 3, 堅: 1, 施: 1, 片: 1, 承: 6, 唐: 1, 晉: 2, 楚: 1, 桂: 6, 于: 1, 萬: 1, 范: 1,
弓: 1, 景: 2, 胡: 3, 溫: 2, 慈: 2, 簡: 2, 夫: 1, 房: 4, 路: 2, 弼: 3, 陰: 1, 邢: 1, 眞: 1,
公: 2, 彭: 1, 賓: 1, 설(人+契): 2, 化: 1, 東方: 3, 西門: 1, 獨孤: 6, 單于: 1, 頓: 1,
甘: 1, 龐: 1, 鍾: 1, 連: 1, 夜: 1]. 효자(孝子): 238명 열녀(烈女): 172명
총계: 1만1808명이다.
대단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뿔사!
당시에는 대단한 가문의 영광이었을지 모른다.
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온갖 협박과 회유를 했을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100년 후 오늘날 천추의 한이 될 줄 그들은 꿈엔들 생각했을까?
도리어 가문의 수치가 된 것이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나의 조부나 증조부가 있지 않을까 해서 부랴부랴 찾아봤다.
천만다행이었다.
이 책에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조상도 들어 있다.
얼마나 무서운가?
눈길을 걷는 사람이여
어지러이 걷지 말아라
지금 그대의 발자취가
먼훗날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라.
서산대사의 말씀이다.
김구선생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성경에도 함부로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했다.
일본인.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나의 컬렉션 이야기
박찬
일제금융수탈자료들
2006년 2월 17일 밤 10시 5분
난생 처음 나의 육성이 장시간 전파를 타고 전남 동부 지역에 울려퍼지는 일이 생겼다.
KBS 라디오 <김유화의 금요초대석-한밤의 문화산책>에 출연한 것이다.
여태까지 끽 소리 한번 안 하고 내 할 일만 묵묵히 하면서 진득하니 지냈더니
드디어 이 순촌놈(순천놈)도 출세한 날이 온 것이다!
내가 국립지방대 철학과를 나왔으나
그래도 '영어'하면 순천 지역 학원가에선 단연 톱이었다.
한 마디로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어를 가르쳐 밥을 먹은 20여 년 동안 매스컴이 눈길 한번 안 주더니,
이제 와선 저희가 한번 모실게요, 하다니... 암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방송국에 근무하는 작가라는 분이 프로 진행자인 김유화씨와
내가 서로 주고받게 될 내용을 담은 원고를 미리 준비해줘서
서로가 버벅거리지 않고 무사히 방송을 끝냈다.
다음은 그때 그 원고다.
Q(이하 김유화) 2월 27일부터 순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일제강점기 조선경제수탈자료전>에 전시될
역사 자료들을 수년간 직접 수집해 오신 고문서 수집가 박찬 씨 모셨습니다.
인사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A(이하 박찬) 네, 안녕하세요.
Q 조금 전에 제가, 고문서 수집을 해 오신 분이라고 소개를 했는데, 맞나요?
A 네, 맞습니다. 맞구요,
고문서를 테마별로 수집해 오고 있는데, 단순한 수집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이들 자료들을 내 나름으로 연구 분석하여 공개하는 일까지 합니다.
Q 먼저, 2월말에 있을 전시회 소식부터 여쭐게요, 전시회 이름이?
A 일제강점기 조선경제수탈자료전 입니다.
Q 그럼, 일제 강점기 역사 자료들이 되겠네요?
조선 경제수탈 자료... 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얘기하는 건가요?
A 금융을 비롯한 산림과 토지 수탈, 노동력 수탈 등 총체적인 수탈 자료들을 말합니다.
Q 사실 올해가 3.1 만세운동이 있은 지... 87년째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일제의 경제수탈 자료들이 전시됐던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A 이번에 공개될 자료는 70종 300여점으로,
이처럼 방대한 사료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적은 없습니다.
Q 네... 제가 지금, 전시회 자료가 담긴 소책자를 갖고 있거든요? 어제 나온 것이라고 하던데...
책 속에 보면, 전시될 자료들 사진이 담겨있고요...
몇 가지에 대해선 설명을 좀 들어야 할 것 같아요...
A 대동아전쟁 물자지원용으로 보험 가입을 강요했던 자료들로는
전시보국채권, 특별보국채권, 전시저축표, 전시저축채권, 애국채권 등이 있고,
이밖에 각종 보험증서와 보험료 영수장, 출자증서도 있고요, 또 소작료 수납부도 있습니다.
Q 이런 자료들은 어떤 사실들을 보여주는 건가요?
A 이들 자료는 아까 잠깐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일제가 대동아전쟁 물자지원용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구입을 강요했던 것들입니다.
하지만 일제의 패전으로 순식간에 휴지가 돼 버린 것들입니다.
Q 이들 중에서 특히, 역사적 가치가 가장 큰 자료들이 있는지요?...
A 사료마다 우리 조상님들의 애환이 서려 있기에 다 가치가 있다고 보구요,
그 중에서 이번 전시회 포스터가 된 보험 가입 강요 리후렛 입니다.
일본 군대 깃발인 욱일승천기, 탱크 사진과 함께
‘지키자 조국, 가입하자 보험’이라는 구호가 찍혀 있는 거 말입니다.
Q 한동안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일을 두고 나라 전체가 소란했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공개되는 자료에
반민족적 매국 행태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포함돼 있어서 또 눈길을 끌어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A 이완용의 친필, 친일 유림 인사들과
일본 고위층들이 주고받은 시를 모은 시집 ‘선린창화’가 있어요.
가장 폭발력이 있는 자료는 ‘조선신사대동보’라는 친일인명사전 입니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고관대작 61명을 포함,
조선팔도 지도급 인사 1만명의 신상명세가 들어 있습니다.
Q 그런데요, 조금 전 설명해 주신 이런 자료들을 모두... 박찬 선생님 개인이 갖고 계신 소장품이라고요?
A 네.
Q 쉽게 수집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닐 텐데, 이 역사 자료들을 어떻게 모으신 것들인지?
A 전국 고서점과 골동품 가게를 돌며 수집했습니다.
Q 이번 전시회에 내실 전시물들은 얼마나 되나요?
A 70종 300 여점입니다.
Q 이 자료들을 모으는 데 기간은 얼마나 걸린 거예요?
A 60년대까지만 해도 이들 자료가 적지 않았다는데,
1964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으로 인해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길이 꽉 막혀버려 그만 휴지가 되고 말았죠.
누가 휴지를 애지중지 보관했겠어요? 그냥 버렸죠.
그러다보니 거의 멸실되다시피 해서 이제는 희귀 자료가 됐지요.
꿈에 용 보는 격으로 가끔 한점 두점 이렇게 나오는 것을 수집하다보니 20여 년이 흘렀답니다.
Q 그렇게 모은 자료들을 전시하게 된 계기는요?
A 순천시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냥 묻어두기 아까우니 시민들과 공유하면 좋겠고,
특히 학생들에겐 교육적 효과가 클 것 같다면서요.
Q 이 자료들은 지금 남도평화문화재단을 통해 선보이는 것이잖아요?
그 재단과는 어떤 계기로?...
A 맞습니다. 남도평화문화재단 이사장이신 조원래 교수님께서 저명한 사학자시라
검증 및 자문을 받는 등 유리한 점이 많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Q 네... 지금 여러분께선 KBS 순천방송국에서 보내드리는 한밤의 문화 산책...
금요일 순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오늘, 일제강점기 조선경제수탈자료들을 모아오신 박찬 씨와 함께하고 있구요,
잠시 쉬어가려고 합니다. 음악 한곡 듣고 오지요...
(음악)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안치환
한밤의 문화 산책 함께하고 계십니다.
조금 전에 들은 곡은 박찬 씨가 좋아하신 곡인데요...
노래에 담긴 사연이 있나요?
A 전 음치인데요, 정신이 살아있는 노래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Q 오늘... 박찬씨 모시고,
일제강점기의 잔재들을 보여주는 자료들에 대해서 얘기 나누고 있는데요,
이런 옛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한 데는 아주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면서요?
A 그러니까 20여 년 전 한 골동가게에서 우연히 일제 말기의 보험영수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험료 납입 증명 도장이 빼곡히 찍힌 것이었죠.
저는 그 빨간 도장 자국들을 보면서 공출이다,
성금이다 뭐다 해서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강제로 꼬박꼬박 보험료를 챙겨야했던 분의 핏방울을 본 것만 같아 무척 가슴 아팠습니다.
1943년 제2차 대전 당시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발행한 조선총독부 체신국 간이보험의 경우,
당시 인구 2천 5백 만명의 절반 가까운 천 백만 여 건의 계약이 이뤄져
매달 1원 씩, 현재 가치로는 10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들 자료를 모아 모아온 겁니다.
"돈 없으면 양식이라도 달라니까 몇 말씩 냈고
소가 송아지 낳으면 또 받고
나무라도 팔아서 보태고...
이 종이는 나뿐만 아니라 조선 사람들 기름을 죄다 뺀 거다."
기름 덩어리..."(허만문 89세 씨 증언)
Q 수집해 오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수집 과정에서 있었던 얘기들 좀 해 주세요.
A 제가 처음 이들 자료를 찾는다는 소문이 나돌자,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을 돈하고 바꾸다니 돌아도 한참 돈 사람이여” 했다나봐요.
Q 사실, 박찬 씨처럼 이런 고문서들을 찾아내고
소중한 자료를 지켜내려고 하시는 분들... 많지 않거든요.
이번에 이렇게 소중한 자료들을 시민들을 위해서 공개를 해 주셨는데...
앞으로도 고문서 수집은 계속하실건가요?
A 고문서는 그 자체가 유일무이한 희귀문서이며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인멸되기 전에 수집 보존하고
또 세상에 널리 알려 학계의 연구 자료로 제공하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누군가는 이 일을 계속해야하지 않겠습니까?
Q 이번 전시회... 2월 27일부터잖아요,
특히 3.1절에 즈음해서 열리는 것이라 더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군요.
오늘 소중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으실텐데요. 이번 기회...
잊혀질 뻔한 역사의 소중한 자료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금요 초대석이였구요.
오늘은,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한 조선의 경제 수탈 자료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들을 찾아 수집해 온
고문서 수집가 박찬 씨와 하께 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2월 27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순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료들이 많다고 하니까요,
생생한 역사의 흔적들, 확인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음악) 라 마리짜 La Maritza-실비 바르탕 Sylvie Vartan
KBS 방송에 출연하기 며칠 전 일이다.
어디서 취재원을 얻었는지 여수 MBC 취재진이
일찌감치 11일께 나의 집에 와서 취재활동을 벌였다.
그들은 <조선신사대동보>를 특종 기사거리로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최경언 씨는 언론 밥을 20여년 먹은 베테랑인데도 긴장됐는지 무려 7번이나 NG를 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다음날 엄기영 앵커가 진행하는 밤 9시 뉴스를 통해
'친일하면 신사?'라는 제목으로 전국적으로 보도되었다.
2월 27일 오후 6시에 전시회는 예정대로 오픈 되었다.
남도평화문화재단 최호 사무국장이 개량 한복을 입고 오픈 행사의 사회를 보았다.
그는 공사다망하심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조선경제수탈자료전>을 관람하러 오신 내빈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오늘 이 자리는 사료를 통해
과거 일제의 만행과 친일인사들의 반민족적 행태를 생생하게 되짚어보고
다시는 이와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마음 자세를 가다듬는 역사적인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비롯하여
유창종(순천시장권한대행),
강길태(순천 청암대 학장),
김광배(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
조원래(순천대학교 교수),
오재선(일제강점하 사적재산권청구위원회 총무이사)
보성읍교회 목사 등이
전시회 개막 커팅을 했다.
이날 나는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랴,
출품된 사료를 설명하랴 도무지 정신이 없었다.
언론의 반응은 대단했다.
연합뉴스 남현호 기자(현 러시아 특파원)가 선수를 친 기사를 보고선
와따매 저거 월척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던지
지방 신문들이 앞다퉈 남 기자보다 더 큼직하게 보도를 해댔다.
자료를 컬러판으로 찍은 신문사도 더러 있었다.
이 열기가 언제쯤 가라앉을꼬 했더니 3.1 절 아침에는
MBC에서 김은혜 앵커우먼이 나와 이 전시회를 자세히 보도했다.
한마디로 대박을 터뜨린 전시회였다.
앞서 김광배 씨를 소개했는데,
보험소비자연맹에서 그를 보내 이 자료들을 국회로 옮겨
한번 더 전시회를 갖자고 날 은근히 꼬드기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소린고 했더니, ~~~
메스컴이 이렇게 야단법석을 피우자, 평소 관심없던 사람들까지 대체 먼 일이랑가, 하고 와서
구경 다하고 돌아갈 때는 내가 듣기에 아주 통쾌한(?) 욕을 냅다 질러대는 것이었다.
"때래쥑일 쪽바리 새끼들!"
그러던 어느 날 생전 첨 보는 사람 예닐곱이 전시장에 들어왔다.
일행 중 유난히도 키가 작고 아주 못 생긴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그가 자료들을 둘러보며 자꾸 전문가 행세를 하지 않는가.
이쯤 되면 나도 존심 팍 상하지 않겠어?~
그래서, 짐짓 독수리 눈깔로 게 뉘요? 하는 눈짓을 보냈더니
곧 특유의 소년틱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고는 박한용... 입니다, 한다?
가만, 박한용?
그럼 당신이 민족문제연구소의 보물?
나는 그날 그렇게 처음으로 나와 갑장인 박한용의 현판을 본 것이다.
임헌영 소장만 쏙 빼놓고
사무총장, 연구원, 사무원 등 모든 직원들이 서울서 차를 몰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
◀ANC▶
3.1 만세 운동 87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의 생생한 경제 수탈자료들이
순천문예회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정신까지도 수탈해 간 자료들도 전시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경언 기자가 보도합니다.
◀VCR▶
'지키자 조국, 준비하자 보험'
일제가 조선 총독부 등을 앞세워
군수물자를 조달하기위해
얼마나 혈안이었는 가를 짐작케 하는
홍보 전단지가 이번 전시회 성격을 말해줍니다.
전시저축채권을 비롯한
각종 보험 전단지와 증서에서 부터
한푼이라도 더 수탈하기위해 발행한
특별 보국채권까지, 그 종류도 많습니다.
순천부사를 지낸 친일인사
김윤식의 초상이 담긴 화폐는
유력인사를 수탈의 앞잡이로 이용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휴지가 될 뻔했던 것들이
이제야 빛을 보고 있습니다.
◀INT▶
이밖에도 조선의 유명인사 만명이 수록된
조선신사대동보와 매국노 이완용의 친필,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과 친일 고관들이
시 모임을 갖고 펴낸 '선린창화' 등
정신을 수탈해 간 자료들도 즐비합니다.
반면, 의친왕 이강, 매천 황현 등
항일애국지사의 친필유묵도 선보여,
우국충정의 혼백을 느낄 수 있습니다.
◀INT▶
순천시가 주최하고
남도평화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68종 230여점이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수탈 행위를
알리는 방대한 자료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각계의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최경언입니다. /
◀END▶
퍄오찬 18.08.15. 07:27
A 제가 처음 이들 자료를 찾는다는 소문이 나돌자,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Q 사실, 박찬 씨처럼 이런 고문서들을 찾아내고 소중한 자료를 지켜내려고 하시는 분들... 많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