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스토리] "무노동 무임금 지키고 10년간 한 명도 해고 안했다"
문희철 입력 2018.05.05. 00:05 수정 2018.05.05. 13:40
선박용 디젤엔진 독자 개발 등
경영자 겸 기술자 업적 남겨
유년 시절 이순신 위인전 읽고
"'3면 바다' 한국 국부 키우겠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 지키고
복리후생 강화했더니 파업 사라져
"원하는 일 시키면 효율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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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중앙일보 공동기획 [인생스토리] ② 민계식 현대학원 이사장
논문 280편, 지식재산권(발명특허·실용신안) 300여 건, 기술보고서 90여 권.
세계를 호령했던 한국 조선 산업의 이면에는 연구개발(R&D)과 기술 확보를 강조했던 민계식 이사장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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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한국 최초 과학기술유공자 32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어떤 상인가.
A : 존경할 만한 업적·생애를 남긴 과학기술인에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수여하는 상이다.
현대중공업 회장 시절 한국 조선 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들었다.
Q : 경영자로서 업적뿐만 아니라, 기술자로서 업적도 상당해야 받을 수 있는 상이다.
A : 현대중공업 부사장 시절 선박용 중형 디젤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국산화에 성공한 적이 있다.
매년 수천 대씩 팔리는 ‘힘센엔진’이다.
힘센엔진은 현재 동급 엔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다.
쿠바에서는 이 엔진을 사용한 발전기가 전력난을 해소하면서, 쿠바 화폐(10페소)에도 엔진이 그려져 있다.
이 밖에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 등을 개발했다.
Q : 평생 조선업에 헌신했는데, 어떤 계기로 조선공학에 관심을 가졌나.
A : 5살 때 이순신 장군 위인전을 읽으면서 처음 조선산업에 관심을 가졌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이 부국(富國)으로 발전하려면 바다와 관련한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보면 해군이 강할 때 한국은 융성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평생 사료를 수집해서 『임진왜란과 거북선』이라는 책도 최근 출간했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조선해양학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한국 조선업을 세계 최고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며 평생을 살았다.
병력이 부족했지만 이순신 장군은 포기하지 않고 녹둔도를 침략한 여진족을 추격한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건 후일 녹둔도가 어디인지 찾아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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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키워야 외세가 못 넘봐”
Q :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나 대한민국역사바로세우기 등 시민단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데.
A : 한국을 진정한 선진국으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 예전에 공자도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제자가 ‘국가 경영의 요체’를 묻자, 공자는 주저하지 않고 “식(食)과 병(兵)과 신(神)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식’은 경제, ‘병’은 국방, 그리고 ‘신’은 법질서를 뜻한다.
외세의 침략이 발생하면 결국 최후에 나와 가족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국력이 다소 우려할만한 수준인 것 같아서 걱정이다.
국가가 평안을 유지하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 다양한 시민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유다.
Q : 지금 한국에게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인가.
A : 요즘 중국의 움직임을 꼽을 수 있다.
인접한 중국과 전쟁을 하지 않고 적정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결국 한국도 힘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5분의 1 정도만 국력을 축적하면, 감히 중국이 한국을 넘보지는 못할 것이다.
고교 시절 반에서 가장 체구가 좋은 친구와 싸움이 붙었다.
날마다 얻어맞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오뚝이처럼 ‘다시 한번 붙어보자’고 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더는 건드리지 않더라.
마찬가지로 영토도 적고 국력도 밀리지만,
한국은 끊임없이 국력을 키우면서 감히 중국이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A : 무엇보다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 영국은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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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태도 ‘책임 회피’ 정신 영향”
Q : 요즘 한국은 그런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A : 솔직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사태를 경험하면서 확신했다.
어느 선박이나 전면부에 선수(船首) 추진기가 있다.
뱃머리를 빨리 돌릴 때, 조종을 쉽게 하는 보조 장치다.
선수 추진기 속에는 프로펠러를 설치하기 위해서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 구멍이 굉장히 튼튼하다.
신문에서 세월호 소식을 접하자마자 해양수산부에 전화해서
“선수 추진기에 쇠사슬을 끼워서 선체를 들어야 한다”고 전화했다.
진도에서 가까운 목포에 소재한 현대삼호중공업은 6만t 규모의 바지선이 있다.
이 선박을 투입하면 충분히 세월호를 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양수산부가 내 조언을 듣지 않았다
. 만약 당시 내가 현직에 있었다면 바지선을 투입했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누군가 앞장서서 책임지지 않으려는 썩어빠진 정신 상태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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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MIT 유학생 시절을 말하다
Q : 현대중공업 회장 시절 공로는 익히 알려졌지만, 유학 시절 경험은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다.
A : 자주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고생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강조하신 가치관처럼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 학비는 장학금을 받았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조산했다.
출생 당시 몸무게가 1.2kg에 불과해서 3개월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당시 돈으로 2만3000달러의 병원비를 갚아야 했다.
현대차 쏘나타가 불과 2000달러에 팔리던 시절에 2만3000달러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온갖 막노동을 했다.
음식점에서 청소하고, 백화점 여자 화장실에서 변기를 뚫었다.
델몬트 공장에서 깡통을 만들고,
부두에서 선박에 실린 짐을 내리거나 샌프란시스코까지 트레일러를 왕복 운전했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못 들었다.
낮에는 돈을 벌고, 밤이면 오스트리아 유학생 친구의 노트를 빌려 공부를 했다.
Q : 그 와중에도 석사 학위를 2개(조선공학·우주항공학)나 땄다. 힘들게 석사 학위를 받고 나서 시작한 일은 무엇이었나.
A : 취업을 준비했지만 쉽지 않았다. 병원에서 의뢰받은 추심회사에서 자꾸 학교를 찾아와서
‘돈 갚으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신용도 나쁘고 평판도 좋지 않았다.
영주권이 없는 유학생 신분이라는 것도 취업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지도교수가 매우 좋은 추천서를 써주면서 리톤선박시스템이라는 미국 현지 기업에 입사했다.
당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군함 설계 기업이었는데, 여기서 선박 설계 업무를 맡았다.
A : 미국의 냉정한 해고 문화다. 군함 설계가 끝나면 해당 업무를 담당하던 사람들을 대부분 퇴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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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명퇴는 오히려 기업 효율성 저하
Q : 단 한 번도 해고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A : 정말 한 명도 내 손으로 해고 한 적이 없다.
현대중공업 회장 시절, 매년 인사부가 100여 명 안팎의 명예퇴직자 명단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중 30~40명은 반드시 명예퇴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이들을 일일이 면담해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물었다.
이들을 가고 싶다는 부서로 재배치하면 대부분 다시 신나서 열심히 일하더라.
이 과정에서 본인이 일하고 싶지 않다며 자발적으로 퇴사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내 손으로 정리한 사람은 없었다.
강제로 명예퇴직을 추진하면 사내 분위기가 뒤숭숭해져서 오히려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차라리 ‘잘릴 걱정하지 말고 일만 열심히 하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경영자 입장에서도 더 효율적이었다.
Q : 최근 노사갈등으로 고통을 겪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점이 많아 보인다.
A : 10년 동안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단 한 번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비결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파업에 참여해도 나중에 급여를 보전해줬다.
그러니까 죄다 파업에 동참했다.
하지만 내가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철저히 지키자 무리하게 파업하던 관행이 사라졌다.
대신 필요하다면 사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싸워서라도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복리후생은 철저히 지켜줬다.
회사가 소유한 땅에 아파트를 지어서 반값에 근로자들에게 분양했다.
신입사원도 무이자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내가 대표이사 시절, 아파트를 갖고자 했는데 못 가진 직원은 한 명도 없는 거로 안다.
또 구내식당 자율배식제도 만족도가 높았다.
현장 근로자들은 ‘뱃심으로 일한다’고들 한다.
이를 감안해서 음식을 나눠주는 대신, 자율배식을 하도록 했다.
구내식당 개수를 12개에서 48개로 늘리고, 근로자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식당 메뉴를 결정했다.
한국 사람은 신명 나면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복지를 늘리자 생산성이 크게 향상했다.
Q : 현대중공업에서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A : 쉬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처음엔 온갖 음해성 투서가 난무했다.
당시엔 협력업체로부터 뒷돈을 받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를 전면 금지했기 때문에 적이 많았다.
하지만 체질적으로 술 한 모금도 못 하고 골프·관광 한 번 안 하고 업무에 매진했더니 오해가 모두 풀렸다
통상 저녁 6시까지 회사 업무를 하고, 직원들을 퇴근시킨 이후에는 새벽 2~3시까지 논문을 썼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논문을 쓰다가 밤을 지냈는데, 이 때문에 직원들은 나를 ‘최후의 퇴근자’라고 불렀다.
Q : 요즘은 워커홀릭(workaholic·업무중독자)보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일과 삶의 균형)이 대세다.
A : 평생 내가 전공한 조선업을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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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평등·범인사상·자주정신 강조
A : 부정부패 없는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Q : 요즘 학생들은 어떤 가치관이 필요한가.
A :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배웠던 세 가지 인생관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만인평등이다.
조선이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다가 인재를 등용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둘째, 범인사상이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내게 '너 정도 똑똑한 사람들은 세상에 널렸으니 노력하라'고 강조했다.
셋째, 자주정신이다.
남의 힘으로 뭘 할 생각하지 말고 본인의 손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가끔 학생들을 만나면 이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Q : 젊은이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A : 희망을 가져야 한다.
유학 시절 엄청난 병원비를 갚아나갈 땐 정말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수모를 당할 때 비웃는 사람도 많았다.
버클리에서 같이 공부했던 한 한국인 유학생은 내가 접시를 나르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더니 나를 보며
‘우째 이런 일을 하노.
내사 죽어도 몬한다(왜 이런 일을 하니. 나는 죽어도 못한다)’라고 핀잔을 주고 가버린 적이 있다.
이때 나를 버티게 했던 건 희망이었다.
그놈이 가버린 뒤 닫힌 문에 대고 나는 ‘임마 내가 평생 접시 닦을 줄 아니? 나도 꿈 이룰 거야’라고 소리쳤다.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도 힘들고 사회생활도 어려울 수 있다.
이때 참고 버텨야 한다. 잘 참는 사람은 결국 이긴다.
큰일을 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희망을 잃지 말고 버텨라.
Q : 마지막으로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A : 인생은 비(B)와 디(D)의 중간인 씨(C)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B는 탄생(Birth), D는 죽음(Death)이다.
그리고 C는 선택(Choice)을 뜻한다.
인생은 선택이라는 뜻이다.
굳건한 의지를 갖고 순간의 선택과 결정을 후회 없이 하는 인생이 좋은 인생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 민계식 현대학원 이사장은
「1965년 서울대학교 조선항공학과 졸업
1967년 대한조선공사 설계기사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대학원 조선공학·우주항공학 석사
1978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대학원 해양공학 박사
1979년 대우조선공업 전무
1990년 현대중공업 기술개발담당 부사장
2000년 현대중공업 기술개발본부장 부사장
2001년 현대중공업 기술개발본부장 겸 CTO 사장
2001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
2001년 과학기술부.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올해의 테크노 CEO상
2004년 산업기술진흥협회 기술경영인상 CTO부문상
2004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2005년 한국능률협회컨설팅 한국경영대상 CEO리더십부문 최고경영자상
2007년 제44회 무역의 날 수출탑
2007년 제3회 한국CEO 그랑프리 대상
2007년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
2008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2010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회장
2010년 제5회 대한민국 로봇대상 지능형로봇 기술대상 대통령상
201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초빙교수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유공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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