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남북정상회담은 성사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조건 없는 만남”을 언급하며 이 정부 들어 4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공식화했지만 정작 북한에서는 감감무소식이다.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이전부터 대북특사 파견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대북접촉을 모색했지만 북측에서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격적인 남북대화 추진에도 지난해 이맘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현재 분위기, 그야말로 한국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이는 남북 접촉마저 미국의 눈치(승인)만 살피며 스스로의 입지를 좁게 만든 정부의 책임이 무척 크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이유를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자. 4월 11일 한미 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렸는데 내실 없는 ‘빈손 회담’이란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미 양측은 소규모 회담, 확대회담, 정상 간 단독 회담을 진행했다고는 하는데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합의는 전무하다.
고작해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또는 남북 간 접촉을 통해 한국 정부가 파악하는 북한의 입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나에게 알려달라”고 밝혔다
이마저도 문재인 대통령에 미국의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라는 입김을 불어넣은 것으로 , 미국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한국의 입지만 확인됐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해서도 “지금은 적기가 아니지만, 올바른 시기가 되면 엄청난 지지를 보낼 것”이라며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이러한 도움이 있을 것이다.
일본, 중국, 러시아도 북한을 지원하리라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그런데 애초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는 이명박 정권 당시 한국의 독자 제재로 미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두 사안이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닌데도 미국에 민족의 운명을 맡기며 스스로의 입지를 한껏 낮춘 정부의 판단에 땅이 꺼져라 한숨이 푹 나올 상황이다. 애초 남북이 알아서 추진했으면 됐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재개할 것”이라고 밝힌 사실을 상기해 보자.
그러나 정부 내에서는 4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북측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하면 상응조치가 될 것이라는 이해 못할 기류마저 감지된다. 이밖에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정상회담과 종전선언 가능성을 언급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4차 남북정상회담을 고작 3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징검다리로 생각한다면 번지수를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이토록 중대한 국면에 ‘미국의 메신저(중재자)’를 자처하는 남측의 굴욕적 행태는 완벽한 오판이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고 규정된 남북기본합의를 깨고 ‘미국이 승인하지 않으니까’ 남북관계를 진전시키지 않(못하)겠다는 무기력함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이래서야 김정은 위원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을 필두로 한 북측이, ‘남측과는 판문점 1주년을 함께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반면 4월 13일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을 통해 “북남(남북)관계를 지속적이며 공고한 화해협력관계로 전환시키고 온 겨레가 한결같이 소원하는 대로 평화롭고 공동번영하는 새로운 민족사를 써나가려는 것은 나의 확고부동한 결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해 해 둡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에 “김정은 위원장의 대화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이제, 부디 말 뿐이 아닌 직접행동에 돌입해야 한다.
70년 간 축적된 분단의 시간을 새 시대의 확고한 평화와 통일의 시간으로 앞당기기 위해 한미공조가 아닌 남북(민족)공조의 길을 뚫어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주인, 남북관계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미국이 아니라 이 땅에서 자라나 살아갈 우리들과 후손들의 삶을 먼저 생각해 행동한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통해 낡아빠진 색깔론과 분단체제 청산도 언제든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요란한 빈 수레를 내실 꽉 찬 ‘통일의 수레’로 만들어야 미국이 물자반입을 거부해 공사의 첫 삽을 뜨지 조차 못한 지난해 12월 철도 착공(수)식 때처럼 빈 수레만 요란해서야 될 일은 없다.
정부는 지금의 방식이 그토록 염원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해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획기적인 전환에 나서야 한다. 교착에 빠진 남북관계를 풀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했듯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다. 신한반도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약속을 진정성 있게 뚝심 있게 이행하면 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이 발언마저도 지난 2월 25일 북미정상회담의 합의 성공을 근거로 들며 한 것이었다. 즉, 북미관계가 변화해야 한국이 나설 공간이 생긴다는 수세적인 자세였다. ‘주인이라면서 주인 아닌 모습’을 내비친 꼴이다 실제로 국방부는 군사 분야 합의를 이행하겠다고 하면서도 ‘북한의 위협’을 가정한 미국과의 군사훈련을 끝내 놓지 않으며 기름을 끼얹었다.
평화를 말하면서도 국방비는 큰 폭으로 증강됐고,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의 스텔스 전투기 F35-A 구입도 결정됐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15조원에 달하는 미국산 무기를 구입하겠다며 대미 굴욕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오죽하면 ‘무기 장사꾼 트럼프에게서 그토록 많은 미국의 무기를 구입하려고 워싱턴까지 간 것이냐’는 호된 비판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한 때는 ‘미국 눈치 살피기’에 급급했지만 지금은 미국에 할 말 다 하고 민족의 이익도 능히 지키고 있는 터키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봄직 하다.
터키가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가 아랍과 유럽을 잇는 지정학적 교두보인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역시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만큼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4월 8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F-35 스텔스 전투기 부품 인도를 잠정 중단’하는 미국의 보복조치에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예정대로 (러시아의) S-400을 7월에 도입하겠다. 이는 우리 주권의 문제이고 우리가 계약을 체결한 이상 도입 사업은 완료된 것이다.”
터키 정부는 ‘아무것도 줄 생각 없다. 너희는 그냥 무기만 사라’며 뻔뻔하게 군 미국이 아닌, 첨단 무기 개발 사업에 터키 방산기업의 참여 등 ‘기술이전’을 강조한 러시아와의 협조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지역(아랍·중동)에서 입지가 큰 터키를 함부로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터키의 협조가 있어야만 시리아 주둔미군 철수 뒤에도 미국의 군사적 입지를 붙들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의 대미전략은 주효했다. 우리 정부도 얼마든지 F-35를 ‘강매하라’는 미국에 멋진 통쾌한 펀치를 날린 터키와 닮은 통 큰 행보를 걸을 수 있다.
위기를 조장하고 북미대화를 방해 책동하는 미국에 맞서 남북이 함께 하는 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목소리는 천 번 만 번 외쳐도 지나침이 없다.
아직까지는 ‘괄호 안의 물음표’로 남아있는 우리민족의 평화, 번영, 통일이 확고한 느낌표로 바뀔 수 있다면 말이다. 지난해에는 세 차례의 정상회담이 열렸고 남과 북, 해외를 아우른 우리 민족의 마음을 전율케 했다. 물론 정부는 평양에서 열린 합동공연 ‘봄이 온다’와 판문점 1차 정상회담 당시 무대연출과 노래 선곡에 큰 신경을 기울였고 멋지긴 했다.
하지만 그 이후 한미워킹그룹이 만들어지고 미국의 ‘승인’에 기대기만 하면서, 세기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취지를 퇴색시켰다.
정부는 북측과 민족의 한 걸음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보다는 ‘겉포장’에만 신경을 쓴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의 태도를 단단히 되물어야 한다. 판문점 공동선언과 북미 공동성명에서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는 명문에도 똑똑히 명시되어 있듯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를 위협하는 가공할 전략무기-군사훈련을 완전히 제거하는 평화체제의 초석을 놓는 결정적 조치다.
한반도를 겨눈 한미연합군사훈련도 중단해야 마땅하다. 정부는 이 점을 똑똑히 명심해야 한다. 미국이 주장하고 있는 리비아 해법(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 이후 고작 8년 4개월 뒤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개입으로 리비아 정부가 무너져 내전에 빠져든 역사를 각인해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깨트려 끊임없이 제 이득을 탐하는 미국과 군산복합체를 걷어낸 ‘남북-민족 공조의 첫 발 내딛기’가 간절한 까닭이다. 한미워킹그룹에 얽매여 우물쭈물하며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철도협력조차 손 놓은 정부.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미국의 뒤꽁무니를 그저 따라가기만 해서야 지금의 난제를 도저히 풀 수 없음을 똑똑히 절감해야만 한다.
남북관계의 담대한 진전이 북미관계를 견인할 수 있다는 역발상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시기인 것이다. 민족공조는 온 겨레의 삶과 운명을 지키기 위한 유일무이한 해법이다.
처음엔 어려울 수 있어도 한 번 내딛으면 이처럼 분명한 활로는 또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시 전 세계를 향해 보란 듯이 판문점선언에 담긴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드높이 치켜들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