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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외교

우크라이나에서는 왜 여객기가 추락했을까? ①


 

 

우크라이나에서는 왜 여객기가 추락했을까? ①

[번역]우크라이나로부터 스코틀랜드 그리고 오키나와로
김종익
기사입력: 2014/07/22 [01:13]  최종편집: ⓒ 자주민보

[필자 주: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하던 말레이시아 국적 항공기가 격추되었다. 이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우크라이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보도하는 듯한 한국의 언론들이 전하는 뉴스는 오히려 우크라이나 사태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글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 진행에 세계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왜 여객기가 추락했을까?
거울에 비치듯 연동하는 세계를 읽어낸다
- 우크라이나로부터 스코틀랜드 그리고 오키나와로 -



사토 마사루佐藤 優
1960년생.  작가, 전 외무성 주임 분석관. 외무성 입성 후 모스크바 일본대사관, 외무성 국제정보국 근무. 저서로 『스스로 무너지는 제국』, 『獄中記』 등.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 KBS




우크라이나의 역사 알기


지금 우크라이나 정세의 긴박성이 이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시에 우크라이나에는 30만 명이 나치스 측, 120만 명이 소련 측으로 분열되었다.

 

 

이 나치스 측에 붙은 사람들은 유대인학살, 폴란드인, 체코인 살해에도 관여했다.

서 우크라이나에는 이 세력이 강해,

1945년 소련에 점령된 뒤에도 1955년경까지 반소련 무장 투쟁이 있었다.

또 소련 적군赤軍이 우크라이나에 들어왔을 때, 그 장교 및 인민위원에게는 재판 없이 즉결로

총살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는데,

나치스 독일에 협력한 우크라이나 간부들이 거의 살해되었다.

 

 

이 때 대나치스 협력에 관련된 우크라이나인들은 상당히 많은 수가 극동으로 이주했다.

사할린이나 북방 영토에도 이 계통의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실은 우크라이나에서 격렬하게 문제가 일어나면 러시아 내부로 바로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극동, 사할린 및 북방 영토는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의 민족 분쟁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다.

 

우크라이나 가장 서쪽 지역인 갈리찌아라는 지방은, 제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소비에트나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된 적이 없었다.

 

 

역사적으로는 합스부르크제국의 영토로서 이곳에서는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원래는 우크라이나 어느 지역이나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이 강력하게 러시아어화 정책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어는 농촌만 사용하게 되었다.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우크라이나어는 제거되어 갔다.

그것이 약100년 동안 이어지면서 모두가 우크라이나어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에 비하여 합스부르크 제국은, 다언어 정책을 취하여 독일어, 헝가리어뿐만 아니라

폴란드어나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등 각자의 언어로 초등 교육이나 출판 등 언론 활동이 행해졌다.

갈리찌아 지방에서도 리비우(리보프라고도 읽음) 대학을 중심으로 한 고등교육이 행해져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어를 구사한다.

 

 

그에 더하여 이 갈리찌아 지방의 사람들은 가톨릭 교도이기도 하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가톨릭이다.

 

지난 4월 3일, 엘리자베스 여왕이 바티칸을 방문해 프란체스코 교황을 처음 만났다.

 

 

상세한 사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한 조정을 위한 것이다.

 영국 여왕은 동시에 영국 국교회의 장이다.

덧붙여 말하면, 스코틀랜드에도 국교회가 있고, 그 국교회의 장은 영국 여왕이 아니다.

 

 

스코틀랜드는 크롬웰 계통에서 온 장로파, 칼뱅파이다.

그들과 서로 살육전을 벌렸던 것이 영국 국교회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국교가 다르다.

 

 

축구의 월드컵에서 유니온 잭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잉글랜드기와 스코틀랜드기 그리고 웰즈기밖에 휘날리지 않는다.

국명도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이다.

잉글랜드인, 스코틀랜드인 그리고 웰즈인은 있지만, 그레이트브리튼인이란 민족은 없다.

 

 

아일랜드인이라는 민족은 있지만 북부 아일랜드인이란 민족은 없다.

그 나라는 국가 명칭으로 보아도 명백한 것처럼 Nation state는 아니다.

그 때문에 영국은 전근대적 제국임과 동시에 포스트모던인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벨기에의 민족 문제



 

지금 크리미아 정세 다음으로 중요한 곳은 어딜까?

모두 동우크라이나나 남우크라이나라고 말하지만,

나는 스코틀랜드 쪽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년 9월 스코틀랜드 독립에 관한 주민 투표는, 크리미아의 영향을 받아 독립을 가결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만약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는 일이 벌어지면,

북해 유전은 스코틀랜드의 배타적 경제수역 안에 있으므로 영국은 북해 유전을 잃게 된다.

 

 

잉글랜드는 이것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간의 전쟁, 혹은 스코틀랜드 내부의 잉글랜드 통합파와

스코틀랜드 독립파가 충돌할 것이다.

 

 

물론 무력 충돌을 포함하여.
이와 같이 급속히 영국 정세가 악화되면,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벨기에라고 나는 생각한다.

 

 

벨기에 북부의 플랑드르 지방(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이 왈룬 지방(프랑스어 사용 지역)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운동이 본격화될 것이다.

이것은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될 것이므로, 즉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타이밍으로

 오키나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키나와 독립의 가부를 묻는 주민 투표가 정치 일정에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런 징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5월13일자 류큐신보의 사설은, 5월11일에 행해진 우크라이나 동부 2개주인 도네츠크주 등의

자립 국가에 관한 주민 투표에 대한 코멘트를 했다.

 

그 보도에 의하면, 주민의 자주권은 우크라이나 동부 및 남부를 포함하여 모든 우크라이나인에게

인정될 여지가 있다. 이번의 주민 투표에서는 민주적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립의 내용이 국가 독립인가,

 

 

그렇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안에서 자치 확대인가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자립 및 자기 결정권에 대한 주민 투표를 행한 점이 최대의 문제이다.

그리고 결론으로서 평화적인 해결이 필요하지만, 이번에 표명된 자립을 향한 주민의 의지를 무시하는 것은 공정한 것은 아니라고 류큐신보의 사설은 말하고 있다.

 

류큐신보가 얻고 있는 정보는, 기본적으로는 교도통신의 정보이지만,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남부 지역 사람들,

혹은 크리미아의 분리, 혹은 러시아로의 병합파 관점과 비교적 가깝다. 왜 그럴까?

 

 

그것은 무의식중에 감정 이입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이외의 일본 전체가 보고 있는 점과 다른 점이, 뉴스 속에서 보다 중요하게 보여 지고 있다. 그것을 류큐신보는 분명하게 언어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설을 읽게 됨에 따라, “이것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라고

오키나와와 일본의 관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상황과 키에프 정권의 관계와 닮은 상태의,

반사하여 다시 나타나는 상태 같은 관계인 점이 보이게 된다.


유니에이트(Uniate)교회와 원격지 내셔널리즘


 

그런데 서우크라이나의 갈리찌아 지방에 기반을 둔 배외주의적인 우크라이나 민족 지상주의자의

위험성을, 서방 여러 나라들은 과소평가하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가톨릭」이란 것은, 의식은 정교와 닮아 있지만,

로마 교황에 귀속하는 가톨릭교회(유니에이트 교회, 동방 전례 가톨릭교회, 동방귀일교회)이다.

 

유니에이트교회는 16세기 종반에 지금의 벨라루스 브레스트에서 시작되어,

 통상 브레스트 유니온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외견상 가톨릭은 아니다.

외견상은 러시아 정교와 꼭 같으며, 이코노스타스라는 성장聖障이 있고,

성직자가 성령의 심벌인 향을 태운다. 신부도 가톨릭은 완전 독신제이나,

유니에이트는 캐리어조組와 난캐리어조組로 나누어져 있다.

 

 

 바로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캐리어조는 평생 독신으로 간부가 되며,

일반 신도를 상대하는 난캐리어조는 대처帶妻가 허용되고 있다.

16세기에 루터, 칼뱅의 종교개혁이 이루어져, 폴란드나 체코 및 헝가리는 일단 프로테스탄트권이

 된다. 그런 상황에 대응하여 가톨릭은 트리엔트 공의회를 소집하고 예수회라는 군대적 수도회가

만들어지고, 반격 작전 작전으로 나왔다.

 

 

그 결과 폴란드, 체코, 헝가리는 완전히 가톨릭권이 되었었지만,

예수회는 세력이 넘쳐서 우크라이나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예수회라는 것은 실로 융통 자재한 바가 있어 원칙만 지켜진다면 얼마라도 해석은 바꾸어도 좋았다.

 

 

예전에 고단샤講談社에서 출판된 뒤 헤이본샤平凡社 라이브러리로 편찬된 『그리스도 교사敎史』에 자세하게 실려 있는 바, 예수회는, 인도에서 포교할 때는 그리스도는 바라문의 아들이라고도 했다.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니, 그런 낮은 신분에 속한 종교 따위는 누구도 믿지 않을 테니까.

 중국에 이르러서는 건륭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인사를 했다.

이것은 나중에 전례 문제라는 큰 문제가 되지만, 어쨌든 그 지역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중남미에 갔을 때는,

예를 들면 이구아수폭포 옆, 브라질과 파라과이 국경 지대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예전에 싸웠던

곳이다. 이곳의 예수회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의 편에 서서,

포르투갈 및 스페인의 노예 상인들과 전면 전쟁을 전개했다.

 

 

그 마을은 지금 세계 유산이 되었다.

가장 훌륭한 종교 영화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 되는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미션』이라는

영국 영화는 이곳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이처럼 예수회라는 것은, 매우 그 폭이 넓고 융통을 발휘해,

현지 상황에 적응해 갔다. 그 궁극적 모습이 유니에이트교회인 것이다.

로마 교황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과, 삼위일체의 교의敎義에서, 성령이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아들로부터도 출발하는, 그 두 가지 점만 지켜 준다면 지금까지 했던 대로 해도 전혀 상관없다.

결혼하더라도, 교회 슬라브어로 전례를 행해도 관계없다.

러시아 정교는 이 유니에이트교회를 가장 증오했다.

 

 

 외견상은 러시아 정교와 같은 데, 지령은 로마에서 온다.

러시아어로 예수회는 「이에즈잇」이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예수회」라고

한 다음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고 되어 있다.

 즉 「이에즈잇」이라고 러시아로 말하면 「거짓말쟁이」라는 의미가 된다.

유니에이트교회는, 소련에 의한 점령 다음해(1946년), 자발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와 하나로 합친다. 물론 합치지 않은 사람들은, 살해되든가 시베리아로 보내졌기 때문에.

이 유니에이트교회와, 앞에서 말한 나치스 독일에 협력한 우크라이나 민족 해방군이,

1950년대 중반까지 반소비에트 무장 투쟁을 계속했다. “빨리 투항하시오,

투항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으니까”라는 호소가 1956년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이 투쟁을 지지했던 ‘스테판 반데라’라는 우크라이나 독립 운동 지도자가,

KGB의 자객에 의해 1959년에 뮌헨에서 살해되고, 그것으로써 이 운동은 끝났다.

 반데라는 나치스에 한때 협력했지만, 그 후 우크라이나 독립을 선언하여 나치스에 체포되고

전후 석방된 뒤 뮌헨에서 운동을 계속 한 사람이다.

 

 

우크라이나의 잠정 정권에 협력하는 스보보다(전 우크라이나 연합 「자유」)의 영상 자료에

 초상 사진이 실려 있는 것이 반데라이다. 러시아 측에서는 「반데라주의자」라고 하면,

거의 나치스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키에프에서는 파시스트가 권력을 잡았다는 것은 이 반데라주의자들을 가리킨다.

유니에이트교회는 직역하면 통일교회이지만,

일본어로 통일교회라고 하면 독특한 뉘앙스가 있으므로(웃음) 귀일歸一교회라든가

 동방전례 가톨릭교회라고 부르는데, 이 유니에이트교회의 사람들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는

소련의 지배를 떳떳하게 여기지 않고 망명한다.

 

 

그 망명지 가운데 대부분은, 캐나다와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의 우크라이나인은 거의 망명한 우크라이나인이고, 캐나다의 우크라이나인은,

에드먼튼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120만 명 정도 있어, 지금도 우크라이나어로 말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영어, 다음이 프랑스어, 그 다음이 우크라이나어이다.

이 캐나다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로이카로 왕래가 자유롭게 된 80년대 말,

서우크라이나로 갔다.

 

 

당시 서우크라이나에서는 고교 교사의 급여가 월 500엔이었는데, 캐나다의 평균적 노동자라도

 3만~5만 엔의 자금 모금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 모금으로 우크라이나 민족 운동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아일랜드의 IRA와 미국의 아일랜드 이민移民과의 관계와 매우 닮아 있다.

민족 문제의 용어로는 「원격지 내셔널리즘」이라고 말한다.

 

 

원격지 내셔널리즘의 구조가 가능해짐으로써, 현재의 우크라이나 정세가 생겨나고,

서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었다.

동, 남우크라이나의 사람들은 자신이 우크라이나인인지 러시아인인지 민족의식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무력 투쟁이 시작됨에 따라 우크라이나인인지 혹은 러시아인인지

 명확히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때에 위험한 것은, 살해자 측으로 돌아선 쪽이 불리하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잠정 정권이 살해하고 있는 쪽이다.

설령 생각은 다르더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살해당하면,

심정적으로는 살해하고 있는 쪽의 반대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오뎃사에서 친 러시아파 주민이 모여 있던 건물에 잠정 정권 측인 우파가 방화하여 48명이 사망했다. 점정 정권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친러파가 스스로 불을 붙였다고 말하는 등,

매우 심한 형태로 개입과 폭력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러시아의 평판이 좋아졌다.

그런데 반대로 러시아가 만약 국경을 넘어들어 온다면,

우크라이나 정규군과 러시아군을 비교하면, 보이스카우트와 정규군과의 싸움이 된다.

예를 들면 OSCE(유럽안보협력기구)의 대표단들이 러시아계 주민에게 납치되어,

미국은 배후에서 러시아가 손을 뻗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반대로, 러시아인이 관여하고 있었다면 그런 치졸한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OSCE의 감시단 혹은 기자들을 납치해서 좋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키에프정권에 대한 반발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러시아어 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키에프의 중앙 정권이 우크라이나어만을 공용어로 한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공무원은 실직하고, 민간 기업에서도 관청과의 교섭은 우크라이나어로 되기 때문에,

간부는 전원 우크라이나어를 할 수 있어야만 된다.

바로 얼마 전까지 키에프에서 화염병을 던졌던 사람들이 몰려와 간부가 된다.

 

 

즉 현실적으로는 엘리트 교체의 문제이다

생계 수단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주민 투표라든가 보통은 하지 않는 그런 특이한 일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심하게 에스컬레이트되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상당한 정도의 사건(예를 들면 러시아계 주민의 대량 학살)이 없는 한 군사 개입은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크라이나를 꺼리기 때문도, 미국이 두렵기 때문도 아니다.

 

 

개입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인인지 러시아인인지 민족의식이 분화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우크라이나정권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면,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의식이 반러시아로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인터넷이나 보도를 통해, 러시아 국내의 통계상 210만 명이나 되는 시베리아,

극동, 사할린, 북방 영토 등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로 불똥이 튀게 마련이다.

러시아 안의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의 민족 대립이 시작되면, 서로 죽이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 권력 기반의 근본이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푸틴은 동우크라이나에는 신중한 것이다.

 

크리미아에 대하여 한마디 첨부한다.

크리미아는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과 역사적 경위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푸틴이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는 네 가지이다.

첫 번째는, 크리미아에서는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의 사이가 좋다.

 

그것은 선주先住 민족인 크리미아 타타르인을 쫓아낸 경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되돌아온 선주민인 크리미아 타타르인 중 반수는 우크라이나 보다 러시아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주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푸틴이 병합을 인정한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는, 키예프 정권은 힘으로 뒤집을 실력이 전혀 없다는 점.

 

 

세 번째는, 푸틴은 작년의 시리아 공습을 둘러싼 교섭을 통해 미국은 개입할 힘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러시아의 푸틴 지지가 지나칠 정도로 높아져 있다는 것이다.

 

 

실지失地 회복에 있어서 푸틴의 힘이 뛰어날 때, 지지율은 약 85%이다.

크리미아의 주민들이 편입 및 병합을 요구하고 있는 데, 국제 사회의 압력이 있다고 해서 거부했을

경우, 이 지지율은 허약한 푸틴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은 두려운 일이다.

 

왜 오늘날 우크라이나 문제를 중심으로 이러한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다양한 논리, 민족, 역사에 대해, 그 경위 등을 포함하여 생각하지 않으면,

그렇게 간단하게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우크라이나 문제는 세계의 여러 문제와 서로 사슬로 연결되어 있어,

스코틀랜드나 벨기에, 나아가 일본의 경우에는 오키나와로 파급될 문제인 것이다.<계속>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1&table=ji_kim&uid=40 







 

 

[번역]우크라이나에서는 왜 여객기가 추락했을까? ②

우크라이나로부터 스코틀랜드 그리고 오키나와로
김종익 | 2014-07-23 09:31:56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하던 말레이시아 국적 항공기가 격추되었다.

이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우크라이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보도하는 듯한 한국의 언론들이 전하는 뉴스는 오히려

우크라이나 사태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글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 진행에 세계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왜 여객기가 추락했을까?
거울에 비치듯 연동하는 세계를 읽어낸다

- 우크라이나로부터 스코틀랜드 그리고 오키나와로 -

 

사토 마사루佐藤 優

1960년생.  작가, 전 외무성 주임 분석관. 외무성 입성 후 모스크바 일본대사관,

외무성 국제정보국 근무. 저서로 『스스로 무너지는 제국』, 『獄中記』 등.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 KBS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 싼 「복잡한 외교」

 

아베 정권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하여는 러시아와 잘 지내고 있어,

일본에 대한 러시아의 시선은 지금 당장은 양호하다.

아베 수상은 오바마 대통령과는 그다지 파장이 맞지 않고 뭐랄까 푸틴 쪽과는 좋은 편이다.

 그것은 러시아처럼 그다지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 쪽이 좋은 국가이지 않은가라는 감각이 있어, 피부 감각으로 매우 가까우므로 잘 해나가고 있는 데(웃음), 매우 위험한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포인트는 뭘까? 미국이 우선 러시아에 대해 제재한다고 말하고,

하루건너 EU가, 그리고 이틀정도 건너 일본이 제재한다고 말한다.

 

 

 이 순서가 지켜지고 있는 한, 일본은 러시아를 제재할 의사가 없다고 본다.

사실 일본은 실질적인 제재는 거의 걸지 않고 있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통용될 수 있을까, 안 될까?
 

실은 아베 수상의 안보법제 간담회의 보고를 받았던 방향성에 대한 회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고 하는 회견은 아니라, 행사하지 않는다는 점에 관한 회견이었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것은,

「당신이 공격당하면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들을 넘고 산을 지나 풀뿌리 헤치며,

지구 반대편이든 어디든 가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베 수상은 「옆에 있는 미국 함대가 일본 해상에서 공격받는다면 어찌할 것인가?」라는

가까운 곳의 이야기 밖에 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메시지일까?

우크라이나 문제로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는 일은 절대 없다,

러시아와 엮일 생각은 없다고 하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집단적 자위권을 우크라이나에서 발휘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수상은, 그것을 하지 않는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단지 일본국내에 대해서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는 방향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까지 통용될까,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다.

다만 제국주의시대에는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영국이 발포아 선언으로 유대인 독립 국가를 팔레스티나에 만드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후세인=맥마혼 협정을 체결하여,

 팔레스티나에는 팔레스티나인의 거주를 인정하는 것으로 양쪽 모두와 약속한 것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베 수상은 그것과 비슷한 일을 무의식 중에 시작하고 있으므로,

일본의 외교는 본격적인 제국주의 외교로 향하고 있다.

상당히 복잡한 외교, 고도의 게임을 하고 있다는 점은 틀림없다.

 

 

질문 : 일본의 정치 현상과 관련하여, 집단적 자위권 및 개헌을 포함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헌법9조에 관해서는, 3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첫 번째는, 헌법 9조의 범위 내에서는 자위대를 가질 수 없고,

국방군을 가질 수 없다는 법리상 논의입니다.

 

 

두 번째는, 국제적 선언으로서의 성격.

헌법9조는, 일본은 일방적으로 전쟁을 포기한다고 한 국제적 선언입니다.

 

 

세 번째는, 헌법9조에 드러난 바인 평화 국가로서 일본을 특징짓는다는 일본의 국가 성격에 관한

 논의입니다. 헌법 논의에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만,

그것이 뒤섞여 있습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갖지고 있는 것은 두 번째 논의입니다.

 

 

일본국 헌법은, 1945년 7월26일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9월2일에 미주리호 선상에서 패전 문서에 조인하고, 1946년 1월에 일본국 헌법 초안이 발표되고,

 헌법이 채택되어 발효하고, 그리고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이라는,

적어도 이 4가지 국제 합의가 이루어진 프로세스에 있어서의 국제적 선언입니다.

 

 

그 “국제적인 선언이다”라는 점을 어떻게 파악할까라는 감각이,

지금의 정권에는 거의 희박하다고 하는 점에, 우려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요된 헌법론”이라는 논의가 있지요.

 즉 주체인 일본 국민을 무시하고 외국이 헌법을 강요했다는 논의입니다.

 

 

그러면 대일본제국헌법은 어떤 것인가?

일본국 헌법은 점령하에 있다고는 하지만 일견 의회의 심사를 거쳐 채택된 헌법입니다,

그러나 대일본제국헌법은 제국 의회를 통과하지 않은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관료가 만든, 하늘에서 내려 온 것으로, 민의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강요된 것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닙니다.

한편으로 외압이 관계되어 있었고, 작성에는 외국인이 관여했습니다.

원래 대일본제국헌법을 만든 동기는 관세 자주권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치외 법권 철폐가 필요하고,

또 치외 법권 철폐를 위해서는 근대법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여러 외국의 압력에 따라 만든 헌법입니다.

 

 

그렇게 되면, “강요된 헌법론”의 주장 가운데 첫 번째 포인트는,

GHQ가 만들었기 때문에 괘씸하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진 전쟁이었고, 이긴 자가 만들었기 때문에 괘씸하다.

 

 

즉 그 전쟁에 졌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 불쾌하다는 심정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 번째인 일본인의 심정이나 국가 성격, 혹은 국체를 어떻게 표현할까라는 논의로 이어집니다. 그 점을 정리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아베 수상의 경우는 세 번째의 요소가 강하며,

첫 번째의 법리적인 해석에 대하여는 그다지 파고들지 않고,

두 번째의 국제적 선언이라는 요소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나는, 헌법9조는 지금은 건드릴 것이 아니고,

 96조 개정 등은 어떻게 될지 최종적 상황을 알 수 없는 헌법 개정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는 헌법 개정은 필요하다고는 생각합니다.

어떤 점에서 필요한가, 그것은 오키나와 문제입니다.

오키나와를 일본 안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서는, 연방제로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호헌론이라는 것이 결국은 숫자상으로의 민주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오키나와는 이대로 영속적으로 기지 부담을 지는 것일까요?

그러나 오키나와는 이미 그것을 감내하지는 않고,

자주 결정권을 행사를 시작한다는 지경까지 와 있습니다.

 

 

나는 국가 통합론자로서 오키나와는 일본 안에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관점에서 보자면, 헌법 개정을 염두에 두면서 연방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일본의 국가 체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전개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현 시점에서 헌법을 건드릴 필요는 없고, 집단적 자위권에 빠져들 필요도 없습니다.

국내와 국외에서 다른 설명을 하는 것도 그만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 일본이 미국, 러시아, 중국이라는 대국의 틈새에서 잘 어울려 가는 데 무엇이 중요한가요?

 

그것은 매우 간단한데, 일본에 있어서 무엇이 매우 중요한가라는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생명, 신체, 재산이라는 아주 보통의 본질적인 것입니다.

일본 국민의 생명에 관한 것을 가장 소중하다고 봅니다.

그 다음은 신체, 일본 국민이 다치는 일 같은 것, 목숨을 잃을 만한 일을 피합니다.

최후로는 재산이 담보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지금 가장 일본 국민의 생명에 영향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센카쿠 열도 문제입니다.

중일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전쟁을 야기하려 했던 것은 실은 아베 수상이 아니라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전 동경도 도지사입니다.

 

 

이시하라 신타로 씨는 머리가 좋아서 나팔만 불었을 뿐,

실제로 센카쿠에 공무원이 상주하는 그런 환경을 만든다든가,

중일전쟁이 야기될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습니다.

 

 

독도에 대하여도 「그것은 어쩔 수 없네요. 빼앗겼으니까」라고 확실히 말하고 있어,

전선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어떤 의미에서 허풍쟁이(trickster)이기도 해서, 방미 중에 워싱턴에서 센카쿠 열도에

 대해 떠드는 것으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센카쿠 문제가 진짜로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선 것은,

당시 이노세 부지사가 성금 모집으로 15억 엔을 모음과 동시에,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공개 질문장을 던져, 총재가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선착장을 만들고,

그 뒤 공무원을 상주 시킨다는 언질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동경도의 업무에는 외교는 들어 있지 않는데도 15억 엔 가운데 1억 엔을 수수료로 사용하고,

센카쿠의 실효 지배에 사용한다고 14억 엔을 기금화 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도쿄도가 센카쿠 열도에 공무원 상주를 강행한다면, 정말로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노세 도시자 집권이 계속되었다면, 도쿄도 탓에, 전쟁이 사실상 시작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지도부가 센카쿠에서 전쟁을 일으켜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치 환경입니다.

러시아가 자경단이라는 형태로 러시아군을 크리미아에 파견함으로써 크리미아라는 실지를

회복했습니다. 이것은 유엔 헌장 위반인, 힘에 의한 현상 변경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한 정치 환경이 있다고, 중국이 판단하는 경우입니다.

 

 

또 하나는 경제로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 까 없을 까입니다.

 중국이 가령 센카쿠에서 일본과 전투를 일으키거나, 혹은 센카쿠를 점령했다고 하면,

중국에 대한 경제 제제가 취해지겠지요.

석유, 가스가 들어오지 않으면 중국은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러나 만약 이란과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이 애로는 해소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스크바 - 테헤란 - 베이징이라는 추축樞軸이 생겨난다면,

전쟁이 일어나서, 일본인의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태가 될 것입니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이 추축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외교노력을 함으로써 전쟁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도, 대러시아 강경책에 의해, 러시아를 중국으로 밀어붙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외교로서는 표면에 나서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 논의에 대해 러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일본은 군사 개입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전해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역시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의미가 없게 되니까,

그렇게 되면 곤란한 사람도 생겨날지도 모르긴 하지만요.

 

 

 

최근 아베 수상이 말하고 있는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베 수상의 안보법제 간담회 보고를 받은 뒤의 회견을 보고나서,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子씨의 회견과 매우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STAP 세포를 200회 만들었습니다”라고 하는 데, 198회와 200회는 다릅니다.

그것은 과학자의 말투는 아니고 시인의 말투입니다. 그녀는 시를 계속 읊은 것입니다.

아베 수상도 회견에서 분명 시를 읊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수롭지 않은 누른 버튼의 어긋남으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인의 생명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지금은 어찌되었든, 센카쿠를 둘러 싼 중일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방도에 대하여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야만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 2014년 5월16일 호린토(芳林堂) 서점에서의 강연을 기본으로 구성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왜 여객기가 추락했을까?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