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국이라는 공포심에서 깨어나야 한다.
<논평> 우리민족사에 있어서 미국이 휘두르던 폭력의 강권통치는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프레스아리랑
2019/11/16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국에 있어서 공포심 그 자체이다.
겉으로는 우방이니 혈맹이니 하지만
그 유착의 본질은 공포심에서 기인한다.
한국이 취하는 굴욕적이고 사대적인 대미정책의 면면을 보면
이 나라가 미국에 대해서 가진 공포심의 정도가 어느정도인지 잘 알만하다.
특히 이 나라 위정자들이나 수구적폐세력들에게 있어서
미군철수나 미국과의 불협화음이라는 말의 의미는
엄청난 심적부담을 동반하는, 참으로 비정상적인 관계이다.
한국은 특정국가에 대한 공포심에 의해 굴러가는 나라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특정 국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고,
그 특정국이 좋아할지 아닐지부터 먼저 생각해서 행동하는 매우 특이한 나라이다.
그 특정국가가 미국이라는 사실은 이제 삼척동자라도 알 지경이다.
이 나라에서는 정책결정을 할때 자국의 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입장은 항상 부차적인 요인으로 간주되는 극단적인 '비굴형국가'이다.
모든 외교나 정책은 타협가능한 대상이지 한번도 "노!"라고 잘라말하는 법이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못 퍼주어서 안달이 난 과부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 나라의 특정국에 대한 외교정책의 전부이다.
모든 것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무슨 일을 하건 ‘미국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도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하는 식이다.
대체가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 자체가 없는 나라이다.
어쩌다 이런 나라가 탄생했는지,
그래서 이것도 나라라고 보아야 하느냐하는 시선이 따갑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길줄조차 모르는 아주 기이한 풍토이다.
한마디로 밸도 없는 나라인 것이다.
이 나라 정치사전에는 아예 자국의 이익이라는 개념자체가 없다.
오직 <미국의 이익=우리의 이익>이라고 믿는, '감지덕지'
'재조지은'의 개념만 존재할 뿐이다.
세상에서 미국의 신식민지 지배체제가 선보인 이래로
한국이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 이렇게 미국으로 하여금
능수능란하게 지금까지 한국을 지배할수 있도록 해온 것일까.
일제의 직접통치 방식을 찜쪄먹는 이들의 식민지 통치술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미국의 말같지 않은 전횡이 21세기 한국이라는 나라에
아직도 먹혀 들어가는 이유는 한마디로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포주입이라는 미국식 통치기술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한국지배는 두려움을 통한 통치, 즉 공포정치이다.
자신들이 없으면 한국이 무너진다는 것도 공포심의 주입이라는 기술이고,
같은 동족을 상대로 악의 집단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다 공포심의 주입기술이다.
아예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처음부터 미국이 공포심을 주입시킴으로써 탄생한 체제이다.
북이라는 가공된 공포의 대상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면서
미국은 이 땅에 자신들의 개입할 여지를 교활하게 가공했다.
공포의 대상이 없으면 황금의 반도땅 어디엔가 자신들의 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지금까지도 민족을 양분시키고
서로 상대방을 증오하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다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위해서 미국은 우리에게 상대방을 동족이 아니라
적이라고 강요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와 대결체제를 강요하고 있다.
그들의 공포조작은 너무나 집요하고 지독해서
같은 민족을 정말 원수로 여기게끔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지난 70년세월이 넘도록 계속해서 그 짓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쪽땅에서 우선적으로 지독하고 철저하게 인종청소를 감행하는
'공포의 기술'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감히 아무나 할수 없는 고난도의 할리웃식 연출기술 그 자체였다.
그들은 일제가 키운 앞잡이들을 무상으로 물려받아
정의와 사회발전을 바라는 애국자들을,
북을 지지하고 추종한다는 명분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하면서
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그것은 민족에게 있어서 민주적 자율권을 완전히 앗아간 야수적인 행위였다.
그들의 힘과 물리력을 동원한 만행은
공포심의 유발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 땅에서 자연히 새로운 질서로 자리잡아 갔다.
미국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마치 자신들이 약자와 선한 자를 도와주는 편이라는 교묘한 수법으로
민족내분과 민족대결을 조장하면서
민족한편에서 공포심의 팽배라는 기술을 적절하게 구사했다.
얼핏하면 주한미군 철수카드를 흘린다거나,
뜬금없는 북의 남침과 호전성을 강조한다거나,
핵우산 운운하며 핵무기를 과시한다거나,
자신들의 무기를 사도록 바람을 잡는다거나,
방위비 분담금을 제멋대로 요구한다거나 하는 것등은
모두 이같은 공포심을 이용한 통치술일 뿐이다.
비열하고 열등의식을 가진 식민지 추종세력들에게 있어서
미국의 공포전략은 그대로 힘을 발휘했다.
그들은 저항할 대신에 아부를, 투쟁할 대신에 백기투항을 선택했다.
그들이 통제하는 언론들은
미국에 의해 파괴된 중동의 저항국가들이라는 뉴스를 계속 실어다 나르며
친미국가, 꼭두각시 국가의 길을 택한 것이
얼마나 안전하고 현명한 판단이었던가를 국민들에게 설파해 오고있다.
그들은 조선이 핵보유국가가 된 지금 이 마당에까지
미국의 핵우산이 구멍난 사실을 억지로 숨기려하며,
미국의 핵우산이 건재한 마냥
여전히 미국에 줄을 서려는 치유불가능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비굴성이 습관화되다보니 노예의식이 극치에 달한 것이다.
미국의 공포정치는, 그러나 이제 수명을 다했다.
적어도 우리민족사에 있어서
미국이 휘두르던 폭력의 강권통치는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이 더 이상 무력에 의한 공포주입이라는 지렛대를 통해서
통치할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조선이 선언한 핵무장력의 완결과 핵협상의 시작은
미국이 공포심으로 우리민족을 능멸하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났음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미국이 우리를 공포심으로 제어하던 시대는 완전히 종말을 고했고,
오히려 우리민족이 미국을 상대로
공포심으로 제어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임을 의미하는것이다.
지금 우리앞에 벌어지는 우리민족의 미국과의 핵협상은
공포심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일대사변이다.
혁명중의 혁명, 그 소용돌이 자체인 것이다.
우리민족은 지금 협상을 통해 빼앗긴 민족의 반쪽땅을 되찾아 오느냐, 마느냐하는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있다.
남과 북 해외의 그 누구든 우리민족이라면
그것을 환희와 감격으로 호응해 주어야 한다.
그것을 싫어할 부류들이란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미국이 쳐놓은 공포심의 거물에 갖힌채
미국을 동맹의 나라, 보호자의 나라처럼
숭상하고 매달리고 있는 한 줌안되는 수구보수 매국노 세력들일 뿐이다.
한국도 이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공포의 절벽에 갇힌 나라,
그 절벽아래에서 한발자국도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나라로 남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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