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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사설/미국의 대한경제 「원조」 정책의 본질을 분석함(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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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미국의 대한경제 「원조」 정책의 본질을 분석함(상)


민족일보 다시보기'<88>


이창훈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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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8  14: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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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한경제 「원조」 정책의 본질을 분석함(상)


=한국전피해총액 에도 미달하는 미국의 원조=
 

미국의 대한경제정책의 본질이 한국민의 「벗」이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벗을 가장한 「적」성을 띤 것인가에 대하여

국민적인 비판의 소리가 날로 팽배하여지고 있다.

해방 16년 동안 우리는 너무나 무비판하게도 미국의 『호의』에만 신뢰를 두고 왔다.


이승만독재정권의 맹목적인 미국노력 추종주의에 작화되어

정치・경제적인 일절의 불합리 및 모순을 그때마다 통탄하고

독재정권의 무위・무능과 폭압정치를 증오하고 항거하여

마침내는 이승만을 거꾸러뜨리고야 말았는지만

그 실 독재정권의 부패와 횡포를 가능케 하였다고 간주할 수 있는 미국의 대한정책에 대하여서는

 여전히 신뢰를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러한 미국세력 맹종주의는

자칭 애국자랍시는 사대주의적인 보수정객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진보적인 지식층을 비롯하여 청년학생

그리고 노동자 농민들은 무능하고 반역사적인 반동성으로 일관하려하고 있는 장면정부에 대하여

비난의 화살을 집중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 한국정책에도 의아의 눈초리를 날카롭게 하기 시작하였다.


사대주의자가 아닌 자주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보통시민이라면

 미국을 의심해 보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세계의 자유진영 영도국가이며

후진사회와 빈곤한 국가의 『원조자』로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직접적인 『수호』아래

 16년이라는 세월이 경과하였건만

오늘 보는 바와 같은 비극적인 현실사태가 개선되기는 커녕

악화일로에 있으니 여기 관하여 비판적인 검토를 해본다는 것은 오히려 때늦은 감조차 없지 않다.


한국의 현실은 이러하다. 한국의 국민총생산소득이 2,200만 인구

 매 인당 평균해서 백불이하의 저소득국가임을 부인할 자는 없거니와

 이런 평균치 자체가 수자의 마술에 불과한 것은

 이른바 『부익부・빈익빈』의 국민소득의 편기성에서 뚜렷이 반증되고 있다.


주한미국인 자신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듯이

 『ICA성』(Independent Component Analysis, 독립 성분 분석)을 쌓고

외국의 억만장자 부럽지 않게 호사를 즐기고 있는 소수의 졸부층을 제하고서는

 국민의 99%이상이 불안정한 하루살이 생활 속에 시달려있고

내일의 희망조차 막연한 형편 속에서 고달픈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200만명 이상의 절량농가 및 어촌인구들이

 초근목피나 해조 패류 등 속으로 연명하고 있는 전대말문의 참상이야

어찌 다 이루 형언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노동인구의 30% 가까운 250만 명을 넘는 완전 실업자가 로두를 방황하고 있고

생업수단이나 취업을 하고 있다는 인구층의 대부분도

역시 반실업자나 다름없는 불안정한 취업조건아래서

그나마 호구지책이 언제 소멸될지 모르는 암울하고 불안스러운 환경 속에서 지내고 있다.


국내산업은 위축일노에 있고 생산실적은 전체적으로 정체 내지 후퇴하고 있으며

특히 공업생산면에 있어서는 일제시기보다 뒤떨어지고 있다.


기가막히는 것은 농업생산면에서의 후퇴이다.

식량급지대이던 자 남한이 이제 와서는 만성적인 식량부족기근지대로 전락하여

 매년이백만석이상의 미국잉여농산물도입이 없이는 식량수급이 어려울 지경에 처하여 있다.


살인 강도 염세자살 교통사고 폭발물사고 등은 연발되고 있으며

 청소년의 불량화 경향은 심화되고 인신매매 행위까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어

사회적 혼란은 극심하여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노동천시나 노동기피같은 사회적 폐풍은 조장되고 있으며

 일부층의 분수에 지나친 망국적인 사치풍조는 그칠 줄 모르고

 민족고유의 미풍양속은 쇠퇴되고 반면

경조부화한 외래문물이 우리의 독자적인 문화유산들을 마구 짓밟으려 하고 있다.


대중적인 빈곤으로 인한 구매결핍은 아랑곳없이 원조명목의 국제적과잉상품은 범람하고 있고

 미군 P.X및 군사경로를 통한 폐품들의 무제한적인 유출・통용으로 말미암아

국산품은 질식상태에 있는데다가

 밀수는 역시 성행되고 있어 「밀수왕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지칭까지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현 실정인 것이다.


장면정권은 집권 첫날부터 한국의 현 실정을 똑바로 인식치 못하고

그릇된 정책노선에 따라 소위 「경제제일주의」라는 것을 표방하기는 하였지만

그 실천에 있어 무능・무성의함을 노정하고 있다.


사태개선을 위한 자주적 계획을 세우고

국민적인 「내핍건설」을 솔선궁행하려는 모범을 보이지 않았고

 미국의 「원조」에만 애걸한 나머지

 반국민 경제적인 환율인상에 대하여 언질을 제공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주권침해는 물론

국민긍지로 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굴욕적인 「한미경제협정」에 조인을 불득기하면서도

 「감사하다」는 비굴한 자세를 보이어 국민으로부터 냉소를 자아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본 바 같은 식민지예속국가로서의 말기현상같은 한국의 현 실정을 연유케하는데 있어

미국은 한국적인 독재・부패정권과 더불어 공동적 책임추궁을 당할 때는 왔으며

그 역사적인 심판은 불원장래에 내려질 것이다.


미국은 다음과 같은 기본정책면에 있어 한국 및 한국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다.


미국은 「해방자」로서 이 땅에 진주한 시기부터

우리의 자주경제기반을 파양하는데 앞장섰다.

경인지구에 있었던 일제유물들인 전기및 공작기계설비들을 철거・훼손시킴으로서

국민경제의 공업화에 대한 가능성을 말하려 하였다.


미국자신의 국가적 이익때문에

우리로서는 비극인 남북분단을 지속시키려 하였으면서도

 남한의 그나마 많지 않은 공업시설들을 철거・훼손하였다는 사실은

우리들로 하여금 농업국가에서 머뭇거리라고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는

비우호적인 행동이었으므로 새삼스럽게 지탄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은 우리 국민에게 이백만명이상의 인명살상을 결과한 것 외에도

 약 10억불에 달하는 물적 피해를 남겼다.


이러한 물적피해의 대부분은 생산적인 성격을 가졌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우리는 아직도 전쟁피해를 완전히 부구내지 보전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945년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동안의 미국의 총원조액이 30억 정도에 불과한데 비추어

아직도 10억불 이상의 전쟁피해 「보상」을 받아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다.


30억불이나 원조하였다고 하지만

이 가운데는 과잉군수품이던 「레이션・박스」나

 변질된 밀가루 등 속까지 총 합친 것이며

총액의 90%이상은 소비성품 즉 먹고 쓰고 해서 없어진 것이지

자립경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필요한 생산에 기여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이로써 볼 때 미국은 한국의 국토분단 및

한국을 자유세계의 전초기지로서 계속 장악함으로 해서

막대한 국가적 이익을 보아오고 있으면서도

한국민에 대하여서는 전쟁피해조차 제대로 변상치 않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미국의 대한국정책의 본질에 대하여

분석・비판을 히 시도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미국의 대한경제 「원조」 정책의 본질을 분석함(상)



  
▲ 미국의 대한경제 「원조」 정책의 본질을 분석함(상)[민족일보 이미지]

 

美國의 對韓經濟 「援助」 政策의 本質을 分析함(上)

=韓國戰被害 總額에도 未達하는 美國의 援助=

 

美國의 對韓經濟政策의 本質이 韓國民의 「벗」이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벗을 假將한 「敵」性을 띤 것인가에 對하여

 國民的인 批判의 소리가 날로 팽배하여지고 있다.

 解放 十六年동안 우리는 너무나 無批判하게도 美國의 『好意』에만 信賴를 두고 왔다.


李承晩獨裁政權의 盲目的인 美國努力 追從主義에 作禍되어

政治・經濟的인 一切의 不合理및 矛盾을 그때마다 痛嘆하고

 獨裁政權의 無爲・無能과 暴壓政治를 憎惡하고

 抗拒하여 마침내는 李承晩을 거꾸러뜨리고야 말았는지만

그 實 獨裁政權의 腐敗와 橫暴를 可能케 하였다고 看做할 수 있는 美國의 對韓政策에 對하여서는

 如前히 信賴를 두려고 하는 傾向이 있다.

特히 이러한 美國勢力盲從主義는 自稱 愛國者랍시는

事大主義的인 保守偵客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韓國의 現實을 眞正으로 걱정하는 進步的인 知識層을 비롯하여 靑年學生

그리고 勞動者 農民들은 無能하고 反歷史的인 反動性으로 一貫하려하고 있는 張勉政府에 對하여

非難의 화살을 集中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美國의 對 韓國政策에도 疑아의 눈초리를 날카롭게 하기 시작하였다.


事大主義者가 아닌 自主的인 識見을 가지고 있는 普通市民이라면 美國을 疑心해 보는 것은 當然하다. 왜냐하면 世界의 自由陣營領導國家이며 後進社會와 貧困한 國家의 『援助者』로 自處하고 있는

 美國의 直接的인 『守護』아래 十六年이라는 歲月이 經過하였건만

 오늘 보는 바와 같은 悲劇的인 現實事態가 改善되기는 커녕 惡化一路에 있으니

 여기 關하여 批判的인 檢討를 해본다는 것은 오히려 때늦은 感조차 없지 않다.


韓國의 現實은 이러하다. 韓國의 國民總生産所得이 二千二百萬人口 每 人當 平均해서

 百弗以下의 低所得國家임을 否認할 者는 없거니와 이런 平均値 自體가 數字의 魔術에 不過한 것은

 이른바 『富益富・貧益貧』의 國民所得의 偏寄性에서 뚜렷이 反證되고 있다.


駐韓美國人 自身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듯이

『ICA城』(Independent Component Analysis, 독립 성분 분석)을 쌓고

 外國의 億萬長者 부럽지 않게 豪奢를 즐기고 있는 小數의 졸富層을 除하고서는

 國民의 九十九%以上이 不安定한 하루살이 生活속에 시달려있고

來日의 希望조차 漠然한 形便속에서 고달픈 삶을 營爲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二百萬名以上의 絶糧農家및 漁村人口들이 草根木皮나 海조 貝類 等 屬으로

延命하고 있는 前代末聞의 慘相이야 어찌 다 이루 形言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勞動人口의 三十% 가까운 二百五十萬名을 넘는 完全 失業者가 路頭를 彷徨하고 있고

生業手段이나 就業을 하고 있다는 人口層의 大部分도 역시 半失業者나 다름없는

 不安定한 就業條件아래서 그나마 糊口之策이 언제 消滅될지 모르는 暗鬱하고

 不安스러운 環境속에서 지내고 있다.


國內産業은 萎縮一路에 있고 生産實積은 全體的으로 停滯 乃至 後退하고 있으며

 特히 工業生産面에 있어서는 日帝時期보다 뒤떨어지고 있다.


 기가 막히는 것은 農業生産面에서의 後退이다.

 食糧給地帶이던 自 南韓이 이제 와서는 慢性的인 食糧不足飢饉地帶로 轉落하여

 每年二百萬石以上의 美國剩餘農産物導入이 없이는 食糧需給이 어려울 地境에 處하여 있다.


殺人 强盜 厭世自殺 交通事故 爆發物事故 等은 連發되고 있으며

靑少年의 不良化 傾向은 深化되고 人身賣買 行爲까지 公公然히 벌어지고 있어

社會的 混亂은 極甚하여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勞動賤視나 勞動忌避같은 社會的 弊風은 助長되고 있으며

一部層의 分數에 지나친 亡國的인 奢侈風潮는 그칠 줄 모르고

民族固有의 美風良俗은 衰退되고 反面 輕調浮華한 外來文物이

우리의 獨自的인 文化遺産들을 마구 짓밟으려 하고 있다.


大衆的인 貧困으로 因한 購買缺乏은 아랑곳없이 援助名目의 國際的過剩商品은 氾濫하고있고

 美軍 P.X및 軍事經路를 通한 廢品들의 無制限的인 流出・通用으로 말미암아

 國産品은 窒息狀態에 있는데다가 密輸는 역시 盛行되고 있어

 「密輸王國」이라는 달갑지 않은 指稱까지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韓國의 現實情인 것이다.


張勉政權은 執權 첫날부터 韓國의 現實情을 똑바로 認識치 못하고 그릇된 政策路線에 따라

 所謂 「經濟第一主義」라는 것을 標榜하기는 하였지만

그 實踐에 있어 無能・無誠意함을 露呈하고 있다.


事態改善을 위한 自主的 計畫을 세우고 國民的인 「耐乏建設」을 率先躬行하려는 模範을 보이지 않았고 美國의 「援助」에만 哀乞한 나머지 反國民經濟的인 換率引上에 對하여 言質을 提供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主權侵害는 물론 國民矜持로 봐서 到底히 容納할 수 없는 屈辱的인

「韓美經濟協定」에 調印을 不得己하면서도 「感事하다」는 卑屈한 姿勢를 보이어

 國民으로부터 冷笑를 자아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본 바 같은 植民地隸屬國家로서의 末期現象같은 韓國의 現實情을 緣由케하는데 있어

 美國은 韓國的인 獨裁・腐敗政權과 더불어 共同的 責任追窮을 當할 때는 왔으며

그 歷史的인 審判은 不遠將來에 내려질 것이다.


美國은 다음과 같은 基本政策面에 있어 韓國 및 韓國國民에게 被害를 입힌 것이다.

美國은 「解放者」로서 이 땅에 進駐한 時期부터 우리의 自主經濟基盤을 破壤하는데 앞장섰다.

京仁地區에 있었던 日帝遺物들인 電氣및 工作機械設備들을 撤去・毁損시킴으로서

國民經濟의 工業化에 對한 可能性을 抹하려 하였다.


美國自身의 國家的利益때문에 우리로서는 悲劇인 南北分斷을 持續시키려 하였으면서도

 南韓의 그나마 많지 않은 工業施設들을 撤去・毁損하였다는 事實은

 우리들로 하여금 農業國家에서 머뭇거리라고 强要한 것이나 다름없는 非友好的인 행동이었으므로

 새삼스럽게 指彈되어야 할 것이다.


韓國戰爭은 우리 國民에게 二百萬名以上의 人命殺傷을 結果한 것 外에도

 約 十億弗에 達하는 物的 被害를 남겼다.

이러한 物的被害의 大部分은 生産的인 性格을 가졌었다는 것을 想起할 때

우리는 아직도 戰爭被害를 完全히 復舊乃至 補塡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一九四五年으로부터 現在에 이르는 동안의 美國의 總援助額이 三十億 程度에 不過한데 비추어 아직도 十億弗 以上의 戰爭被害 「補償」을 받아야 할 立場에 있는 것이다.


三十億弗 이나 援助하였다고 하지만 이 가운데는 過剩軍需品이던 「레이션・박스」나

 變質된 밀가루 등 屬까지 總合친 것이며 總額의 九十%以上은 消費性品 즉 먹고 쓰고 해서

 없어진 것이지 自立經濟를 構築하기 위해서 必要한 生産에 寄與되는 性質의 것은 아니었다.


이로써 볼 때 美國은 韓國의 國土分斷 및 韓國을 自由世界의 前哨基地로서 繼續 掌握함으로해서

 莫大한 國家的 利益을 보아오고 있으면서도 韓國民에 對하여서는 戰爭被害조차 제대로 辨償치 않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美國의 對韓國政策의 本質에 對하여 分析・批判을 히 試圖하는 까닭을

理解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민족일보> 1961년 3월 17일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285


사설/미국의 대한경제 「원조」 정책의 본질을 분석함(중)


민족일보 다시보기'<91>


이창훈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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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9  09: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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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한경제 「원조」 정책의 본질을 분석함(중)


=미국의 대외원조는 미국경제의 필요성 때문에 제공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만큼 타국인을 잘 믿는 민족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한 예로서 아직도 많은 한국인은 미국의 「원조」라는 것이

전적으로 미국의 자선가적인 호의에 의하여 공여되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다.


 또한 미국의 일반시민 즉 납세자들의 대다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미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면 흔히 이런 질문을 받는 수가 있다.


「우리들 세금으로 한국을 어지간히 원조했는데 얼마나 건설되었느냐...」고 하면서도

 한국이 계속해서 「원조」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면 귀찮다는 듯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미국시민으로서 이러한 태도는 당연하다.


미국의 일반시민은 「원조」라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있다.


「원조」라는 것이 한국 사람을 위하는 것보다는

 미국의 국가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미국의 국내경제의 필요에 의하여 창안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미국의 일반시민은 깜짝 놀랄 것이다.


미국의 대한국경제 「원조」정책이라는 것이

바로 미국 자신의 필요성 때문에 창안된 것임을 증명할 수 있다.


미국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농공산물 할 것 없이 산업이 극도로 발전하여

일년 농사만으로도 삼년은 먹고 살 수 있으며

연간 600만대의 승용자동차를 생산하면서도

오히려 자동차생산시설은 유휴 하여야 할 만큼 풍족한 실정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경이적인 생산력 자체가 미국경제의 성장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하면

 믿어지지 않을 소론같이 들릴지도 모르나 사실인 즉 그러한 것이다.


자본주의적인 무제한 잉여생산은 소비시장을 찾아야 하게 된다.

이것을 하필이면 공산당만이 지적하는 이론만은 아닌 것이다.

미국인 자신들이 과잉생산과 국내시장의 협소함을 탄식하고 있다.


미국은 매년 800억대에 달하는 연방정부예산을 세우고 있는데

그 가운데 과반인 450억불 이상이 군사비에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군사예산으로써 원자・수소폭탄이나 대륙간탄도유도탄과 같은 대량살륙무기를 제작함은 물론 전 자유세계에 걸쳐 700개 처에 달하는 군사기지 및 병참지부들을 유지하고 있으며

 100만 명이상의 상비병력 외에 약 200만 명에 달하는 군사 및 해외관계의 종사원을

 반영구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US」상표와 더불어 이들 군사 및 해외관계요원들이 자유세계도처에서

 이른바 미국의 국가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왕래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른바 자유세계의 유대를 공고히 한다는 명목으로

 연간 40억 내지 50억불이라는 거액의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만으로 보면 미국은 강국으로서 자유세계를 수호하기 위하여 타국을 돕는 여유까지 지닌

 「착한나라」라는 인상을 갖게 한다.


그러나 한번 미국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풍요한 가운데서도 대중적인 빈곤문제가 있으며

570만에 달하는 실업자 문제가 위정자들의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

동시에 경기후퇴 및 해외수지의 악화경향 등등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난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자국의 생산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한편

 국가적으로 실업자에게 취업의 기회를 마련해 줄 수만 있다면

 미국민은 계속해서 세계제일의 번영을 누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조차 없다.


그러나 미국은 자본주의의 나라이며 자본은 이윤을 벌기위하여서만 움직이는 것이니까

 과잉인 것을 알면서도 상품생산을 더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창안된 것이

원조명목으로 외국에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자국의 잉여상품처리의 일방편으로 삼는 동시에

앞으로의 시장 확보를 꾀하고

나아가서는 피 원조국가의 내정・경제에까지 간섭할 기회를 장악하여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신통한 묘방인 것처럼 기뻐하였던 것이다.


미국이 실업자를 축소시키는데도 유효하고

 미국의 불경기를 불식하기 위하여서도 「원조」는 필요하였던 것이다.


한국에 공여되는 미국 「원조」라는 것이 한국민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한경제 「원조」가 본질적으로

 한국의 자립경제건설에 기여할 수도 없는 까닭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여 만약 한국이 자립경제를 구축하고

농공산물면에서 한국산만으로 충족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해외수출까지 할 수 있게 된다면 「원조」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미국의 「원조」정책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원조」에 의하여

한국이 자립경제를 건설하고 「원조」가 필요 없다고 하는 사태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미국의 대한국경제 「원조」정책의 본질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악덕의사가 있다면 환자에게 아편을 맞히고 중환자가 되게 하여

의사의 수입을 올리기 위하여 매일매일 아편을 맞으러 오도록 만드는 것과 비슷한 논리인 것이다.


미국의 「원조」정책이 극적변화를 일으키든지

 미국의 경제체제가 자본주의 아닌 딴 방향으로 수정되기 전까지는

10년 더 원조가 계속된다고 하여도

한국민이 희구하는 자립경제의 터전을 갖추지는 못할 것임을 깨달아야할 때는 왔다.


논자들 가운데는 흔희 전후 구라파의 부흥・발전 특히 서독의 기적적인 재흥이나

일본의 비약적 발전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미국원조의 덕분이라고 하고 있다.

물론 이들 제국이 미국의 원조를 받고

 그로써 재흥발전의 계연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발전을 본 제국들이 예외 없이

자립경제를 구축할만한 기초적 조건이 구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서독이나 일본을 원조한 것이

미국의 실용이나 자선심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의 당초 전후처리구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호전국인 독일을 「목축국가」로 고쳐만들고

일본 역시 「수공예품제조국가」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침투를 막기 위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즉 냉전의 전략상 서독이나 일본의 공업능력을 온존 배양시키는 것이

미국의 국가적 이익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였기에

닭그제(엊그제)의 적국민들과 손을 나란히 잡고 냉전태세를 강화하는데 동조하였던 것이다.
 
지난 58년(1958년)을 고비로 미국의 대외수지가 역조에 접어들고 반면

서독이나 일본의 대외수지가 호전되어

마침내는 미국정부고위관리들이 서독에 찾아가서

「애걸」하는 웃지 못할 정경을 빚어내게 한 것 역시

 자본주의 경제의 생리적 현상의 일단인 것이다.


냉전 때문에 서독이나 일본을 키워놓고서 이제 와서는 미국자본주의의 국제경쟁에 있어

 무서운 적수로 등장케 하였으니 어리석은 「양키」였다고 평하여도 좋은 것이다. 


지금 와서 서독이나 일본이 미국의 압력에 굴하려 하지 않고

되려 「미국이 봐주지 않으면

공산제국과의 통상을 촉진시킬 것이다」고 역습하고 나오는 꼬락서니를

 미국이 불쾌해한들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자립경제를 구축하고 난 뒤이니까 미국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와 같이 전 적국까지도 그들의 필요성 때문에 부흥시키면서 한국 같은 나라에 대하여서는

 자립경제는커녕 예속경제만 강요하고 있으니 우리가 어찌 이러한 사태를 참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미국의 보통시민들이 개인적으로는 우리와 친근한 벗이 될 수 있으면서도

미국의 대한정책은 우리를 해롭게만 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개인의 호의와는 달라 자본주의적인 「호의」의 이면에는

 전기한바 같은 「비정」의 일면이 있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한경제 「원조」 정책의 본질을 분석함(중)



  
▲ 미국의 대한경제 「원조」 정책의 본질을 분석함(중) [민족일보 이미지]


美國의 對韓經濟 「援助」 政策의 本質을 分析함(中)

=美國의 對外援助는 美國經濟의 必要性때문에 提供되는 것이다=


韓國사람만큼 他國人을 잘 믿는 民族도 別로 없을 것이다.

그러한 例로서 아직도 많은 韓國人은 美國의 「援助」라는 것이

全的으로 美國의 慈善家的인 好意에 依하여 供與되는 것인줄로만 알고 있다.

또한 美國의 一般市民 即 納稅者들의 大多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美國을 旅行해본 사람이면 흔히 이런 質問을 받는 수가 있다.


「우리들 稅金으로 韓國을 어지간히 援助했는데 얼마나 建設되었느냐...」고 하면서도

 韓國이 繼續해서 「援助」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면 귀찮다는 듯 不快한 表情을 짓는 것이다

. 美國市民으로서 이러한 態度는 當然하다.


美國의 一般市民은 「援助」라는 것의 正體가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있다.

 「援助」라는 것이 韓國사람을 위하는 것보다는 美國의 國家的 利益을 守護하기 위하여

 必要한 것이며 同時에 그것은 美國의 國內經濟의 必要에 依하여 創案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美國의 一般市民은 깜짝 놀랄 것이다. 美國의 對韓國經濟 「援助」政策이라는 것이

 바로 美國 自身의 必要性때문에 創案된 것임을 證明할 수 있다.


美國은 天然資源이 豐富하고 農工産物 할 것 없이 産業이 極度로 發展하여 一年農事만으로도

 三年은 먹고 살 수 있으며 年間六百萬臺의 乘用自動車를 生産하면서도

오히려 自動車生産施設은 遊休하여야 할 만큼 豐足한 實情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 驚異的인 生産力 自體가 美國經濟의 成長發展을 沮害하고 있다고 하면

믿어지지 않을 所論같이 들릴지도 모르나 事實인 즉 그러한 것이다.


資本主義的인 無制限 剩餘生産은 消費市場을 찾아야 하게 된다.

이것을 何必이면 共産黨만이 指摘하는 理論만은 아닌 것이다.

美國人 自身들이 過剩生産과 國內市場의 협소함을 嘆息하고 있다.


美國은 每年八百億臺에 達하는 聯邦政府豫算을 세우고 있는데

그 가운데 過半인 四百五十億佛 以上이 軍事費에 使用되고 있다.

이러한 軍事豫算으로써 原子・水素爆彈이나 大陸間彈道誘導彈과 같은 大量殺戮武器를 製作함은 물론 全自由世界에 걸쳐 七百個處에 達하는 軍事基地 및 兵站支部들을 維持하고 있으며

百萬名 以上의 常備兵力外에 約二百萬名에 達하는 軍事 및 海外關係의 從事員을 半永久的으로

 雇傭하고 있는 것이다.


「US」商標와 더불어 이들 軍事 및 海外關係要員들이 自由世界到處에서

이른바 美國의 國家的 利益을 守護하기 위하여 往來하고 있는 것이다.
同時에 이른바 自由世界의 紐帶를 鞏固히 한다는 名目으로

 年刊四十億乃至 五十億佛이라는 巨額의 「援助」를 提供하고 있다.


이것만으로 보면 美國은 强國으로서 自由世界를 守護하기위하여 他國을 돕는 餘裕까지 지닌

「착한나라」라는 印象을 갖게한다.

그러나 한번 美國內部를 들여다보면 그 豊요한 가운데서도 大衆的인 貧困問題가 있으며

五百七十萬에 達하는 失業者問題가 爲政者들의 頭痛거리가 되고 있다.

 同時에 景氣後退 및 海外收支의 惡化傾向 等等 우리로서는 想像도 못할만큼

많은 難問題에 逢着하고 있다.


萬若 美國이 自國의 生産을 效果的으로 統制하는 한편

 國家的으로 失業者에게 就業의 機會를 마련해 줄 수만 있다면

 美國民은 繼續해서 世界第一의 繁榮을 누리라는 것은 疑心할바 조차 없다.


그러나 美國은 資本主義의 나라이며 資本은 利潤을 벌기위하여서만 움직이는 것이니까

 過剩인 것을 알면서도 商品生産을 더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創案된 것이 援助名目으로 外國에 「援助」를 提供함으로써

 自國의 剩餘商品處理의 一方便으로 삼는 同時에 앞으로의 市場確保를 꾀하고 나아가서는

 被援助國家의 內政・經濟에까지 干涉할 機會를 掌握하여

그야말로 一石二鳥의 神通한 妙方인 것처럼 기뻐하였던 것이다.


美國이 失業者를 縮小시키는데도 有效하고 美國의 不景氣를 拂拭하기 위하여서도

「援助」는 必要하였던 것이다.
韓國에 供與되는 美國「援助」라는 것이 韓國民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能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美國의 對韓經濟「援助」가 本質的으로 韓國의 自立經濟建設에 寄與할 수도 없는 까닭이다. 逆說的으로 말하여 萬若 韓國이 自立經濟를 構築하고 農工産物面에서 韓國産만으로 充足하게되고

나아가서는 海外輸出까지 할 수 있게 된다면 「援助」는 必要없을 것이다.

그런 狀態가 되는 것을 美國의 「援助」政策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援助」에 依하여 韓國이 自立經濟를 建設하고 「援助」가 必要없다고 하는 事態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美國의 對韓國經濟「援助」政策의 本質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惡德意思가 있다면 患者에게 阿片을 맞히고 重患者가 되게하여

醫師의 收入을 올리기 위하여 每日每日 阿片을 맞으러 오도록 만드는 것과 비슷한 論理인 것이다.

美國의 「援助」政策이 劇的變化를 일으키든지 美國의 經濟體制가 資本主義아닌 딴 方向으로

修正되기 전까지는 十年 더 援助가 繼續된다고 하여도

韓國民이 希求하는 自立經濟의 터전을 갖추지는 못할 것임을 깨달아야할 때는 왔다.


論者들 가운데는 흔희 戰後歐羅巴의 復興・發展 特히 西獨의 奇蹟的인 再興이나

 日本의 飛躍的 發展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美國援助의 德分이라고 하고있다.
물론 이들 諸國이 美國의 援助를 받고 그로써 再興發展의 契緣을 만들었다는 事實은

 否認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發展을 본 諸國들이 例外없이 自立經濟를 構築할만한 基礎的條件이

 具備되어 있었다는 事實을 看過하여서는 안된다.
또한 西獨이나 日本을 援助한 것이 美國의 實用이나 慈善心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認識하여야 할 것이다.


美國의 당초 戰後處理構想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好戰國인 獨逸을 「牧畜國家」로 고쳐만들고 日本 역시 「手工藝品製造國家」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共産主義浸透를 막기 위한다는 必要性때문에 即冷戰의 戰略上 西獨이나

 日本의 工業能力을 溫存培養시키는 것이 美國의 國家的 利益에 有利하다고 생각하였기에

닭그제(엊그제)의 敵國民들과 손을 나란히 잡고 冷戰態勢를 强化하는데 同調하였던 것이다. 


지난 五八年을 고비로 美國의 對外收支가 逆調에 접어들고

 反面 西獨이나 日本의 對外收支가 好轉되어 마침내는 美國政府高位官吏들이 西獨에 찾아가서

 「哀乞」하는 웃지못할 情景을 빚어내게 한 것 역시 資本主義經濟의 生理的 現象의 一端인 것이다. 


冷戰때문에 西獨이나 日本을 키워놓고서 이제와서는 美國資本主義의 國際競爭에 있어

무서운 敵手로 登場케 하였으니 어리석은 「양키」였다고 評하여도 좋은 것이다.

 지금와서 西獨이나 日本이 美國의 壓力에 屈하려하지않고

되려 「美國이 봐주지 않으면 共産諸國과의 通商을 促進시킬 것이다」고 逆襲하고 나오는 꼬락서니를 美國이 不快해한들 所用이 없다.


왜냐하면 自立經濟를 構築하고 난뒤이니까. 美國의 支配力이 미치지 못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美國은 이와같이 前敵國까지도 그들의 必要性때문에 復興시키면서 韓國같은 나라에 對하여서는

 自立經濟는 커녕 隸屬經濟만 强要하고 있으니 우리가 어찌 이러한 事態를 참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美國의 普通市民들이 個人的으로는 우리와 親近한 벗이 될 수 있으면서도

 美國의 對韓政策은 우리를 害롭게만 하려고 하고 있다는 事實을 認識하여야 할 것이다.

 個人의 好意와는 달라 資本主義的인 「好意」의 裏面에는 前記한 바같은

 「非情」의 一面이 있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민족일보> 1961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