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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좋은글

베르톨트 브레히트 /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베르톨트 브레히트 /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 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 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잊어버렸던 시 한 편이 생각난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 받고 있다'는......

브레히트의 문학관을 보여주는 이 비장한 시가 다시금 생각나는 이유는 무얼까?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결코 아름다울 수 없었던 지난 시절 한 때의 이야기가 다시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옛말에 그른 것 없다고 미운 놈 고운 데 없고, 고운 놈 미운 데 없다더니 작금의 상황이 꼭 그렇다.

 

나쁜 토질 속에서도 바르게 살아온 나무는 못생겼다고, 구부러졌다고 욕을 먹는데
잘난 부모와 좋은 환경 속에서도 엉터리로 살아온 나무는 여전히 행복하기만 하다.

 

거기에는 강자에 대한 끝없는 선망과 함께 약자에 대한 한없는 오만이 있다.

 

강한 것에 더할 나위 없이 약하고 약한 것에 터무니없이 강한 우리들의 나약함과 비굴함이 있다.

 

 
강해지려는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을 약점과 그늘을 보듬기는커녕 그것을 공격의 빌미로 삼는 사람들을

나는 사랑할 수 없다. 강해지기 위해서 혹은 자신들의 강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나는 결코 사랑할 수 없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