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성인(聖人)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聖帝)의 아버지는
북부여 해모수 천제(天帝)이며,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이며,
이름은 유화(유화)이며, 또한 사소(娑蘇)입니다
. [부도지 제 29장 ] :
박혁거세왕은 천성(天性)이 어질고
지혜와 덕성을 겸한 神聖(신성)이시며 현비(賢妃) 알영(閼英)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박혁거세는 몸에서는 빛이 나고, 귀가 부채만큼 큰 대인(大人)이었다.
신라는 고조선 삼한 중에 진한이며,
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하는 제사장의 법통을 계승하였다.
즉 혁거세 대인(大人)은 매년 10월 3일은 제천단(祭天壇)에서 흰옷을 입고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다.
이 때 고조선 삼한 중에 진한, 마한이 진시왕정에게 패망하여
진한(辰韓)과 마한(馬韓)의 고조선 유민들이 하나로 뭉쳐 협력하였다.
비록 국경의 경계를 두고 방비는 하였으나,
국호(國號)도 정하지 아니하고, 또한 왕이라고 칭하지도 아니하였다.
혁거세왕은 달구(達丘)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
율포(栗浦)에 해시(海市)를 열어, 육해 교역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항상 나라를 순행(巡行)하시며, 뽕나무를 많이 심어 농상(農桑)을 권장하시어
각 가정마다 베를 짜고 백성들은 비단 옷을 입었다.
인자하신 혁거세 대인(大人)은 항상 백성들에게 도리(道理)를 가르쳐
선행(善行)을 권장하여 백성들 또한 어질고 순박하여 농작물을 들에 쌓아 두어도 도적이 없었다.
이와같이 나라를 부흥시키고 여러 사람들과 고락(苦樂)을 같이 하였다.
비록 나라는 부강했으나 외국에는 방패와 창을 쓰지 않고,
이웃 나라와 더불어 평화를 보존하여 군자(君子) 국이라 칭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국정(國政)은 선세(先世)의 법을 준수하여,
제회(祭會:화백회의)에서 의결되지 아니하면,
일찍이 한가지의 일도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수계위법(領首繼位法) 역시 혈통과 씨족 계열에 한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비록 평민이나 제후국 사람이라도 현명한 사람을 선택하여 국가의 영수로 삼았다.(중략)
신라의 시조 혁거세 성인(聖人)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聖帝)를 낳은 선도산(仙桃山) 성모(聖母:하백의 딸 유화, 사소)는
地仙(지선)이 되어 선도산(仙桃山)에 오래 머물러 계시며
신라국을 진호하시어 신라국은 신령스러운 일이 매우 많이 일어났다.
[삼국유사 제5권 감통 제 7] 仙桃聖母 隨喜佛事(선도성모 수희불사)
선도산성모(仙桃山聖母)는 佛殿(불전:대웅전)을 새로 수리하는 일을 기뻐하시고
안흥사 주지 지혜에게 도움을 주시었다.
신라의 진평왕조(서기 579-632년) 때 이름이 지혜라는 비구니가 있었는데 행실이 많이 어질었다.
安興寺(안흥사) 住持(주지)로 있으면서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을 새로 수리하고자 하였으나,
자금력이 모자라 미루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밤 꿈에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간드러지게 예쁜 선녀
가 쪽빗 머리에 푸른빛의 비취 구슬로 장식하고 내려와서 위로하며 약속하시기를
나는 선도산의 神母(신모=사소, 유화) 이니라,
너희가 대웅전을 수리하기를 소원하고 있으니 내가 기뻐서 금 열 근을 시주하여 협조하고자 하노라,
내가 앉은 좌대 밑에서 금을 취하여 主尊佛(주존불) 三像(삼상)을 모시고 점등하고,
53 六類聖衆(육류성중)과 모든 天神(천신)과 五岳(오악)의 神君(신군) 그림을 그려서 벽 위에 붙이고
매년 봄과 가을 두 계절 10일 날은 선남선녀 들을 광장에 모아서 일체의 모든 含靈(함령)들을 위하여
占察法會(점찰법회)를 개최하는 일을 규정으로 삼아 항상 잊지 않도록 하라.
지혜는 놀라운 생각에 승도를 거느리고 선도산 神祠(신사)로 가서 좌대 밑의 굴에서 황금 160량을 얻었다.
지혜는 지극 정성으로 공을 다하여 神母(신모)가 일러주신 말씀에 의거하여 불상을 갖추고 모셨다.
그 事跡(사적)은 아직 남아 있지만 법회의 일은 폐지되었다.(중략)
또 聖母(성모:하백의 딸 사소)는
하늘의 모든 仙女(선여)들에게 비단을 짜서 붉게 염색된 비단 직물을 가지고 와서
조정의 대신들에게 옷을 만들어 주었다.
신라 사람들은 이 신비스러운 일을 경험하고 비로소 神驗(신험)을 알게 되었다.(중략)
신라의 진평왕조(서기 579-632년) 때 하늘의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천사가
신라의 진평대왕을 배알하고 옥으로 만든 天賜玉帶(천사옥대)를 주시었다.
천사가 말하기를 이 玉帶(옥대)는
옥황상제(하느님)님이 내려 주시는 보물이니 잘 간직하여 대대로 전하도록 하시오,
신라국의 진평왕은 친히 꿇어앉아 길이가 十圍(10위)이고,
62개의 옥으로 새겨서 장식하여 만든 요대(허리띠)를 천사로부터 받았다.(후략)
경주의 선도산은 가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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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산 정상의 삼존불상(三尊佛像) 사진. ©플러스코리아 |
한반도 속의 선도산은 높이 380,2m이며 경주의 진산으로 서악(西岳),
서술(西術), 서연산(西鳶山), 서형산(西兄山)이라고 불린다.
산성내의 정상부에 보물 제65호로 지정된 마애석불입상이 남아 있다.
선도산 동면의 남쪽에 태종무열왕릉을 비릇하여
김인문(金仁問)과 김양(金陽)의 무덤이 있고
북쪽 서악서원의 뒤쪽 산허리에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이 있고, 선도산의 서면 애공사지(哀公寺址)의 서쪽에 법흥왕릉이
있다. 라고 돼 있습니다. [국립경주 박물관 참조]
황제헌원과 선도산(仙桃山)
신라의 조상 황제헌원은 신라의 仙桃山(선도산)에 살고 있는 神?(신도)와 鬱壘(울루) 형제에게
인간 세상의 귀신을 다스리게 하였다.
선도산에는 꾸불꾸불한 나무 가지가 삼천리를 덮을 수 있는 큰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복숭아나무 꼭대기에 금색의 닭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금색의 닭(鷄神(계신:신라에서 닭신(소호 금천)을 믿고 임금의 관에 닭의 깃을 꽂았다)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때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 닭은 햇살이 몸을 비추면 찬란한 금빛을 비추었다,
또한 扶桑樹(부상수: 뽕나무)에도 구슬 소리를 내는 닭이 있었다.
동쪽의 복숭아나무와 북쪽의 뽕나무 사이에 매일 귀신들이 들락거리는 문이 있었다.
귀신들이 들락거리는 鬼門(귀문) 앞에 신도와 울루 두 형제를 지키게 하여
인간 세상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각양 각색의 크고 작은 귀신들을 붙잡아 조사하는 임무를 받았다.
귀신들은 밤에만 나타날 수 있고 닭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귀신들이 들락거리는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그 귀신들 중에서 흉악하고 교활한 귀신과 인간 세상에서 착한 사람을 해친 귀신들이 돌아오면
두 형제는 즉시 그 귀신을 갈대 끈으로 꽁꽁 묶어 큰 호랑이 먹이로 던져주었다.
이로 인하여 사람을 해치는 흉악한 귀신은 점점 줄어들었고 또한 사람을 해치는 일도 줄어들었다.
후세의 사람들은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복숭아 나무에 갈대 끈을 들고 있는 두 신의 모습을 만들어
대문 양쪽에 걸어두고 큰 호랑이 한 마리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혀 두고 사악한 마귀를 막았다.
혹 어떤 사람은 두 형제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문 위에 붙이기도 하고
혹은 두 형제의 이름을 써서 붙혀도 효과는 같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이 곧 고대부터 전래된 門神(문신)이다.
또 다른 문신은 대장군의 모습에 손에 무기를 든 秦叔寶(진숙보)와 胡敬德(호경덕) 두 장수가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唐太宗(당태종) 이세민은 항상 몸이 쇠약하여 날마다 밤에 귀신을 보고
두 장수를 불러 자신의 방문을 지키게 하자 귀신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후세에 두 장수가 門神(문신)이 되었다.
[중국 신화] 2천년 전은 현세와 다른 세상을 이해합시다.
신라의 진짜 선도산은 중국 절강성에 있다
선도산(仙桃山)은 북부여 해모수 천제의 부인이며,
신라의 시조 혁거세 성인(聖人)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聖帝)를 낳은 유화(柳花=사소(娑蘇) 성모(聖母)님이
오랜 세월로 머물러 계신 대한민족의 성지(聖地)입니다.
경주시의 충효동 서산의 선도산은 이병도가 조작한 가짜이고,
중국 호북성(안휘성)의 선도산이 진짜인지 정부당국자는 철저히 검증하라.
선덕여왕의 묘가 중국 절강성 낭산(狼山)에 있습니다.
선덕여왕의 진짜 낭산(狼山)경주 선덕여왕의 가짜묘지
현재 경주 보문동 낭산(狼山) 기슭에 선덕여왕 능으로 추정 되는 능이 있다.
능의 둘레는 약 73m에 이르며,
소형의 자연석을 호석으로 이용하여 전체적으로 다른 왕릉에 비해 빈약해 보인다.
현재의 모습은 일제식민지시대의 1900년 이후 후손들이 보수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 디지털박물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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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덕여왕의 진짜 낭산(狼山) ©플러스코리아 |
좌편의 지도에서 신라 선덕여왕의 묘지는 강소성의 낭산일까요 경주 보문동일까요? 대답하세요
넋을 잃은 7천만 한겨레여...!
조국을 배신한 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는
아무런 고증서(考證書)도 없이
자신의 임의대로 경주(慶州)를 신라 천년의 왕도로 지정한 이후 중국 절강성의 선도산을 경북 경주의 선도산으로 얽어 맞추었던 유적물입니다.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해 조국을 배신한 이병도는
국사만 왜곡하고 어찌 각 문화재는 조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적(遺跡)물은 옛 시대의 역사를 조명함에 매우 가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으나
한국의 유적물은 전부다 조작된 유물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습니다.
즉 가령 한강 이북에서 발굴되면 고구려 유적,
경북 경주에서 출토된 유물은 신라의 유물,
충청도 부여와 전라도 지방에서 출토되면 백제의 유물로 명명하고,
김해지방에서 출토되면 가야 문화라고 지정한다.
왜곡된 역사 지식의 고정관념으로 얽어 맞추기 식으로 지정함으로서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가 한반도 속으로 축소한 삼국의 영토를 다시 고착화 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한(韓),중(中),일(日) 3국의 사학자에게 고(告)함
[상기의 본문]에 대하여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왜곡된 국사교육의 거짓 지식이 고질화되어
처음은 믿지 못하고 불신할 것입니다.
만약에 한(韓), 중(中), 일(日) 3국의 사학자는 물론
국내외의 넷 티즌 여러분은 상기의 본문에 대해 도저히 믿을 수 없거나,
납득하지 못하고 의문이 있는 사람은 [이 기사 독자 의견] 란에 의의(疑意)를 제기해 주시면
성심 성의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경주의 황룡사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