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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정화글

계산으로 사는 인생 계산에 닫힌 인생,,

                

 

 

 

계산으로 사는 인생 계산에 닫힌 인생,,

 


우리는 계산으로 산다.

이중삼중의 계산, 겹겹의 계산에 갇혀 산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은 삶이 아니다.

살아도 살아도 계산만 남고 삶이 없다.

 

 

1- 대학을 선택하고 학과를 선택 할 때, 어디를 가야 취업이 잘 되고 돈벌이가 잘 될까를 계산한다.

 

그 계산에 따라 대학을 결정하고 학과를 결정한다.

자기 적성, 소질과는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대학과의 만남, 전공과의 만남은 계산된 만남이다.

 

그러니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학문이 나올 리 없다.

 

2- 대학에 들어가 리포트를 쓸 때도 그렇다.

 

주어진 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그 문제의 바닥까지 파내려 가는 공부는 하지 않는다.

손쉽게 학점을 따내는데 잔머리를 굴린다.


다른 사람의 글을 베끼거나 심지어는 리포트 시장에서 하나 사서 이름만 바꾸어 달고 제출한다.

힘들여서 리포트를 쓰느니 베끼고 사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는 계산에서다.

 

그렇게 자기공부에서도 사기를 친다.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르는 계산, 자신을 어리석게 만드는 계산에도 익숙하다.


 

3- 결혼상대를 구할 때도 계산적이다.

 

상대의 집안은 어떻고 직장은 어디고 연봉이 얼마인가?

내 출세의 배경이 될만한가?

저자가 내게 무얼 해줄 것인가를 계산한다.

그게 혼인의 조건이다. 사람은 안중에 없다.

 

 

4- 동창회에 간다.

 

사업에 도움이 될 동창, 끈을 달 필요가 있는 동창에게는 술자리를 잡겠다고 굽실거린다.

그러나 별 볼일 없는(?) 동창에게는 명함조차 건네지 않는다.

치밀한 계산에 따라 동창들에 대한 친절도가 달라지고 목소리조차 달라진다.

‘친구 좋다는 것’에도 순결성은 없다.

계산이 맞을 때의 이야기다.

 

 

5- 직장 동료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고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한 척 하면서 속내를 털어낸다.

그러나 그때에도 빈틈없는 계산이 돌아간다.

이 정도면 저 자가 솔직한 것으로 믿어주려니 하는 계산이 돌아간다.

그러면서 끝내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지 않는 치밀한 계산이 돌아간다,

 

 

6- 기도를 한다. 몇 순간은 열심히 기도한다.

 

그러나 이내 ‘이 정도면 회개가 되었겠지’라는 계산이 돌아간다.

 

참회를 하기 위해서 천배를 하기로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으면 염주알이 몇 번을 가고 있는지 계산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운다.

절을 몇 번이나 했는지 실적을 계산하는데 급급해진다.

 

실적주의로 간다.

절대자 앞에서도 계산은 그렇게 돌아간다.

이정도면 천당을 가겠지 라는 계산,

이 정도면 극락을 가겠지 라는 계산, 신앙도 계산이 들어간다. 

 

7- 아이들에게 용돈을 듬뿍 쥐어주고 때로는 값나가는 선물을 한다.

 

때로는 비싼 보약을 먹인다.

다 계산이 들어가 있다,

그 대신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지친 말들에게 당근을 주는 그런 계산이다.

 

부자지간도 계산적이다,

이렇듯 우리는 계산적이다.

계산으로 산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계산을 빼고 나면 시체다.

계산만 남고 삶은 없다.


계산적 행위란 것, 조작이고 거짓이다.

순정도 없고 순결성도 없고, 진실성도 없다.

 

우리가 계산에 계산을 거듭해서 과연 우리 인생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무엇이 남았을까 ?

 


     

 

 

 

 잉여의 계산법,,

 

우리 머리 속에 언제나 계산이 돌아간다.

그런데 그 계산법이란게 참으로 희한한 것이다.

차변과 대변이 일치하는 등식이 아니라 도무지 일치 하지 않는 부등식의 계산법이다.

남의 떡이 더 크보이는 계산법,

그리고 내 떡이 더 커야 같다고 생각하는 잉여의 계산법이다.

 

a)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주변에서 자기를 몰라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얼마나 남을 알아보았을까?

남의 선행과 남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인정해주었을까?를 되묻지 않는다.

 

 

b) 의사가 환자를 고친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과 기술이 대단하다고 자부한다.

병을 고친 환자는 마땅히 자신에게 감사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의사자신은 누구의 덕으로 호의호식하고 살았을까?

 

 그점에 대해서 의사자신은 환자에게 감사하게 여길까?

또 자신을 가르쳐준 선생들에 대해서, 자기가 배운 책들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을까?

그런 게산은 하지 않는다.

 

 

c)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래서 우수한 제자를 길렀다,

그래서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자부한다,

내가 키웠다고. 내 실력으로 키웠다고.

그래서 제자들이 자신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교사자신은 자신의 행운을 알까?

그런 우수한 제자를 만난게 자신의 행운일 줄을 알까?

 

 

d) 맞선을 본다, 저 인간이 내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를 저울질한다,

    그래서 많이 해줄 착한 남자, 착한 여자를 고른다.

 

내가 저 사람에게 무얼 해줄 수 있는가는 묻지를 않는다.

그러니 싸울 수밖에. 그러니 찢어질 수밖에.

애당초, 해줄 생각은 없고 바라는 것만 있었으니,

그 계산에 맞지 않으면 이내 버리고 돌아설 수밖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수밖에.

 

 

e) 부부간에 자주 싸운다,

 

 ‘네가 해준게 뭐 있는데?“ ’그러면 너는?” 그렇게 싸운다,

자기가 해준 것은 낱낱이 기억하면서도

상대방이 해준 것은 돌아서면 까먹는 희한한 계산법..,그래서 싸운다.

 

그러나 철이든 부부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날 이때까지 이 하찮은 인간과 같이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다.

 


f) 남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돈을 자식에게 상속한다,

 

그리고 그 자식이 잘 살기 바란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돈만 상속될까?

그 돈에 얽힌 원한과 원망도 같이 상속된다는 것을 계산하지 않는다.

 

 

g) 우리는 은혜를 모른다. 오늘 해가 뜨고 땅이 무사함에 감사할 줄 모른다.

 

삼보일배를 하면서 땅에 머리를 조아려본 사람들은,

하늘이 있는 줄만 알았는데 땅이 있었구나라고 이야기한다.

후쿠시마의 쓰나미를 겪은 사람들은 안다,

땅이 무사한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안다,

 

하늘과 땅은 제쳐두고, 우리가 먹고 입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

내 돈 주고 사는데 감사할게 없다는 거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장에서 얼마나 힘들게 벌은 돈인데,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면 먹을 것을 만들고 입을 것을 만든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그런 것은 계산에 없다.

내가 힘든 것만 계산한다.

 

 

h) 나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잘 사는 짓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과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 그런 계산은 하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그런다,

분별계탁을 하지 말라고 한다. 계산하지 말라는 거다.

 

그 계산이란게 언제나 자기중심적이고 그래서 오작동을 하기 때문이다.

잉여를 챙기는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사(凡事)에 감사하라고 한다.

그래서 계산을 맞추라는 거다.

빚나간 계산의 허점을 메우라는 거다.

 

 

3. 계산이 멈출 때

 

우리의 계산법, 셈법은 잉여를 남기는 잉여의 셈법이다.

잉여의 셈법을 하면서 나라는 인간이 ‘잉여 인간’이 된다.

 

 잉여라는 것, 그게 죄업이다.

뿌린 이상으로 거두고 뿌리지 않고 거둔 것,

돌려주어야할 것을 돌려주지 않은 것,

갚아야할 것을 갚지 않은 것들 그게 다 죄업이다.

 

계산도 철저하게 끝까지 밀고 가면 어떻게 될까?

잉여의 계산법이 아니라 투명한 계산,

부등식이 아니라 등식의 계산을 해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계산을 맞춘다면

그 지점에서 잉여의 사냥꾼으로 살아온 참회가 시작되는 것 아닐까?

거기에서 인생은 비로소 시작하는 게 아닐까?

 

계산을 넘어, 계산이 멈출 때 머리가 열리고 인간은 발달한다.

 

가령 학점만 나오면 그만이라는 학생, 점수계산이 앞서는 학생들은 레포트를 그냥 베낄 것이다,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공부시늉을 할 것이다.

거기서는 머리가 열릴게 없다,

 

그러나 점수계산을 넘어서서,

그 문제 자체를 놓고 고민하고 문제의 바닥을 파헤쳐 간다면 그때 머리는 열린다.

점수계산이 앞서면 머리는 닫힐 것이고 점수계산이 멈출 때 그때 머리가 열릴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머리가 좋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실은 머리가 닫히기를 재촉한다.

점수만 잘 나오면 그만인 공부, 돈 벌이만 되면 그만인 공부를 원하니까.

아이들의 인생이 부모의 계산대로 돌아가기를 원하니까.

 

의사가 자기가 맡은 환자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를 할까?

근무시간을 계산하고 퇴근 시간을 계산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환자를 본다.

 

 관성적으로 환자를 본다. 머리가 열릴 여지가 없다.

그냥 자격증으로 사는 것일 뿐.

 

그렇지 않고 자기 환자에 대해서, 퇴근 시간의 게산 없이,

초과수당의 계산 없이, 자기 몸을 챙길 생각 없이 연구를 할 때,

자신의 지식과 기술반경을 넘어가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찾아서 고민할 때, 그때 머리가 열린다.

그때 의사의 인생은 시작한다.

 

그러니까 머리가 열리고 닫하는 것은, 나의 게산,

그 계산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야긴즉 간단하고 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계산을 멈추지 않는다.

계산에 근거한 집착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법조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판사 옷을 벗어야 비로소 정의가 보인다고.

 

 

우리 모두 능력을 구한다.

남들보다 탁월한 재주와 능력, 출중한 재주와 능력,

세상에 소문이 날 정도의 범상치 않은 재주와 능력을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왜 재주와 능력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 재주와 능력을 세상에 돌려줄 그릇이 못되기 때문이다.

자기 계산에 분주한 쪼잔한 그릇에 그런 재주와 능력이 담길 리 없기 때문이다.

 

 

내 계산을 넘어서 계산을 벗어날 때,

계산이 멉추고 계산에서 자유로울 때, 계산할 수 없는 재주와 능력이 생긴다.

 

 

배영순(영남대 국사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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