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greatchosunsa/JbrZ/18
제31차 대조선역사포럼 특별강의 핵심내용.
일시장소: 2017. 9. 2. 오후2시~6시. 종로 피카디리극장 6층
-진이정교수: 태극기의 참뜻과 문화사상
-한조선교수: 대조선은 속국인가 제국인가-2강
[사진은 태극기의 참뜻과 문화사상: 특별강의 진이정 교수]
[ 이날 60여분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대조선은 속국인가 제국인가: 특별강의 한조선교수]
지난 9월 2일 종로피카디리극장 6층서 열린 포럼에서의 핵심내용을 올립니다.
진이정 선생님은 출장관계로 자료를 보내오지 않아서 강의시 유인물을 사진으로 공개하고,
대조선은 속국인가 제국인가에 대한 핵심자료를 공개합니다.
[태극기의 참뜻과 문화사상: 핵심자료]
대조선은 속국인가 제국인가/ 핵심자료
<국사편찬위에서 펴낸 백과사전에는
명나라의 정식국호를 대명(大明)이라고 해놨다>
대명大明에 대해서 알아보자.
태조는 조선을 개국하여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궁궐이 완성될 때 까지 고려 수도 개경에서 3년간 머물렀다.
태조가 머무른 개경의 수창궁을 대명전大明殿으로 불렀다.
또 1395년 태조는 도읍지 한양으로 이어해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전각 중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는 전각을 대명전大明殿으로 정하고,
대명전에서 정사와 정무를 보았다.
또 역사교과서에는 리성계의 조선개국을 반대해 곡기를 끊고 순절했다고 하는 목은 선생이다.
그런데 리성계가 머물고 있는 '대명전'에 들어가 태조를 알현하고 나와 글을 쓴 기록이 있다.
목은(牧隱) 리색(李穡) 의 “天壽節入覲大明殿”
천수절(1392년 10월 11일)에 대명전(고려 수창궁)에 들어가 (태조를) 알현하며...(밑에 게재함)
식민반도사관자들이 쓴 사전에 명의 공식국호가 大明이라고 했다.
황제나 왕의 이름은 일반인이 쓰지 못하도록 국가내에 방을 붙이고 엄격히 통제했다.
그런데 속국이라는 조선이 상국
또는 황제국인 명나라의 정식 國號인 大明을 건축물에 쓴다는 건 있을 수도 없다.
명나라, 즉 조선의 태조가 정무보던 곳을 대명전이라 했으니, 상국이요
황제국인 대명국이 속국인 조선에서 대명전을 쓰도록 그대로 놔뒀을까?
이 얼마나 허무하고 황당한 사기극인가?
조선의 국호와 개국과정
<미국에서 발견된 大明宣德委賜>
2006년 6월에 개빈 멘지스는 홍콩으로 가서 일련의 강연활동을 벌였는데,
일정 가운데 한 차례의 기자회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기자회견 석상에서 미국 국적의 중국인 생물학자인 리자오량(李兆良) 박사는,
그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작은 도시 스완나노아(Swannanoa)에서 출토된
선덕(宣德) 연간의 금패(金牌)를 가지고 있는데,
윗면에 ‘대명선덕위사(大明宣德委賜)’라고 쓰여 있으며
이는 특수한 외교적 기능을 하였던 물건이라고 발표하였다.
(大明宣德委賜란 위대하고 명철하신 문종황제가 통치를 승인하다는 뜻의 금패.
즉, 특정지역의 통치를 인정받았다는 명패·금패로서,
문종황제께서 특정지역 또는 국가의 통치를 은혜롭게 맡겼다는 걸 의미한다. )
반도식민사학자들이 쓴 백과사전 위키토피아에서도 조선을 ‘大朝鮮’이라고 밝히고 있다.
1876년 고종이 대조선국으로 썼다면서,
그 이전 대조선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었냐고 힐난하는 식민반도사관론자들이 많다.
그러나 대조선은 조선이 개국할 때부터 사용해 왔다.
‘大朝鮮’이란 일제 강점기 이전의 우리와 직접적인 부모와 조부모 등 조상이 살던 조국의 이름이다.
그러면 태조고황제 리성계 홍무제께서는 왜 조선으로 국호를 정했을까?
고려의 대문호이자 역사학자 권근 등 대신들은
태조 리성계에게 태고적 역사에 대해 강론했다.
태조도 '우리조상이 얼마나 웅혼하고 위대했었는지 잘 안다'고 답변하는 기록이 실록에 나온다.
대신들은 태조 고황제 리성계(홍무제)에게
화령과 조선 중 국호를 정해 주라고 예부를 대표해 한상질이 올린다.
함경도 화령부는 리성계가 태어난 곳이고 외조부가 통치하던 동북면이다
(동북면은 지금의 연해주일대로 부터 사하공화국까지로, 바이칼호수 동북지역을 일컬음).
반대로 서북면은 리성계 부친 리자춘이 통치하던 지역으로 내몽골부터 중앙아시아지역이다.
조선왕조실록의 태조실록
"此是昔時王氏業 檀君逝久幾更張"“
"이곳은 옛날에 왕씨(고려 왕조)의 기업(基業)이었는데
단군(檀君) 가신지 오래이니 여러번 왕조가 바뀌었다."
"聞說鴻荒日 檀君降樹邊 位臨東國土 時在帝堯天 傳世不知幾 歷年曾過千 後來箕子代 同是號朝鮮""
"듣자하니 아주 먼 옛날 단군(檀君)께서 강림하시어 동국(東國 : 동방)의 임금이 되시었네.
때는 요임금과 같은 시대인데 몇 세대를 이었는지는 모르나 햇수로는 천년도 더 오랬다 하네.
후에 기자(箕子) 때에도 나라이름은 역시 똑같이 조선(朝鮮)이라 불렀네."
여기서 리성계는 자신의 고향 화령(함경도 회령부에 속함)보다는
태고부터 이어진 위대한 조상들의 나라에 감읍하며,
국호를 천하통일 ㆍ사해통일 ㆍ천하일가를 이룩한 조선,
즉 대조선제국으로 정한다. 이게 대조선이다.
<단씨청동상>
중공이 왜 조선을 껄끄러워 하여 동북공정을 앞당겼는지 살펴보자.
모택동은 대륙이 조선이었다는 걸 감추고 속이기 위해
1955년 대약진운동과 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조선말인 훈민정음을 죽이기 위해 간자체로 바꾸고,
조선의 역사 문화풍습 등 흔적을 없앴다.
그런데 1970년 산동에서 삼족오청동상(중공명: 단씨청동상)이 발견되었다.
이 청동상발견으로 서화족ㆍ화하족이 정권을 잡았지만,
자신들의 역사는 미미해졌기 때문에
급작스레 일본과 수교(1972년)를 하고
역사조작의 달인 일본과 곧바로 동북공정으로 나서게 된 연유가 된다.
조선은 1만척의 군함으로
서구ㆍ왜구ㆍ원의 잔당 ㆍ북방족ㆍ홍건적 등을 토벌해 3000여 번국을 다스리던 천하통일ㆍ
사해통일ㆍ천하일가를 이룩한 천자국ㆍ 황제국으로서
옛 태평성대인 요순시절과 하 은 주를 거치면서,
그 당시의 세계의 크고 작은 국가와 영주
ㆍ봉주들의 제 왕조는 모두 대조선의 제후번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ㅡ지금 국사는 거의 다 가짜이고 거짓이기 때문에 기억에서 지워버리시라.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朝鮮)은 아침의 땅, 아침의 나라, 금단의 땅이 아니다.
근세조선, 즉 대조선은 태양과 달과 곤륜산을 모두 취했다.
태양과 달과 지구,
즉 日과 月과 곤륜산이 합쳐진 일월오봉도 ㆍ일월오악도가 바로 明이다.
明은 지혜ㆍ현명 ㆍ명철 ㆍ갸륵ㆍ현자라는 뜻이다.
大 자를 쓴 大明은 위대하고 명철하다....등의 뜻이다.
인류 역사적으로 조선 창업자 태조 리성계만이 고황제를 썼다.
고황제는 역대 천자ㆍ황제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뜻이다.
이후의 천자 ㆍ황제와 주요대신들
(제후번국왕ㆍ공작 ㆍ후작ㆍ백작 ㆍ자작 ㆍ남작ㆍ양반 ㆍ사대부를 총괄하는 신하.
대신들의 사가의 99개 대문을 대궐로 부르는 이유다)은 大明을 썼다.
태조 리성계 고황제가
왜 한조선 ㆍ부여조선 ㆍ배달조선을 근간으로한 조선(朝鮮)을
국호로 정한 이유인지 알아야 한다.
현 중공지도부는 이 역사적 사실기반을 둔 대조선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중공의 동북공정은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목은(牧隱) 리색(李穡)
“天壽節入覲大明殿”
천수절(1392년 10월 11일)에 대명전(고려 수창궁)에 들어가 (태조를) 알현하며
(한국사에서는 사림파 거두 목은 리색선생이
태조 리성계의 조선개국을 거부하고 두문동 계곡에서 두문불출하며 곡기를 끊어 순절하였다고 나옴)
大闢明堂曉色寒 활짝 열린 명당에 새벽빛이 싸늘한데
旌旗高拂玉闌干 옥난간엔 깃발이 높직이 펄럭이네
雲開寶座聞天語 보좌에 구름 열리자 천자의 말씀이 들리고
春滿霞觴奉聖懽 유하잔에 봄이 가득 황제의 기쁨을 받드네
六合一家堯日月 온 천하가 모두 한 집 요 임금 시절이요
三呼萬歲漢衣冠 만세소리 삼창하니 한나라 때 의관 이로다
不知身世今安在 아지 못하겠네 이 몸이 지금 어디 있는 고
恐是青冥控紫鸞 아마도 난새를 타고 푸른 하늘 올랐는 듯
태조가 조선을 개국하자,
세계 3000여번국에서 축하와 조공을 보내왔는데, 대표적으로 기록을 살핀다.
섬라곡국(暹羅斛國. 태국)에서 그 신하 내(乃) 장사도(張思道) 등 20인을 보내어
소목(蘇木) 1천 근, 속향(束香) 1천 근과 토인(土人) 2명을 바치니,
임금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대궐 문을 지키게 하였다. - 태조 3권
자바국(爪蛙國은 아랍쪽. 조와국(爪蛙國)은 남미쪽)
아열(亞列) 진언상(陳彦祥)이 사자를 보내어 토물을 바쳤으니
, 유구(琉球)의 별종(別種)이었다.
- 태조 23권
대조선은 어떻게 개국하였는가? (개국과정)
-태조 고황제 리성계 홍무제는 1만척의 군함으로 천하통일 · 사해통일 · 천하일가를 이룩했다.
국조보감 제11권 세조 25년(경진, 1460) -(핵심적인 부분만 발췌)
-조선시대 역대 왕의 업적 가운데 선정(善政)만을 모아
후세의 왕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편찬한 편년체의 역사책.
위대하신 목조(리성계 고조부 리안사)께서 / 於皇聖穆
북방에 깃발을 세우셨도다 / 建牙于朔
돈독토다 그 경사 / 遹篤其慶
우리 왕업을 시작하셨도다 / 肇我王迹
완악한 토호(고려의 제후세력)가 / 頑之豪
쌍성(내몽고 이북. 서북면)에 웅거하거늘 / 據雙城
거룩하신 우리 환조(리성계 부친 리자춘) / 我聖桓
깨끗이 소탕하셨도다 / 于濯征
사납고 모진 적을 없애고 / 狙獷亡
우리 강토를 개척하셨도다 / 拓我疆
고려가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여 / 咨麗失馭
외적이 번갈아 모멸하였도다 / 外侮交熾
섬 오랑캐가 함부로 침탈하고 / 島夷縱噬
나하추(納哈出. 북원의 잔당 1388년 소탕)가 눈을 부릅뜨고 / 納寇恣睢
홍건적(홍건단두목 주원장. 1368년 소탕)이 기세를 떨치고 / 紅巾炰烋
원의 잔당(기황후.혜종의 황후 1365년 패망)이 핍박하고 / 元餘奰屭
요망한 중(신돈의 무리)이 발호하고 / 孼僧跋扈
호발도(胡拔都. 여진족 우두머리1383년 소탕)가 날뛰었도다 / 胡魁陸梁아,
위대하신 태조께서 / 於皇聖祖
신무를 크게 드날리어 / 神武誕揚
요망한 기운 사라지도다 / 妖氛倏廓
모멸하고 침탈할 자 없으니 / 無侮無拂
우리 동방의 나라 복이로다/ 祚我東國
고려왕(우왕. 공양왕)이 간언을 듣지 않고 / 麗主拒諫
감히 난을 일으키려 하였도다 / 敢行稱亂
신령한 결단을 내리시어 / 我運神斷
우리 군사 되돌리니(위화도 회군. 현 중령시 위주와 화주를 합쳐 위화도라 한다) / 我師我返
하늘과 사람이 도왔도다 / 天人協贊
섬 오랑캐(아시아남부, 구라파일대)가 헤아리지 못하고 / 島夷匪茹
우리 변방을 살육하였도다 / 虔劉我圉
이에 불끈 노하시어 / 爰赫我怒
우리 군대를 정비하여 / 爰整我旅
일만 척의 배로 바람을 타고 / 萬艘駕風
나는 듯이 바다를 건너셨도다 / 飛渡溟渤
그 둥지를 뒤엎고 / 乃覆其巢
그 소굴을 쳐부수니 / 乃擣其穴비
유컨대 새털이 / 譬彼鴻毛
세찬 불길에 활활 타는 듯 / 燎于方烈
사나운 물결 잔잔해지니 / 鯨波乃息
우리나라 영원히 안정되도다/ 永奠鰈域아,
[주석 나하추. 백과사전: 원 말기인 1355년 그는
강남 전투에서 명나라 (식민사학 명국존재기간 1368~1644년.
그런데 13년전에 명국을 지칭한 것은 거짓이라는 완벽한 증거)
군대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북방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희망(포로가 희망하면 보내주는가?)이 받아들여져서
만주지역에 근거를 두게 되었다.
이후 고려에 침입했다가 패배하고 화친을 맺는 등
고려와도 교섭을 가지면서 자기 세력을 키워나갔다.
[주석 홍건적 주원장: 홍건적이 소탕되었는데,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다는 건 새빨간 거짓이다.
[주석 위화도: 영하회족자치구의 중령시(위주,화주를 합친 위화도).
당시의 압록강·청하·청수하가 황화와 합쳐진 곳을 중령이라 하고,
중령에 위주와 화주가 위화도이며,
중령의 위화도를
현재는 단동과 신의주에 있는 압록강 하구 조그만 모래섬으로 옮겨 놓았다.
[주석 호발도: 도종의가 지은 철경록에
발도(拔都)가 나오는데,
발도라는 문자의 어원이 몽골어로 용감한 사람을 뜻하는 바투(bator. batur)에서 시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제56권 앙엽기 3(盎葉記三)의 발도(拔都).
태조 리성계와 관련 있는 아기발도(阿只拔都)라는 왜의 두목과,
호발도(胡拔都)는 여진족(女眞族) 북방오랑캐의 두목을 지칭한다.
中國은 나라의 중심에 있는 천자·황제가 계시는 곳,
천자가 계시는 곳을 중심으로 둘러싼 게 한양이며,
한양을 둘러싼 게 京畿로서 중국이라 불렀음.
“조선의 황제가 계신 곳은 한양 한성이요, 경기 지역은 중국이다”
'중강통상장정(中江通商章程)'
태조 고황제는 천하통일, 사해통일, 천하일가 이룩했다.
-태조 리성계 아들 태종 리방원을 주원장의 아들로 둔갑시켜버린 국사편찬위
-국사편찬위가 국역한대로 밝히고, 이에 대해 원문에 입각한 주해를 싣는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6월 18일 갑자 2번째기사 1403년. (핵심만 발췌)
○皇帝勑諭天下文武官員軍民人等:
[국사편찬위/ 국역]
명 황제 칙유(勅諭.조서를 내려 깨우치다)는 이러하였다.
(반박: 원문에 명 황제가 어디에 나와 있는가?
"짐이 고황제(高皇帝)의 적자(嫡子)로서 연국(燕國)에 번병(藩屛)이 되었는데,
고황제께서 연국의 땅이 호로(胡虜)와 접경(接境)하였다고 하여
여러 번 변방의 일을 부탁하시었다.
뒤에 의문 태자(懿文太子)가 훙서(薨逝)하매,
고황제께서 짐이 대사(大事)를 맡길 만하다 하여,
동궁(東宮)에 정위(正位)하여 기본을 튼튼히 하려고 하시었는데,
불행히 고황제께서 승하하시매,..."
(당시 태자는 막내아들이었다.
한국사에는 리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의문태자(방석)와 방번을 죽였다고 나온다.
그러나 실록에는 흉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사교과서는 거의 100%가짜다 라는 사실)
"또 근대(近代)로 논(論)하면, 원(元)나라가 천하를 차지하매,
국가[海宇]의 넓음과 인민[生齒]의 번성함과
국용(國用)의 풍부함과 병갑(兵甲)의 성(盛)한 것을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마는,
천명(天命)이 이미 가매, 군웅(群雄)이 아울러 일어나서,
우리 태조 고황제께서 한 치의 땅[寸土]과 한 백성의 의뢰할 것도 없이
마침내 화란(禍亂)을 평정하여 천하를 차지하였으니,
이도 역시 인재를 이대(異代)에서 쓰고, 감정을 원구(怨仇)에서 푼 때문이다.
그래서 왕업을 창건하여 대통(大統)을 전하고, 예(禮)를 제정하고 악(樂)을 만들어서,
몸소 태평을 이루기를 40년을 넘겨 하였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또한 사람을 쓴 소치(所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부황께서 공(功)을 쌓고 인(仁)을 거듭하여,
성덕(盛德)이 하늘을 감동시켜,
천명(天命)의 융성한 권고(眷顧)041) 가 한없는 복(福)을 내리었기 때문에,
복이 짐의 몸에 이르러 대통을 이었으니,
짐이 어찌 감히 천명과 부황의 덕을 어기어 다스리겠는가?
지금 천하가 한집[一家]이 되고,
사해(四海)가 통일이 되어, 군민(軍民)이 서로 즐기고 함께 태평을 누리니,...."
[주해: 매족매혼노들이여. 오호통재라,
태조 고황제 리성계 홍무제에 대한 실록을
국역에서는 명 태조 주원장으로 탈바꿈 해놨다.
원문 제목에 명 황제란 기록이 없는데도 명 황제라고 거짓으로 번역 해놨다.
특히 조선 태종 영락제를 주원장의 아들로 둔갑시켜 놨다.
그럼 태종 리방원이 태조 리성계의 자식이 아니라 주원장의 자식었는가?
또 원문제목에는 황제라 하였고
원문내용에서 ‘우리황제, 부황(태종의 아버지), 모후(태종의 어머니)'라고 했는데도,
한자를 모르는 어린 학생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명나라 황제의 칙유라고 속였다.
명황제라면 태종 리방원이 주원장의 아들이 되고 만다.
태조 고황제 리성계의 연호는 홍무제다.
홍건적 두목 주원장의 실록이 아님은
원문 중에 ’부황, 우리 태조 고황제‘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 태조는 다름 아닌 태조 리성계이기 때문이다.
태조 리성계가 천하, 세계가 한 집, 한나라였고,
사해, 세계가 통일되었고 지구촌이 다 일가가 되었다고 분명히 명시하였다.
제발 우리 역사를 조작하고 폄훼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조선은 3000여 번국을 다스린 대제국
중공 복건성에 세워진 기념비문내용 올바른 해석:
天妃之神靈應記/ 천비지신령응기
해석: 하늘의 여황 신령이 응하는 비
其西域之西 北之國 固遠矣/ 기서역지서 북지국 고원의
해석: 그 서역의 서쪽 그 북쪽 나라 척박하고도 멀기도 하네
-주해:서역은 서남아시아와 중동, 그 서쪽은 아프리카, 그 북쪽은 구라파
而程途可計 皇上嘉其忠誠/ 이정도가계 황상가기충성
해석: 헤아릴정도로 긴 여정에서 황상께 기쁜 마음으로 충성을 올리네
明和等統率官校 旗軍數萬人/ 명화등통솔관교 기군수만인
해석: 명철하게 화합하여 차등있게 통솔되는 관교깃발 병력이 수만명이네
-주해: 1402년 3000여 번국의 왕과 주요대신 2만여명이 조선에 조공을 바치자,
태종은 조선의 해군사령관 리정화제독, 홍보제독, 주만제독에 큭명을 내려
번국의 왕과 대신들을 각 나라에 귀국시켜 주라고 함.
乘巨舶百餘隻 齊弊往之/ 승거박백여수 제폐주지
해석: 크고 큰 선박 (수)백여척으로, 엄하고 번거러운 왕래이었네
所以宣德化 而柔遠人也/ 소이선덕화 이유원인야
해석: 이로써 임금의 어진 덕이 베풀어 피어나니 편안한 먼 곳의 사람들아
-주해: 천자의 어진 덕으로 먼 곳의 사람들이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다.
自永樂三年 奉使西洋/ 자영락삼년 봉사서양
해석: 영락제 3년에 특명을 스스로 받들어 서양으로 임무를 가지고 떠나네
-주해: 태종3년 1403년에 특명을 받고 서양으로 첫 항해 함을 알림
治今七次 所歷番國/ 치금칠차 소력번국
해석: 지금은 7차례 다스리며 그 차례로 지나고 있는 나라가 번국이며
-주해: 미개하여 문화수준이 낮은 번국을 다스리며 지나가고 있다는 뜻.
大小凡三千餘國 滄溟十萬餘里/ 대소범삼천여국 창명십만여리
해석: 무릇 크고 작은 삼천여 나라로 푸르고 어두운 십만여리네
-주해: 크고 작은 번국이 3000여 나라로, 당시 지구상 모든 나라를 일컫는다.
-7차례 출항 27년간 17만여km나 항해하며 태종을 대신해 번국을 다스렸다.
사전 풀이
번(蕃)과 번(藩)의 정치적 뜻풀이
번(蕃)은 우거지다, 무성하다, 미개하다, 오랑캐.
번(藩)은 제후가 맡아 다스리는 영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藩國이라함은 제후와 귀족(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이 다스리는 영지, 봉지이다.
번인[蕃人]은 미개하여 문화 수준이 낮은 종족의 사람.
九州之外謂之蕃國(구주지외위지번국. 5복제와 9복제로 시행됨)
-9주 이 외의 지역은 천자가 직접 다스리지 않는다는 뜻
따라서 蕃國은 미개하여 문화수준이 낮은 나라, 땅.
부탁의 말씀
대조선사는 2016년 특별강의와 SNS 등지에 알리고 있다.
역사는 진행형이고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 당시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진실을 수립, 정립, 확립하기 위해서 과정상 여러 학설과 주장을 제기할 수 있다.
그래서 발명가처럼 수많은 과정과 난관을 겪어야 한다.
역사를 의도적으로 조작왜곡하지 않았는데도,
‘대조선은 허구’라는 자들은
어느 대조선사의 전체맥락에서 부분적인 일부만 뚝 떼내어 허구라 하고 있다.
또 대조선사를 연구한다는 일부 파렴치한 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역사를 전체로 보지 않고,
상대를 비하폄훼하기 위해 일부분을 꼬집어 비난하는 데, 그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실정은 어떤가?
일제와 매혼노들이 우리 역사를 새로 만들어 놓은 반도사관,
식민사관인 조선사 · 명사 · 청사 · 25사... 등 수많은 사서와,
조작왜곡해 놓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정사로 결정해 실증사관으로 확립해 놓고 있다.
즉 반도식민사학을 대적하려면 실증을 하라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만 실증사관을 두고 있을까?
역사를 어떻게 실증하라는 것인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때 시대로 가라는 말인가?
역사를 실증하라고 하면,
반도식민사관자들의 시조(始祖)와 자신과의 유전자(DNA) 검사를 해서
일치하는지부터 실증해야만 한다.
..............................................................
4월의 주제는
이광우 선생님께서
1) 조선 성종실록에 있는 이오(서역) 정벌로 본 대륙조선 고찰
2) 실크로드의 어원 고찰과 차이나의 어원이 신라에서 유래했음을 명백히 하여 대륙사를 고증합니다.
3) 국조보감의 태조고황제에 대한 명칭의 의미와 장개석 관련 일화
4) 단국기원설의 연대적인 고증, 사모관대의 유래
5)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흑인병사 '해귀(海鬼)의 정체를 밝히고
6) 세종에 나타난 '노인성'의 관측지는 대륙일수밖에 없는 이유를 강의하시고,
https://youtu.be/bMH5N1vfXls
1900년 초 문인들의 고향은..
이광수의 새나라로 시..
김소월의 삼수갑산..김소월의 고향은 대륙의 정주인데 한반도로 쫓겨옴.
김동환의 국경의 밤에 나오는 두만강(내몽고) 위치.
이들의 이주비용을 미쓰비시에서 부담.
유명한 문인들 대부분 대륙 조선 사람들이다..
경주는 낙양이다.
윤동주도 만주 출생이지만,
서울로 자.타로 이주해서 연세대를 다님.
김구도 황해도 해주지만 대륙조선 해주 출생.
유튜브 이솔해. |
'우리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의 선도산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0) | 2019.07.08 |
---|---|
독일인 에카르트, 1919년 朝鮮이 대륙에 있었음을 증명하다!! (0) | 2019.07.07 |
17~18세기 지도로 본 조선팔도는 어디인가? (0) | 2019.07.07 |
대륙조선의 지배층들이 한반도로 이주한 이유..손문은 대륙조선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0) | 2019.07.07 |
한반도는 누구의 땅인가?..대륙조선에서 한반도로의 이주자 명단 조선신사대동보(책) (0) | 2019.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