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역사

17~18세기 지도로 본 조선팔도는 어디인가?





17~18세기 지도로 본 조선팔도는 어디인가?

1621년에 제작한 무비지 지도와 1776년 왜인들이 출간한지도와
1790년대 그린 여지전도를 보면,
조선팔도가 직방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방패연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지도에 근거한 조선8도를 알기쉽도록 방패연에 옮겼다.
원안은 경기 한양 한성이고,
 빨강색 원은 황제 천자가 거하는 궁궐이다.
제일 아래에 한양의 크기에 대해 세종실록의 기록을 올려 드린다.
▲남북한 지도.
직방인 도는 강원도 충청도 황해도로 딱 3도만 연결됩니다.
그래도 이 땅 서울이 태고부터 조선까지의 수도였다고 믿습니까?
식민노예 버러지들인 식민반도사관자들은 믿겠지요.

▲1621년 무비지가 제작한 조선도
(지도에 채색한 이유는 조선팔도 지명과 역사적 중요지명이 뚜렸하게 잘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1713年 일본서 간행했다고 알려진 조선국지도.

두 지도를 보면 조선팔도(조선8도) 외 동경 서경 남경이 나와있다.
그러나 북경(평안도 평산도호부. 지금의 내몽골)이 표식되지 않았다.

또한 대동강 ㆍ압록강이 서쪽에 위치한 것을 알 수 있다.
대동강과 압록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바로 위화도(위주와 화주를 합친지명).

ㅡ리성계 위화도 회군은 고려왕이 모반을 꿰하여 회군했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ㅡ교과서는 요동을 정벌하라는 고려우왕의 명령을 받은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요동은 이미 고려 대총관 처명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무슨 요동정벌인가? 조선실록 태조총서 기록

〔○〕恭愍王二十一年壬子六月, 倭寇東北界。 以太祖爲和寧府尹, 仍爲元帥以禦之。 遼城將處明, 時年已老, 從太祖往和寧。 一日出獵, 地險仄凍滑, 太祖馳下峻坂, 射大熊數四, 皆一矢而斃。 處明歎曰: "僕閱人多矣, 公才天下一人耳。
" 공민왕 21년(1372) 임자 6월,
왜적(倭賊)이 동북계(東北界)에 침구(侵寇)하니 태조를 화령 부윤(和寧府尹)으로 삼고,
 그대로 원수(元帥)로 삼아 왜적을 방어하게 하였다.
 요성(遼城)의 장수 처명(處明)이 이때 나이 이미 늙었는데
 태조를 따라 화령(和寧)030) 에 가서 어느날 나가 사냥하다가 땅이 험하므로 얼음판에 미끄러졌다.

태조는 가파른 비탈을 말을 달려 내려와서
 큰 곰 서너너덧 마리를 쏘아서 모두 화살 한 개로 죽이니,
 처명이 탄복하면서 말하였다.
 "제가 많은 사람을 겪어 보았지만, 공(公)의 재주는 천하의 제일입니다."
- 태조총서 52번째기사. 태조가 화령 부윤이 되어 동북면에 출몰한 왜구를 방어하다

위화도 회군이 1388년이라는데,
저 요성(遼城-요동성)의 장수 처명(處明)이 등장하고
태조와 사냥을 나가는 것은 1372년의 일이니
요동은 고려 강역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뻔뻔한 거짓 입과 교과서로 학생들에게 가르쳐 헬조선(Hell Chosun)화 하고 있고,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한게 한국사다.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 제목: 여지전도(1)
제작년도:18세기말~19세기초
제작자:미상
========================================================
여지(輿地)라 함은 수레로 갈 수 있는 땅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진실은 조선이 관할하는 땅을 뜻한다.
  여지전도에는 중공대륙은 물론,
 리미아(아프리카), 가본달리(호주), 구라파를 포함하며 아세아 전체를 그리고 있다. 
 이는 명백한 대조선의 본토지도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제목:여지전도(2)
제작년도:18세기말(정조황제 15년, 1791년 이후)
제작자:미상

========================================================

조선이 이 땅 한반도라면 한반도만 그리면 될게 아닌가?
왜 유라시아, 리미아(아프리카), 구라파를 그리고 가본달리(호주)까지 송두리체 그려놓았냐는 점이다.

통치관할지역이 아니라면 상세하게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직접 탐험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상세하게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도에 중공대륙을 아주 세밀하게 표기한 것은 정조황제가 거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대조선 한양, 한성부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원안 한성부.

조선왕조실록 世宗 148卷 地理志/ 경도한성부(京都漢城府)
封境 【東至襄陽五百四十里, 西至豐川六百里, 南至海珍九百八十里, 北至閭延一千四百七十里,
 東北至慶源, 東南至東萊八百七十里, 西南至泰安三百九十里, 西北至義州一千一百四十里。】


봉경(封境)
【동쪽으로 양양(襄陽)에 이르기 5백 40리,
서쪽으로 풍천(豐川)에 이르기 6백 리,
남쪽으로 해진(海珍)에 이르기 9백 80리,
북쪽으로 여영(閭迎)에 이르기 1천 4백 70리,
동북쪽으로 경원(慶源)에 이르기 2천 1백 90리,
동남쪽으로 동래(東萊)에 이르기 8백 70리,
서남쪽으로 태안(泰安)에 이르기 3백 90리,
서북쪽으로 의주(義州)에 이르기 1천 1백 40리이다.】

조선의 한양, 임금이 사는 중국,
경도 한성부의 면적이 무궁화 화려강산 '삼천리(3000리)'나 됩니다.
지금의 서울특별시장, 즉 당시 한성판윤이 다스리던 땅의 경계가 삼천리란 뜻입니다.
지금 서울시는 100리정도 되나요?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