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 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햇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길 / 최희준
'시와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날에 / 김영희 (0) | 2018.11.13 |
---|---|
당신의 향기 / 김영희 (0) | 2018.11.13 |
그대 있음에 내가 있습니다 (0) | 2018.11.13 |
침묵하는 연습 ( 유안진 ) (0) | 2018.11.13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0) | 2018.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