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끊임없이 주장하는 대륙조선사 연구회의 이야기가 론리적으로 가장 학문적 가치가 있고, 학문이 추구하는 진실에 가장 가깝다는 사실이 자꾸만 밝혀지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이야기의 수준을 훨씬 넘어 그저 주장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 작은 "說"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력사학의 진실의 깊숙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이제는 웬간한 사람이면 깨달았을 것이다.
아직도 그런 눈치가 없다면 나무옷[棺] 둘러 쓰는 것도 아까운 사람일 것이다.
이제까지 대륙조선사 연구에서 주장해온 조선의 수도 한성은 섬서성 장안이었다는 것에 대하여 오늘만큼 흥분되는 것도 없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은 "명성황후의 한글 편지 2통"이란 제목이 <조선일보>(2005. 10. 28. 금. A2)에 신형준 기자가 소개했다.
그 편지는 일단 1875년의 것으로 보는데, 일단 명성황후의 오빠 "민승호(1830-1874)에게 보낸 편지라고 집안에서는 이야기한다."고 전한다. 그런데 그 편지지에, 분홍색의 것 바탕에는 "渭川烟雨"(위천연우)라고 쓰여있는데,
이 뜻은 중국 섬서성 장안 북쪽을 흐르는 위천, 즉 위수에 낀 안개와 비라는 것이다.
그리고 연노랑의 편지지 바탕에는 "當湖東園寫於味夢軒"(당호동원사어미몽헌)이라 쓰여있는데, 그 뜻은 중국 절강성의 호수인 당호에 있는 화가 '동원'이 미몽헌에서 그렸다는 것이다. 그 한글 글씨가 잘 썼느니, 하는 등의 말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일단 명성황후가 썼다는 것이며, 그 시기가 운양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며, 그 편지지 바탕에 한자로 그렇게 쓰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점을 찾기 위하여 가설을 세워보자.
(1) 편지 내용이 담긴 한글은 대륙 어디에서나, 한반도에서도 쓸 수는 있다. (2) 그 편지지를 중국대륙의 어디에서도 구할 수 있을 것이며, 한반도에서 수입하여 쓸 수도 있을 것이다. (3) 그 편지지를 요즘에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서 그런 글씨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4) 그 편지를 본디 중국대륙 장안에서 한반도가 조선인 것으로 꾸미는 절대적 증거를 남겨주기 위하여 한반도로 가져왔을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서 그 하나씩 증명을 보여야 하지만, 일단 지금까지 대륙조선사 연구에서 밝혀온 맥락에서 소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위의 (4)가 해당될 것이다.
결국 중국대륙 섬서성 장안이 명성황후가 생존시의 1874년까지는 일단 분명히 그 수도가 장안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위의 (1)에서부터 (3)까지 한반도의 사실로 엮어서 볼 수도 있다고 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생각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경위(涇渭)도 없다"는 말의 어원이 되는 그 "渭"가 바로 이 위천(渭川)이라는 위수(渭水)요, 이것이 "위하(渭河)인 것이다.
이 물은 늘 물이 흐렸다. 그 반대가 경수(涇水)이다. 이 물은 늘 맑았다. 그러니 맑은 물, 흐린 물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을 우리는 뭐라고 하든가.
우리는 이런 명성황후의 편지지를 보고 경위없는 판단을 하거나, 경위없는 지식을 뇌까려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은 <조선일보>에 실린 명성황후 한글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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