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방.외교

하나의민족.조국 방문기<5>6.7..마지막




하나의민족.조국 방문기<5>

김정희 선생 재불동포
기사입력: 2019/03/20 [10: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하나의 민족. 조국 방문기 (5)

 

▲     ©

 

▲     ©

 

     

▲     ©


 

해금강에 이르러서는 2대의 관광버스에서 내린 함흥지구의 관광객들이 향로봉 주변에서 소리치며

사진 찍고 돌산을 올라가는 등 남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행낭객들을 보면서

 남편은 남쪽이나 북쪽이나 사람들은 다 똑같은 행동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일란성 쌍둥이들이니,

 70여 년을 헤어져 살았어도 5천년의 전통과 관습이 같은데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사회적 행동의 동질성에 남편은 놀라는 것 같았다.

 

 

▲     ©
▲     ©



우리는 다시 숙소가 있는 고성 항 식당으로 가서 오늘 잡은 싱싱한 생선인 우레기찜,

삶은 문어, 회와 해삼 등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통천, 시중호, 원산을 거쳐 쏜살같이 평양으로 가면서

마식령 스키장을 잠깐 둘러보고는

 붉은 석양의 햇살에 자태를 나타내는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보면서

입성을 하니 마치 먼 길을 떠났던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듯

 저녁노을의 평양을 보는 것이 참으로 반가웠다.

 

평양의 아침에 대동강변의 조깅은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일정 중에 하나였다.

우리 부부가 아침에 운동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안내원이

우리에게 내일 아침에도 조깅을 할 거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물론이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522

 

작년에는 공사 중이었던 대동강 강변길이 이번에는 완전히 시멘트로 포장이 되고

자전거가 다니는 길과는 완전하게 분리를 해 두었다.

강변길은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아침에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 아침 체조를 하는 여성들,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는 부모들,

책을 큰소리고 외우는 듯한 학생들 각양각색의 평양 시민들을 보게 된다.

 

▲     ©

 

우리는 평양호텔 앞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강변로를 선택해서 조깅을 시작했다.

과학 중시 인재 중시라고 쓰인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고층 빌딩을 보면서,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고 키가 크지 않은 3~4년 정도 된 버들나무 묘목들을 심어 조경을 한 강변로를 달리면서

 왼쪽으로 대동강이 유유자적 흘러가는 모습이 아침햇살 아래 눈부실 정도였다.

 

▲     ©

 

오전 일정인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으로 갔다.

 1950625일부터 시작된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군이 사용한 장갑차나 전투기,

프에블로호의 실내를 보면서 아직도 우리는 휴전 중일뿐이고,

오는 612일에 우리 겨레의 운명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의해서 어떻게 변하게 될지 참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미 대통령과 미국에 의해 결정이 되는 것이다.

 

조선 측에서는 조국해방전쟁에 승리를 했다고 말하지만

유엔기를 앞세운 미국에 의해 파괴된 북의 대도시들,

 많은 우리 선대들의 죽음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희생자들만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전쟁 없는 조선반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희망을 이루는 민족의 대단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
▲     ©
▲     ©




점심은 옥류관에서 평양제일의 전통적인 쟁반냉면을 먹으면서

 녹두 부침으로 전식을 하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오후에는 세계에서 유명한 교예(서커스)를 보러 만경대 구역에 있는 평양 교예극장으로 갔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고공에 몸을 던져 날아가는 사람의 손을 잡는 아찔한 교예는

모나코의 세계 서커스 경연대회에서 몇 차례나 상을 받은 기술이라고 한다.

특히 중앙의 고공에서 그네로 사람을 던진 몸을 잡아 다시 몇차례 돌면서

 반대 쪽으로 던지면 잡아내는 장면은 숨이 멈추는 듯 전율이 일었다

 

사람이 날아오는 속도와 그 사람이 뻗은 손목을 잡아내는 힘과 속도가 절묘하게 맞아야 하는

 이런 고도의 기술은 오직 조선 사람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예극장 안에 관람객들은 반 이상이 어린이와 학생들이었다.

서로 자리를 앞쪽의자에 앉으려는 모습과 순박한 표정들을 보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 다음 일요일에 계속

 

 

김정희 / 프랑스 30년이상 거주, ISG 졸업

파리외환은행과 코트라에서 근무

2012년부터 한반도평화통일 활동가

프랑스(파리)김정희 평화통일


하나의민족 조국방문기<6>
김정희 선생 재불동포
기사입력: 2019/03/24 [11:54]  최종편집: ⓒ 자주시보

 

 

523

 

아침에는 평양호텔에서 대동강변을 들어서 왼쪽으로 산책하기로 하였다.

 이 길가에는 대동문이 있고 더 가면 옥류관의 뒤쪽이 있다.

 특히 주체탑을 정면으로 볼 수 있고 김일성 광장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는 쪽이다.

 

어제는 조깅을 해서 오늘은 산책을 하기로 했다.

 2년전에는 대동문까지만 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대동교와 옥류약수 상점을 지나

옥류관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었다.

 

옥류약수는 광천수로 건강증진에 좋아 평양인민들이 아침에 줄을 서서 약수를 받으러 온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대동문 근처에서 많은 관광버스들과 초,중등학생들과 부모들이 모여서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 같이 북적였다. 학생들이 농촌으로 농활을 떠나는 것 같았다.

1~2주일동안 농촌의 농번기에 가서 집단 생활을 하면서 부모와 떨어져서 살며

독립심과 판단력을 키워준다며 모든 학생들이 일년에 3~6주 정도

농사일의 직접 경험하게 하는 목적으로 떠난다고 한다.

 

오늘 일정도 평양시내 관광지를 보기로 했다.

첫번째로 방문한 곳은 려명거리와 김일성대학 캠퍼스를 지나면서

금수산 태양궁전을 지나 대성산 주작봉 아래에 있는 항일혁명열사릉을 방문하였다.

 

이곳은 항일투쟁기에 혁혁한 투쟁을 한 전사들의 유해가 모인 곳으로 이 분들의 평균 나이가 25세라고 한다.

 특히 리계순 동지의 항일투쟁 활동은 가슴을 찌른다.

이 분은 핏덩어리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항일투쟁을 하다 일본 헌병대에 잡히고

감옥소에서 받은 변절의 유혹을 대중에게 투쟁을 선전하는 기회로 만들다가 전사한 분이라고 한다.

그녀 나이 24세였다.

항일 열사들의 흉상을 보면서 우리민족에게 독립이라는 것이 자신의 생명보다,

자식보다 더 소중한 시대의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착찹한 마음을 한구석으로 모으면서 그 다음 방문지로 향했다.

항일 혁명열사릉을 내려오면 곧 바로 오른쪽에 동물원이 나왔다.

 동물원 앞에는 관광버스들이 유치원생 아이들이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동물원엔 학교에서 단체로 방문학습 혹은 소풍을 하는지

 많은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웃고 떠들고 간식을 먹는 모습에 나도 흥겨웠다.

 

그 다음 행선지는 개선문이다.

 평양의 개선문은 파리의 개선문보다 10m가 높다고 자랑하고 있다.

개선문의 지붕 위 테라스로 올라가서 아래를 보니

 동쪽에는 평양에서 제일 먼저 건설되었다는 김일성 경기장이 보였다.

 

▲     © 이정섭 기자

▲     ©



북쪽에 있는 개선청년공원 앞의 엄청나게 큰 광장에는

사람들이 빼곡이 가지런한 줄을 서서 체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내 강사에게 물어보니 9.9절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한다.


평양과 지방에서 동원된 사람들이 3개월 이상을 준비하는 것을 보니 완벽한 군중춤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지난번까지는 아리랑이 공연되었는데 이번에는 빛나는 조국이라는 제목으로 올려 질 것이라고 한다.

 

평양은 시가지 곳곳에 공원들이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고

 대형 건물 앞이나 대로 옆의 대형석조들도 심심치 않게 배치되어 도시가 잘 정비된 듯 보인다

. 이번에 방문한 주체사상탑은 불꽃까지 합해 170m나 되는 화강암 석탑이다.

우리는 150m 위에 있는 테라스에서 평양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동평양의 살림집 고층건물들이 은근한 파스텔 색상인데 건물 외장을 페인트로 조화를 이룬 것 같았다.

 

▲     ©

▲     ©

  

평양에서 개성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초입은 통일의 거리를 거쳐

 3대헌장기념탑거리로 들어가면 우아한 아치형문으로 한복을 입은 두 여성이 팔을 올려 동그란 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남과 조선을 상징하는 조선 옷을 입은 두 여성은 평화, 통일, 민족 대단결을 뜻하는 3대헌장의 한반도 지도가 새겨진 원형 디스크를 들고 있는 석상이다.

돌 하나의 무게가 60kg가 넘고 2,560개로 구성된 한복을 입은 두 여성은 남과 조선의 쌍둥이 여성으로 어느 쪽이 북인지 남인지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통일의 염원은 우리가 남에 살던 조선에 살던 해외에 살던 이렇게 영원히 변치 않는 석비에 새겨놓고 있다.

 우리가 한겨레로 뭉치면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과연 통일에 대한 의지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서로 다른 체재 아래 적대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과연 어떤 답이 나올 것인지...

-수요일 계속-

 

김정희 / 프랑스 30년이상 거주, ISG 졸업

파리외환은행과 코트라에서 근무

2012년부터 한반도평화통일 활동가

 



하나의민족,조국방문기<7>
김정희 선생 <재불동포>
기사입력: 2019/03/27 [11:1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하나의 민족, 조국 방문기<7>

 

524

 

아침에 다시 대동강변 오른쪽으로 조깅을 시작했다.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에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웅기중기 모여 큰 소리로 싸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각자의 자전거가 발밑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 자전거 사고가 난 듯 하였다.

 

아침 출근길에 비탈길에서 충돌이 있었던 것 같다.

서로 투덜거리면서 한마디씩 하며 헤어지는 것이 어느 정도 합의를 본 것 같았다.

 

▲     ©

 

오전에는 평양근처에 있는 류원 신발공장을 방문했다.

 1973년부터 운영된 이 신발 공장은 운동화와 아동화를 만드는 곳으로

 미국교포가 지원해 준 생산라인을 완전히 걷어내고

조선 자체기술로 만들어진 신반창 사출기 등 북한에서 생산된 기계들로 설비되어있다고 한다.

 특히 이 공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기는 지붕위에 빼곡하게 설치된 태양광 전지판을 이용한다고 한다.

 

공장 안 신발 전시장에는 화려한 색상의 다양한 운동화와 장화 등이 가득했다.

 

그 다음 행선지는 지하철도를 타는 것이다.

 19739월 부터 운영이 시작되어 지금은 2개의 노선으로 지하철도의 깊이가 150m 정도라고 한다.

 

지하철도 안내책자에서는 천정이 높고 통풍장치가 잘되어

언제나 공기가 맑아 사람들로 하여금 땅 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지하철역들에 있는 천정의 모양이나 조명의 특색이 각각 다르고,

 벽에는 작은 타일로 된 대형 모자이크벽화가 꾸며져 있다.

특히 영광역에 있는 평양의 4계절 모자이크벽화는 대단한 작품이었다.

 

▲     ©

▲     ©

▲     ©

 

▲     ©

▲     ©



다음 행선지인 조선미술박물관에서는 고구려 시대 안악과 강서의 4~7세기경 왕의 고분 속에 있는 벽화를 그대로 본뜬

그림들을 보았다. 고분속의 왕과 여왕의 초상화와

, 사냥과 행차를 하는 그림으로 그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전통을 벽화 사본를 통해 볼 수가 있었다.

 

▲     ©

▲     ©

▲     ©

▲     ©

▲     ©

 

우리는 서둘러 박물관을 나와 만경대학생 소년궁전을 방문하였다.

만경대학생 소년궁전은 평일은 학생들이 방과후 특별활동에 전념하도록 오직 목요일만 개방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61일이 국제 어린이날이라 이날을 준비하는 공연때문에 이번주 목요일 공연은 없다고 한다.

 

만경대학생 소년궁전은 7세부터 16세까지 약 5천명의 학생들이 무료로 특별활동을 하는 곳이다.

 이번에는 박수림이라는 14살의 성악 전공 학생이 소년궁전을 안내해 주었다.

 발레, 가야금, 손풍금, 붓글씨 회화 등 예술적인 특기와 컴퓨터, 과학, 운동 등

각기 좋아하는 특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재능이 특별한 아이들의 경우 교사들이 추천을 하면, 집중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525

 

개성과 판문점 방문이 있는 날이라 서둘러 출발을 했다.

개성으로 가는 고속도로 양옆 평양평야의 밭 에서는 봄 씨앗 뿌릴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논에는 농부들이 한창 모내기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은 구릉의 산들도 지난해 보다 나무가 더많이 심어져 있어

시뻘건 흙이 듬성 보이는 면적들이 많이 줄어 들었고 작은 키의 어린 묘목들이 계속적으로 심어졌다.

 

산사태를 막고, 황폐화 되었던 산림지대를 복원하는 작업을 꾸준하게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조선의 산림청 사업처장은 북에서 산림복구 사업이 2012년부터 시작되어

 이미 첫번째 5년 계획했던 목표는 달성하고

이제 2차 계획으로 넘어가 2022년까지 황금산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다.

지속적으로 열심히 묘목을 심으면 5년 후에는 많은 산지가 회복될 것 같지만

아직도 UN의 경제재제로 묘목을 재배할 수 있는 온실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함경남도 리원군 같은 외지는 지원의 손길이 닿기에는 너무나 멀고,

특히 방문하여 현지 확인을 하고 싶어 하는 지원 단체들이 도로가 나빠,

 접근이 어려운 곳이라 지원도 못 받아 산림복구사업이 늦어 지고 있다고 한다.

 

- 다음 일요일에 계속 -

 

김정희 / 프랑스 30년이상 거주, ISG 졸업

파리외환은행과 코트라에서 근무

2012년부터 한반도평화통일 활동가

프랑스(파리)김정희 평화통일 활동가




2018년 5월... 하나의 민족.조국 방문기 (마지막회l)
김정희 재불동포
기사입력: 2019/04/01 [04: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우리는 평양 개성고속도로로 개성을 진입하고 곧 군사분계선 입구에 도착했다.

 군사분계선 전초 입구에 관관버스들이 서있었고 중국관광객들로 입구안내소가 북적였다.

최근에 부쩍 중국관광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가끔 서양의 외국인 관광객들도 보였다.

안내원이 군사분계선 안쪽으로 들어갈 때는 항상 군인이 동행을 한다며,

안내군인이 와서 우리에게 판문점지역을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군사분계선 안으로 들어서니 길 양쪽에 논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반도의 전통적인 농작지인 개성평야의 옥토가 군사분계선 안에 있지만

 이 옥토 속에서 나는 농사물들은 이곳 주민들은 물론 조선의 보물일 것이다.

 

우리는 곧 정전담판회의장을 방문하였다.

1951년 6월 30일 유엔사령관 미국 Ridgway 사령관의 제의에 의해

시작된 정전담판을 개성지구에서 할 수 있도록 조선에서 급하게 설치한 건물이

아직도 역사의 증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정전협정조인장이 있다.

 

▲     ©

▲     ©

▲     ©


지금은 안쪽이 훵한 빈장소이지만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는 날에는

조선 남한 중국 미국및 유엔군인들이 빼곡이 앉아 역사적인 휴전협정을 조인한 증인들이 있었다.

이 많은 증인들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많겠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마치는 직접적인 관계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전쟁 속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고 오직 희생자들만 있다.


우리는 곧바로 판문각으로 이동해 판문점을 사이로 자유의집을 보았다.

안내 군관 중위는 4월 27일 판문점선언을 하면서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심은 통일나무를 보라며

 판문점과 남측 건물사이 관상용 향나무들 사이에 잘 보이지 않는 동그랗게 보이는 소나무를 지적하면서

 사진을 찍어 보라고 한다. 안내원들이 그 통일소나무 사진을 찍는 것이 우리보다 더 신나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판문각방문을 마치고 개성시내로 들어갔다.

개성은 조국해방 전쟁 중 폭격을 적게 받은 곳으로 천년의 역사를 아직도 보존하는 곳으로

 12개의 역사유적이 유네스코에 2-13년 등재되었다.

 

▲     ©

▲     ©

 

개성시내에 있는 개성 전통 여관은 조선 주택 촌을 이루는 곳으로

 일제시대 이전부터 개성이 상거래중심지로서 아직도 남아있는 옛날 여관으로

 지금도 숙박시설과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개성 여관식당에서 가야금 연주와 더불어 9첩 반상으로 점심을 하고,

다음일정인  선죽교, 표충비 와 숭양서원을 방문했다.

 

▲     ©

 

선죽교에는 아직도 붉은 자국이 남아 있고,

조선왕조들이 정몽주의 충절을 찬양하여 세운 비들을 설명하는 강사안내원이

조선왕조의 위선이 가득한 비를 세운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권력들은 이렇게든 저렇게든 자기네 유리한대로 그 시대상으로 백성들을 복종시키고

 지배하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뜻이였다.

 

이번 여행에서 더 절실히 느낀 것은 조선이 빛으 속도로 천지개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개성에서도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하고 평양에는 전기자전거가 다니고 있다.

아직도 미국과 유엔의 경제제재로 일부 딘 곳도 있지만 조선식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계속 눈에 띄었다.

 

이 짧은 기행문을 쓰고 있는 오늘은 이미 싱가포르 조미회담도 마치고

미국에서 한미 연합군사 훈련이 조선과 조선반도에 도발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전쟁게임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조선은 더 빠른 변화와 민족의 자주와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의 민족 조국 방문기는 오늘로써 끝을 맺지만 5월에 조선바로알기 여행 시작 되니 가슴이 벌써 일렁인다.

특히 이번 방문은 한국과 해외동포들이 기증한 묘목을 식수할 예정이다.

우리의 통일 나무들과 더불어 자주통일의 창창한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독자들이 방문기를 통해 남과 북 우리는 같은 동족으로 

 떨어져 살 수 없음을 절절히 느끼셨을 줄로 믿으며 5월 조선 방문 후 다시 뵙기를 약속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