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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외교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 방문기-1.2.3.4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 방문기-1

김정희 재불동포
기사입력: 2019/03/07 [22:1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자주시보에 조국 방문가를 연재 하게 된 김정희 선생     ©

필자인 김정희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한국에서 학업을 마친 뒤 프랑스로 이주 30년이상 거주하며  ISG를 졸업했다.

 

파리외환은행과 코트라에서 근무

 

2012년부터 한반도평화통일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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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을 뒤로 하고
, 이제는 제대로 알아야겠다. 는 생각에

관련북녘 조국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고 파고든지 26개월 만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 감리교 목사님의 도움으로 지난 2014년 북녘 조국을 처음 방문 할 수 있었다.


내가 북녘 조국 알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도 우리 민족일진대, 왜 우리는 70여년이 넘는 세월을,

 서로 적대시하며 원수처럼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집단으로 매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불과 얼마 전까지도, 북녘 조국을 절대적 주적으로 알고, 나아가 악마의 집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인지는 몰라도 외국에서 사는 나에게는 같은 핏줄의 형제를 주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아주 불편하고

,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북한 방문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다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같은 민족이면서 연락이 단절되고, 사랑하는 가족, 부모형제들을 다시보지 못하고,

 금방 전쟁이라도 터질 듯 서로 비난하고 싸우기 만하는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 한반도의 모습이

프랑스인들에게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느 프랑스 할머니가 애틋한 눈빛으로 어떻게 70여년이 되는 세월을 서로 만나지도 못하면서

 사느냐는 질문을 할 때 나는 새삼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1948년까지 한겨레 한 공동체로 삼천리 방방곡곡을 우리 땅 우리민족이 하나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우리의 선대가 그랬고 조상들이 그랬다.

 외세의 수많은 침략을 받았을 때도 이에 맞서 함께 저항하고 투쟁하였다.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무수한 독립투사들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웠지만,

그들의 피의 댓가가 분단된 조국이라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내 정체성을 찾는 문제와 직결이 된다.

성인이 되어 오랜 시간 해외에 나와 살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정체성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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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과 결혼해서 프랑스 사회에서 일하고 아이들도 프랑스 사회에 잘 적응해 살고 있지만,

적어도 나는 한국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은, 문화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정체성의 뿌리가 되는 한반도의 현실은 냉혹하게만 비쳐졌다.

비자와 항공권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에서

 오직 한반도의 북쪽만은 갈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다행히도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선언과 1.19 평양선언으로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에 있다. 이제는 냉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 반 쪽의 형제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오랜 분단 속에서 만들어진 그들의 왜곡된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미래를 꿈꾸고 미래를 건설하는 시간을 갖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북녘 조국방문을 결정했다.


우리의 민족이 살고 있는 수려한 금수강산이 더 이상 피로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결의로,

함께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누구든지 평범한 일상과 평화, 행복을 누리는 사회를 꿈꾸며 시작하는 여행이었다.


70여년간을 다른 체제에서 살며, 외부와는 철저하게 단절이 되었던 사회이니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4.27 이후의 세대가 갖추어야 하는 상식과 지식을 넓히기 위해

북녘 조국을 다시 방문해야 한다는 내 나름의 작은 사명감이 생긴 것 같다.


오랫동안 우리 머릿속에 갇혀있는 북에 대한 이미지를 털어 버리고 북녘 조국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정부가 주도하는 통일 준비가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자세의 발로였다.

내가 2차 방북 후, 한 한국분에게서 당신은 북에서 살고 싶은지,

남에서 살고 싶은지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갑자기 나의 개인사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어서 당혹스러웠다.

나는 프랑스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남이나 북이나 언제든 마음대로 방문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제는 시민이 참여하고 이끄는, 남북통일 융합의 시대를 꿈꾸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타인을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세상의 주인공으로 사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 냉전의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를 여는 한민족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분단이여 가라. 화해와 통합이 춤추는 세상을 함께 만들자.




하나의 민족. 조국 방문기2 "순안공항 해방산 호텔"
김정희 선생 재불동포
기사입력: 2019/03/10 [16: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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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북경에 가서 북경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사과에 가서 비자를 받아야 했다.

중국은 마치 조선으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 같았다.

 이 비정상적인 현실은, 우리의 분단으로 인해 주변국들이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 은 중국이 의도하지 않은 이익을 보는 것이 지정학적 이유인 것이다.

 중국의 번영도 조선과 연관되어 있고,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 요소도 조선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았던 일상의 불편이 이렇게 우리 생활에 깊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우리는 새 시대를 맞아 우리 후세들에게 남겨줄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주역이 되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번 여행은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다.


2018519


우리는 일찍이 조선에 가져가기 위해 주문해 놓은 잔디 씨를 찾아 공항으로 갔다.

잔디 씨가 원산해변지대 환경조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서 구입해 둔 것이다. 

68년간의 미국 경제제재와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 조선은 가난한 나라로 분류되어있지만

나에게는 같은 유전자와 문화를 갖은 우리의 형제가 살고 있는 나라라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무엇인가 기여를 하고 싶었기에 이렇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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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항공사의 비행기에 올라 북경을 출발했다.

기내는 작년과는 달리 중국인과 서구인들로 가득 차있었다.

지난해에만 해도 널널하게 빈자리가 많은 항공기를 타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사람이 적었는데

 올해는 빈자리 하나 없는 만석이었다.


내 옆자리에는 네덜란드의 어린이 유모차 기업인 EasyWalker 사장 부부가 앉았다.

 이회사의 유모차는 남한에서 시장점유율이 2번째이다.

그는 남쪽은 많이 갔는데 북에는 한번도 간적이 없어 호기심으로 방문하는 것이라고 한다.


45일 관광일정을 준비하는데 아주 간단하고 쉬었다고 말한다.

 이 부부는 회사의 경영주답게 호기심도 많고 적극적이었다.

나에게 샹송을 들어보라며 녹음한 것을 틀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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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는동안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절차를 마치고 물건을 찾고 나니 작년에 우리를 안내해주었던 광혁 안내원 동지의 얼굴이 세관 사이로 보였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안내원은 우리가 짐을 찾느라고 지체해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많이 긴장해 보였다.

이번 여행에 우리말을 못하는 남편을 동행하기 위해 영어를 하는 안내원을 붙여주겠다고 했는데

아마도 작년에 이미 우리 대표단을 안내한 경험이 있는 그가 나온 것 같다.


조선에서는 우리와 같이 외국국적을 가진 우리 동포들이 방문하면 해외 대표단이라고 부른다.

 작년까지 미국 국적 동포들과 같이 와서 미국 대표단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프랑스 대표단이 되었다. 


가져온 잔디 씨를 원호 위원회에서 나와있는 운전기사에게 넘겨주었다 

우리는 광혁 동지와 함께 평양시내로 들어갔다.

순안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는 물에 가득 찬 논들이 줄줄이 보였다.

 지난 4월과 5월에 비가 많이 와서 이번 쌀농사는 풍년이 될 것 같다고 설명한다.

작년도 쌀 수확이 좋았는데 올해는 더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조선 인민들이 좀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번에는 4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으로

평양시간이 서울시간과 동일하게 되었다고 안내원이 기분 좋게 설명을 한다.

평양을 들어서며 개선문을 지나고 김일성 광장 옆 만수대 예술극장에 잠시 멈춰 분수대을 보았다.

퇴근시간이라 길거리가 학생들, 직장인들이 바쁜 걸음으로 북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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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번 숙박을 했던 대동강변의 평양호텔이 재일 조총련 학생들의 수학여행으로 꽉차서

 해방산 호텔로 숙박지를 예약해 놓았다고 한다.

 해방산 호텔은 노동 신문사가 있는 거리로 대동강변에서는 두 번 거리를 건너야 했다.

세 차례 숙박을 하면서 정이 들었던 평양호텔 기념품 판매점과 책 판매점 아주머니를 볼 수 없는 것이 좀 섭섭했다.


우리는 짐을 풀고 평양에 도착하면 갔던 아리랑식당을 갔다.

우리의 여행 일정을 안내원이 설명을 해주었다.

이번 일정은 남편이 조선에 초행길이라 빡빡한 방문 목록을 만들어 한달 전에 제출했었다. 


이번에 방문을 신청한 세포 등판과 금강산을 12일 일정으로 다녀오려면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하므로 일요일인 내일 아침 일찍이 출발을 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 후엔 평양의 기념적인 장소를 방문하고,

마지막 날은 개성과 4.27 판문점 선언 후 해외 동포로서 첫 판문각 방문이라고 아주 신이 나듯 설명을 해주었다.

 좋다고 화답하고 내일 아침 일찍 730에 출발하기로 했다 


-다음 수요일 3편이 계속 됩니다-

 

김정희

 프랑스 30년이상 거주, ISG 졸업

파리외환은행과 코트라에서 근무

2012년부터 한반도평화통일 활동가 

프랑스(파리)김정희 평화통일 활동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 방문<3>
김정희 재불동포
기사입력: 2019/03/13 [00:56]  최종편집: ⓒ 자주시보

   

20185... 나의 조국 방문기 (3)

 

▲     © 이정섭 기자
▲     © 이정섭 기자

  

세포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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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포등판 방문을 신청해 두었지만 사실 세포등판이 뭔지 잘 몰랐다.

산림 전문가이신 유재심 박사가 북에가면 세포등판을 방문해 보라고 해서

그분말을 듣고 무조건 방문 신청을 한것이다.

 

우리는 평양을 떠나 개성으로 가는 통일의 거리를 지나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는 3대헌장기념탑을 통과하였다.

아름다운 두 여성이 들고있는 한반도가 들어있는 원형판에 새겨진 3대헌장은 자주, 통일, 민족대단결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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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원산방향으로 가면서 평양에서 약 한시간 반정도 후에 있는 유일한 휴게소는 신평관광휴게소다.

신평휴게소에 도착하면서 높은 절벽과 그 주변의 산세를 마주하면 감탄이 절로 난다.

청록색의 깊은 신평저수지의 물속에 드리우는 절벽의 그림자는

 내가 화가가 못되는 것이 안타깝고 글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실력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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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의 절벽형 돌산이 마치 저수지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향해 치솟는 모습은

, 새가 되어 날아서 저 높은 산꼭대기로 올라가 그 위에서 낙하하는 다이빙 선수가 되고 싶을 정도다.

 

아무튼 야무진 상상력의 날개를 펴게하는 신평저수지의 절경은 매번 나를 매혹시킨다.

 신평저수지 휴게소는 새롭게 단장하고 관광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11시경 원산에 도착하면서 부산하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트럭도 많아지고 차들이 예전같지 않게 많아졌다.

일요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가 신청한 세포등판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원산사업처장과 동행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어제 저녁 일정 설명을 하면서 언뜻 광혁안내원이 한 것을 생각했다.


 원산사업처장은 우리가 미국의 사이좋게대표단과 방문했을 때 항상 만나 원산의 동향을 나누곤 했던 분이다.

 2년 전에 원산에 있는 새건물로 입주한 육아원 방문을 주선해 주셨고

원산이 관광도시로서 새로운 도시개발 청사진이 나와있다고 설명했던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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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등판을 향하는 도로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트럭을 보면서 사업처장은

지금 갈마관광특구가 11채의 국제적 수준의 호텔과 40동의 4~5층짜리 콘도미니엄이 들어서는 공사로

매일같이 5000대의 트럭들이 건설자재를 실어나르느라고 복잡하다고 한다.

 

    계획중인 국제적 수준의 호텔들은 전문가들이

싱가포르, 마카오, 홍콩 등의 관광지를 둘러보고 건설을 시작한 것이므로 세계적 수준의 호텔이 될거라고 한다.

우리한테 지금이라도 어마어마한 공사현장을 보여주고 싶지만

공사현장은 트럭들로 위험하므로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


이 공사는 이번 9.9절까지 일부를완공할 예정이므로 아주 바쁘다고 한다.

전체 갈마관광지구의 완공은 2019415일이라고 한다.

조선이 말하는 만리마 속도로 갈마관광지구를 조성하는 것 같다.

 내가 기증한 잔듸씨도 여기에 뿌려지는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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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포등판이 이렇게 먼 곳인지 몰랐다며 다음번에 세포등판 신청하는 것을 받지 않겠다고

투덜거리는 안내원의 농담반 진담반을 들으면서 원산에서 고산군까지 40Km 이상,

고산에서 세포까지는 70Km 이상의 속도로 비포장 시골 산길을 스며드는 노란 흙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달렸다.

     

세포군 초입에서 세포등판축산기지 경리위원회 부위원장이 우리를 안내해주게 되었다.

 부위원장은 햇발에 살색이 거무틱틱한게 키는 작지만 아주 다부진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Range Rover 유형의 차로 우리 일행의 선두에서 뽀얀먼지를 내며 앞장을 섰다.

원산사업처장은 세포등판을 방문하기위해 담당기관 교섭을 나섰는데 오늘이 일요일이라,

아주 애를 먹었다고 하신다.

일요일에는 다들 쉬는 날이라, 이렇게 안내를 받아 세포등판을 방문하는 경우는 드믈다고 한다.

     

세포등판은 일재시대에도 개간을 하기위해 온갖 수단을 다 썼지만 개간을 못한 곳이고

 해방이후에도 몇 차례 개간을 시도했으나 다 실패한 곳이라고 한다.

 이 지역 골짝 농촌에 살면서 이곳 역사를 잘 아는 8순이 넘은 최연장자 노인이

 세포등판을 개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장담한 곳인데,

 2012년부터 개간해서 2017년에 완공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바람과 비와 눈이 많아 세포라고 불리는데 사람도 살수 없고

 동물도 살수 없는 뿌리가 50센티가 넘는 잡초들만 무성한곳인데 이 잡초들 하나하나 뿌리를 뽑고

 산성화된 땅에 질소 비료로 옥토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를 인솔한 안내원도 2012년에 3개월간 여기에 개간에 참여하여 일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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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섭 기자
▲     © 이정섭 기자




우리는 눈앞에 펼쳐지는 초원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꼬부랑거리는 산비탈의 비좁은 비포장도로에 노란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올라온 세포등판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 축산기지였다.

 

세포등판축산기지는 강원도의 원산에서 북철원 방향에 있는 세포군과

평강군 이천군등 세 군을 합쳐서 고지를 개간한 것이다.

 

-일요일에 계속-

 

김정희 / 프랑스 30년이상 거주, ISG 졸업

파리외환은행과 코트라에서 근무

2012년부터 한반도평화통일 활동가



하나의 민족.조국 방문기 (4)아! 금강산과 세포기지
김정희 선생<재불동포>
기사입력: 2019/03/16 [21: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하나의 민족.조국 방문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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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첫 번째로 방문한 건물은 세포등판 축산연구소로 이 연구소는

축산관련전문가들이 네덜란드와 벨기에

그리고 독일의 축산연구소를 방문한 후에 지은 국제적인 수준의 연구소로

 집짐승 방목에 따른 동물병 예방, 방역과 사료풀 및 축산에 필요한 분야를 망라하는 연구소라고 자랑한다.

 

세포지구 축산기지는 600미터 정도의 높고 낮은 구릉이 연속인 고산 초원지대다.

한 무리의 방목되어있는 양떼 옆을 지나가면서 한 축산마을로 들어갔다.

 이곳은 빨간 기와를 얹은 살림집들과 배구 농구장, 양축사, 경리위원회의 건물이 들어서 있고

 성산리 문화회관 앞 주차장에는 북에서 90% 이상의 부품을 자체 생산한 트랙터와 트럭들이 몇 대 주차되어 있었다.


모든 시설물들이 100% 완비되어 있는데,

현재 방목되는 소, 염소, 양들이 10만 두이고

앞으로 50만 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생산된 고기는 2017년에 5천 톤이었는데 앞으로의 목표는 1만 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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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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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또 한 구릉을 지나 언덕 쪽으로 올라가니 기상 관측하는 기구들과 풍력발전기

 태양 전지판들이 보이면서 빨간 기와를 얹은 3, 4층의 새 건물이 나타났다.


그 건물은 종합생산지령실로, 1층 관리실에서 세포등판의 모형과 자료들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진열되어 있었다.

 2층 종합생산 지령실은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황금등판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자연에너지관리, 동물관리, 축사운영상태, 생육관리와 화상 회의 등을 할 수 있으며

이 프로그램은 축산과 대학교수들과 일꾼들이 함께 만든 순수한 북한의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세포등판이 준공이 된 후에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하는 해외동포라고 부위원장이 말을 하면서,

바쁜 일정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세포등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관망대가 있는데 한 시간은 소요될 것이라고 하니

 우리측 안내원이 그럴 시간이 없다면서 갈 길을 재촉한다.

아쉽기는 했지만 이것이라도 본 것에 만족스러웠다.


남편이 이렇게 훌륭한 축산기지를 만든 것을 축하한다.”고 하자 부위원장은 기분이 좋은지 크게 미소를 지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산길을 속사포처럼 운전하는 운전기사 이름을 SPEEDY GONZALES라고 남편이 지어 주었다.

 

원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고산군의 사과농장은 사과바다라는 이름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사과 농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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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의 화끈한 운전 덕분에 원산에 빨리 도착해,

원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우리는 싱싱한 생선회와 해물을 푸짐하게 먹었다.

 

트럭으로 북적거리는 원산과 빠른 공사를 응원하는 포스터들로 덮여있는 갈마관광지구를 지나,

 감으로 유명하다는 안면읍과 시중호, 통천을 지나면서 금강산으로 향했다.

금강산관광이 활성화 되었던 시기에 고성 항에 세워진

해금강호텔을 마주하고 있는 통나무 펜션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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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황금색의 노을빛을 보면서 들어온 금강산 입구는 아침햇살 속에 신선함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고성항의 물결은 호수처럼 큰 움직임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각부터 안내원은 오늘만물상 인근과 삼일포, 해금강을 방문할 것이라며 바쁘게 서둘렀다.

 

우리는 군사분계선의 최전방 지대인 내금강 안으로 들어가는 복잡한 수속을 마치고 만물상 등산로로 향했다.

 작년에는 구룡폭포와 상팔담을 올라갔는데 만물상 등산로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귀면암을 보면서 전망대까지만 올라가는데도 산세는 깊고 높았다.

돌 봉우리들이 가까이 멀리 우뚝 우뚝 솟아 있는 것이 금방 깊은 산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안내원은 오늘 일정이 너무 빡빡해 천선대까지는 못가지만 산길은 계속 이런 식이라며,

다음에는 일정을 길게 잡고 다시 오라고 한다. 내금강산 산행을 맛만 본 것 같아 아쉽기 짝이 없었지만

, 한 점의 풍경화 같은 삼일포와 해금강을 보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삼일포로 들어가는 길은 갈대밭이 이어지고 적송들이 무성했다.

 삼일포 위에 떠있는 와우섬과 사각정은 많은 관광객들이 이어져

자신들의 길고 긴 외로움을 달래주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삼일포의 물은 구룡폭포에서 내려오는 물과 바닷물이 결합해서 생겼는데

이제는 완전히 내륙 호수로서 담수로만 되어있고 주변은 옥토로 변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군사분계선 안에서는 논매기를 하기에 바쁜 농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회색 빛 돌산들이 신기하게도 울뚝 불뚝 올라와 있는 것이 참으로 드물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입담 좋은 금강산 여 강사가 김 삿갓이 금강산 대마연에서 대사와 시 경쟁을 한 것부터

김 삿갓의 온갖 종류의 시를 줄줄이 외면서 설명을 할 때는

 좋타얼씨구장단을 절로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수요일에 계속-

 

김정희 / 프랑스 30년이상 거주, ISG 졸업

 

파리외환은행과 코트라에서 근무

 

2012년부터 한반도평화통일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