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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불교미술박물관장 비밀창고 여니.. 도둑맞은 문화재 3000여점 와르르
박지윤
2019.07.30. 08:16
[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11> 장물 불교 미술품 수십년 숨겨온 박물관장
“어째서 이 그림이 여기에… 아이고 아이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2006년 어느 날, 그림 구경을 나섰던 한 스님의 발걸음이
갤러리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한 큼직한 탱화(幀畵) 한 점 앞에서 뚝하고 멎었다.
그림 아래를 봤더니 ‘화기(畵記)’가 없었다.
그림 조성 시기, 소장처 등을 적어둔 화기는
그 기록 만으로도 작품의 내력을 추적할 수 있어 ‘작품의 지문’이라 불린다.
그냥 없는 게 아니라 썩둑 잘려나간 모양새였다.
도굴꾼의 소행임이 분명했다.
얼른 조계종 도난백서를 들췄다.
탱화의 정체가 드러났다.
1994년 전남 장성군 백양사에서 도둑맞았다는 ‘아미타영산회상도(1775년)’였다.
이런 귀한 그림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너무도 당당하게 걸려 있는, 이 희한한 풍경이란.
당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산하에 갓 만들어진 문화재범죄전담수사반의 일원이었던
이영권 경감(51)이 추적에 나섰다.
예상대로 A불교미술박물관 권모(78ㆍ당시 65) 관장은 태연했다. “난 거리낄 게 없어요.
11년 전 인사동 고미술상에서 1억 2,000만원을 들여 샀으니,
당연히 내 소유물이지요.” 장물인 줄 몰랐다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권 관장은 1970년대부터 불교 미술품만 들여다본
, 이 분야에서 평판이 자자한 ‘선수 중의 선수’였다.
그런 사람이 장물 여부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11년 전에 샀다’는 진술 자체도 그랬다.
당시 문화재 은닉죄 공소시효는 10년. 장물을 들여다 딱 10년을 묵힌 뒤 내놨다는 게 너무도 뻔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두 달 동안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어쨌든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느냐”는 논리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다른 무엇보다 문화재 수사 1년 차일 때라 ‘수사 노하우 부족’이 뼈저리게 아팠다.
◇30억대 문화재 경매… 8년 만의 리턴매치
8년 뒤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 2014년 5월 이 경감은 한 통의 제보 전화를 받았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경매장에서 거액의 옛 불교 미술품들이 나왔다는 첩보였다.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문화재 전문가들에게 연락했다.
“이건 그냥 내다 팔 물건들이 아닌 것 같다”
“딱 장물 같다”는 대답들이 나왔다.
도난 문화재 목록과 대조해보니 하나같이 도굴과 도난이 성행했다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사라졌던 작품들이었다.
일단 경매를 중단시키고 추적해보니 역시 권 관장이었다.
권 관장이 미술품 수집 욕심을 부리다 사채까지 끌어다 썼는데,
이 빚을 갚지 못하자 채권자가 담보로 잡아둔 권 관장의 그림을 내다 팔기로 한 것이다.
경매에 나온 작품들은 권 관장의 명성에 걸맞았다.
경북 청도 용천사의 ‘영산회상도(1744년)’의 경우 경매 시작가가 3억 5,000만원, 추정가가 6억~7억원에 달했다.
권 관장 보유 그림 5점의 예상 시가는 총 30억원이었다.
조사받으러 나온 권 관장은 변함없이 떳떳했다.
“장물인 줄 모르고 샀다” “나에겐 죄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샀느냐고 물어보면 이미 사망한 사람들 이름만 댔다.
문화재 사범들의 전형적 수법이었다.
변명은 한 가지 더 늘었다.
“내가 이 그림들을 사지 않았다면, 전부 해외에 반출돼버려 영영 행방을 알 수 없었을 것”이라 했다.
자신은 ‘장물을 거래한 사람’이 아니라 ‘문화재 보호에 일조한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국공립박물관보다 더 많은 유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경감은 그때 그 ‘초짜’ 수사관이 아니었다.
8년여 동안 축적해온 문화재 전문가 인물 데이터만도 2만 명에 달했다.
권 관장의 ‘유물 카드’, 박물관의 ‘문화재 대장’ 등 기록을 대조하고
,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숨은 문화재들을 찾기 시작했다.
작업 중 딱 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바로 ‘지석(誌石)’. 죽은 사람의 일대기를 기록해 죽은 이와 함께 묻는 판석이다.
바꿔 말해, 도굴하지 않는 이상 꺼낼 수 없는 유물이다.
기록과 달리 권 관장의 박물관 수장고에는 지석이 없었다.
슬쩍 한번 찔러보자 권 관장 얼굴이 사색이 됐다.
지석들은 박물관과는 별도의, 경기 성남시 권 관장의 사설창고에 따로 보관돼 있었다.
사설창고는 장관이었다.
이중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니 곰팡내가 진동했다.
첫날엔 수색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형 선풍기 등을 동원해 환기부터 시켜야 했다.
사설창고 내부에 들어가니 350㎡에 달하는 공간에서 수천 점의 문화재와 유물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 수색은 무려 9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당시 경찰이 권씨로부터 압수한 문화재 및 작품의 수는 3,000여 점에 달했다.
지석도 500여 점이나 쏟아져 나왔다.
당시 전국 국공립 박물관에 보관 중인 지석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많았다.
◇문화재를 해치는, 문화재에 대한 빗나간 사랑
권 관장은 스스로를 ‘미친 사람’이라 표현했다.
술도, 마약도 아닌 미술에 중독됐다 했다.
가산을 탕진하고 사채를 얻어가며 사들였다.
정식으로도 사들였고, 뻔히 장물인 걸 알면서도 사들였다.
그게 범죄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랬다.
그렇게 모은 미술품으로 1993년 불교미술관을 만들었고,
나중엔 절 하나를 통째 사들여 불교박물관으로 꾸몄다.
스스로는 그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한다 했지만, 그 사랑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었을까.
경찰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성남 사설창고의 문화재 보호 상태는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권 관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남들에게 내보일 수도, 팔 수도 없었을 그 수많은 보물을 숨기고 살아야 했으니.
권 관장의 30년 컬렉션이 모여 있다던 불교박물관 수장고도 마찬가지였다.
지하 1층의 ‘공식’ 수장고는 그나마 나았다.
넘쳐나는 유물을 감당하지 못한 권 관장은 자기 집 근처에 주택 3채, 컨테이너 2개를 사두고
‘간이 수장고’로 썼다. 말이 간이 수장고였을 뿐, 그냥 창고였다.
그곳의 미술품들 또한 ‘보관’ 혹은 ‘보존’되어 있다기 보단 그냥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다.
오래된 전통 미술품은 그 특성상 온도, 습도, 조도 등을
정밀하게 조정해 보존해야 한다는 상식이 통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 때문에 권 관장이 지닌 문화재들의 보존상태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먼지가 수북한 것은 물론, 곰팡이가 군데군데 피어 있기 일쑤였다.
여기에다 권 관장은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훼손하기까지 했다.
도난 사실을 숨겨야 했기에 화기를 긁어내거나 잘라 내버리는 것은 예사였다
. 전문 도색공을 불러다 바래거나 없어진 부분을 새로 칠해 넣거나 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정도가 심해 아예 작품을 뒤바꿔놓은 경우도 있어서, 도난 문화재를 찾아놓고도
이게 잃어버린 그 문화재인지 확인하는 데 애 먹기도 했다.
전북 전주의 서고사에서 도난된 ‘나한상(1695)’은 원래 늙은 스님의 모습을 새긴 나무 불상이었는데
권 관장은 이를 젊은 수도승의 모습으로 새로 칠하게 했다.
‘이게 그건가’ 싶었던 경찰은 엑스레이 촬영까지 하고서야 동일 작품이란 걸 알았다.
2015년 10월 서울중앙지법은 문화재 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 관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16년 5월 항소심에서는 “그간 개인의 자산을 내놓으면서까지 불교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한 점을 인정한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이 줄었다.
하지만 2016년 11월 또 다시 권 관장의 범죄가 드러났다
빚에 시달리던 권 관장의 아들이 따로 숨겨두었던 장물 문화재를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때도 전북 완주 위봉사의 ‘목조관음상’ 등 보물급 도난 불교문화재 11점이 27년 만에 회수됐다.
권 관장은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또다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숨겨진 문화재가 얼마나 더 있는지, 그것은 오직 권 관장만이 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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