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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포닥' 싸움인데… 4명 중 1명은 살길 막막, 한국 떠난다..과학자

연구는 '포닥' 싸움인데… 4명 중 1명은 살길 막막, 한국 떠난다

조선일보

    
입력 2019.11.26

[한국 과학이 흔들린다] [2]


노벨상 수상한 각국의 연구실… 포닥이 성과의 핵심적 역할
선진국 포닥 급여, 한국의 2~3배… 장기 연구 몰입할 수 있게 보장
"한국 과학계, 병장 내보내고 훈련병 데리고 전투하는 셈"

2017년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Y씨는
 미국 텍사스대에서 2년간 포닥(박사 후 연구원)을 했다.
 그는 "한국에서 포닥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Y씨는 "포닥은 독립적인 연구자로 인정받으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한국에선 월 250만원도 받기 어려워 오롯이 연구에 집중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과학 연구 현장의 중추인 새내기 박사 연구자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한 해 배출되는 5600여명의 이공계 박사 중 28.5%(약 1600명)는
외국행을 원한다는 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조사 결과다.
 3.5명 중 1명꼴이다.
 한국 기초연구연합회 추산으로도 새내기 박사 4명당 1명은 해외로 떠나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관련 통계조차 없다.

그래핀 분야 노벨상 수상 연구실 vs 한국 최고 연구실의 연구 인력 구성

과거 한국은 연구비나 장비 같은 과학 하드웨어에서 열세였다.
해외 한인 과학자들은 "한국도 이젠 하드웨어 면에서 많이 따라왔다"고 말한다.
지금 관건은 연구를 제대로 수행할 인재,
 특히 연구자로서 가장 생산성이 왕성한 포닥 확보 싸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 이공계 신진 박사들 상당수는 첫 10년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내고 온다.
 이화여대 차선신 교수(화학·나노과학)는 "한국 과학계는 전성기 선수를 방출했다가
절정이 지난 뒤 데려오는 스포츠팀이자 병장 대신 훈련병을 데리고 전투하는 부대"라고 말했다.

◇한국 과학계, 병장 대신 훈련병으로 전투

포닥이 왜 중요한지는 노벨상을 받은 연구실의 인력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2010년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는
 '꿈의 신소재' 그래핀을 최초로 흑연에서 분리,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두 교수의 연구실에는 당시 8명의 포닥이 있었다.
그들 아래 박사과정 대학원생 8명이 포진한 구조였다.
노보셀로프 교수 자신도 그래핀 발견 당시 가임 교수 연구실의 포닥이었다.

두 교수의 연구실에서 포닥을 한 손석균 목포대 교수(물리학)는
 "연구 역량을 갖춘 포닥들 각자가 병렬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여러 성과가 나오는 시너지가 컸다"고 말했다.

김필립 미 하버드대 교수(물리학)는
가임·노보셀로프와 거의 같은 시기 그래핀을 발견해
 2010년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어야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연구실엔 현재 12명의 포닥에 14명의 박사과정 학생이 있다.
홍병희 서울대 교수(화학)는 그래핀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자다.

세계 최상위 1% 연구자에 선정된 그의 연구실엔
현재 포닥 3명에 박사과정 학생이 11명 있다.
대학원생은 비슷한데,
포닥은 맨체스터대와 하버드대 연구실의 각각 3분의 1, 4분의 1 수준이다.

학계에선 "홍 교수 정도 되니까 포닥을 3명이나 두는 것이지
 다른 연구실은 대부분 포닥이 없다"며
 "한국 교수들은 어려운 연구를 풀어낼 역량이 아직 부족한 대학원생들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두 배 차이 나는 열악한 처우

한국의 연구 현장에 포닥이 없는 것은
 열악한 처우가 그들을 연구실 밖으로,
그리고 해외로 떠밀기 때문이다.

 텍사스대 포닥 출신 Y씨는 "같은 전공 포닥이라도
미국이 한국보다 급여가 2~3배 높다"고 했다.

미국에선 포닥은 교수 개인이 아닌 대학이나 산하 연구소가 직접 고용한다.
 1년차 포닥 연봉이 최소 5만달러(약 5800만원)를 웃돈다.
연구 기간을 호봉처럼 계산해 급여도 인상된다.
독일은 6년간 고용 보장에 자녀를 낳으면 그 기간이 2년씩 늘어난다.
장기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제도적 뒷받침은커녕 고용·급여에 대한 명확한 규정조차 없다.
생물학을 전공하고 국내 한 벤처기업에서 근무 중인 이원석(42) 박사는
 "한국에서는 교수가 개인적으로 포닥을 채용하기 때문에 교수마다 처우가 제각각"이라며
"포닥은 대학원생도 교수도 아닌 불안한 신분일 뿐"이라고 말했다.

연구 문화도 포닥의 해외 유출을 부추긴다.
한국에선 5~10년이 걸리는 장기 연구가 거의 없다.

설령 그런 과제가 있어도 1년 단위로 과제 달성률이 100%가 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
도전적 연구를 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국내 박사를 한 뒤 미국의 대학교에서 포닥 중인 김모씨는
 "교수 임용 때 해외에서 포닥을 해야 유리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과 정반대가 일본이다.

과학 인재들이 거의 국내에 남아 연구한다.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도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가 적잖다.
2008년 입자물리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수상 당시까지 여권조차 없었다.
 너무 해외로 안 나가서 '국제 흐름에 뒤처진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포닥(postdoc)

'박사 후 연구원'을 뜻하는 영어 'postdoctoral researcher'의 우리식 줄임말.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이나 대학 부설연구소 등에서 연구하는 계약직 연구원.
영미권에선 '포스트닥'이라고 부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6/20191126000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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