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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쿤달리니에 대한 이론|



쿤달리니에 대한 이론|


 

 

에스라 | 조회 116 |추천 1 | 2013.09.27. 08:14

 

 

※ 뱀 모티브[Motive-動機](Serpent fire-뱀의 불꽃)

모든 인간의 육체안에 내재된 우주에너지요 신성의 근원으로서
"쿤달리니"는 적어도 어원적, 형상적 측면에서 뱀과의 근원적인 관련성을 갖고 있다.

먼저, 다양한 문헌은 쿤달리니가 어원적으로 뱀과 관련되어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쿤달리니(kundalini)'라는 말은 산크리스트어로 '쿤달(kundal)', 즉, '감겨있는'이라는 뜻이다.

[감겨진 군달리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하는 여성(女性)에너지로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원자에게도 있다고 한다.

탄트라의 문헌에 따르면, 쿤달리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마치 뱀처럼 감겨있다.
누구나 이 샥티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해방을 얻을 것이다].
하타요가-프라디피카Hathayoga-Pradipika, 제3장, 제108권.라고 한다.

롭상 람파에 따르면, 쿤달리니는 동양인들이 "뱀의 불꽃(Serpent Fire)"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바로 "생명 그 자체의 자리"라고 한다.
이것은 "척추 끝에 감겨있는 무한한 힘을 가진 뱀과 같은 것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얼마동안은 갇힌 상태에서 벗어 날수 없지만 뱀의 힘이 깨어나 완전히 조절되기만 하면,
 그 사람은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초인(超人)이 된다고 한다.

아지트 무케르지에 따르면, "인도의 힘있는 신들은 종종 동물 형상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이와같이 어원적으로 뱀(蛇)을 의미하는 쿤달리니는 실제로 힌두교의 사원과
 티벳의 밀교경전과 만다라 像에서 신비철학과 관련하여 뱀의 그림으로 전승(傳承)되어 왔다.

라자스탄, 데칸, 카슈미르, 네팔, 우타 프레데쉬 등 인도와 주변국에서 발견된
"쿤달리니" 만다라는 물라다라 챠크라(항문 차크라) 중앙에 감겨진 뱀의 형상으로,
 혹은 우주적 힘으로서 뱀을 그렸다.
 18세기 파하리 학파의 작품은 우주 에너지인 쿤달리니가 한 몸통에 15개의 머리를 갖고 있는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그려졌다. 이 그림에서 거대한 뱀의 품안에서 창조의 의식인 시바가 쉬고있다.

한편, 뱀은 인도종교미술에서 뿐 아니라, 중국과 극동지역의 불교미술에서도 등장 하고 있다.
뱀은 용(龍)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보편적 의미에서 세계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우주적인 힘으로서 권력과 영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이 어원적, 형상적 측면에서 쿤달리니는 뱀의 모티브와 근원적인 관련성을 확인 할 수 있다.

※ 자이나敎는 시간(時間)을 [칼라카크라],즉 [시간의 바퀴]라고 부른다.
영원히 순환하는 시간의 바퀴에는 두 종류의 바퀴살,[아바사르피니]와 [우트사르피니]가 있다.
시간은 [최선의 때]에서 [최악의 때]를 순환(巡還)한다.

* 최선(最善)에서 최악(最惡)으로 흐르는 것이 [아바사르피니],
* 최악(最惡)에서 최선(最惡)으로 흐르는 것이 [우트사르피니]이다.

? 사르피니(sarpini)가 무엇인가?.
상승(上昇)과 하강(下降)을 상징(象徵)하는뱀( serpent )이다.

1. 쿤달리니 ( Kundalini )는 무엇인가?

'쿤달리니'는 호기(날숨)와 흡기(들숨)를 이용하여 인체내의 모든 존재들을 유지시킨다.
쿤달리니는 생명력(生命力)이다.
쿤달리니(Kundalini)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쿤달(kundal)' 즉 '감겨있는'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뱀의 모양에 비유 된다.
뱀과 쿤달리니의 유사성은 그 움직임, 즉 나선형으로 또아리를 튼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쿤달리니는 '유(有)'와 '무(無)'의 속성을 모두 지닌 영원한 최고의 의식 상태이다.
( Nirguna )'의 양식으로는 우주 의식의 의지이며 순수한 의식 이다.
( Saguna )'의 양식에서 이 에너지는 샥티로 구체화된,
혹은 원시 에너지와 같은 위대한 여신(女神)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체 내에서 창조되는 모든 에너지도 쿤달리니의 힘을 통한 것이다.
우리 몸 속에는 존재에 관계된 모든 형태에 둘러싸인 정적(靜的) 중심부의
모습과 똑같은 에너지가 잠들어 있다.
현세의 모든 활동의 이면에는 항상 정적인 배경의 힘이 존재한다.
하타 요가와 탄트라 경전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현상 세계에 나타나는 정적, 동적 에너지를 '쿤달리니'라고 정의한다.
동적 에너지는 그 생존 현상에 의해 소모되는 에너지가 되고,
정적 에너지는 평상시에 작용되고 있는 의식 속에 잠자고 있다.

인생에 무언가 고차원적 목적(目的)
- 보통 깨어있고 잠자고 꿈꾸는 상태를 초월한 다른 의식 -
이 있다고 느끼거나,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하거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충족되었거나,
현상 세계에 대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초연의 상태, 혹은 내향성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잠재 에너지는 일깨워지게 되면은 '나디(nadis)'들을 통해서 작동하기 시작하는데,
'나디(nadis)'란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나드(nad)', 즉 '이동'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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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쿤다리니(Kundalini)의 실체 ?

창조이래 사람들은 초현실적인 일들을 보아왔다.
때로는 남의 마음을 읽기도 하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예견하는가 하면
꿈에 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과 같은 이상한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들 중 누구는 아주 아름다운 시(詩)를 짓거나, 감미로운 음악을 작곡하거나 ,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탐구 결과 각각의 개인 내부에 특정한 형태의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 힘이 잠자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진화하는 도중이며,
극히 소수의 사람은 실제로 각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에너지의 이름을 신과 여신, 천사들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그 다음에는 프라나를 발견하고 프라나 샥티(shakti)라고 명명했다.
탄트라에서는 이것을 '쿤달리니(Kundalini)'라고 불렀다.
쿤달리니란 '쿤다'라는 말에서 왔는데 쿤다는 깊은 곳, 공동(空洞)을 뜻한다.
쿤다는 똬리를 틀고 있는 잠자는 뱀과 닮은 두뇌 속의 공동(空洞)을 가리킨다.
쿤달리니란 잠재된 상태에 있는 힘을 가리키고
그것이 각성되면 데바(천신), 칼리, 두르가 등 의인화된 신(神)의 이름으로 부른다.

기독교 전통에서 '입문자의 길'과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는
수슘나 나디를 통과하는 쿤다리니 상승을 나타낸다.
쿤달리니의 상승과 그 결과 영혼의 축복이 십자가로 등장한다.

이것이 천주교에서 아즈나(양미간), 목,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 표시를 하는 이유이다.
아즈나는 상승(上昇)하는 의식이 초월되는 센터이고,
아나하타(가슴중앙)는 내려오는(下降) 축복이 세상에 현현하는 자리이다.

수도 생활에서 무슨 현상이 일어나든지 그것은 쿤달리니 각성과 관계가 있다.
영적 생활의 목표는
그것을 삼매(三昧)라 하든지,
열반(涅槃)이라 하든지,
합일(合一)이라 하든지,
해탈(解脫)이라 하든지 간에
쿤달리니(Kundalini)의 각성(覺醒)에 있다.
3. 인체내(人體內)의 우주전력
일체 생물의 체내에는 불가사의한 화력이 숨어 있어서 초목이 성장하고, 불타는 듯한 현상을 나타내는 이유가 된다. 또 동물이 씩씩하게 생식하는 이유가 되며, 인간의 활력을 왕성하게 하여 건강과 영민한 두뇌의 활동을 일으키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이 화력은 전 우주의 생체에서 생체로 이어지나 인간 안에 숨어 있는 것이 가장 멋진 작용을 일으켜 우리들을 신들 이상, 천사들 이상의 대 존재가 되게 해 준다. 이것을 '쿤달리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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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는 척추 밑에 세 바퀴 반 또아리를 감고
잠자는 용 비슷한 모양을 한 백색광의 존재로서 금색 빛을 발한다.

이것을 잠에서 깨워서 갑상선에 작용하게 하고, 또 척수를 통하여
두뇌 중심부에 작용하게 하면 우리들은 초인이 되며 살아 있는 신이 되어,
8대 기적력(奇蹟力)과 우주의식(宇宙意識)의 소유자가 된다.
이것이 요가(Yoga)의 비밀(秘密)이다.

4.. 쿤달리니의 상징적(象徵的) 표현(表現)

탄트라 교전에서는 쿤달리니를 원초적 에너지로 본다.
현대 심리학 용어로 무의식(無意識)이라 부를 수 있다.

힌두 신화로는 칼리의 개념과 일치한다.
그러나 대체로 쿤달리니는 세 바퀴 반을 감고 있는 잠자는 뱀으로 표현된다.
물론 진짜 뱀이 아니라 '물라다라'나 '사하스라르' 의식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다.
세계의 여러 곳에서 고대 신비 제의 때 사용한 뱀 상징을 발견할 수 있다.
시바신의 그림이나 상에는 늘 뱀이 그의 머리와 팔, 허리를 감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슈누 신이 똬리를 틀고 있는 거대한 뱀 위에 누워 영원히 휴식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이 뱀은 인간의 무의식을 상징한다.

스칸디나비아, 유럽, 라틴 아메리카, 중근동 그리고 세계의 여러 고대 문명의 흔적을 살펴보면
뱀의 힘을 상징화한 기념비나 공예품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고대에 이미 세계 곳곳에서
쿤달리니 에너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쿤달리니 각성의 고대 경전을 보면 쿤다리니는 감긴 채 물라다라에서 잠자고 있다가
각성되면 풀리면서 척추 중심의 심령적 통로인 수슘나를 통해 올라가는 도중 챠크라가 열린다고 기술되어 있다.

브라마차리 스와미 비야스데브(Brahmachari Swami Vyasdev)는
<The Serpent Power>이라는 저서(著書)에서 쿤달리니 각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描寫)했다.
"수도자는 타오르는 숯과 같은 붉은 눈에 번개처럼 번쩍이며
진동하는 혀를 가진 길이 10인치의 황금색,
또 빛나는 검은색의 뱀과
빛나는 기둥 형태의 수슘나를 보게 된다"

※ 칼리

 

칼리는 탐욕과 파괴의 여신.

힌두교의 최고 여신 데비는 원래 차분하고 평화로운 신인데, 이 여신이 가진 난폭하고 무서운 측면이 바로 칼리 여신이다.
데비와 칼리를 같은 신의 다른 모습으로 구현하는 것은 상반된 것을 한데 결합하기 좋아하는 인도인의 심리 때문이라고 한다.
칼리는 피를 좋아하는 여신으로 피투성이의 검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 보통 혀를 길게 내민 모습으로 묘사된다.
손은 4개인데, 각각의 손에 칼, 방패, 거인에게서 잘라낸 손, 목조르는 올가미를 들고 있기도 한다.
목에는 해골을 엮어 만든 목걸이를 걸고, 허리에는 잘린 손을 엮어 만든 허리띠를 두르고, 축 늘어진 남편 시바의 몸 위에서 춤추는 모습으로 조각되기도 한다
시바와의 결혼은 후세의 신화 ․문예의 좋은 소재가 되었고, 또 힌두교의 샤크티파(派)와 불교의 밀교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현대의 인도에서도 칼리 숭배는 성행하고 있어, 갈리가트사(寺), 마이솔시(市)의 차문디 언덕에 있는 칼리 여신의 신당은 유명하다.
5.. 쿤달리니는 에너지인가? 신경메시지인가?

쿤달리니가 실제 무엇인지에 관해 연구하는 학파는 많다.
많은 요기들은 쿤달리니를 척추와 연결된 비관을 통해 올라가는 프라나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쿤달리니가 프라나 체내의 프라나 류(流)의 일부분이며 해부학적으로 대응하는 곳은 없다고 간주한다.

또 다른 요기들은 쿤달리니가 신경섬유를 통해 흐르는 메시지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이 메시지의 흐름이 척추의 관을 통해 두뇌의 일정한 해부학적 센터로 상승한다고 한다. 이들 학파는 쿤달리니 체험을 각기 서로 다르게 표현한다. 그러나 쿤달리니 체험이 척추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전적인 정신(精神), 생리적(生理的) 사건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척추 안에 뇌척수액이라고 하는 매우 중요한 액이 있다.

쿤달리니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쿤달리니는 인간의 의식(意識)을 활성화(活性化)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고귀한 자질을 계발하고 자기 자신의 성품을 이해하며 전 우주와 자신이 하나(合一)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과거 또는 미래의 모든 위대한 기적은 우주의식의 보고(寶庫),
즉 두뇌 속에 숨겨진 황금달걀(히라니야가르바)로부터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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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있는 이 특별한 장소는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자각(自覺)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대의 성현, 뉴턴, 아인슈타인 등과 같은 위대한 천재들에게 나타난 계시는 우리 속에도 존재한다. 단지 그들에게는 의식의 표면까지 수준에 나타났지만 우리에게는 미처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것이 천재적 예술가와 범인과의 차이이다.
쿤달리니 요가의 목적은 의식적 파워를 각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파워 또는 상위의식의 힘에 대한 완전한 조절력을 키워야 한다.
쿤달리니 요가에 의해 :
물라다라에서부터 아즈나에 이르기까지의
센터들을 작동시켜 점차 지혜가 우리에게 싹트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 차원을 마스터하고 자연의 신비를 발견했다.
이제 쿤달리니의 각성 과정을 통해 영적(靈的) 차원을 통달해야 할 때이다.

프라나야마와 같은 호흡 수련으로 물라다라차크라의 각성이 일어나면 이 액(뇌척수액)이 자극된다.
과학자들도 무엇이 일어나는지는 확실히는 모르지만 쿤달리니 각성의 체험을 연구함으로써 한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뇌척수액이 척추를 통해 올라가면 의식이 바뀐다.
이것은 진화(進化)에 관한 한 무척 중요한 사실이다.
칫타(Chitta)적 의식이 인간에 있어서 진화(進化)를 겪는 것이다.
※ 칫타 : 정확히는 마음 작용, 즉 생각과 사유 활동의 전체를 뜻함.
반면 마나스(Manas)는 칫타가 활동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칫타는 신체에서 위치점이 없으며 성질상 심리적이다.
그러나 칫타는 감각에 의해 주어진 정보에 의해 조정된다.

마음( Chitta ; 의식 )은 계속 정보가 주어지면 그 진화가 방해를 받는다.
그러나 감각에 의한 정보를 차단해 버리면 마음은 순식간에 진화한다.
다시말해 눈, 코, 귀, 혀, 입 등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로부터 마음을 분리시키면
마음은 독자성(獨自性)을 경험하게 된다.

프라나야먀(Pranayama-調息)
중 뇌척수액이 영향을 받으면,
감각이 둔해지고 그 메시지가 아주 느리게 마음으로 전달된다.

뇌척수액이 고도로 자극되면 모든 감각적 자극은 중지되고
칫타 내에서 내적 체험(內的體驗)이 일어난다.
이것은 때로 기이한 것일 때도 있다.
빛을 보거나 지구 전체가 진동하는 것을 느끼거나 몸이 솜털처럼 가벼운 것을 경험한다.
이들은 모두 뇌척수액의 반응 결과 생긴 마음의 체험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고(故) 이착 벤도프(Itzhak Bentov)
[쿤달리니 명상 중 두뇌 피질 둘레에 신경 자극(神經刺戟)이 회전함으로써 발생하는 효과]
라는 이론을 펴기도 했다